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회상] 98년 이맘때 쯤

2012-03-07 16:43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너클볼러 추천0 비추천0

2012. 3. 7. 수요일

너클볼러


 


98년 이맘때 쯤 새벽이었다. 눈이 떠졌다. 한기로 가득 찬 동아리방엔 나와 이제 막 입학한 후배 녀석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과 술을 나누었는데, 차디찬 방에 남아있는 건 나와 후배 딱 둘뿐이었다. 입이 돌아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니 많이 들이 부은 게 확실했다. 속이 약간 거북했지만 괜찮았다. 수업은 아직 멀었고, 설사 수업이 있더라도 안 가믄 그만이었으니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누군가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 빨리 모이라는 것이었다. 뭐, 또 학교에 경찰이 들어왔나 싶었다. 새벽에 깨우는 경우는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 대충 굴러다니는 파카 하나 주워 입고 후배 녀석을 깨워 함께 문 밖을 나섰다. 새벽 봄 공기는 제법 아렸다. 학생회에 올라가보니 이미 열댓 명이 모여있었다. 표정을 보니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심각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려던 생각을 접었다.


 


 



 


학교에서 버스로 3-40분 거리에 있는 재개발구역에선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주민 이십여 명이 주민센터를 점거하고 농성중이었다. 이미 개발에 만족한 일부의 주민들과, 대항할 수 없었던 수많은 주민들이 떠난 뒤였다. 대부분의 집들은 무너진 터였다. 오갈 데 없는, 참을 수 없었던 주민 이십여 명만이 폭탄이라도 한 방 맞은 듯한 앙상한 주민센터에 깃발 하나 꽂아 놓고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어제 밤 용역깡패가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모인 사람 중에 여자를 제외하니 열 명 정도 되었다. 두세 명씩 버스로 이동한 뒤, 돌아서 3-40분 정도 걸어 농성장으로 들어가고, 들어가다 잡히믄 대자보 보고 왔다고 묵비권, 무사히 들어가믄 농성장에 합류, 용역깡패가 농성장을 칠 경우, 절대 싸우지 않고 ‘몸빵’하는 게 택이었다. 다행히 후배 녀석과 난 농성장에 들어갔다.


 


전쟁이 나면 이런 모습이겠다 싶었다. 모든 집들은 싸늘히 주저앉아 있었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것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였다. 입주민들이 베란다에서 이 곳을 바라보는 그 광경이 공포스러웠다. 인근 상가 간판에 아무렇지 않게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만 전쟁터였다. 무서운 침묵이었다.


 


속속들이 사람들이 도착했지만 그래 봐야 열 명이었다. 화목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지만 몸은 녹지않고 더 쪼그라드는 듯 했다. 겁을 먹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밤부터 깡패가 보인다고 했다. 몇 조로 나누어 망을 보기로 했다. 사람이 많지 않아 멀리까지 가는 것은 위험했다. 다만 근처라도 함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우선 두 팀이 먼저 출발했다. 난로엔 계속 나무를 넣었는데 몸은 계속 추웠다. 겁이 났지만 겁이 난 티를 낼 수 없었다. 후배 때문이었다. 망을 보러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팀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창문으로 향했다. 밝은 이미 훤했다. 동이 튼 지, 시간이 흐른 지 몰랐던 것이다.


 



 


저 멀리 검은 차림이 사내들의 무리가 보였다. 몇몇은 각목을 들고 있었고, 몇몇은 웃장을 깐 맨몸이었다. 마치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정말 겁이 났다. 무섭고 두려웠다. 용역깡패들끼리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 누군가 내려가자고 했다.입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을 제외한 열 명정도의 학생들이 입구를 막고 섰다. 때리믄 맞으라 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백 미터 앞 이 세상도, 여기 있는 내 자신도, 저 뒤에 있는 주민들도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아니, 눈 앞의 깡패가 너무나 무서웠다.


 


어제 밤, 강정의 소식을 들으며 문득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서웠다. 용산 때도, 대추리 때도 마찬가지였다. 늘 이런 일을 접할 때면 그때의 기억을 떠 오른다. 그리고 겁을 집어 먹는다. 그 때 이후로 난 그곳에 서보지 못했다. 늘 화면이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다. 아니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고,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섭고 불편했다. 진심이다.


 



 


여전히 누군가 다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뭔가 짓고 세우겠다고 사람을 죽인다. 이게 세상이면 세상은 언제가 나도 죽이려 들 것이다. 또 겁이 난다.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나 늘 뭔가 보태지 못한 채무감만이 남는다. 동이 트자 깡패가 들어왔던 것처럼, 동이 트면 폭파를 하겠다고 한다. 힘들지만 이번엔 똑바로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제대로 기억하려 한다. 제발 오늘 밤엔 강정을 지킨 많은 분들께 감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