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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7. 수요일

잡부기자 카인


 


제주 강정에서 유네스코 자연유산인 구럼비 바위를 발파해 없앤다 막는다 시끄럽고 그 때문에 가슴 떨리는데, 왠 연예인 스캔들이냐고 물을 사람 많을 것이다. 사실 본 기자도 지금 그래서 살짝 짜증이 나있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이게 뭔가를 드러내보여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뭐냐고? 아이돌 그룹 JYJ의 '팬 폭행/욕설 사건'이다.


 


정확한 일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2009년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현 JYJ, 전 동방신기의 멤버 김재중이 숙소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숙소 앞에 진치고 있는 팬들을 향해 욕설을 날리고 폭행을 가했다. 이 현장의 녹음 파일이 연예 전문 매체인 디스패치(www.dispatch.co.kr)의 편집으로 공개됐다. 그게 3월 6일의 일이다.


 


녹음파일 유튜브 버전 링크 - 직접 듣고 확인하려면 클릭


 



인터넷에 올라온 녹취본. 클릭하면 크게 보임.


 


그런데 듣다 보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사생팬'이라는 단어. 그리고 김재중의 발언 내용에 있는 사생활 침해 내용. 또 '여러 번 때렸는데'라는 말.


하나씩 가보자.


 


사생팬. 사생결단 팬.


'죽기살기로' 쫓아다닌다 하여 사생팬이란 명칭이 붙었다. 이들은 꽤 저돌적으로 스타에게 돌진한다. 한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생겨난 형태의 팬덤 문화이며, 이게 최근 중국, 일본 등으로 조금씩 퍼지고 있다. 특히나 동방신기, 그리고 동방신기 해체 후 3인이 모인 그룹 JYJ 등에게, 유독 심한 사생팬 그룹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김재중에게 얻어맞고 욕 먹은 팬들이 바로 이 사생팬이다.


 


물론 스타 좋아하다 보면 죽자사자 따라붙을 수는 있긴 한데, 좀 심한 경우들이 있다. 잠을 안 자고, 택시를 대절해 타고 미행하며, 공항에 내리는 무방비 상태의 스타들을 포착해 몰려가기(일명 공항치기)는 것은 기본이다. '사생택시'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사생팬들이 시간당 3만 원 이상에 대절하여 타고 다니는 택시를 일컫는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극성'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 수 위인 사생팬들의 수위를 보면, 단지 따라다니는 것만이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수행한다고 해야 할 정도다. 집과 차, 어디든 근접해서 따라다닌다.


 



2008년 10월 2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분 중에서


 


사생활 침해. 여기는 사각지대?


SBS에서 취재한 내용에는 몇 가지 섬뜩한 내용이 있다. 숙소건 회식 자리건 사무실이건 따라간다는 것. 이미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있을 정도라는 것. 다친 것으로 위장하거나 부상을 과장해 관심을 끌려는 시도도 보인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동방신기 시절, 이들은 '무릎팍 도사'와 '해피 투게더' 등의 예능 프로에 출연하여 사생팬들로 인한 고통을 언급한 적 있다. 여기서 이들은, 자기들이 핸드폰 번호를 바꾸자마자 전화번호를 입수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온 사례들을 주욱 얘기했다. 심지어는 숙소 안의 물건들이 찍힌 사진을, 그러니까 직접 찍어서 핸드폰으로 보낸 적도 있다고 말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주거침입이다. 숙소 보안이 열쇠를 통한 도어락일 때는 그 열쇠를 입수하여 자고 있는 모습을 찍는다거나, 물건을 가져간다거나, 자고 있을 때 입을 맞춘다거나(!) 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더 나아가, 핸드폰의 데이터를 복사하거나 해킹해, 안에 있는 주소록에 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증언한다. 외국에 나가 호텔 숙소를 잡으면 같은 층에는 반드시 사생팬들이 방을 잡는다.


피해사례 주장은 더 있다. 인파 속에 숨어서 스타의 몸을 계속해서 만지는 사례에서, 생리혈(!)이나 자신의 속옷, 심지어 러브젤;;까지 스타의 가방에 집어넣는 사례까지. 몇십 인분의 치킨이나 피자를 스타의 숙소로 시켜놓고 그 돈을 지불하게 하거나, 도망다닌다면서 스타를 책망하거나 심지어 뺨을 때리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형태의 관심을 원하는 것이다.


