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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4.월요일
필독



그랬다.

내가 한 짓이다.

나는 낮의 총수와 밤의 대통령 사이에서 약간의 고민을 한 후 총수를 팔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대체 왜 그랬어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최민식이 분한 악당은 요트를 사기 위해 애들을 죽인다. 설마 겨우, 요트 때문에 내 아이, 내 손자를...? 유족들이 묻는다. 왜 그랬어요? 최민식은 사람 사는 거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내가 할 대답과 같다.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아래는 그 배신의 기록이다.



주간조선이 먼저가 아니었다. 이적을 제안 받은 바로 그 날, 젊고 아리따운 처자가 딴지 사옥을 방문했다. 여성손님은 필독이 접대한다는 딴지 사규에 따라, 커피믹스가 든 머그잔을 잡고 그녀와 마주앉은 이는 본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요새 총수님의 여성팬들이 많이 찾아온다. 보통 통닭이나 피자 등 총수님 전용 전투식량을 많이 싸들고 오시는데, 총수님이 안 계실때는 소중한 음식이 식기 전에 본인이 먼저 먹어서 선물의 가치를 보전해드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날에도 아리따운 여성 두 분이 섬섬옥수로 직접 건네신 갈릭치킨과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을 뱃속에 우겨넣어야 했던 필자의 고충을 총수는 알고 있을까? 평화로운 업무시간에 난데없이 발생한 선물대리접수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메이는 목에 맥주를 들이부어야 했던 피고용인의 처지를 말이다. 그분들이 맥주를 함께 사오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그날, 그녀는 선물 대신 부끄러이 명함을 하나 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총수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총수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총수와 전화통화를 했더니 사실이었다.

"아 글쎄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여성팬인 줄 알고 졸라 좋아했잖아 씨바!"
"뭐라고 하신 겁니까?"
"아 씨바 뭐라고 하고 말고 간에 시간이 있어야 얘기를 하지."


사실이다. 살인적인 <나는 꼼수다> 서버비용 때문에 총수도, 딴지일보도 적자다. 총수는 밖에서 돈 벌어오기 바쁘고 수뇌부는 안에서 물건 만들어 팔기 바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뭐가 잘못돼도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이 팟캐스트 라디오방송 그거 하지 말자고 그렇게 탄원했건만...

기어이 우린 거지가 되고 만 거다.

"총수님이랑 길게 얘기했다고 하던데..."
"길게 얘기한 게 아니라 길게 질문을 받았지."
"집 앞에서요?"
"아니 내가 집 앞에 서 있을 시간이 어딨어 걍 갔지. 몇 시간 있다가 서버값 때운다고 밖에서 몸 팔고 있는데 전화가 또 왔더라니까. 배터리가 다 되서 끊어졌지."
"뭘 물어보던가요?"
"돈에 관한 얘기를 그렇게 묻던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 안구를 드리우던 안개가 걷히면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김경희 기자에게 인터뷰나 기사화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도 했고 목격자도 있으며 확답도 받았다. 하지만 그건 현실주의자다운 방패였을 뿐. 재래언론이 딴지 사옥에까지 찾아와 질문한 내용이 기사화되지 않을 리 없다는 걸,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랬다. 나는...

나는 김경희 기자에게 내가 아는 딴지의 모든 기밀을 누설했다. 오늘(11월 14일)자 중앙일보의 기사는 그 결과다. 충격적인 기사 전문을 공개한다.


모니터에 레몬즙을 뿌려보라. 띄어쓰기와 줄바꿈 사이로 내가 누설한 총수와 딴지의 추악한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타락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수뇌부는 주간조선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어준 특집을 이번 호 주제로 잡으려고 하는데... 한 분에게 원고를 하나 의뢰하려고 합니다."
"특집이요?"
"아 네, 특집으로 해서 커버스토리로 나갑니다."


통화를 마친 후 수뇌부는 폭소에 휩싸였다. 이건 악어가 원숭이에게 과일 한 바구니를 의뢰하는 것만큼이나 뜬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웃음은 소리없고 차가웠다. 재래언론 주간조선마저 총수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때야말로, 내 안에 이만큼이나 자라버린 괴물을 움직이게 하기에 적절한 시기였기에. 

아, 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딴지일보 기자의 신분으로 주간조선에 특집커버스토리를 기고하는 골때리는 상황을 도저히 물릴 수 없었다. 나도 사람이다. 독자열분덜은 옆에서 갈라파고스거북이랑 캥거루가 실뜨기를 한다고 하면 그 광경을 보겠는가, 아님 참겠는가?

