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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5. 화요일
아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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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뉴데일리와 명푼수다에 가진 애정은 딴지일보 수뇌부에서 따를 자가 없다. 필독은 내가 명푼수다 청취를 완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명푼수다를 모니터링 하는 것은 나의 업무가 됐다. 결코 싫은 업무를 사무실 막내에게 떠넘기는 구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단 하나의 트윗에서 시작됐다.


딴지에서 '일기당천' 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재천씨가 '명푼수다'가 녹음비를 구하지 못해 끝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슬픈 트윗을 날린 것이다. 딴지에서 나의 입지를 다져준 방송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리트윗했다.


'나는 꼼수다'가 처음 시작할 때, 녹음비로 대략 5만여 원(생선구이값 별도)의 막대한 자금이 들었던 만큼 '명푼수다'를 제작하는 경제적 부담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따라서 '명푼수다'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지금 이 방송이 사라진다면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는 것이 쪽팔려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뉴데일리가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명푼수다 측은 '오해다' 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트윗을 날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대규모의 스폰서가 붙지 않는한, 5만 원에 달하는 '명푼수다'의 녹음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나는 '명푼수다'의 녹음비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제작사에 문의하는 것이다.


뉴데일리 홈페이지에 나오는 연락처다. 뭐 특별하게 빨대를 꽂았다거나 염탐을 한 것도 없고, 그냥 당당하게 뉴데일리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11월 10일이다.

'네 뉴데일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명푼수다 청취자인데요.(차마 애청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네네'
'다름이 아니라, SNS를 보니까 명푼수다가 녹음비때문에 10회 이후로 녹음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해서요.'
'아 네~'
'그래서 명푼수다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구요, 연락처 남겨주시면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당황과 반가움이 뒤섞인 말투였다.)'
'네 제 번호는요. 010-XXXX-XXXX 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화 내용은 위와 같았다. 매우 일반적인 문의전화였다. 사실 나는 뉴데일리가 '명품수다'를 도울 수 있는방법을 알려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딴지일보는 망해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자력갱생 해보려고 삐약대지 않았던가.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광고스폰을 받는 언론사와, 그 언론사의 컨텐츠가 설마 도와줄 방법 알려달란다고 냉큼 알려주거나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딴지일보의 모든 노하우를 활용하여 저들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후원방법을 마련해 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드보르잡 티셔츠(W) 도안 예시

뭐 이런 티셔츠를 도안을 만들어 준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딴지가 사실 티셔츠 만들어 파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줄 아는 것도 없지 않던가. 나는 우리 회사의 유일한 핵심역량을 누설하면서까지 '명푼수다'를 돕고 싶었다.

역시나 10일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달랑 물어봐놓고 떨어지면 너무 정이 없을 것 같아서 다음날 오후, 뉴데일리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가 어제도 전화를 드렸었는데요.'
'무슨 일로 전화하셨던 거죠?'
'이러고저러고 여차저차해서 번호도 남겼거든요. 연락을 안 주시더라구요.'
'그러셨군요. 죄송합니다. 번호 다시 남겨주시면 국장님께 여쭤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무개입니다. 전화번호는 010-XXXX-XXXX입니다.'

물론 내 본명과 진짜 내 전화번호다. 진짜 연락처를 남긴다고 해서 '그' 뉴데일리가 설마 속도 없이 연락을 달란다고 주겠는가.

이제 어떻게 기사를 써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순간, 갑자기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연락이 왔다. 받아보니... 누구였을까. 그건 바로바로


이 분이었다. 이 분이 누구시냐고? 모른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나도 몰랐으니까. 이 사람은 바로


왼쪽에서 두 번째에 앉아계시는 분이다. 존함을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고 명푼수다에서 활약하고 계신다. 뉴데일리를 열심히 구독한다면 이분의 존함을 들어봤을 것이다. 뉴데일리의 독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분을 모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네이버에서 인물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분이다.

전화를 받은 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이 되시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딴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나는 꼼수다'를 후원하고 싶다고 하니까 총수나 김용민 교수가 연락을 해온 거다.

자신을 '명푼수다' 출연자이자 인터넷문화협회 회장이라고 소개한 그분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마치고, 고맙다는 말을 하더니 망설임 없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재단의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본 기자 엄청 당황했다. 위 사진을 보면, 왼쪽 위에 김용민 교수님과 통화하면서 적어놓은 나꼼수 28회 떡밥이 적혀 있다. 초대손님 없고, 컨트리와 판소리 시그널이 들어가고, 정봉주의 살인적인 깔때기가 돋보이며, 쉬어가는 편이라는 메모다.

즉 방금 나꼼수 김용민과 통화하고, 곧바로 명푼수다의 그분과 통화한 것이다. 오른쪽에 그분의 이름과, 그 밑에는 박모 씨가 운영하고 있다는(명푼수다 2회 참고) 인터넷 문화협회의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punsoo.com으로 가면 명푼수다의 facebook페이지로 연결되니 참고 바란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 계좌부터 까는 패기에 나는 기가 눌려버렸다. 계좌번호를 불러준 그분은 그제서야 나의 이름과 나이를 물어봤다. 나는 당연히 실명을 깠지만 나이는 속이고 말았다.