 



최초 출처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이 중 일부만 사실이라도 충분히 섬뜩하다. (참고할 최근 기사 하나 : 뉴스엔)


일부러 접촉사고를 내 근거리에서 보려는 시도는 다수 확인 되었다. 특히 동방신기 멤버들의 개인 차의 경우가 그렇다. 사생택시 운전사와 계약을 맺고 사고를 낸 후, 사고처리를 하러 온 멤버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는 것. 이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스타가 다친 경우도 있다. 동방신기 멤버였던 김재중, 박유천, 심창민에게 이런 교통사고 기록이 있고, 그 외에도 사생팬을 피해서 주행하다 사고를 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일로 멤버가 몰던 BMW가 심하게 파손되어 폐차했다는 주장이 있다.)


 



...응? 자기 것도 아니고 누구 걸 팔아?


 


이런 사생팬들은 여러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나아가 자신들의 '쾌거'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블로그는 SNS가 비교적 비활성화 되었던 2000년대 후반에 상당히 왕성했는데, 폭행 당시 김재중의 발언 중에서도 그런 블로그가 언급된다. 블로그에 자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완전히 감시되어 올라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블로그들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방송에서 동방신기 멤버들이 증언했던 형태의 극단적인 활동들도 이따금 포착된다.


물론 사생팬 그룹 내에서도 이런 범죄급의 활동(?)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배적인 경향은 그럴 수가 없다. 애초에 사생팬 자체가 스타에 대한 끓어오르는 동경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위의 녹음본을 듣거나 녹취본을 보면, 김재중은 계속해서 사생팬들의 무차별 24시간 접근을 성토하고 있다. 욕을 라임처럼 섞어가며 일정한 플로우에 따라 랩을 하듯, 문장이 망가지거나 하지 않게 말하고 있다. 흥분 상태에서 이럴 수 있다는 것은, 이런 말을 머리 속에서 최소 몇 번은 시뮬레이션 돌려봤다는 것이다. '꺼져달라'는 비명이 속에서 쌓인 흔적이 보인다.


이제 김재중이 왜 폭발하여 사람을 때렸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데뷔 후 몇 년 간을 시달려 온 압박이 터져나온 것이다.(취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사정하다가, 무시하다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스토커 한 명만으로도 일개인은 정신 파탄에 이를 수 있다. 하물며 수십에서 수백이 이렇게 한다면, 어느 기자의 말마따나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한" 것이다. 폭행 당시 김재중의 발언에도 쉬지 않고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닌 행위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언급된다.


 



JYJ 멤버 한 사람의 과거 트윗 내용 중에서. 지금은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사생팬들이 몰려드는 몇몇 연예인, 동방신기, 박재범, 장근석 등은 늘 이런 피해를 달고 살아왔다. 그들은 선택 받아 경제적/사회적으로 성공한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생팬에 의한 피해를 그 열매가 주는 반대급부라고만 생각해야 할까? 아무리 봐도 이미 그런 '불편'의 수준은 넘어섰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피해를 입는 일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데, 아이돌 스타라는 소수에게는 그러한 집단 피해가 만성적으로 있어왔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화약고. 누군가가 폭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이 중에서 김재중의 폭발이 가장 먼저 여론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뿐이다. 노출되지 않은 다른 폭발이 더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동방신기 멤버 중 하나의 트위터. 지금은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상습 폭행. 정말로?


그래서 본 기자는 김재중이 팬들을 상습 폭행 했다고 한 말을 약간은 믿는다. 역사 속에 기록된 성인도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냈다. 하물며 범인이 분노를 꾹꾹 눌러참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물론 약간만 믿고, 다른 약간의 믿음은 다른 곳에 준다. 김재중이 그 말을 '위협용 수사'로 써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둘 중 어느 쪽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습이든 단발이든, 김재중은 폭행 행위에 대한 법적 대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김재중의 폭행은 범죄고,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은 그 범죄가 '왜' 일어났느냐 하는 질문이 된다.