나는 무언가에 도취되어 밤새 글을 써내려갔다. 내 안의 괴물은 에너지가 넘쳤다.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나는 딴지 사옥에서 하루종일 활기가 넘쳤다. 다만 수뇌부 동생들이 내 눈을 피한 것으로 봐서, 그 활기에는 어떤 이상함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거울을 보니 두 눈의 광기가 즐겁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거울 안의 나는 이제 막 스타킹을 벗기 시작한 여교사처럼 섹시했다.

마침내 오늘 나는 <주간조선> 표지에서 부하직원에게 팔린 총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총수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처리한 저 주간조선의 센스를 보라. 역시 내 안의 괴물과 손을 잡기에 손색이 없는 상대다. 몇 년치 주간조선 표지를 검색해본 결과 이름이 붉게 처리된 인물은 오직 하나, 노무현 전대통령밖에 없다.


이제 나는 총수를 적진에 팔아넘긴 그 충격적인 문장들을 일부 공개한다.

"비듬이 소복이 내려앉은 봉두난발에 무책임하게 자란 수염, 빨래한 지 일 년은 되어 뵈는 옷, 찌그러진 구두. ... 한 마리의 짐승"

"인간 김어준을 흉보라고 하면, 필자는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

"노골적으로 여자를 밝히며 망사스타킹을 찬양"

"총수의 특징은 그가... 원시인이라는 데 있다."

"모든 진영에서 편파적이라고 공격당한다."

"그가 필자의 사장이라는 점이 큰 문제"

"원시인인 주제에..."

"김어준은... 성가신 인간"

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랬다. 더 큰 충격을 견딜 자신이 있는 독자들은 아래의 원문을 읽어봐도 좋다. 읽은 후의 결과는 일절 책임지지 않는다. 필자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지고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원문)
필자가 딴지일보에 첫 출근하던 날. 곰 같은 풍채에서 터져 나오는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비듬이 소복이 내려앉은 봉두난발에 무책임하게 자란 수염, 빨래한 지 일 년은 되어 뵈는 옷, 찌그러진 구두. 한국 최초의 인터넷언론 사주(社主)의 모습은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그렇게 존재감이 확고부동한 인간, 아니 동물은 처음이었다. 그가 내게 던진 첫마디는 “어쩌려고 이런 회사에 입사했냐?”였다. “아직 늦지 않았어. 도망가.” 구사하는 모든 문장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잠시 후 김어준 총수는 셔츠를 풀어헤치고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날 점심시간에는 그가 어떤 식물성 음식도 섭취하지 않고 오직 고기만 먹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때 생각했다. 김어준은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라고.

인간 김어준을 흉보라고 하면, 필자는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 졸리면 그 자리에서 자기 시작하고, 부하직원에게 일 독촉을 받을 정도로 게으르고, 재미삼아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노골적으로 여자를 밝히며 검은 망사스타킹을 찬양한다. 무엇보다 수시로 자신이 잘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는 양심도 없지만 두려움도 없다. 회사 경영이 안 좋을 때 가장 얼굴이 밝은 사람이 바로 경영자인 김어준이다. 근엄한 고위권력자에게 무슨 팬티를 입었는지, 동성애와 포르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권력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습에 “잡혀갈까 무섭지 않냐”고 물으면 사식의 메뉴를 고민할 뿐이다. 김어준은 심각한 법이 없다. 그에게 즐겁지 않는 것은 죄다. 누구든지 그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 웃게 된다. 모든 회의는 스탠딩코미디가 되어 끝난다. 딴지일보 특유의 유머는 그의 성격에서 유래한다. 김어준은 ‘함부로’ 산다. 싫으면 관두고, 하고 싶으면 한다. 일과 취미가 구분되지 않는 그에게 삶은 유희다. 그는 “김어준의 직업은 김어준”이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문제는 김어준이 필자가 다니는 직장의 소유주라는 점이다. 이쯤 되면 어째서 이때껏 딴지일보가 망하지 않는지 고찰해 볼 만하다. 김어준은 외양(外樣)과 어울리지 않게 지적으로 예민하다. 물론 세상에 지적인 사람은 많다. 총수의 특징은 그가 지적인 현대인이 아니라, 지적인 원시인이라는 데 있다. 그는 맘모스를 사냥하다가 불현듯 현재의 대한민국에 불시착했기 때문에 현대의 모든 체제, 관습, 고정관념, 권위를 데카르트처럼 제로의 지점에서부터 다시 의심한다. ‘딴지’일보라는 사명은 그저 웃기려고 지어진 게 아니다. 김어준은 습관적 상식을 일단 벗어난 인간이 맞다. 그러나 사유를 통해 상식을 재구축한다.

