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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12. 월요일

사회부장 산하

 



<과거의 김문수>


 


김문수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1986년의 어느 날 잠실 주공아파트에 은신 중이던 김문수는 갑자기 밀어닥친 기관원들에게 연행된다. 그리고 그는 상상을 절하는 고문을 받는다. 온몸을 부수는 듯한 고문을 가하며 기관원들이 김문수로부터 빼내고 싶어했던 정보가 있었다. 그 중의 한 이름이 박노해였다.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1984년, 그가 서른도 많이 모자랐던 해에 내놓은 <노동의 새벽>은 군사 정권의 금서 딱지 속에서도 근 백만 부가 팔려 나갔다.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붓는 찬 소주"는 철야노동 한 번 한 적 없는 학생들에게도 생생한 싯귀였고 "묵묵히 일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는 대로 받고 항상 복종함이 안정 사회 이루는 노동자 도리"라고 갈파한 시인의 직관은 지금도 그 날이 시퍼렇다.


 


군사정권은 대체 누군지도 모를 이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준말인 박노해를 잡기 위해 눈에 핏발이 섰다. 시간이 흐르면서 박노해는 시인을 넘어 사회주의 혁명가로서, 한 조직의 지도자이자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사노맹 대표위원 박노해. 노동해방문학의 필진 박노해.


 



<91년 당시,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


 


사노맹이라는 이름은 내게 보투(보급투쟁) 하나는 극성맞다고 표현할 정도로 열렬하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직원들끼리 위장결혼을 하여 그 부조금을 조직에 헌납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니 닐러 무삼하리오. 그들의 보투 과정에서 박노해의 이름도 자주 인용되었다. 폐병에 걸려 죽어가는 민중시인 박노해를 돕자는 말을 들은 게 다섯 손가락은 넘는다.

 


1991년 3월 10일, 드디어 안기부는 얼굴 없는 시인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었다. 무려 7년 동안 얼굴 없는 시인으로 살았던 박노해는 그물에 걸린 호랑이 같은 눈빛으로 세상을 쳐다보며 포효했다. 가라 자본가 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 박노해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까지 가지게 했던 시인은 그렇게 강렬하게 세상을 향해 드러내졌다.

 


체포된 후 그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조간신문을 망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신비에 쌓여있던 시인은 공안 기관의 우악스런 손길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사뭇 호화롭기까지 했다는 그의 도피 생활부터 여자 문제까지 그를 법적인 죄인이자 악질 빨갱이일 뿐 아니라 도덕적 파산자로 몰아가려는 노력이 행해졌던 것이다.

 


 


 


그는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하다가 석방됐다.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나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그를 여전히 존경하는 사람도 있고 험악한 욕설 아니면 차가운 냉소를 그의 이름에 거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엉덩이를 찔러 대고 주먹을 부르쥐게 했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 든 사람들 폐 속 가래같던 시구들을 토해낸 것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한 것 같다고 말이다.


 


언젠가 지하철 촬영 중에 그야말로 초짜 행상 아주머니를 만난 적 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수세미 꺼내는 데도 몇 분씩 걸리고 '차안에 계신 여러분' 소리도 모기소리만하던. 지하철을 타고 몇 바퀴 돌다가 플랫폼 한쪽 벤치에서 한 남자가 침을 튀기며 한 아주머니에게 강의(?)하는 걸 봤다. 아주머니는 아까의 그 행상이었다.


 




 


"아는 사람 만날까 두렵고 공익한테 끌려갈까 겁나죠? 나도 그랬어요. 처음 장사 나와서 어리버리, 아줌마처럼 그러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물건을 사 주면서 그러시더라구요. 당신 지금 부끄러워서 말 못하는데, 이러고 내리면 더 부끄러울 거라고......"


그러기를 한참, 강의 시간이 다 끝났는지 남자가 자기 짐을 챙겼다. 그리고는 불쑥 아주머니에게 수세미 하나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강의료라도 받겠다는 것이었을까. 말씀 감사하다며 고개 주억거리던 아주머니도 수세미를 냉큼 내밀었다. 그때 지갑 장사는 내가 기겁을 하고 놀랄만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줌마 구걸 나온 거 아냐! 왜 공짜로 뭘 줘요. 돈 받고 팔아야지." 그리고 그는 돈을 아주머니에게 쥐어 주고는 자기 짐 챙겨 전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아주머니에게 외친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아줌마 나도 한 달 됐어요!"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 행상 수업(?)을 참관한 뒤 내 머리 속에는 까마득히 잊혀졌던 예전의 시구 한 소절이 연기처럼 피어 올랐다. 박노해의 <하늘>이었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어깨를 짓누르고 목구멍을 죄어드는 먹장구름 같은 삶의 무게 속에서 지갑 장사 아저씨는 수세미 아주머니에게 아주 작지만 푸르른 하늘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받쳐 올리며 마음이 푸르러지는 그런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세미 아주머니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하늘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하늘. 서로가 서로에게 하늘인 세상. 힘 없고 보잘 것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에게 하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지하철의 해프닝을 보면서 나는 이 따뜻한 모습을 빗댈 수 있는 시를 지어 준 박노해에게 감사했다. 저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하늘이 될 수 있는 거구나. 사람이 사람에게 기댈 수가 있는 거구나.


 


1991년 3월 10일, 그는 독기넘치는 눈빛과 카랑카랑한 모습의 사회주의 혁명가로 수갑을 찼다. 비록 그 후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든 묶였던 손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한 페이지를 차지할 노동의 시들을 창조해 냈던 손이었다.


 


사회부장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