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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2. 월요일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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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단편들

 


예컨대 이렇다. 식사 준비는 아내가 한다. 나보다 매우 우월하기 때문이다. 설거지는 내가 하는 경우가 많고 여의치 않으면 아내가 한다. 아내가 설거지 걱정을 하지 않고 요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러면 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경험. 집안 곳곳의 청소는 아내가 한다. 아내가 청소할 시간에 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같이 한다. 나는 앉아서 소변을 눈다. 오줌이 자주 튀기기 때문에 변기를 청결하게 관리하기 어렵다. 눈을 감고 혹은 짧은 글을 읽으면서 오줌을 눌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장점이 있다. 물론 밖에서는 서서 해결한다.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버리는 일은 내가 하기도 하고 아내가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목욕하는 일은 내가 한다. 옷을 입히는 일은 아내가 하기도 하고 내가 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목욕을 하고 있노라면 그 시간에 아내는 다른 집안 일을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아이와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몫이었다. 아이가 기저귀를 뗐을 때의 그 편안함을 나는 안다.

 




 


빨래하고 옷을 개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옷 개는 것은 정말로 못하겠노라고 말하며 아내의 양보를 얻어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대부분 아빠의 몫이지만 엄마도 더러 한다. 아이들에게 잠잘 때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대부분 아빠의 몫이며 엄마는 아주 가끔 한다. 아빠가 엄마보다 톤이 낮고 잘 노는 편이라서 아빠의 몫이 됐다. 구입한 물건을 조립하거나 수리하는 것은 아내가 한다. 나는 솜씨가 없고 성격이 급해서 가끔 폭발하기 때문이다(장인어른은 이런 나를 두고 내가 ‘생활의 지혜’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퇴근 후 소파에 앉을 시간이 거의 없다.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TV를 보는 시간도 아이들이 자기 전까지는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대신에 자주 움직이니까 별도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고, 피곤해져서 일찍 자게 되므로 가사와 육아는 아빠의 건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이점도 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서 좋다. 물론 사회생활과 바깥 일 때문에 아빠가 저녁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은 엄마가 모두 도맡게 된다.

 

 


합리성의 과잉을 내려놓다

 


나는 아빠다. 하지만 아빠이기 전에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다. 그리고 남편이기 전에 나는 나다. 오늘은 남편으로서의 나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이것 또한 육아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아빠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한 번도 남편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지금까지 살면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고, 반성과 깨달음의 지속이었다.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관계를 가지며 30년을 넘게 산 두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생활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하고 자자란 것에 대해서 충돌하곤 했다. 나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비교적 예민한 감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내 또한 그런 성품을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 부부는 자주 충돌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다툼이 있지만 과거보다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히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합리성의 과잉’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아내는 전업주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나는 쉬고 싶다. 그리고 아내가 준비한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서 TV도 보는 안락한 생활을 꿈꾼다. 돈을 버느라 피곤에 지쳤으므로 소파에 앉아 쉴 권리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당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하루 종일 편안히 있었으므로 저녁 시간에는 남편을 위해 좀 더 따뜻하게 배려해줘야 한다는 생각.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았다. 애초 이런 생각이 아주 강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과거 나는 이런 생각에 은연 중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작별을 고했다.

 



 


솔직히 연애하면서는 집안일과 육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지, 집안일의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위해 한 가정을 꾸렸던 것은 아니다. 가문대가문의 정략적인 만남도 아니고, 대를 위해 결혼한 것도 아닌, 우리는 그저 연애하고 결혼했다. 가사의 분담보다 상대방을 더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애당초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격과 기호의 차이에 의해 다툴 수는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이기 때문에 그 성별에 의해서, 혹은 밖에서 일하는 사람과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구분에 의해서 이런저런 역할이 어떤 법칙처럼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식이라든지 통념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가정을 꾸린 후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깨닫게 됐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우리는 가족이다. 그게 중요하다

 