그 결과 김어준은 공정하다. 최소한 비겁함은 없다. 타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자신의 권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김어준이 여당 대표를 대하는 태도는 직원을 대하는 태도와 놀랄 만큼 똑같다. 필자는 피곤하면 총수의 집무실에서 자곤 한다. 김어준은 직원의 근무태만에 화를 내기는커녕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필자의 얼굴에 낙서를 할 인간이다.


돌도끼를 든 데카르트인 김어준은 정치적인 진영논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진영에서 편파적이라고 공격당한다. 김어준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맞다. 편파적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편파에 이르는 과정은 공정하다.” 그렇다면 김어준은 왜 좌파인가? 아니 그 이전에 김어준은 좌파인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지형에 의해 좌파로 분류될 뿐이다. 그처럼 순수한 마초는 좌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순도 높은 자유주의자다. 김어준은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할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서로 피해를 입히지 않고 공존하는 상태를 '명랑사회'라 명명한다. 딴지일보의 창간 모토는 '명랑사회 창달'이다. 김어준은 자신이 망사스타킹을 탐할 권리와 성적 소수자가 동성의 육체를 욕망할 권리를 동등하게 해석한다. 그는 자타공인의 마초지만 동성애를 비난하는 마초는 비겁하다고 힐난한다.

딴지일보라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연합일 수밖에 없다. 김어준은 자신과 타인의 발언권을 등가로 놓는다. 의아해 보이겠지만, <나는 꼼수다>와 관련해 총수를 비판한 진중권이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 받은 곳이 딴지일보다. 딴지일보는 정해진 논조가 없다.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세련되면, 즉 읽을 만한 글이면 기사가 된다. 물론 재미없거나 허술한 글은 용서받지 못한다. 김어준은 자신을 욕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잘 정리된 욕에는 씩 웃어준다. 수준이 낮은 욕엔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는 남자도 사나이도 아니다. 남자는 근엄하고 사나이는 유치하다. 김어준은 인문학적으로 각성한 원시의 수컷이다.

필자가 가장 부러워하는 김어준의 능력은 어떤 문제나 주제의 핵심에 누구보다 빨리 접근하는 것이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문화적/사회적 사안을 단순명쾌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단박에 정리해낸다. 김어준은 언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사물과 현상, 인간을 '드러내는' 데 놀랍도록 탁월하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말'을 낭독하지만, 김어준의 인터뷰는 그 사람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이 능력도 데카르트식 접근법에서 나온다. 무에서 출발해 사고를 구축하기 때문에, 핵심에 이르기까지 번잡한 고정관념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어준의 능력은 아이큐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이 글의 독자들에게는 싱거운 소식이겠지만, 김어준 총수는 처음부터 <나는 꼼수다>가 이만큼 뜰 줄 알고 있었다. 잘난 체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냥 '그럴 줄 알았다.' 다만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다. 20만부를 돌파한 저서 <닥치고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어준은 별 반응 없다. 필자를 포함한 주변의 반응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는 자기 자신에 무척 심드렁한 사람이다. 총수는 어려워도 낙천적이고 잘 나가도 우쭐대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주변사람들에게 금방 전염된다. 작금의 인기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총수는 이렇게 답했다. "귀찮아." 그래, 그럴 것이다. 그에겐 고기를 먹고 낮잠을 잘 시간이 필요하니까.

사실 <나는 꼼수다>의 인기는 외려 김어준을 괴롭히는 편이다. 청취자가 폭증하면서 서버 관리비용도 천정부지로 뛰어 김어준 개인과 딴지일보는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 서버비 후원조로 관련상품을 팔고 콘서트를 열어도 관리비용을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방송에 광고를 넣으면 된다. 요즘 딴지일보 직원들은 <나꼼수> 광고문의를 수없이 거절해야 한다. 김어준 총수가 광고를 거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나꼼수>가 상업화되면 첫째, 광고주의 입맛을 고려해줘야 한다. 둘째 광고주의 안전을 걱정해야 한다. 자유로운 발언환경이 조금이나마 제한된다. 자신에게는 날것을 말할 권리가, 청취자에게는 날것을 들을 권리가 있다. 그럼 후원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그것도 안 된다. 청취자의 눈치도 보기 싫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자유주의는 그 정도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필자의 사장이라는 점이 큰 문제다.

한 손엔 돌도끼를, 한 손엔 철학책을 든 김어준은 원시인인 주제에 뻔뻔하게 아스팔트 위를 활보한다. 웃음의 돌팔매질로 비상식을 사냥하다가 졸리면 자고, 오줌이 마려우면 일어난다. 한국사회에서 그는 생뚱맞은 존재다. 수채화에 떨어진 한 방울의 유화물감이다. 그런데 유화물감은 태연하고 수채화가 당혹스러워한다. 필자가 겪은 김어준은 그렇게나 성가신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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