따라서 김재중과 JYJ, 나아가 동방신기 다섯 명 모두에게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생팬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진다. 김재중의 폭행 범죄를 일으킨 원인이 바로 그들의 숱한 범죄니까. 주거침입, 절도, 성희롱, 고의 교통사고 유발, 개인정보 유출, 스토킹 등등. 사생팬들의 행동 때문에 엄한 동방신기/JYJ의 팬덤의 이미지까지 함께 실추된 것은 또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게 몇몇 개인들에게 집중되었다고 생각하면, 동방신기 5인에 대한 동정심이 든다. 그들은 집단 고소나 폭력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그중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김재중에게 유감이지만, 데뷔 이후 7년 동안 사적 시간 없이 보냈을 그 무간지옥에는 무한한 동정을 보낸다.)


 


그들의 심리


현재 사생팬 그룹들은 극심한 배신감에 들끓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법도 하다. 학생은 학교를 안 나가고 성인은 자동차를 구입해서(글타. 10대만 있는 게 아니라 20대도 있다.), 자기 생활도 포기하고 따라다니며 '응원'을 했는데 자기들을 팼으니까. 오죽 억울하게 느꼈으면 트위터 계정을 하나 급조해 본 기자에게 끈질긴 항의(?)를 보냈을까. JYJ 좀 옹호하는 트윗을 날렸다는 이유로 말이다.


 



본 기자와 싸우기 위해 생성된 계정. 저 모든 트윗이 본 기자에게 밤새 싸움을 건 멘션이다.


 


정상 상식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같은 팬덤 내에서라도 이렇게 도를 넘은 극성을 보이는 사람과 친해질 수가 없다. 당연히 사생팬들은 자기들끼리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그러다 보니 폐쇄적이고, 아전인수의 논리와 자기합리화나 자기위안의 기제가 작동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이들은 일단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우리'라는 형태의 정통성 확신 혹은 우월감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 그렇기에 참지 못한 스타가 폭행하자 극렬한 배신감에 휩싸인다. 폐쇄성의 커뮤니티 특성상 이들은 극단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 극단성 때문에 이들은 또 배척 받고, 더한 폐쇄성과 자기합리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극단성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반면 연예인들의 심리는?


데뷔 초, 자신들을 따라다녀 주는 팬들에게는 당연히 고마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행위가 점점 심해지고 끊이지를 않는다면, 결국 지치게 된다. 공개석상이나 온라인을 통해서 자제를 요청해도 듣지 않고, 이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이 피해를 입고 그 입지가 좁아진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게다가 몰려드는 사생팬들로 인해 이런 연예인들의 생활 역시 폐쇄적이 되어간다. 지근거리에 있는 기획사 직원 몇몇을 제외하면 업무 외의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급감한다. 사람이 폐쇄적이 된다. 신고하면? '팬인데 뭘 그러느냐', '너무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지', '미성년자가 대부분이지 않냐'는 식의 반응들.(스토킹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근래에 있던 것을 상기해보라) 실제로 스타 자신도 '그래도 팬인데...' 라는 부채 심리를 갖고 있다. 자기라는 상품을 기꺼이 소비해주어 성공한 스타가 되게 해준 존재라고 생각하니, 신고 자체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게 겹치다 보면 신고 자체를 포기하고 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우울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우울증이 폭발하면 폭력 성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단순하게 기술하면 참다참다 폭발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고, 우울증과 해소되기 힘든 스트레스가 겹치면 사람 성격은 참 쉽게 비관적으로 변해간다. 점점 주변인이 힘들어진다. 악순환이다.


 



 


필연처럼 이어지는 상호 작용의 악순환. 모두가 상처를 입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며 모두가 가해자가 된다.


스타들이 사생팬에 대한 통제를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트윗으로 짜증도 내고, 모여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요청도 해보고, 시상식 등의 공개석상에서 자제 발언도 했다. 그러나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다. 스타가 통제할 수 없는 개인 팬은 굉장히 많았지만 통제 불가능한 '집단'이 출현한 현상은, 사실상 최초다. 그래서 사회는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단순한 10대의 일탈 행동으로만 봐왔다.


 


이게 다...


