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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8. 화요일

산하









"양키들이 우리 초소 앞까지 들어왔습네다. 트럭에 무슨 장비까지 싣구 왔습네다. 군관 동무."


다급하게 달려온 인민군 병사는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뭐이? 4초소 앞 말이오? 그 아새끼덜 또 미루나무 베러 온 거이가?" 


인민군 박철 중위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12일 전 8월 6일에도 UN군 초소에서 인민군 초소를 감시하는 시계(視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남조선 근로자들이 높이 12미터의 미루나무를 베러 들어온 것을 호통 쳐서 돌려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양키 장교가 직접 남조선 아이들을 이끌고 미루나무로 왔다는 것이다. 박철 중위는 경비병들을 이끌고 달려 갔다. 미군 지휘관은 보니파스 대위. 한국 근무 3일 남은 갈참이었다.


"뭐하는 건가."


"관측에 방해되는 가지를 치러 왔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인민군도 보고만 있었고 미군과 한국군, 한국 노무자들도 평온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그런데 한창 작업이 진행되는데 박철 중위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 이상 가지를 자르는 건 용납하지 않갔다."


보니파스 대위도 한국 짬밥이 많았던 터에 그 정도 으름장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당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야."


한국인 노무자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작업을 계속했는데 갑자기 인민군 경비대원들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대거 현장에 도착했다. 작업반이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박철 중위는 느릿느릿 시계를 풀어 손수건에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살기 어린 한 마디를 부르짖는다. 


"죽여."


(북측은 미군쪽 차량이 북한 경비병들을 향하요 '돌진'하는 등 위협적 행동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보니파스 대위가 구타를 당해 쓰러진 후 인민군 한 명이 작업자들에게서 빼앗은 도끼를 그 뒷머리를 향해 휘두른다. 보니파스 대위 절명. 인솔 장교 중의 하나인 바레트는 필사적으로 UN군 초소 쪽으로 도망갔지만 이내 덜미가 잡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폭행을 당한 후 후송 중 사망한다. 불과 3분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은 근처에서 무비 카메라를 돌리고 있던 미군에 의해 고스란히 촬영되었다. 이른바 '8.18 도끼 만행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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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해방 이후 패전국 미국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수치심에 떨고 있었다. 심지어 캄보디아 해군이 미 상선을 나포하는 기염을 토할 정도였으니 자존심에 금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갈라져 파편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그렇게 절치부심하는 와중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군 , 그것도 장교가 두 명씩이나 총에 맞은 것도 아니고 도끼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미국을 격동시켰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휴가 중 전투기 뒷자리에 앉아 복귀했고 휴전 이후 최초로 한국에는 '데프콘 3', 이후 '데프콘 2'(이건 전쟁 직전 상황이다)까지 발동됐다. "우리도 다쳤다."고 북한이 우겼고 "미리 조작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 장면을 카메라가 상세히 찍고 있었겠느냐"고도 항변을 해 봤지만 어쨌건 도끼와 몽둥이를 휘두른 건 빼도박도 못할 북한 군인이었다. 보니파스가 도끼날을 향해 뒤통수로 다이빙하지 않은 한.


북한도 전시 체제를 발동했고 평양 시민 수십만 명이 소개 내지는 지방으로 재배치됐다. 그러나 미국의 무력은 기가 질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항공모함 세 척이 한반도로 접근했고 괌에서 날아온 폭격기들이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도 거기까지였다. 또 다른 전면전을 감당하기에는 그들은 아직 월남전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택한 전술적 목표(?)는 문제의 미루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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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차하면 때려 버린다는 시위를 하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그 나무를 베어버리는 세레모니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여차하면 이 작전의 산통을 깨겠다고 작심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군이었다. 나무를 자르면서 혹시나 모를 확전을 경계한 미군 사령관은 한국군 경계 병력에게 '몽둥이'를 들 것을 명령한다.


한국군은 이를 수용하는 체 하면서 공수특전단 대원들에게 M16 소총을 분해하여 몸에 지닐 것을 지시하고 천만뜻밖의 명령을 내린다. 북한 아이들이 무슨 움직임만 보이면 바로 쏘아붙이고 북한군 초소까지 때려 부수라는. 즉 '도발' 명령이었다. 그야말로 전쟁의 머리카락을 잡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문재인이라는 이름의 상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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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총을 꺼내들었을 때 미군들은 기절할 듯 놀랐다. 한국군은 북한군 초소를 박살내는 동안 이를 저지하려던 미군 머리에 총까지 겨눴다. 초소 세 개가 아작이 났다. 그러나 북한은 끝내 침묵한다. 근처에서 그를 지켜보는 경비병들이 있었지만 "도발하지도 말고 도발에 대응하지도 말라."는 명령을 지키고 있었다. 기세 좋게 초소를 때려부수는 한국군들도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만약 여기서 총성 한 발이라도 울린다면, 숫제 누군가 오발이라도 했다면 특공대 64명은 물론 60만 한국군과 3천만 한국 국민, 그리고 2천만 조선 인민 태반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인민군 박철 중위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급한 성미와 난폭한 성품으로 유명했다는 그 역시 욕지거리는 내뱉었을망정 "죽여!"소리를 입 밖에 다시 내지는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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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전쟁 위기, 데프콘 2가 발동된 상황에서의 미루나무 제거 작전은 끝내 충돌 없이 끝났다. 현장에 투입됐던 특공대원 하나는 야당 대표가 돼 있지만 사건의 당사자였던 인민군 박철 중위는 오늘을 맞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관광객이 판문점을 통해 망명했을 때 UN군과 인민군 경비병들 사이에 치열한 총격전이 일어났고 그때 수백 미터 남쪽까지 내려와서 망명객을 사살 내지 체포하려던 인민군들 가운데 세 명이 벌집이 되어 죽었는데 그때 인민군들에 의해 수습된 시신 중의 하나가 바로 박철이었다고 전해지는 것이다.(아니라는 말도 있다)


70년대 중반만 해도 남과 북은 여차하면 붙는다는 생각을 쌍방간에 하고 살았다. 그러니 특공대를 청와대 까러 보내기도 하고 우습게 놀면 쓸어버리겠다는 각오로 적의 초소를 때려부수는 시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일이 터지면 한반도 전체는 공포에 시달렸고 빙하기처럼 얼어붙었다. 북한은 이 사건 후 무려 1년 반 동안 전시태세를 풀지 않았고 남한의 '총력안보' 태세는 반대자들을 질식시키고 겨울 공화국의 독기를 끌어올렸다. 전쟁의 위기는 이 말고도 많았지만 전쟁의 문지방을 밟았던 사례로서는 1976년 8월 18일이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실 전쟁은 나기 어렵지만 한 번 나면 우습게 난다. 그게 서로 조심해야 할 이유다.



2010년 11월호 <신동아> 참조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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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