아아 그렇다. 나는 나의 터무니없이 어려보이는 얼굴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실제보다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그래서 29살임에도 불구하고 30살이라는 거짓말을 했다. 내가 이 전화통화에서 한 유일한 거짓말이다.

그분은 이어서 나의 직업을 물어봤다. 나는 역시나 사실대로 대답했다.

'저는 지금 어플 개발하고 교육사업쪽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바일앱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문장에는 '딴지일보에서' 라는 보어가 생략되어 있다. 나는 아직 주어를 생략하는 그분의 내공에는 도달하지 못한고로 기것해야 보어를 생략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분은 나의 나이와 직업에 무척이나 만족한 것 같았다. '원래 IT쪽에는 이쪽 성향의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라며 무척 대견한 말투로 나를 치하했다. 나의 마음속에 알량한 죄책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명푼수다는 30세 전후의 건강한 생활인을 타겟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딱 30살인 분을 보니까 참 반갑네요.'

이어서 '나는 꼼수다' 를 듣는 사람들이 사회에 불만과 분노를 품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즉 분노와 불만을 가진 종친초(종북, 친북, 촛불 을 줄인 말로 박모 씨가 만든 단어다)들이 나꼼수를 듣는다는 나름의 분석.

그리고 '나는 꼼수다'는 열성적인 좌파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성공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지지기반이 없는 '명푼수다'에는 그런 바탕이 없다고 주장했다. 저들은 나꼼수의 인기비결이 똘똘뭉친 좌파의 조직적인 띄우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명푼수다'를 마케팅 할 방안을 이것저것 말하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나는 물론 성심성의껏 대답해줬다. 명푼수다를 잘 살피기 바란다. 열심히 듣고 이벤트에 참여하면 전여옥이나 정몽준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될지도 모른다.

통화는 언제 한 번 식사나 같이 하자는 그분의 제안으로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되었다. 나의 통화내용을 딴지 수뇌부에 전달하자 사무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계좌를 받았는데 돈을 보내야 하나? 이 안은 부결됐다. 우리가 가진 돈이라봐야 꼼수다 돕겠다고 티셔츠 사주신 분들이 주신 것 뿐인데 이 돈을 아무리 소액이라도 명푼수다에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명푼수다의 녹음 현장이라도 구경하고 싶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자 그분은 '어휴 선생님' 이라며 받았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실례지만 나중에 명푼수다 녹음 할 때 제가 구경을 좀 해도 될까요?'

물론 이 문장에도 '딴지일보 기사 취재 차원에서' 라는 보어가 생략되어 있었다.

'아... 그것은... 좀 힘듭니다.'
'어휴 그렇군요.'
'그래도 조만간 청취자들과의 "번팅"을 한 번 할까 생각중입니다.(번팅이란 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때 보시죠.'
'네 그렇군요'

아쉽다. 역시 그들의 패기는 계좌번호를 까는 데까지로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아참 그리고, 혹시 주변에 음향이나 멀티미디어쪽으로 재주가 있는 사람 안 계신가요?'

아하 이들도 자기들 방송의 음향이 구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으면 나같은 듣보잡에게 인재를 구하겠는가.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 나와 통화를 한 김용민 교수님이었다. 그의 음향 프로듀싱 능력이야 이미 검증된 바 있으니 그야말로 명푼수다에서 찾는 인재였다.

'아 예, 제가 그런 사람을 하나 알거든요. 의향을 물어보겠습니다.'

'저희가 인건비를 많이 드릴 수는 없으니까, 적극적인 알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아!! 김용민 교수님이야말로 무임금 노예노동으로 '나는 꼼수다'를 만들었던 적극성으로 이미 검증된 사람이 아닌가. 더더욱 어울리는 인재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꼭 물어보겠습니다.'

이번 통화 역시 조만간 술이라도 한 잔 하자는 훈훈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나는 일개 딴지 기자에 불과하지만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다. 오늘, 김용민 교수님께 의향을 여쭤봤다. 교수님 왈

'미쳤어요? 편당 2억 4천만원 정도면 생각해 볼게요. VAT는 별도에요~'

아아... 아쉽다. 김용민 교수님은 좀 비싼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명푼수다측은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후에 진짜 잠입 취재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분과 술이라도 한 잔 한 후에 신뢰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진짜 잠입 스파이가 되고 만다. 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어쨌든 나를 '도움을 자청한 마수걸이 팬'이라며 기뻐하던 그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다. 비록 내가 한 일은 뉴데일리에 전화 한 일밖에 없지만 미안하긴 미안한거다.

박XX님. 미안합니다. 딴지일보 기자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술 한 잔 하자는 말씀 아직 유효한 거죠? 제 전화번호 아실 테니까 연락주세요. 우리 존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