본 기자는 이 사건의 책임이야 폭행 가해 당사자인 김재중에게 있다고 말한다. 물론 주거침입이나 성희롱, 교통사고나 핸드폰 해킹 등의 큰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이 직접 맞은 것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정말 선량한(?) 사생팬들이 운 나쁘게 얼결에 맞은 것일 수 있다. 폭행에 상응할 만한 행위를 한 당사자에게 폭력을 쓴 것이 아니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정당방위는 힘들 수도 있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폭행 당한 피해자 당사자조차 스토킹 현장이었으니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김재중이 느닷없이 뛰쳐나와 폭행과 욕설을 감행했을까? 최소한 그가 혹은 다른 멤버가 '제발 가달라'고 한 사전 행동이 없었을까? 본 기자는 분명 후자의 가능성이 월등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폭력을 불러온 원인은 사생팬들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겠다. 김재중의 폭력을 발화시킨 것은 그를 탈출구 없는 상태로 몰아갔던 사생팬 행위이다. 스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수준조차 넘어선 이 지점, 이 광기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톱스타에게 몰려드는 팬덤은 '하렘'의 형태를 한다. 우수한 개인에게 다수가 붙는 형태의 그룹. 그렇다면 당연히 우수한 개인이 그룹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어야 권력 균형이 맞는다. 마이클 잭슨이나 백스트리트 보이즈 등의 글로벌 스타들만 봐도 그러한 통제권을 갖고 자신을 지켰다. 팬덤 구성원들에게 스타는 '주군'이다. 주군은 사람이니, 아무리 막나가더라도 그의 개인권을 인정해주는 경향을 잃을 수는 없다. 이게 팬덤 현상의 일반적 경향이었고 여기서 크게 벗어나는 팬덤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의 사생팬이라는 팬덤 문화는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여러 모로 최초의 케이스다.


 


우린 지금껏 이런 형태의 단체 폭발을 많이 봐왔다. 이 사생팬 사건이야 규모가 좀 작아서 그렇지, 유사한 광기가 쏟아져나와 부딪혔던 광경은 기억할 수 있다. 황우석, 심형래, 미네르바, 타블로 등 주체할 수 없는 광기가 사람을 아연케 하던 사안들이 최근 한국 사회에서 터져나왔다. 합리적인 의혹과 무리한 음모론이 교차하며 복잡하게 얽혔고, 합리에 근거한 결과가 나와도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수가 마치 찌꺼기처럼 남아버린 사건들. 이번 사생팬 폭행 사건 또한 이런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사건은 좀 규모가 작고 갈등 형태가 두 개 얽혀 있다는 점 정도다.


 


게다가, 음모론


첨예한 사회 이슈는, 음모론을 옆에 달고 있지만 반면에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남긴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보람이 있다.


 


일단 무슨 음모론일까?


 


과거 동방신기의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와 동방신기 멤버들 간의 불화가 있었다. 불화의 제목은 '계약서 내용이 불공정해요' 다. 곁가지 다 쳐내고 줄기만 얘기하면, 법정 공방까지 번진 사건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세 사람은 결국 SM을 나와 JYJ를 결성했으며 JYJ 멤버들의 노력과 팬들의 지원 끝에 '10년이 넘는 계약 기간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게 됐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판결이 더 있었고, 그 결과 아이돌 그룹의 전속 계약 기간이 대부분 14년 정도였던 수준에서 최장 7년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2심의 판결문 표지. 대법원 3심은 이를 확정지었다.

그 결과, JYJ 3인은 SM에서 이탈하게 되었고 아이돌의 계약서 관행은 수정되었다.


 


음모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JYJ의 '내부고발'로 인해 이미지와 사업 측면에서 타격을 입은 SM 엔터테인먼트가, JYJ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기 시작한다.


이 음모론은 확대되었고, JYJ 팬덤의 몇 사람이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정황은 꽤 설득력 있었다. 드라마의 O.S.T.를 JYJ가 불렀는데 그 음원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다거나, 기사 노출과 방송 출연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적다거나, 제주도의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에 있어 JYJ가 홍보 대사로 위촉되었는데 관련 공연에는 출연할 수 없었다던가 하는 등.


