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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02. 월요일

편집부 홀짝






 

 






김수영이 한 방에 기거하는 이종구와 김현경을 목격했을 때의 심정을 어떠했을까. 그것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도 일지 않는 잔잔함 그 상태였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여태까지 넘어왔던 수많은 죽음의 고비와, 그 고비고비를 넘을 때 스스로 살고자 했었던 다짐들이 김수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김현경 또한 나름의 사정은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터졌고, 남편은 끌려갔다. 남편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니 사실상 죽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현명한 것이었을 그 아득한 시간을 보낸 그녀가, 전쟁 중 다른 이와 살림을 차린 것이 무에 그렇게 손가락질 받을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여기까지가 김수영과 김현경,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던, 살아가야만 했던 그들에게 누구의 잘잘못도 따질 수는 없다. 그저, 사정이 그러했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김현경과 이종구의 동거를 김현경의 외도바람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김수영은 방 안에 있는 김현경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가자.”


김수영 같이 자존심 강한 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지를 가늠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김현경의 한마디는 어쩌면 그들의 동거 사실을 목격했을 때 김수영이 받았던 충격 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럴 수 없어요.”

 

김수영은 혼자가 되었다. 홀로 가족이 있는 서울에 돌아왔다. 혼자된 그의 심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역시나 그가 남긴 시다. 상편에서 말했듯, 시인은 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侮辱(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 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 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圓周(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 遊星(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億萬無慮(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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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김수영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1년 후, 김현경은 이종구와 헤어지고 김수영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김수영과 김현경의 결혼 생활은 김수영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의 재결합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고는 표현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이 사건은 김수영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흉터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김수영이 김현경에게 주기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편에 소개한 김수영의 시 죄와 벌」,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난 김수영의 폭력을 설명하면서 그의 찌질함을 말해놓고 이제와 그의 사연을 구구절절 하게 말하는 의도가 그에게 어떤 면죄부를 주고자 함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 또한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핑계 있는 무덤중 하나일 뿐일 테니 말이다.


죄와 벌」의 모순


앞선 회에서 소개한 김수영의 죄와 벌」에는 길 한복판에서 우산으로 아내 김현경을 두드려 패는 김수영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수영의 못난고백. 집에 돌아와서 마음에 가장 꺼리는 것이 혹시나 그 사건의 현장을 아는 사람이 보지는 않았을까 했다는 것. 그런데, 이 시에는 모순이 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시 죄와 벌」의 화자가 완벽하게 김수영 그 자신이라고 가정한다면, 집에 돌아와서 혹시 아는 사람이 보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그의 고백은 한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가 아내를 구타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순은 여기에 있다. 아는 사람이 볼까 부끄러운 자신의 행동,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 그런데 그걸 시로 써서 발표했다? 자신이 아는 사람은 물론, 현장에 없었던 불특정 다수가 알게 될 것임에도? 그리고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까마득한 시간 후에 태어난 나조차도 그 사건을 알게 되어 버렸다. 그가 아내를 구타한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후에 아는 사람이 봤을까 걱정했다는 것과, 두고 온 우산이 먼저 생각났다는 속마음까지 그의 시를 본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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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아는 비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김수영을 위인이게 하는 이유가 있다.

 


자유의 시인 김수영

 


김일성 만세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 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김수영을 표현하는 단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유’. 그는 자유를 갈망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김수영이 꿈꾸는 자유가 어느 정도의 자유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위의 시, 김일성 만세」를 보여줄 것이다. 심지어 김수영은 이 정도면이라는 전제가 붙은 자유는 이미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와 개인의 금기가 되어 있는 김일성 만세라는 다섯 글자. 그렇다면 그는 소위 말하는 빨갱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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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전쟁 중 겪었던 그 일들. 남하한 인민군에 의용군으로 끌려간 일. 가족들과 헤어져 생사를 넘나든 경험. 지옥 같았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기억, 그리고 씻지 못할 상처가 되었던 김현경과 이종구의 동거. 이 모든 아픔의 근본적인 원인은 6.25전쟁에 있었고 그 전쟁은 다름아닌 북한이, 바로 김일성이 주도한 것이다. 만약 김수영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차라리 그는 어버이연합의 기수가 되어 종북주의 척결을 외치고 있어야 했다. 김수영의 경험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그게 훨씬 자연스럽다.


사람이 가장 뛰어넘기 힘들다는 경험적인 한계. 김수영을 그걸 넘어서 김일성 만세가 인정되는 자유를 꿈꾸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당한 사람이 사형제 반대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김수영에게 김일성 만세는 그가 동조하는 신념이 아니라 그저 그가 꿈꾸었던 자유의 완성이었을 뿐이다.


그가 남긴 시와 산문, 그리고 그의 삶에서 김수영은 지독하리만큼 끊임없이 자유를 외쳤다.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당사자를 찬양하는 것까지도 인정해야 한다고 할 만큼.

