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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6. 수요일
MikeSkinner & 카인


 

본 기사는 딴지일보 사상 최초...는 아니지만 어쨌든 굉장히 드문 집필 방식의 소설 되겠다. 본 소설은 합작 혹은 피처링(featuring)으로 쓰여졌다.


 

그간 이곳저곳에서 'FTA 소설'이라고 작성된 글은, 엄밀히 말하면 소설이 아니다. 소설적 상상력을 이용한 추정 혹은 예상일 뿐이다. 이에, 분연히 일어나 진짜 소설적 형식을 갖춘 글을 시도한 용자가 있으니, 딴지 필진인 MikeSkinner이다.


 

그러나 MikeSkinner는 귀차니즘에 굴복하여 초고의 일부를 잡아놓고 잠이 들었다. 이해한다. 그는 자신의 예측과 상상이 그려가는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여린 감성, 그 헐거운 나사. 본 기자 역시 아픈 감성의 소유자다. 십분 이해한다.


 

이에 본 기자, 수뇌부로서 그리고 국문학 전공자로서 키보드를 빗겨차고 그 뒤를 따랐다. 며칠 후 본 기자는 소설의 빈 부분을 채워넣는 데에 성공했다. 한 글자 두드릴 때마다 똥꼬를 엄습하는 스산한 예감에 국부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끼며 집필을 끝냈다.


 

다짜고짜 본 기자의 피처링 러브 콜에 흔쾌히 승낙하신 MikeSkinner 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MikeSkinner가 뼈대를 잡고 카인이 살을 붙인 근미래 꽁트,


 

[소설 FTA : '그 어느 날' 이후]를 소개한다.


 


그림은 니헤이 츠토무의 만화 [BLAME]의 일러스트
분위기만 약간 비슷하고 관련은 없다. :)


 




 

'그 어느 날'은 도둑처럼 찾아오지는 않았다.


 

ISD + 공기업 민영화 + 외국인소유 지분제한 철폐


 

김현식 씨는 간밤에 빗소리에 잠을 설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농부가 된 것처럼 비를 즐겼다. 천운이었다. 수시로 일어나 빗물통을 체크하면서도 김 씨는 싱글싱글 웃었다.


 

김 씨의 웃음은 당연하다. '그 어느 날' 이후, 한국 상수도 사업에 크게 투자한 벡텔 사가 곧바로 수도요금을 4배 가까이 올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인 그는 수도요금에도 벌벌 떨어야 했다. 때문에 김 씨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빗물을 받기 시작했다. 빗물을 곧장 먹지는 못하더라도 수세식 변기와 세탁기에 사용할 수는 있으니까. 보릿고개 대신 빗물고개라는 유행어가 퍼지고 있었다.


 

그래도 비가 왔기에 이러한 현실에 '적응'이나마 해본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버스는 이미 떠났으니 적응을 해야한다.'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에 빗물통을 체크하는 도중에 웬걸, 집에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다. 왜 찾아왔냐고 물어보니 빗물통을 단속하러 왔단다. 김 씨의 웃음이 싹 달아났다.


 

어처구니가 없어 항의해보지만, 성과를 재촉하는 경찰청장 때문에 '건수'를 올릴 수 밖에 없단다. 김 씨는 경찰의 얼굴에서 착잡한 감정을 읽는다. 경찰은 울 듯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며 자기가 잘리면 안 된다고, 김씨를 설득한다.


 

빠르게 웃음을 잃은 김 씨의 출근길이 무겁다. 서울역 거대 TV에 미국의 벡텔사가 FTA의 ISD제도를 이용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는 뉴스가 나온다. 벡텔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빗물을 받아 쓰는 바람에 수돗물이 팔리지 않아 기대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정부를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는 것이었다. 아나운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국정부가 이 재판에서 패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정부가 경찰을 통해 빗물통을 단속 중임을 짧게 알렸다.


 

김현식 씨의 얼굴에서 가볍게 경련이 일어났다.


 

네거티브 개방 + 최혜국 대우 +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하늘이 비를 내려주는 은혜에 감동하긴 했지만, 김현식 씨가 농부인 것은 결코 아니다. 김 씨는 게임회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회사원이다.