 


언론 노출이 적었던 것이 가장 이상한 부분이다. JYJ의 1집에는 미국의 카녜 웨스트(Kanye West)가 참여했다. 카녜는 정상급의 래퍼이자 프로듀서로,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미학이론가들에게도 주목받는 방법론을 선보이는 사람이다. 카녜 자신이 상업과 비평 양쪽에서 최첨단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아티스트는 돈만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다. 에이전트의 능력만이 아니라 현장의 플레이어 본인인 JYJ 자신들의 능력 또한 카녜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참여는 불가능하다. 아이돌은 결국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지만, 가끔 이들 중에서 음악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JYJ에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보면 비약일까? 무엇보다 카녜 웨스트라는 세계적 거물의 앨범 참여 자체는 상당한 이슈화가 될 수 있는 재료인데, 기사 몇 번에 그치고는 끝난 것은 분명 이상하다.


 



JYJ의 첫 앨범 [The Beginning].

Kanye의 참여 외에도, 음악적으로도 꽤 수작이다.


 


그리고 이상호 기자의 '손바닥 TV'는 지난 12월 22일, 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음을 보도했다. 공정위에서 실제로 SM이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언론이나 공연기획사나 음원업체 등에 보낸 공문을 입수했다는 것. 공정위는 활동 방해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호 기자의 손바닥 TV, 2011년 12월 22일자 방송분 중에서


 


음모론이 사실로 확인되면, 음모론은 더욱 자라난다. 현재는 김재중의 폭행을 최초로 보도한 디스패치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기사에는 폭행 사건의 정확한 날짜가 없을 뿐더러, 위의 링크를 통해 들어보면 알겠지만 편집이 되어 있다. 현장에서 녹음된 사생팬들의 발언 등을 모두 제거한 것이라는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 게다가 왜 하필 시기가 지금일까. JYJ가 출국해 있는 지금. (상당한 비약이 가해져 이런 형태도 나왔다. 'SM에서 폭행 피해자과 디스패치를 이용해 이번에 터뜨린 것이다. 강정 같은 정치 이슈를 덮기 위해!' ...이쯤 되면 제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한다.)


과도한 수준의 음모론은 집중해 볼 가치가 없지만, SM의 활동 방해 건이 김재중을 비롯한 JYJ에게 쏟아진 또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디스패치의 기사화 의도는 조금 의심스럽다.


더더욱 동정할 재료가 많아진다. 하지만 동의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사람을 때린 것은 잘못이니까. 전쟁터라는 비극의 공간에 있었다고 해서 이라크 포로를 고문하고 희롱한 일부 미군의 행동을 용인할 수 없듯이. 비록 오래 고통에 시달린 끝에 터져나온 행동이라 해도, 그 행동 자체에 대한 욕은 당연하다. 물론 그의 처지가 불쌍하여 동정은 가능하지만.


 


그렇다면 이러한 동정을 사생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보자. 다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범죄의 양질은 김재중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저렇게 극단적으로 스타에 몰입하는 형태를 분명 정상이라 볼 수는 없다. 스타를 사람이 아닌 인형처럼 받아들이는 이 심리는 무엇에 기인하는 걸까? 본지 너부리 편집장이 이런 때 하는 분석이 있다.


 


"외로워서 그래."


 


본지의 죽지않는돌고래 기자는 이를 '사는 낙이 없어서 그래'라고 번역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와 통찰이 이를 지적한다. 사생팬처럼 광기로 분류되는 집단 현상은, 그 집단의 정신적 결핍을 드러내 보여주는 결과일 뿐이고, 이 결핍은 집단이 소속된 사회의 건강도와 억압도를 보여준다고. 일탈 행동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화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사회의 바로미터가 된다. 결국 사생팬의 형성은, 그들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해 광기에 물들게 한 그들 주변 사회의 책임이다. 우리 말이다.


현대 사회를 파편화된 개인의 군집으로 보는 시선은 이제 상식화되어 간다. 특히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억압 기제들은 이들을 더욱 파편화시키고, 심할 경우 병리적인 상태로 만들어 간다. 그간 계속 불거져나오고 있는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 문제를 생각해보라. 그건 학교 폭력 가해자들의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다. 사생팬들도 그러한 현상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 억압의 연쇄 반응 끝에서, 김재중은 폭발하여 사람을 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극이다.


