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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6. 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이 글은 통합진보당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로 선정된 전 전교조 위원장 정진후에 관한 얘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선정 자체에 대한 잘잘못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거니까.

 


그럼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결국 조직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보다 우선시하는 아주 맘에 안 드는 오래된 악습에 대해 또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 뿐이다.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그냥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가 아니고, 강간미수. 말 그대로 성폭행.

 


이런 사건이 생긴 뒤에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적절하게 처리되는 경우를 일찌기 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다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이제는 어느 정도 좀 자리를 잡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사건 한개만 눈에 띄면 아직도 삼천 년은 멀었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지게 될 정도다.

 


일단 이런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해야 될 부분은 피해자가 입게 될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니 일차적으로 피해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꾸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고통까지 방치한다면, 이건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래선 절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2차 피해가 발생한다. 억울하다.

 


2008년 12월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출범한 지 1년 된 이명박 정부에 의해 수배자 신세로 몰려 도망다니고 있었고, 그 이석행 위원장을 전교조 소속 여교사가 집에다가 숨겨준 것이다.

 


그러다가 잡혔는데, 황당하게도 당시 경찰은 이석행 위원장 본인 말고도, 그를 숨겨준 사람들 까지 범인 은닉죄를 적용해서 같이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니까 관련자들 모두 당황했겠지.

 


그래서 민주노총 사람들, 전교조 사람들, 숨겨준 여교사, 뭐 이런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서 대책회의를 한거다. 야~ 이제 우리 어쩌냐~ 어떻게 대응해야 되지? 뭐 이런 회의 말이다. 그러다가 그날 밤, 사고가 터진 거다. 당시 대책회의에 참가했던 민주노총 김모 국장이 그 여교사를 성폭행 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고가 말이다.

 


씨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명색이 민주노총 사람이고, 그것도 무슨 국장직까지 하는 넘이 무슨 이런 짓을 해?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지경인데, 사건은 이제부터다. 이 황당함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거지.

 


일단 사건이 터졌으니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왔고, 민주노총 차원에서 진상조사에 들어가고 사건의 후처리가 시작되고, 전교조에도 사건이 알려지게 되는데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정진화(지금 얘기가 되는 정진후 위원장하고는 다른 사람이다. 여성이다.) 위원장이고...

 


뭐 어찌되었거나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건 형사범죄라고. 강간미수. 피해자가 존재하는 형사범죄. 이런 사건을 어떻게 외부에 안 알려지게 처리를 해... 당장 사법처리 해야 되는 판인데.

 


결국 다음해 2009년 2월에 사건은 외부로 알려지게 되고, 민주노총은 어마어마한 도덕적 타격을 입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 조직 내부에 국장직을 강간미수범에게 맡겨놓은 조직이니 어쩔 것인가. 감수해야지. 다 책임지고 집행부 총 사퇴하고 조직 재구성하는 수밖에.

 


그 범인은 바로 구속되고 3년형 언도 받게 되는데 그건 당연한 일이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거다. 2차 가해가 발생하는 부분이 여기인 거지. 어떻게 해서라도 조직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가동하는 부분도 바로 여기인 거고.

 


당시 전교조의 정진화 위원장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를 했다는 거다. 물론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이 건으로 인해 정진화 위원장은 임기를 얼마 남기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명" 처분을 받게 되는데, 거기에 또 강력하게 반발을 하게 되고, 그래서 징계위원회가 재심을 하기 시작하고, 뭐 이런 혼란무쌍한 일이 벌어지는데...

 


그 와중에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고.

 


결국 전교조라는 조직은 패착을 거듭하게 된다. 원래의 제명 처분은 재심에서 경고 수준으로 낮춰지고 조직적 은폐 시도 같은 건 없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니, 피해자가 있고, 그 피해자가 조직의 은폐시도를 얘기하고 있는데, 그게 없다니. 조직적 은폐시도가 2차 가해라면, 그 은폐시도를 부인하고, 2차 가해자를 봐주는 것은 조직의 3차 가해가 될 지경이잖아.

 


결국 이 논의는 전교조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까지 가게 된다. 거기서도 재심의 결정이 그대로 추인되는 지경에 간 거지. 한 가지 추가 되었다면 이 과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후임 위원장에게도 경고를 내리게 되는 거다.

 


바로 그 후임 위원장이 지금 논란이 되는 정진후 후보다.

 


거기다가 이 사람은 피해자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과문을 전교조 기관지 교육희망에 내는데 이 사과문에서 또 실수를 저지른다. 피해자가 소속한 지회를 밝혀 버린거야.

 


내가 피해자라면 진짜 미치고 팔짝 뛸 일이잖아.