 

인간 김수영으로부터 자유한 시인 김수영


김수영이 추구한 자유의 범위와 그 의미가 단순히 언론의 자유, 사회적 자유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수영은 시인으로서 김수영이라는 인간 본인으로부터 또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죄와 벌」의 모순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시에 나타난 인간 김수영은 어디까지나 그저 평범하고 찌질한 인간이다. 그의 시 안에는 한 때 아내에게 버림받았던 상처가 되살아날 때마다 그것을 물리적 폭력으로 해소했던 인간김수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시로 나타낸 것은 시인김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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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


그가 생전에 남긴 여러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죄와 벌」 외에도 자기 비하 혹은 자기 폭로에 가까운 시가 여러 편 눈에 띈다. 익히 알려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는 사회와 정부의 부조리함에는 고개 숙이고 침묵했던 자신이 설렁탕집 주인에게는 갈비에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분개하고 욕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 시인임에도 내가 시에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고백, ‘나 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설움이 곳곳에 묻어있다. 시인 김수영이 인간 김수영을 바라보는 눈은 제 3자의 그것보다도 훨씬 냉혹하다. 이토록 시인으로서 김수영은 김수영 그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가 추구하는 자유에는 한계와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바로 보마라는 여섯 글자


이렇게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에는 반드시 한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밑바닥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 진저리 치게 싫어하는 스스로의 밑바닥, 애써 외면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 해도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악순환. 남에게 들키고 싶어하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본인조차 그것을 들여다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저 애써 외면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합리화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좌절하고 그대로 주저앉거나.


그러나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유하려면,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온몸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과 화해를 하던, 시원하게 욕을 쏟아내던, 최소한 그 모순의 실체를 발견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그림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때 등 뒤에서 나를 비추는 빛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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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은 「김수영 평전」에서 그의 초창기 시 「공자의 생활난」이 발표 직후부터 오늘까지 반세기를 두고 주목되는 것은 나는 바로 보마라는 6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보마가 김수영을 자유이게 하였다고 말한다.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김수영은 자신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을 바로 보려고 했을 뿐 아니라 인간 김수영 그 자신 또한 바로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고통스럽고 처절한 작업. 내가 내 자신을 바로 보는 일. 그것을 통해 김수영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김수영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자신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물리적 폭력으로 해소할 수 밖에 없었던 그가,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던 그가 어떻게...

 

김수영의 불가능한 꿈과 이상


60년대 한국 문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김수영과 이어령(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 맞다)의 논쟁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본질은 꿈꾸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수영에게 있어 불가능한 꿈과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김수영은 시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가 시인임에도 그는 끊임없이 시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스스로가 시에 반역하는 삶을 사는 것을 두려워했고 때문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가 꿈꾸는 시인의 이상향에 미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심지어 그가 생각하는 시인의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시인이라면 자신뿐 아니라 동료 시인들에게도 거침없는 비판의 화살을 퍼부었다. 우리에게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또한 김수영과 꽤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내내 김수영으로부터 알맹이는 없고 겉멋만 잔뜩 든 시를 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는 김수영이 오만하고 건방져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김수영은 그 자신 또한 자신이 꿈꾸는 시인의 모습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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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과 박인환


김수영이 생각하는 시, 그리고 시인은 온몸으로 시를 쓰는시인이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를 쓰는 것이었다. 김수영에게 있어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우직하게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김수영을 위인이게 한 그것


불가능한 꿈과 이상! 도달하고 싶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곳에 이르기 위해 김수영은 자신의 흉한 내면, 밑바닥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고,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김수영이 한국현대시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결코 그의 태생적 비범함에 있지 않다. 이것이 필자가 <찌질한 위인전>의 첫 번째 위인으로 김수영을 소개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이다.


불가능한 꿈과 이상’, 그리고 스스로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어찌 보면 식상하기 그지없는 이 말이 김수영이 나에게 던져준 가장 묵직한 울림이었다.


내가 김수영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찌질하다. 그리고 그런 찌질한 내 모습이 밖으로 튀어 나올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찌어찌 그 시간이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은 찌질함을 반복하는 내게 미래나 희망 같은 것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였다. 찌질함. 심하게 말하면 병신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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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찌질함의 끝은 어디인가


그런 나에게 그 다음을 보여준 것이 김수영이었다. 나 자신의 찌질함을 인정하는 순간이 끝이자 결론이 아님을 알게 해준 사람이 김수영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벌거벗은 내 앞에 마주섰다. 앞으로도 나는 꾸준하게 찌질할 것이며 이 지난한 굴레를 반복하는 것이 나에게 정해진 미래일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찌질한 내가 그럼에도 예전과 같지는 않아진 것은, 그럼에도 뭔가 바라보는 저 끝이 생겼다는 것이다. 도달하지 못해도 좋다. 처음부터 그건 불가능한 꿈이었을 테니 말이다.


여기까지가 <찌질한 위인전> 김수영편, 졸필의 마지막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처럼 살다 떠난 김수영. 196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수영은 풀처럼 누웠고 

「풀」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뱀발.

필자가 김수영편에서 전하고자 하는 말이 여러분께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 능력의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여 그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언젠가 필자가 졸필을 벗어나게 되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모두 전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왠지 그 또한 불가능한 꿈이 될 것만 같아 씁쓸하다. 벌써부터 다음은 누구로 하지? 어떻게 쓰지?’하는 걱정이 태산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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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