 


그래서, 제언


그래서 본 기자는 JYJ와 김재중, 그리고 그 소속사에게 제안한다. 이 사건을 사소한 폭력 스캔들로 바라보고 덮거나 넘어가려 한다면, 그건 최악의 수다. 이 사건은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도록 프레임 설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김재중은 정말 억울하겠지만, 그리고 왠만큼 사정을 안다면 대부분 JYJ에게 동정을 보내겠지만, 어떻게든 폭행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여론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큰 맥락에서 보면 폭행이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받아들여진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적인 전략은 그 반대가 필요해진다. 폭행만이 아닌, 폭행의 원인이 된 스토킹에 더 큰 집중이 가게 하도록 하라.


가장 좋은 수는 모든 법적 절차를 정당하게 받아버리는 것이다. 자진신고의 형태가 가장 좋고, 제3자의 고발의 형태도 나쁘지 않다. 짧고 굵은 사과를 곁들이면 더욱 좋다. 그리고 폭행에 대한 법적 대가를 받는 동안, 또한 받고 나서 계속해서 사생팬에게 받은 피해를 어필하고 증명해라. 스스로 법 아래에 걸어들어가면 사생팬의 행태도 자동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사생팬 현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게 해라. 아직 제정신인 사람들이 더 많다. 논의가 시작되면 충분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적절한 사회적 협의가 도출될 것이다. 지금도 몇몇 언론이 정신차렸는지 폭행 기사만 내다가 이젠 사생팬들의 현주소에 대한 기사를 내고 있다.


가장 필요한 태도는 당당함이다. '나는 잘못없다'는 당당함이 아니라 '내 죄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다'는 당당함 말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입은 피해 또한 진술하라. 대마초 사건에서 크라운 제이가 보여줬던 스웨거를 참고하면 되겠다. 크라운 제이는 자신의 대마초 혐의에 대해 인정했으며, '그러나 대마초가 용인되는 미국 현지 문화에서 비지니스 교분을 넒히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이었다.'는 변호를 반성-사과와 함께 제시했다. 그리고 형이 선고되자, 인정하고는 항소하지 않고 사과 발언을 재차 한 후, 집행유예 기간을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전 매니저 폭행 사건에 집중하여, '폭행은 없고 이것은 역으로 무고죄가 성립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내놓았다. 잘못에 책임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태도. 이게 당신들에게 역전타 역할을 할 것이다. 크라운 제이에 대한 여론은 실제로 반전되었다. 감정은 억울해도 사과와 사회적 고발을 둘 다 감행해라. 장담하는데 여론 반전된다.

 


나아가, 연예인에 대한 사생팬들의 행위 자체가 스토킹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을 끌어낼 수 있다. 이건 굉장히 큰 의의가 된다. 사회적 공헌을 세우는 거다.

 


이미 SM에 반기를 들었던 그때, 당신들은 본의는 아니었을 수 있으나, 연예인에 대한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다시 이런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 약간 미안하지만, 이미 폭행 행위로 인해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죄는 죄지만 고통도 고통이라는 것을 부각시켜라. 그게 이 사생팬이라는 무간지옥에서 빠져나갈 방법이다. 더불어 미안하다. 전 소속사의 방해나 사생팬의 인권 침해 등의 고통 속에 있는 것에 대중과 사회가 눈을 돌려주지 못해서. 그 연쇄의 결과가 지금 사생팬이라는 병리 현상을 지속시켰고 김재중이라는 연예인을 폭행범으로 만든 셈이니까.


폭행이 사실이라 법적 지지는 할 수 없고, 본 기자 개인적으로는 JYJ의 음악을 지지하지 않지만, 심정적 지지는 보낸다. 힘내어 뚫고 가 사회적 합의라는 대어를 낚길 바란다.


 


 


명랑사회를 위한 길은 정말 멀다. 그래도 큰 거 작은 거 하나씩 주워담으며 조금씩이나마 가보도록 하자. 졸라.


잡부기자 카인

twitter : @Kain_Sul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