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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와 건축가는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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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건축가입니다. 대학에서 건축 설계를 가르치면서 작은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어? 건축사와 건축가는 뭐가 다르지?”

 

라는 생각이 스쳤는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건축사와 건축가는 서로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겁니다.

 

“건축사, 건축가 그리고 설계사의 차이가 뭔가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차이부터 정확히 알아보겠습니다.

 

건축사는 시험을 보고 건축사(建築士)라는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을 말합니다. 시험을 보려면 (2023년 기준) 5년제 건축학 교육을 받고 최소 3년간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수련을 한 뒤, 합격률이 매우 낮은 건축사자격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국토부장관이 주는 건축사 자격증까지 받아야 건축사의 직함을 달 수 있습니다.

 

건축사 자격증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미국 건축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한국에서는 활동할 수 없습니다. 개체수를 컨트롤하는 전문직 개념이라 나라마다 보호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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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사 자격증

 

반면 건축가(建築家)는 작가(作家)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家(집 가)”를 한자 사전에 검색하면 이런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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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한자사전>

 

9. 전문가, 10. 정통한 사람

 

즉, 작가는 무엇을 만드는 전문가,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건축가는 자신이 만드는 건축에 대해 작가적 정신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신춘문예나 국전을 통해 등단, 입봉하는 글 작가와 달리, 건축 작가를 규정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건축가와 건축사의 차이를 간단하게 말해보겠습니다. 건축사는 자격증이 있는 정량적 개념입니다. 건축가는 작가의 요소가 포함된 정성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둘 다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전 의사예요. 전 변호사예요.

 

하면 참 쉽습니다. 하지만 건축사 또는 건축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건축가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땅을 보면 영감이 떠올라 집을 스케치하고, 맨땅에 집을 뚝딱 만들어 내는 도사”

 

또 누군가는 이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불법 증축한 옥상을 양성화 해주는 건축 행정 도우미” 

 

빈 도면 위로 그에 걸맞은 멋진 스케치를 그려내는 일, 한 땀 한 땀 도면을 그려 모형을 만드는 일, 안전모를 쓰고 현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일, 건축주에게 앞으로의 시공 계획을 브리핑하는 일까지. 건축가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건축가를 공대 나온 기술자나 예술가 정도로 설명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건축가가 설계하는 하나의 집을 처음부터 완성까지 풀어보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클라이언트(의뢰인)라고 불리는 건축주를 위한 집을 짓는 여정의 시작부터 함께하다 보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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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을 짓는다면 이런 부분은 이렇게 주문해야겠군!”

 

하고 소중한 팁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쓰고 싶은 글은 이겁니다.

 

사전 건축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집 짓는 이야기.

 

자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의뢰인과 첫 만남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 중. 9시가 땡! 하자마자 전화기가 울렸다. 정각에 울린 전화. 매우 조급한 사정이 있지만, 예의를 차리고 오래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린다. 젊은 여성이다.

 

“건축 상담을 하고 싶은데, 인스타 메시지를 안 읽으셔서 직접 전화 드렸어요.”

 

“아… 죄송합니다. 요즘 인스타 확인을 못 했습니다.”

 

사실 그때 처음 알았다. 인스타에 메시지 기능이 있다는 걸. 일단 메시지를 확인해 보겠다고 대답한 뒤, 허겁지겁 메시지 사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 메시지는 벌써 지웠어요. 혹시 오늘 사무실로 찾아 봬도 될까요?”

 

나는 보통 당일 상담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날 며칠 답장을 기다렸을 이 사람을 생각하니 오늘 당장이라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집의 모습

 

화면 캡처 2023-08-18 123323.png

출처-<효리네 민박>

 

건축주는 젊은 부부였다. 음악 하는 아내와 공학자 남편. 요가와 명상을 좋아하고 유기견, 유기묘를 키운다. 프로필만 들으니 얼핏 이효리, 이상순 커플이 떠오른다.

 

“내년에 암 완치 5주년입니다. 그날을 기념해 저희만의 집을 짓고 싶어요.”

 

건축가는 건축주의 집에 관해 ‘주치의’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이런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도. 여태 이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대략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가늠한다. 

 

의뢰인 부부는 서울과 대전, 호주와 미국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다양한 곳에서 살았다. 이제는 한곳에 정착해 오랫동안 살 집을 짓기로 결심한 거다. 종착지는 경기도 양평. 운명처럼 마음에 쏙 드는 땅을 발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병을 완치할 수 있었던 곳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의뢰인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의뢰인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다. 직접 만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부부는 취미 부자였다. 화가 친구가 선물한 그림이 복도에 놓여 있었고, 커피, 와인, 요리, 골프, 요가, 책, 피아노 등등 집 안팎에서 즐기는 취미가 많았다. 갖춰놓고 즐기는 취미가 많은지라 각각의 아이템마다 따라오는 수납공간이 필요했다. 보지 못한 곳에 접이식 요트를 포함한 다른 짐이 있다고도 말했다. 집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부부가 가드닝에는 취미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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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효리네 민박>

 

아직 이효리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기견을 꾸준히 데려와 키우고 있었고(집을 지으면 이효리 수준으로 강아지들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주말이 되면, 가정집은 펜션으로 변신하곤 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위한 식사, 배변, 산책 놀이 등에 필요한 도구뿐만 아니라 손님을 위한 장비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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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의 집을 실측한 뒤 그린 스케치

 

남편은 다소 불편해도 멋과 디자인을 중시했다. 반면 아내는 실용적이고 편한 것, 그리고 따뜻한 느낌을 선호한다. 까칠한 INTJ와 사교적인 ENFP의 만남으로, 한 가지로 딱 맞추기 힘든 취향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집을 둘러보았을 때 부부가 만든 하모니는 오묘하게 조화로웠다. 물론, 난도가 높아도 그에 맞는 집을 짓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고, "공간 주치의"의 일이다.

 

다음은 건축주가 이루고 싶은 집의 모습이다.

 

1. 동쪽의 해, 남향의 햇살, 서향의 경치까지 즐길 수 있는 집

 

2. 야외와 시선이 연결된 반신욕탕(작은 료칸처럼)

 

3. 요가와 춤, 명상을 할 수 있는 집

 

4. 발가벗고 다녀도 안전한 집

 

5. 손님들이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집(단, 너무 편해서 장기 투숙까지는 곤란)

 

6. 아이들의 피아노 레슨이 가능한 집

 

7. 반려견과 반려묘가 함께 사는 집

 

8. 남편의 요리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주방

 

9. 커피와 차, 와인을 다양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

 

10. 책과 수납이 깔끔하게 되는 집

 

11. 건강한 집(★★★★★)

 

이 소망들이 한 집 안에서 이뤄지는 과정과 모습을 한 꼭지씩 풀어본다.

 

하긴, 집은 우주 아닌가. 집 우(宇)집 주(宙). 집은 그 사람에게 우주나 다름없다. 어찌보면 나 같은 건축사들은 한 인간의 우주를 만드는 직업일지도.

 

해보자. 우주 창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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