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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재인가  

 

교과서엔 나오진 않는, 조선시대 일기 속에 담긴 출근러들의 삶과 비애를 통해, 그들의 삶도 오늘날 여러분의 하루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소개합니다. 호된 신고식을 당하는 신입사원, 왕비에게 탈탈 털리는 미관말직, 할 거 다 해 봐서 파직만 기다리는 만렙 고인물까지. 녹봉에 웃고 출근에 울었던 ‘조선 직딩’들의 숨 가쁜 이야기 속에서 어느덧 여러분의 하루가 떠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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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연재 중 조금씩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1부

 

1. 만년 참봉 금난수의 현기증 나는 관직 생활

2. ‘영남의 1타 선비’ 김령의 신입사원 분투기

3. 최전방 GOP 삼수갑산 장교의 삶, 노상추

4. ‘소확횡’과 재테크를 동시에, 유희춘

5. 인서울 출근러 황윤석의 셋방살이

 

2부

 

6. 국제외교전의 현장에 던져진 외교관, 황중윤

7. “범인은 바로 너!” 수사관이자 재판관, 서유구

8. “나 도지삽니다.” 그런데 선정(善政)을 곁들인, 조재호

9. ‘기로소 고인물’ 권상일의 ‘파직은 거들뿐’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때가 있다고 합니다. 누구는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발견해 일찍 자리를 잡고, 누구는 서른이 훌쩍 넘어서 운명처럼 길이 다가오기도 하죠. 길의 모양새와 그 끝의 목적지는 다 다르지만, 직업이라는 길은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합니다.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면서 매일 같이 출근길 지옥철을, 상사의 갈굼을, 따박따박 닥쳐오는 대출 이자를 견디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철저한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유학의 나라입니다. 즉, 모든 사회 구성원이 역할을 부여받고 그 의무의 준수를 강하게 요구하는 나라였습니다. 역할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에게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졌죠.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 할 거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퀘스트를 해치워 나가는 하루를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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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막중한 퀘스트를 받은 한 명의 유학자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의 제자라는 부담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책임감, 한 사람의 사대부로서 나라에 공을 세워야 하는 충성심에 시달리던 사람, 금난수(琴蘭秀, 1530~1604)입니다. 

 

하지만 그가 짊어진 거창한 짐과는 달리, 그의 하루는 짱구 아빠 신형만 씨처럼 정신없는 월급쟁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묘지기이자 창고지기였던 그의 공시생 시절부터 직장 생활까지, 함께 보시죠.

 

 

과거 시험에 지친 장수생 금난수

 

금난수는 1530년 예안, 지금의 안동에서 태어납니다. 안동 일대의 사대부들은 서로 혼인과 학문 교류를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요. 사림(士林)이라는 윗세대보다 철저하게 성리학에 기반을 둔 현실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조정의 중신이 되던 때, 금난수 또한 그 꿈틀거리는 시대에 기꺼이 몸을 던집니다.

 

봉화 금씨가 고려 때부터 이어진 명문가였던 만큼, 금난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으레 하는 공부와 진심을 다해서 하는 공부는 완전히 다르죠. 그가 후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건 15세 때 인생을 바꾼 책 속의 한 문장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다.”

 

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말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의 맥락에서 나온 말입니다.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자신의 선한 본성을 되살려 도덕적 완성을 이루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도덕적 완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서 해야 하는 ‘도 닦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오랜 세월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존버할 수 있게 한 힘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굳건해도 정작 옆에 있던 친구나 동기가 먼저 달려 나가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요. 벗이자 처남이었던 조목(趙穆, 1524~1606)입니다. 조목은 금난수를 퇴계의 문하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금난수보다 한발 앞서 있었고, 훗날 도산서원에 퇴계의 제자 중 유일하게 배향(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26살의 금난수가 조목과 함께 과거를 보러 갔을 때도 조목만 붙었고, 금난수는 근처도 못 가 본 성균관 생활도 했습니다.

 

친구인 조목이 이렇게 퇴계의 수제자로 잘 나갈 때, 금난수는 20대와 30대 내내 고향에서 과거 장수생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장수생 생활은 지금 누군가의 고시 생활과 다소 비슷했습니다. 맨날 보던 책을 더 보기는 싫은데 시간은 자꾸 흐르니, 후배들 불러 모아 술 파티를 열어대는 겁니다(그렇다고 금난수가 지금의 누구처럼 무식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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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들, 먹고 죽자고~

 

금난수는 평생에 걸쳐 여러 계 모임을 만들던 ‘핵인싸’였습니다. 그러던 중, 기약 없는 고시 생활이 지겨워졌던 그는 이황에게 “고마 때려치우겟심더”라고 말하는데요.