육체적인 피곤함과 정신적인 피곤함의 우열을 따지려고 하다면 어느 쪽이 더 힘든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힘듦과 괴로움 같은 감정은 객관적인 수치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상대적인 게 아닌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본다. 나보고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으면서 몇 년을 보내라고 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대단할 듯싶다. 그러나 전업주부인 아내는 그 역할을 꿋꿋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하루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업종이라서, 왔다갔다 움직이며 집안일을 하는 아내가 육체적으로 더 피곤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인관계로부터 초래되는 정신적인 피곤함과 외로움으로부터 유발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사이에 무엇이 더 아픈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편은 직장과 쉼터가 구분되지만, 아내는 직장이 곧 쉼터여서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밖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안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쩐지 너무 자본주의적이다.

 



밖에서 일을 할 때 나는 꽤 합리적이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에 대해서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사생활, 내 가족과의 생활 속까지 그런 합리성을 끌고 들어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 좀 비합리적이게 보이면 어떤가? 합리성을 전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던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상당히 비합리적이지 않던가. 우리는 먼저 서로가 서로의 하루에 성실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나는 밖에서, 아내는 집에서 말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서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서로의 일을 완전히 구별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도 있고, 아내가 할 수도 있다. 내가 하기 싫을 수도 있고, 아내도 하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집안에서의 합리성의 과잉을 내려놓았다. 내가 돈을 버는 사람이든 아내가 돈을 버는 사람이든, 내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한 가정에서 두 아이의 아빠이며 엄마이고, 서로 남편이자 아내다. 그게 중요하다.

 

 


이것또한 육아의 한 방편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며 교본이고 텍스트다. 아이들에 대한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부모의 반응, 태도, 언행을 보면서 아이들도 부지불식간에 부모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양육을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보다 성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론적인 것과 실제 모습 사이의 간격은 무척 멀고 깊다. 무엇이 바람직한 태도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인생인지 성인인 우리 자신도 자주 헛갈리며 낙담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한 번도 아빠인 적이 없고, 한 번도 엄마인 적이 없다. 엄마가 갖고 있는 가치관과 살아가는 모습에 아이들이 영향을 받고, 또한 아빠가 지닌 생각과 행위에 따라 아이들이 영향을 받겠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하루하루를 밀착 취재해서 분석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행이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으로, 아빠는 아빠의 인생으로 아이들에게 표본을 보여주고 싶지만,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매우 힘겨운 일임을 아이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우리는 보여줄 게 여전히 많다.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라는 이 작은 공간, 이 작은 사회에서 엄마와 아빠가 어떤 모습과 행동을 하는지, 우리들의 포즈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보기에, 우리 집에서 남자는 이런 일을 해야 하고, 여자는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적어도 가사와 육아에 대해서는 성별의 역할 분담이 없다. 그리고 밖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저런 일을 해야 한다는 특별한 구별이 없다. 어느 쪽이 더 육아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물론 아주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지도 모르므로 다소 과장이라고 해 두자.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스트냐? 아니다. 남자가 과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그저 아빠며 남편일 따름이다. 불과 몇 십년전과 비교해 보면 여성의 인권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성별의 역할분리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더 없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집에는 여자 아이 한 명, 남자 아이 한 명이 있다. 집에서 움직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이 볼 때, 이 또한 양육의 한 방편이기를 바란다. 나는 아빠다.

 


물론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다.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일하는 경우도 있고, 대가족으로 사는 경우도 있으며, 직장 환경이 저마다 달라서 격무에 시달려서 퇴근조차 너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성격의 급격한 차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면서 내 경험과 생각을 강변할 마음은 전혀 없다. 첫째 그럼에도 우리는 아빠이며 엄마이고 서로 남편이자 아내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과, 둘째 한 가정의 힘으로는 소망하는 바를 결코 달성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후자가 바로 이어지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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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두 아이의 아빠, 변리사, <특허전쟁> 저자, 곧 후속편 나옴


twitter: @hanaes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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