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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움직임을 보면서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전황을 보면서, 하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보면서. 우선 전황을 보면서 느낀 바를 말하겠다.

 

1. 러시아의 작전 변경

 

"러시아가 이제 잘하는 걸 하려는 구나."

 

러시아가 이제 제대로 칼을 갈기 시작했다. 아니, 칼을 간다기보다는

 

"이대로 질질 끌려갔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다."

 

라고 판단을 내린 거 같다. 극동지역 주둔군, 동부 군구(軍區. Military district) 쪽의 병력을 이동시킨 거다. 이 병력이 어디로 갈지는 예상할 수 있다. 거기다 중화기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키이우(키예프) 쪽으로 계속해서 탱크·자주포·부라티노 같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 행렬이 근 70㎞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열압력탄을 도시에 쐈다거나 집속탄을 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러시아의 5대 군구_출처 경향신문.jpg

출처 - <경향신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화력 투사에 의존하는 군대다. 스탈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원조 '화력덕후'가 바로 러시아다. 그 러시아가 제대로 칼을 뽑아 들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아니, 그럼 처음부터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란 것이다. 러시아의 1차 공세 당시의 병력을 보면, 정확히 러시아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1차 공세 당시 러시아는 160여 개의 '대대전술단(BTC: Battalion Tactical Group)'을 중심으로 편성됐다(이중 100개를 밀어붙였다).

 

여기서 대대전술단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는데, 냉전과 걸프전이 끝나고...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전 세계 군대의 트렌드는,

 

"작고 빠르게!"

 

로 바뀌었다. 이 전까지의 군대는 사단 단위가 기본이었다. 그러나 2차 걸프전, 즉,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이제 '여단" 단위로 바뀌게 된다. 미국의 스트라이커 여단이 대표적인 예이고, 한국군도 이제 여단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통신과 화력, 기동력의 증대로 예전에 사단 단위로 커버했던 지역을 여단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게 됐다. 이런 트렌드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게 러시아의 대대 전술단이다. 이건 러시아군의 '독특한 경험'이 만들어 낸 특이한 편성이다(물론, 현재 이게 러시아군의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편성이라고 말하긴 어렵고 임시로 만들어진 '전투단' 성격으로 보는 게 맞다).

 

러시아 대대전투단(Battalion Tactical Group).jpg

러시아 대대전술단

 

러시아는 체첸 전쟁과 조지아 전쟁, 그리고 돈바스 전쟁을 치르며 이렇게 생각했다.
 

"크고 무거운 편제 필요 없어! 지역 분쟁에서는 작고 가벼운... 그렇지만 있을 건 다 있어야 해!"

"이게 좀 이율배반적인데요? 작고 가벼운데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니요?"

"야, 시가전할 때 탱크 필요하지?"

"필요하죠."

"그 탱크를 지키려면 기계화 보병도 필요하겠지?"

"당근이죠!"

"그럼 그 보병들에게 화력지원을 해줄 포병도 필요하겠지?"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기계화 부대가 가면 필연적으로 방공부대도 붙어야겠지?"

"그렇죠... 근데 이렇게 다 붙이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는 거죠?"

"사이즈만 줄이면 된다니까!"

 

기본적으로 1개 전차 중대(탱크 10대)에 3개 기계화보병중대(장갑차 40대로 편성)가 주축 병력이다. 여기에 1개 대전차 중대와 2~3개의 포병 중대(자주포나 다연장로켓을 운영한다), 그리고 이들을 하늘로부터 지켜주는 방공중대 1개가 붙는다.

 

이건 기존 러시아 대대의 화력과는 비교가 안 되는 화력이다. 러시아는 이런 식의 대대전술단을 우후죽순처럼 막 늘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체첸이나 조지아, 돈바스 전쟁 같은 지역분쟁에서는... 역시 작고 빠르고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대대전술단이 최고야!"

 

란 경험칙이 작용한 거다. 실제로 조지아 전쟁과 같은 작은 분쟁에서는 꽤 효과를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이 제대로 된 '정규군'이 아니고, 보병이 잘해봐야 대전차 화기를 들고 덤벼드는 상황에서는 대대전술단과 같이 작고 빠른 애들이 좋았다. 게다가 상대하는 적들과 비교하면 화력도 빵빵 했다.

 

다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지역 분쟁에서 빨리 치고 빠지는 것에 특화돼 있기에 보급이나 정비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즉 전투 지속 능력이 그만큼 짧다. 다시 말해서,

 

"공세 종말점이 빨리 올 수 있다."

 

라는 걸 의미한다. 그동안의 지역분쟁에서는 이게 딱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우크라이나였다. 썩어도 준치다. 한때 세계 3대 핵보유국에 이름을 올렸고 냉전 시절, 소련의 전략 예비 병력이 집결하던 땅이다. 이들은 그전에 러시아가 상대했던 체첸이나 조지아와는 급이 다른 존재다.