 

1560년 11월 9일 - 『성재일기(惺齋日記)』

 

나는 어릴 때부터 두류산의 웅장함과 가야산의 기묘한 절경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지인들이 두류산과 가야산 근처의 현감이 되었으니, 지금이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딱 좋은 때였다. 그래서 오늘 퇴계 선생님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사람은 제각기 어질거나 어리석고 존귀하거나 비천하지만, 모두 각자의 처신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공부 머리가 없어 과거 합격은 턱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속에 박혀서 농사나 지을까 합니다만,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먹고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속세에서 살아가다가 저의 내면 안의 착한 본성이 옅어질까 두렵습니다.”

 

퇴계 선생님께서는 나의 고민을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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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나는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네. 자네는 좀 더 세상을 겪어야 하네. 자네는 유독 머리와 마음으로만 알뿐이지. 세상을 널리 직접 겪고 배운 바를 실천하시게.”

 

‘선한 본성’의 회복을 믿던 그는 스스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고 싶어 했습니다. 때 묻은 속세에 얽혀 살면 선한 본성이 흐릿해질까 두려워하면서요. 그런데 당대의 1타 강사 퇴계는 “머리만 굴리지 말고 몸소 발로 뛰어라”라는 조언을 합니다. 이론적인 논의에 치우친 젊은 제자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세상이 무엇인지 아는 것임’을 이황은 꿰뚫어 보았던 거죠.

 

그는 퇴계의 조언을 잘 따랐습니다. 1560년~1561년 동안 그는 보고 싶었던 가야산과 두류산을 둘러보고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중에는 남명 조식을 직접 만나 퇴계의 제자로서 대접받기도 하죠. 그 덕분이었을까요? 1561년 2월, 32세가 되던 해에 본 과거는 뭔가... 뭔가가 달랐습니다.

 

1561년 2월 26일 - 『성재일기(惺齋日記)』

 

나는 항상 시험장에 들어가 답안지를 작성할 때마다 남들보다 늦게 나오곤 했다. 내가 민첩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술술 막힘 없이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달랐다. 여느 때와는 달리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시험지를 제출하고 깔끔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술을 퍼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오늘, 드디어 관아에 걸린 공지를 보고 알았다. 생원시와 진사시를 2등으로 합격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지인과 동문이 모두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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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띠발, 내가... 내가 합격이라니!!!!

 

시험장을 빨리 나서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시험을 던졌거나, 시험이 너무 EZ했거나. 금난수는 언제나 해가 지도록 답안지를 붙들고 끙끙 앓는 타입이었지만, 이번 시험은 시원시원하게 답을 작성하고 쿨하게 떠납니다. 

 

그 결과, 드디어 그에 손에는 합격 목걸이가 쥐어지죠. 오랜 세월 기약 없는 과거 공부만 하다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할까 고민하던 그해,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드디어 성과를 거둔 겁니다. 과거 합격 이후 그는 역시 핵인싸답게 끝없는 술 파티를 벌인 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9급 공무원이 되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금난수가 붙은 시험은 생원시와 진사시였습니다. 관료가 되고 싶다면 대과에 응시해야 했지요. 이후 그는 당연히 대과에 응시했지만, 시험을 보는 족족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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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미취겠다... 인생 피는 줄 알았더만 

 

결국, 30대 내내 관료 진출에 실패했고, 40대에는 스승인 퇴계 이황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활동에 매진하죠.

 

하지만 친구인 조목은 쭉쭉 잘 나갔습니다. 퇴계 이황의 수제자라는 평판 덕분에 여러 차례의 관직 천거도 받게 되는데요. 조목은 스스로 관직을 거절하다가, 1576년 결국 봉화 현감직을 받게 되죠. 그에 반해 금난수는 50세가 되던 1579년, 드디어 첫 관직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그에게 내려진 관직은 현감직도 부사직도 아닌, ‘묘지기’였습니다. 

 

<계속>

 

 

 

추신

 

빵꾼, 인사드립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1.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2.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에 이어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내놓았습니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의 복지 정책을 이야기하며 그 정책들이 백성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로 인해 어떠한 사회 단면을 만들었는지를 야무지게 담아놓은 책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담아내고자 시도했습니다.  

 

매번 책 소개를 드리기가 죄송하고 쑥스러워 이번에는 책 발간을 비밀로 하려 했으나, 딴지 편집부에서 귀신같이 알고 책 관련 원고를 써오라고 협박해서 기사로도 책 속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 최약 계층 지원 정책」(링크) 챕터 일부 이야기를 소개했었습니다.

 

조선의 복지정책에 대해 다방면으로 열심히 담아놓은 책이니, 자신만만하게 말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형님, 누님, 동생 여러분! 책 한 권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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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https://www.instagram.com/ddirori0_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