 

게임 산업은 FTA로 인해 개방된 분야이기는 하지만, 모든 게임 분야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게임내 화폐의 현실 거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한다. '그 어느 날' 이전의 한국에서는 게임머니의 현거래가 정식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날' 이후 블리자드 사는 자사의 게임에 들어있는 현거래 시스템을 한국에서도 정상 영업시키기 위해 자유무역조항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공연한 루머에 따르면, 블리자드 사는 미국 정부에게 로비를 청탁했다고 한다. 진실이야 어쨌든 게임내 화폐 거래라는 신산업이 정식으로 인정 받게 됐고, 이 분야는 네거티브 개방 조항에 의해 자동적으로 개방 분야가 되었다. 그러자 자사 게임 내에 거래 시스템을 포함시킨 블리자드 사는 양반이 되었다. 고압적으로 찍어누른다는 의미에서도, 그래도 나름 점잖다는 의미에서도. 진짜 무서운 각다귀떼는 블리자드 사가 아니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거래하는 현거래 업체를 한국에 설립했다. 이들은 다양한 거래 마일리지와 압도적인 수의 취급 게임 종목을 통해, 과거 업계가 '수동적 인정' 상태에 있던 시절부터 시장의 터줏대감이었던 한국 기업들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자본력에 의한 투자를, 법의 눈치를 봐가며 슬금슬금 영업해왔던 한국 기업들이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급변한 시장 환경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 국내의 현거래 업체는 하나둘 문을 닫거나 다국적 기업에 흡수합병되었다.


 

물론 그들은 김현식 씨의 업무를 힘겹게 하는 주범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판매하기 위한 게임머니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에게 있었다.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로는 대량의 게임 머니를 만들어낼 수 없으니, 생산자들(대부분은 거래 업체 자체이거나, 그들과 밀접하게 결탁한 개인이다)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게임 제작사와 몰래 불법으로 게임머니 공급 협정을 맺거나, 오토 프로그램과 노예식 산하 플레이어들을 통해 생산하는 것.


 

전자는 원래 게임내 경제를 망가뜨리고 현실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범죄로 취급되어야 하지만,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조항과 연계되자 제대로 수사 및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지 오래됐다. 그리고 김 씨는 후자에 더 이를 간다. 무분별한 오토 프로그램은 게임의 시스템과 서버를 갉아먹을 뿐 아니라 메인 서버에 대한 대담한 해킹으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머니와 아이템의 생산에만 주력하여 플레이하는 대규모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게임 플레이는, 일반 플레이어들의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방해한다. 그것은 곧 애써 발매한 게임의 파멸을 의미한다. 게임의 체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소모되는 운영력, 즉 돈과 인력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현거래 회사는 어찌 됐든 돈을 버나, 신작을 발표한 제작사는 결국 손해를 보는 구조가 완성된다. 김 씨가 적을 둔 회사 같은 중소 게임사는 수도 없다. 봉이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리고 게임을 망하게 한 현거래 회사는 곧 다른 게임에 초점을 맞춘다. 또 하나의 게임이 망한다. 마치 정복 군대처럼 게임을 정복하고 다른 영토로 옮겨가는 파멸의 유목민들. 그들이 정복할 영토는 많고 많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미국 자본에 뿌리를 둔 기업이었고, 한국의 수사 기관이 그들을 수사하여 징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게임사는 수사 기관에 대해 희망을 버렸다. 자체적으로 불법 행위에 대한 증거까지 입수해야 하는, 일종의 사립 탐정과 같은 일을 하는 부서가 현거래 담당 부서 산하에 생겨났다. 김 씨는 그런 부서에 소속된 직원이다.


 

어찌 보면, 김현식 씨와 같은 사람들은 민간 사법 요원인 셈이다. 사법기관은 점점 판단만 하는, 즉 판결전문인 기관이 되어갔다. 민간 회사의 수사력이 사법 기관인 검경의 수사력을 따라잡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김 씨를 요원이니 민간 수사의 팔이니 추켜세워봤자 그의 월급은 2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서비스 비설립권


 

회사에게 있어 발매 게임의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안을 다루는 김현식 씨가 비정규직인 이유는 딱 하나다. 타율이 높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낮은 타율의 이유는 김 씨의 무능 때문이 아니다. 김 씨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 높은 타율을 보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


 

왠만한 수사관 못지 않게 증거 자료를 모아 불법 행위를 완벽하게 증명한다 하더라도, 생산지인 일명 '작업장'은 대개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런 사태를 예측한 게임머니 생산업주들이 작업장을 미국에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중국의 젊은이들이 생계를 위해 작업장에서 일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의 젊은이들 중에서는 게임하면서 돈도 버는 괜찮은 아르바이트로 작업장을 인식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출근하여 상하 보고 서류를 체크한 김 씨는 부서에서 두 달간 추적해온 대규모 작업장의 위치가 미국 코네티컷 주로 판명났음을 알게 되었다. 나가리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소재를 두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 불법 행위 처벌을 할 수 없다. 반면 미국에 소재를 둔 사업장은 한국에서 영업이 가능하다. 김 씨는 부서에 감돌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에 합류한다. 이것으로 일곱 번 연속 실패다. 부장이 우울한 얼굴로 간부 회의에 참석하러 간다. 김 씨는 부장의 뒷모습을 보지 않는다.


