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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홀릭 추천1 비추천0
2011. 11. 14. 월요일
행방불패 워크홀릭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많은 제품들은 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품은 단순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윤도 중요하고, 기업의 규모와 기업 내부 인력들이 갖고 있는 직업윤리도 영향을 끼친다. 기업은 끊임 없이 제품의 안전성과 자신의 욕망을 저울질한다.
 
아래에 나오는 A사와 B사의 얘기는 직장생활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상황일지도 모른다.

 
1. A사

제품 개발 완료 후 전기/전자파 안전시험 중이었다.
 
"EMI Test LAB(전자파 시험실)에서 낙뢰시험을 했는데, 기판이 타버렸어요."
 
"뭐야? 현재 M.C(부품구성원가)가 얼마야?"
"11만 7천원인데요."
 
"Surge protector(낙뢰차단회로)를 A급으로 강화하면 얼마나 들어?"
"3천원은 올라가겠죠."
 
"추가 해야지. 안전이 걸린 문제인데..."

드디어 제품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완제품의 품질검사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이 이거봐, SMPS(전원장치)가 노출되어 있지 않나?"
 


 
"제품 안에 들어있는 전원장치가 뭐가 노출된단 말이에요?"
 
"임마. 이 봐. 이렇게 손이 들어가잖아.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건드리면 전원부가 손가락에 닿아서 감전될 수 있잖아."
 
"설마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만지겠어요?"
 
"넌 애 안 키워봐서 몰라서 그래. 애들이 이런 데다 뭐 쑤셔박고 손 넣어보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렇다 해도 생산 막바지라 제품의 90%는 포장도 다 했는데요."
 
"다 뜯어. 그리고 절연판 본딩 작업해서 전원장치에 손이 안 닿게 막아."
 
"그러면 공장 노임도 올라가고, 절연판도 새로 사야 하고, 찢은 박스는 못 쓰고,... 원가 올가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 잡아먹는 제품을 내놀래?"

제품은 수차례 보완되었고 원가는 기획단계 보다 더 올라갔다. 당연히 판매가격은 덩달아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매니아들은 뛰어난 제품이 나왔다고, Made in China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대기업들이 중국산 제품을 OEM으로 들고 들어와 대량광고와 유통망 밀어내기를 시작하자 버틸 재간이 없었다. 대기업이니까 믿을만한 제품일거란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더 안전한 내부구조와 품질을 설명하는 것은 부질 없었다.
 
입소문이 더 퍼지길 바라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점에 원가절감이 이루어질테니 버텨야 했다.
 
벤처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이어줄 펀딩은 되지 않았고, 소량 다품종 생산을 하는 중소기업은 메뚜기처럼 이 공장, 저 공장을 전전하며 제품을 생산했다.
 
결국 회사는 망했다.

 
2. B사
 
밤 1시를 넘긴 시간 주임연구원 S가 모니터에 머리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자세로 폰트 8도 안되는 숫자들을 노려보며 화면을 스크롤 시키고 있었다.
 


 
"뭐 해, 오늘은 스타(크래프트) 안 해?"
 
"아. 정말 미치겠어요. Packet status(통신량 통계값)이 안 맞아요. BMT(벤치마크테스트)는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디버깅(수정) 시간이 너무 없어요."
 
"사장님이 이번 BMT 못 들어가면, 회사 문 닫아야 할 거라고 그런던데... 그래? 얼마나 틀리는데?"
 
"아마 10% 정도 틀리는 거 같아요. 문제는 통계값 알고리즘(계산법)이 틀려서 마이너스로 표시될 때도 있는건데..."
 
"그러면 일단 음수 표시되는 버그만 8이상으로만 표시 되게 보완해."
 
"네?! 그러면 안 되는데..."
 
"일단 통신장비의 기본은 안정성과 성능이야. 통계값 보여주는 것은 그 다음이지. Critical(심각)과 Minor(소소한)는 구분해야지. 그 대신 개발자의 양심을 걸고 납품 후에라도 디버깅해서 O.S를 업데이트는 하는 방향으로 하자. 그리고 힘들더라도 보류했던 tftp(강제 화일 전송) protocol을 올려서 나중에 제품들이 여기저기 납품되더라도 즉시 업그레이드 하도록 대비해 놓자."
 
"넵. 그러면 시스템 안정성 버는데 좀 더 투자할 수 있죠. uptime(시스템이 다운되지 않고 버티는 시간)이 너무 낮아서 그것부터 손보는 게 좋겠네요."

결국 신제품은 납품 벤치마크테스트에서 통계표시 오류를 들키지(?) 않았고, 좋은 성적으로 수의계약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제품에 미비했던 점들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었고, 초기의 오류들은 모두 디버깅되었다. 甲께서는 황송하게도 역시 당신들 제품이 최고라는 칭찬을 내려주시기까지 했다.

이 기업은 중소기업 치고는 경쟁력 있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할 능력도 있었고 영업 현장의 피드백도 가능한 꽤 노련한 프로젝트 매니지를 하는 조직과 맨파워를 갖추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라고나 할까. 최소한의 책임은 지켰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장은 이미 끝난 제품의 디버깅과 사후지원을 왜 이렇게 오래하냐고 빨리 다른 신제품 개발에 나서라고 난리를 쳤고, 프로젝트 매니저와 개발자들은 제품의 오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며 옥신각신 하기를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계속했다. 
 
그러나 사장의 입장에서는 철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너무 많아 답답할 뿐이었다. 회사에는 갑자기 SI(사내 정보시스템)사업이 추가되고, 검증되지 않은 해외 제품들이 OEM형태로 수입해 판매기 시작했다.
 


제품의 안정성을 검증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과 더 많은 매출로 회사를 성장시키자는 의견...
 
조직 내 힘의 균형이 시나브로 무너지더니 회사는 망했다.



A사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다가 망했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몇 안 되는 벤처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자본력과 규모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비자도 투자자도 더 큰 규모와 브랜드를 원했다.
 
A사와 비슷한 처지의 기업들은 대부분 안전시험은 하지 않거나 해도 업체에 급행료를 집어 주고 강제인증을 사버렸다. A사도 이런 기업들의 풍토를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들은 우직하게 원칙을 고수했다.

B사는 꽤 훌륭한 인력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경쟁력 있는 현명한 내부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자신의 능력을 하찮게 생각했다. 얼른 대기업이 되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경영진에게 기업의 책임을 조언할 만한 사회풍토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주와 투자가들은 대기업들처럼 수단 좋게(?) 빨리 규모를 키우라고 아우성이었다.
 

 
원인을 알수 없던 신종 폐질환으로 영유아와 임산부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 폐질환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28명이 사망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해서라도 모든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판매 중지하자고 하는 상황이나, 정부의 대응은 시원찮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업 중에는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의 제품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

이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갖고 있는 유해함을 스스로 시험하고 검증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충분한 자본과 기술이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욱 괘씸하다.
 
만약 이 기업들을 엄벌하지 않으면, 돈의 노예가 된 기업들은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을 것이다. 또한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업들 즉 기업의 책임을 생각하는 기업들은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행여 소비자 안전과 기업윤리를 생각하는 기업이나 프로페셔널들이 있더라도 A와 B 같이 망해버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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