 


내가 성폭행을 당했어. 근데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해. 그러더니 은폐를 이유로 징계를 내리려니까 그런 적 없다고 오리발 내밀어. 결국 경고밖에 안 먹어. 그러고 나더니, 그걸 해결하겠답시고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사과문을 내는데, 거기에 내가 속한 지회를 까. 난 도대체 뭐가 되는 거지?

 


이럴 바에야는 차라리 모든 것을 숨기고 잠수 타는 게 더 좋았던 거잖아. 이 진보그룹들, 소위 운동판에서 벌어지는 숱한 사건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가해자는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니고 피해자는 쉬쉬 하면서 잠수타버리는 이런 모순들, 이거 좀 해결해 보고자, 재발이라도 좀 막아보고자 내 신상을 걸고 항의했더니 돌아 온 것은 "조직을 해치려는 불순한 의도" 라는 비난이야.

 


이거 너무 치졸하고 쪽팔리는 일이잖아.

 


진짜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밖에 못하는 거지? 그렇게까지 한 개인을 짓밟으면서 지켜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조직인 거야? 세상에 그런 조직이 어딨어?

 


이 국가가 지금 그런 식으로 맨날 각 개인들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짓밟고 다니니까, 그거 좀 뜯어 고쳐 보자고 모인 거잖아. 그거 좀 막아 보려고 모인 거잖아. 그거 잊어버린 거야?

 


그런데 그걸 막아보겠다고 모인 조직이 그 국가의 더러운 행태를 그대로 반복해? 우린 도대체 왜 모인 거야? 뭐 하는 거야 지금?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왜냐 하면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는만큼,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 니체


 


살짜쿵 한 개 더 하자면, 정진후 위원장은 이 이후에, 자신의 임기 막판에 한 가지 실수를 더 해.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나봐. 환송회 회식 자리에서 술잔 깨고 불판 뒤집고 깽판을 쳤다는군. 뭐 쌍욕이야 기본이었겠지. 전교조 회식자리면 여교사도 많고 그렇잖아. 임산부까지 둘이나 있는 자리였다네.

 


이 정도면 뭐 한날당 내부의 주사파(주체사상 말고 술 酒자 주사파 말야) 의원들 못지 않은 기개를 보여주는 사람이란 말이지.


 




 


개인적으로야 좋은 사람일거야. 술먹고 행패 부리는 거 보면 인간적이기도 하겠네. 공직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고 말야.

 


그렇지만, 조직과 개인의 관점에서 진보의 가치를 생각해보자고.

 


피해받은 개인의 입장보다 조직의 안녕을 먼저 생각한 사람인 거야.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겠지.

 


하지만 이미 정진후라는 사람은 진보적 가치에서는 거리가 멀어져버린 거야. 개인의 권리를 짓밟는 조직의 상징이 되어 버린 거라고.

 


강간 미수? 나쁜 짓이지. 사법 처리되어서 옥살이 하고 있잖아.

 


그 범죄로 말미암아 피해를 본 사람에게 2차 3차 4차 가해를 한건 그 원인이 된 최초 범죄보다 작은 범죄인가? 그 의도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거였기 때문에 면죄부가 주어지나?

 


절대 아니잖아.

 


그런 사람을 당선가능성이 제일 높은 상위 6번 이내의 순번에 배치하겠다고, 소위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라고 제일 먼저 선택해 버린 통합진보당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해왔던 경력도 있고, 공헌도 있겠지. 물론 조직을 이끄는 능력도 있을 거고 말야. 거기다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서도, 조직을 이끄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다만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밀려 버린 것뿐이라고 쉴드 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진보의 가치와는 거리가 안드로메다만큼 멀어져버린 사람, 잘못된 조직의 상징이 되어 버린 사람을 비례대표 후보로 박아 놓고, 사람들에게 진보정당의 가치를 생각해서 정당투표는 통합진보당으로 찍어 달라고 얘기할 자신이 있어? 난 그게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사람이 그렇게 없어?

 


아니면 표 받기 싫은거야?


 




 


 


결국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만든 그 어떤 조직도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믿어. 이건 좌파건 우파건 자유주의건 권위주의건 상관이 없어. 모든 사상의 바탕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인본주의적 입장이라고.

 


그 어떤 숭고한 가치와 그 어떤 역사적인 목적으로라도 이런 기본적인 인권은 침해해서는 안 되는 거야.

 


최소한 이 사회를 진보시키려는 진보그룹의 구성원이라면 이런 대전제 정도는 언제나 머리속에 박아 두고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실망스럽다.

 


아니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스럽네.


 



 


정치부장 물뚝심송


twitter: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