 

다음 조사 목표에나 착수하기로 한다. 사전 조사 정보가 담긴 파일을 훑어보던 김 씨의 육감은 이번 목표가 국내 작업장이라고 알려준다. 외국에서 여유 있게 게임 서버를 망가뜨려가며 생산하는 작업장은 못 잡으면서, 국내에서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몰래몰래 움직이는 작업장이나 때려잡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심스럽다. 김 씨는 자기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쉰다. 비정규직인 김 씨 자신과 영세업자인 이름 모를 작업장 주인. 둘이 다른 것이 뭔지 의구심을 가질 시간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실적 하나라도 더 쌓으려고 애를 써야 정규직으로의 희망이 약간이라도 보였다.


 

물론 다들 알고 있듯이, 어차피 타율도 높지 않은 추적 부서를 운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에 내보이기 위함일 뿐이다. 우리 회사는 이 정도로 자사의 게임을 제대로 운영하려고 애를 씁니다, 라는 변명거리. 김 씨도 본인의 업무와 부서가 사실상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하는 희망은 있는 법이니까.


 

총무팀의 사전 조사에 의해 탐문을 벌일 시작 지역은 대구광역시로 판명됐다. 간부 회의에서 잔뜩 깨지고 돌아온 부장에게 보고하자, 부장은 김 씨에게 직접 출장을 지시한다.


 

비위반 제소


 

김현식 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톨게이트에 들어섰다가 깜짝 놀랐다. 통행료가 무려 4배나 올랐다. 지난 번 고속도로 이용이 언제였더라? 마지막 탐문 조사 때였으니 대략 석 달 전이었다. 그래도 4배의 인상폭은 너무했다. 김 씨는 황당했다.


 

안 그래도 이 고속도로는 어처구니없는 노면상태로 인해 자주 사고가 나는, 죽음의 고속도로였다. 이 고속도로는 민자 SOC로 맥쿼리가 참여해서 투자한 도로였다. 물론 맥쿼리는 이 고속도로에 단 20% 정도만 투자했을 뿐인데, 이 도로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 도로는 비싸기로 소문났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사실 그 동안도 울며 겨자먹기로 이 고속도로를 이용했건만 이제 그것도 힘들어질 것 같았다. 이제 지방 조사를 나가야 할 때면 국도만 이용해서 복잡하게 돌아다녀야 할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하고 울분이 치솟았다.


 

대구에 도착했을 때 김 씨의 분노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김 씨는 조사고 뭐고 미룬 채 당장 대구시청으로 달려갔다.


 

시청에 가서 따지니 직원들은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시청에서는, 맥쿼리 사가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시청의 예산이 거의 바닥상태라고 하소연하였다. 시청은 맥쿼리 사에게 도로의 안전 문제와 비싼 통행료를 항의 했지만, 오히려 맥쿼리는 FTA의 비위반 제소 조항을 이용하여 한국정부의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 폐지를 번번이 저지했다. 최근 맥쿼리는 오히려 시청을 협박하여 통행료를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는 것이다. 좌절이 김 씨의 분노를 삽시간에 사그라뜨렸다.


 

김 씨는 시청을 걸어나오면서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절망적이게 되었는지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 도저히 조사 업무를 시작할 기분이 아니었다. 집에 두고 온 빗물통이 자꾸 눈 앞에 아른거린다.


 

현기증, 파편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김 씨는 탐문 조사를 위해 발을 옮긴다. 터덜터덜. 지금 김현식 씨는 자신이 작업장 업주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 이름 모를 업주 또한 빗물을 받아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월세를 내고 식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김 씨는 탐문 조사를 위해 들러야 할 곳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애인이 결국 포르노 배우라도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말했을 때 이후로 가장 기분이 지저분했다. 그 이후 그녀와 김 씨는 헤어졌다. 지금 그녀는 그 일을 잘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포르노 산업은 김 씨의 분야보다도 더 최신 분야다. 김 씨는 몇 달 전, 우연히 열었던 스팸 메일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어쩌구저쩌구의 홍보 문구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남자 십수 명에 둘러싸여 허덕이는 그녀의 육체가 있었다. 그놈의 네거티브 개방 조항 덕일까.


 

회사에서 쫓겨나면 그녀라도 찾아가볼까. 요즘 포르노 업계가 그런 대로 잘 된다던데, 조그만 일거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화를 내며 걷어차던 그때는 당당했다. 너처럼 대중적으로 몸을 파는 것은 왠만해선 절대로 못할 짓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김 씨는 점점 그런 자신감을 잃어갔다. 지금 김 씨는 그녀에게서라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싶을 정도로 추락했다.


 

김현식 씨는 문득 현기증을 느끼고 멈춰선다. 일이고 뭐고 생각하기 싫었다. 한동안 김 씨는 길 한가운데에서 낮게 신음하며 굳은 채 서있었다.


 

김 씨의 곁을 무수한 사람이 무심하게 혹은 자기의 고민에 집중한 채 지나쳐갔다.


 




 

주인공 이름은 카인 군시절 이가 갈렸던 담당 장교 색히 이름임 >_< 복수닷!


 

MikeSkinner + 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