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온 것 같았다. 글도 써지지 않고 일도 진척이 없다.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결과는 없다. 해야 할 숙제는 쌓여만 간다. 환절기라 몸이 쳐져서 그렇겠거니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이게 다 대선 때문이다. 어떡하지.
마음은 갈팡질팡, 몸은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축 처져 있는데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원고를 기다리다 답답했는지 이번엔 구체적으로 주제까지 정해진 주문서를 보냈다.
‘그 시절, 함께 한 노무현’
어우, 어렵다. 그분 이야기를 감히 내가?
50대 아재가 겪었던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담히 ‘수필’로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여기서 ‘수필’이라는 것은 마음을 가볍게 하여 부담 없이 미끼를 물게 하려는 유혹의 단어임이 틀림없다. 무서운 사람...
그러고 보니 벌써 5월이다. 그가 떠난 5월 23일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족도 아니고 친지나 직원도 아니었던 내가 대통령하고 직접적인 접점이 있을 리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 운 좋게도 젊은이로 살았다는 것 정도나 될까?
출처-<노무현재단>
편협한 사고와 남루한 가치관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가,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저 그가 떠난 오월에 즈음하여 내가 기억하는 그 분에 대한 기억, 그리고 여전히 옅어지지 않는 미안함과 그리움을 정리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한다.
남루한 가치관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던 내가 세상을 다른 측면에서, 다시 말하면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깨워준 그가 여전히 가슴 속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세계사 선생님과 노무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너는 절대 저런데 따라가면 안 된다.”
어린 시절, 데모 이야기만 나오면 어른들이 하던 말씀이었다. 할머니도 그랬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랬다. 선생님도 그랬다. 나가서 싸우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다, 틀리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운 일들이 생기니까,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혹시라도 잡혀가면 고초를 당할 테니까, 무서우니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였다. 조금 지나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될 테니 잠자코 있으라고 했다.
하늘로는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땅으로는 헬멧과 청청패션으로 무장한 사복경찰이 뛰어다니던 스펙타클한 시위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거의 매일 계속됐다. 어른들 말이 무조건 맞는다고 생각하던 나도, 나이를 먹어 머리가 커지고 피가 뜨거워졌다. 부당한 일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대체 사람들은, 언론은 이런 일을 왜 못 본 척하는지 궁금했다.
출처-<노무현재단>
운 좋게도 학교에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바로 세계사 시간이었다. 당시 세계사는 대입 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일주일에 딱 2시간만 배정되어 있었던 소위 변두리 과목이라 비교적 젊은 역사 선생님이 맡아 들어오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변두리 과목이었던 세계사가 국·영·수를 제치고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집중하던 유일한 수업이 되었다. 뒤에서 떠들고 장난치던 아이들까지도 언제부터인가 세계사 시간을 기다리고 선생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뼈아픈 근현대사에서부터 신군부의 군사 독재 치하에 살아가고 있는 당시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무려 학교에서 듣고 배웠다. 벌겋게 상기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쓱해 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세계사 선생님을 마치 감춰진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메시아처럼 따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
출처-<한겨레>
당시 공공기관마다 커다란 붓글씨로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국정 추진 방향을 슬로건으로 만들어 걸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매일같이 마주했던 그 슬로건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정의’라는 단어가 오히려 한없이 무기력하고 공허해 보였던 것이.
6월 항쟁으로 피 흘리며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에서도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놀라운 결과를 목격하고 나서는, 공허한 단어를 앞세운 어른들의 논리가 더는 그럴듯해 보이지도,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게 되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았으니 민주 정부라고 해야 할지, 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집권했으니 군부독재의 연장이라고 해야 할지 어정쩡한 결과를 만들어낸 어른들이 미웠을 뿐이다.
6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87년 대선과 88년 총선, 서울 올림픽, 그리고 5공화국 비리 청문회 등 숨 가쁘게 돌아가던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88년 11월,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5공화국의 비리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초선의원이었던 그가 무려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졌다.
오! 멋지다!
집어던졌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며 그냥 책상에 세게 다시 내려놓은 것뿐이었다는 후일담도 있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황제에게 술잔을 던진 것과 비교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당연히 파격적인 행보의 노무현 의원과 그의 질의 시간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노무현 의원은 기대보다 훨씬 더 훌륭히 청문회에서 활약했다. 특히나 그는 나중까지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의 단어들을 사용했는데, 당시 정치인에게서는 처음 보는 신선함이 있었다.
출처-<노무현재단>
기존 정치인들에 비하면 그는 똑똑하고 재빠르고 기민한 새바람이었다. 증인을 심문하는 그의 옆에는 언제나 엄청난 두께의 자료 뭉치가 놓여있었다. 근거를 기반으로 조목조목 증인을 압박해가는 그의 모습은 한여름 냉수 같은 속 시원함 그 자체였다.
그에게서 수업 시간에 열변을 토하던 세계사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외모와 말투였지만, 두 사람의 말에서 느껴지는 양심과 진심은 닮아있었다. 진심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2. 이게 정치인 연설이라고?