 

여기서 러시아의 오판이 시작된다. 15만이라는 적은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 것부터 실수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라, '지역분쟁을 해결'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한 거다. 대대전술단이 그 증거다.

 

우크라이나 여기저기에서 러시아가 '보급' 문제로 장갑차와 탱크를 버렸다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어딘지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대전술단은 원래 보급이나 정비에 취약한 구조다. 이들은 지역분쟁을 해결하는데 특화된 부대 편성이다. 그런데 이들이 빈약하지만 '전선'이란 걸 그어놓고 전투를 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 상황이 지역분쟁 수준이 아니란 걸 러시아가 슬슬 깨닫고 '정규전'을 위한 모드로 바꿔 간다.

 

러시아 장갑차 끌고 가는 우크라이나 농부_뉴스1 티비 캡쳐 영상 링크.jpg

출처 - <뉴스1TV 영상 캡처>

 

키이우(키예프) 쪽으로 70㎞ 가까이나 되는 병참선(兵站線, 병참 기지에서 작전 지역까지 작전에 필요한 인원이나 물자를 지원·수송하는 길)이 움직이고, 자주포와 탱크, 열압력탄을 장착한 다연장로켓 등등이 움직이는 건...

 

"이제 우리가 잘하는 걸 하자."

 

라고 모드 체인지를 한 거다. 우크라이나를 가볍게 봤던 러시아가 제대로 달려드는 상황이 된 거다. 도시를 '평탄화'하고 쓸어버리는 게 주특기인 러시아군이 화력을 제대로 집결하고 있다.

 

2. 핀란드가 움직였다, 그리고 신냉전

 

전 세계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무기와 구호품을 보낸다. 금융제재나 외교적 제재보다 무기 지원이 엿보인다. 나토 내에 동구권 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은 이참에 무기를 바꾸겠다며, 자신들의 전투기들을 우크라이나로 보냈다. 불가리아가 MiG-29 15대와 Su-25 14대를 보냈고, 폴란드도 MiG-29 28대를 보냈다. 슬로바키아도 MiG-29 12대를 보냈다. 역시나 돈의 힘, 그리고 나토의 힘이란 걸 느끼게 된다. 전 세계 220여 개 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 쪽에 붙은 게 최소한 200개 정도 되는 인상이다.

 

폴란드가 MiG-29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_출처 NewsTv 화면 캡쳐.jpg

폴란드가 MiG-29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

출처 - <NewsTv 화면 캡쳐>

 

특히 눈여겨봐야 하는 게 그동안 '중립'으로 붙어 있던 곳의 움직임이다. 내가 주목한 건 핀란드다.

 

"씨발, 우리도 너희 도와줄게. 많이는 못하지만... 그래 돌격소총 2,500정이랑 총알 15만 발, 대전차무기 1,500개랑 전투식량 7만 개를 우선 보내줄게... 야, 먹고 힘내서 잘 싸워야 한다!"

 

핀란드가 움직였다. 그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붙어 있는 나라로 냉전 시절 소련의 '내정간섭'도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 '독립'을 지켰다. 소련의 허용으로 냉전 시절에는 서방세계와 소련의 창구 역할도 하면서 잘 버틴 동네다. 물론, 2차대전 당시에는 겨울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한참 지지고 볶고 싸웠던 전력도 있는 동네지만... 여튼, 그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중립국 핀란드 나토 가입 언급_출처 한겨레.jpg

출처 - <한겨레>

 

러시아는 실수했다. 이제 전 세계가, 아니 최소한 '유럽'이 등을 돌리고 있다. 독일부터가 이제 2022년 국방비를 1,000억 유로로 증액할 거라 선언했다(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본격적으로 싸움 붙기 전인 2020년 당시, 독일 국방예산이 514억 유로였고, 슬슬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던 2021년 예산이 530억 유로였다. 지금 독일이 어떤 상황인지 느낌이 오는가). 그동안 오바마나 트럼프가 온갖 개 쌍욕을 해 가며,

 

"안보 무임승차하는 나쁜 유럽놈들!"

 

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꿈쩍하지 않았던 독일을 포함한 유럽인데, 이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연방군_출처 오마이뉴스.jpg

독일연방군

출처 - <오마이뉴스>

 

중립국 핀란드가 심각하게 나토가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왔다. 그동안 '꿀'을 빨던 유럽인들이 국방비에 돈을 쓰고, 다시 전투 모드로 돌아서게 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국방비 증액에 관하여 의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주목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현실은 분명한 대응을 요구한다."

 

'새로운 현실'이 뭘 의미하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새로운 냉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