영화나 소설을 보고 가슴 뭉클했던 적은 있었어도 정치인의 연설을 듣고 가슴 뭉클했던 적은 없었다. 책에서 보았던 링컨의 연설문도 케네디의 연설문도, 딱히 심금을 울리지는 않았다. 그 시대 그 현장에 살아보지 않아서일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가슴을 울린 딱 하나의 정치인 연설이 있었다. 88년 청문회에서 처음 발견된 후 소신이었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깨질 줄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험한 길로 뛰어가던 ‘바보’ 노무현의 대통령 선거 출마 연설이 그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 2001년 대선후보 출마선언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을 상대로 한 번도 권력을 쟁취해보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약 10분 남짓한 이 연설은 비뚤어진 세상을 바르다고 애써 우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힘에 눌려 부당함에 눈감아라, 너는 빠져라! 우리를 타일러야 했던 어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을 한탄하고 누군가에게 분노하기보다, 깨어있는 것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우리는 안돼.’라고 생각했던 뿌리를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벗어던지면 우리도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가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지,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의 이야기를 다시 짚어보니 알 것도 같았다.
그의 연설에도 ‘정의’라는 단어가 나온다. 한 번이라도 권력을 상대로 권력을 쟁취하는 역사를 만들었을 때, 떳떳하게 아이들에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가슴 벅찼다.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아팠다. 불이익 앞에 부당함을 외면하고 두려움에 입 닫았던 기억들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 부끄러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불의에 떳떳하게 맞서는 새로운 역사,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그 정의로운 역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13주기 추도식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출처-<한겨레>
그는 가야 할 길을 아는 사람이었다.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했다.
3. 그가 떠난 날
그가 떠난 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비보를 접하고는 온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뉴스만 뒤적이다 퇴근했다.
그날 저녁 선배와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약속을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길을 나섰다. 누군가와 이야기라도 나누면 혹여 마음이 좀 진정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난, 그럴 줄 알았어. 깜이 아니었던 거야.”
그동안 전혀 정치적 이야기를 나눈 적 없던 선배가, 우울해하는 나를 보고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런 건 오늘 할 얘긴 아닌 것 같은데요.”
때를 가리지 않은 무례함에 귀를 의심했다.
“MB 좀 봐, 얼마나 잘해? 고려대 라인이야. 주변에 사람도 많더라. 이번에 원전도 수출했잖아?”
어떻게든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 것이 향후 관계에 좋았겠지만, 아니 애당초 그날 밤, 사람에게 위로받고자 하는 생각을 접고 조용히 집에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도 화가 났다. 선배의 말을 하나씩 반박하기 시작했고 언성이 높아졌다.
어떻게 그 자리를 정리하고 헤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느꼈던 몸서리치는 한기만 기억한다. 그날 이후 그 선배를 보지 않는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 앞에 그토록 무례한 태도를 보였던 자를 다시 선배라 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장례 기간 내내 대한문 분향소에 매일 가서 줄을 섰다. 상실감. 슬픔. 미안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뭐라도 하고 싶었다.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전직 대통령이 뇌물을 받아 챙겼다느니,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느니 하는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코웃음을 쳤었다. 검찰은 고향에 내려가 시골 할배가 된 대통령을 기어이 서울로 호송했다. 언론은 그가 서울로 오는 몇 시간 동안 생중계하면서 모욕했다. 그 말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설마 저런 뉴스를 믿는 것이냐며 비웃음을 날리고 귀를 닫아버렸었다. 그 정도 하고 말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정말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아꼈던 그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했던 정치인 노무현이 얼마나 힘든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외로워했을지 헤아리지 못했다.
13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출처-<한겨레>
분향소에서 그의 죽음을 확인하며 머릿속에 맴돈 생각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였다. 정말 그랬다. 여전히 이기적이었던 나에겐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붙들어 줄, 들불처럼 일어나는 가슴 속의 화를 다독여 줄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앞섰다.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외롭게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을 그가 안쓰럽고 미안해 시청 앞 광장에 엎어져 꺽꺽댔다.
4. 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죽음을 만났다. 처음으로 길렀던 금붕어와도, 예뻐했던 강아지와도, 달콤한 식혜로 기억하는 할머니와도, 온 세상이었던 어머니와도 헤어졌다. 살면서 마주친 죽음은 경계를 넘어간 이들을 더는 만질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상실과 그리움으로 남았다. 얼마나 미안한지, 얼마나 보고 싶은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어도 가슴 속에 눌러 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남았다.
그리운 마음은 결국 다소간의 차이를 두고 시간에 지고 만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리움은 조금씩 옅어지고 이내 이별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그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격렬한 슬픔은 옅어졌지만,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가슴 한구석이 꾸욱 눌리는 것처럼 아파져 온다. 그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난 여전히 그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극적인 승리에 취해, 그를 깃발처럼 내걸어 놓기만 했다. 세상을 바꾸라며 모든 짐을 그에게 떠넘겨 놓기만 했다. 안팎으로의 힘겨운 싸움에 그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자위하며 깨어있는 시민인 척 하루하루를 살아 오늘까지 왔다.
23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착용한 등산화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노무현재단>
고맙기 때문이다. 위만 올려다보며 더 가지려 버둥대던 내가, 이제 그를 생각하며 때때로 옆을 쳐다보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지도 고민한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가 했던 말을 다시 꺼내 곱씹는다. 인제야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고민한다. 엄마를 잃고 나서야 엄마 말을 듣고 냇가에 엄마 무덤을 만든 청개구리처럼, 비가 오면 그가 생각나 울어댄다.
다시 만나면 꼭 말하고 싶다.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그의 말처럼 자연의 한 조각으로 그와 다시 뒤엉키는 날, 그가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물려주려고 이만큼 애썼다고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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