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편집부 주

 

편집부가 한 달에 한 번,

재야의 숨은 필자를 찾아 필진으로 납치합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언어지식" 시리즈는

2월의 납치 필진으로

COCOA 기자의 추천으로 연재됩니다.

 

 

 

 

‘김씨’.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다섯 중 한 명인 21.5%가 김씨라고 하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김씨이니, 다른 성씨인 분들도 잠깐 김씨에 빙의해 봅시다.

 

외국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름을 묻습니다. 여러분은 성을 어떻게 발음하실 건가요. 김? 혹은 킴?

 

서양인들이 김씨를 Kim으로 발음한다는 걸 알기에 '킴'이라 할 분도 있을 거고, 그냥 '김'이라 할 분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궁금증! 대체 왜 김씨를 킴이라고 부르게 됐을까요? 걔네들이 킴이라 부르니까 킴이겠지, 혹은 짝대기 하나 더 들어갔을 뿐인데 무슨 상관이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잖아요?

 

알아도 하나 쓸데없고 자랑하기도 민망한 알쓸지식이지만, 알아둔다고 나쁠 것도 없으니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볼까 합니다.

 

kim-jong-un-attack-plan-us-1-1.jpg

G..I..M.. 아니, K..I..

 

 

 

1. 음성과 음운

 

갑자기 음성이니 음운이니 하는 고루한 이론으로 넘어가서 죄송합니다만, 이것만 알면 위 현상 혹은 비슷한 현상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건축을 위한 기반공사 같은 거라고 할까요.

 

언어학은 여러 분야로 나누어집니다. 음성학, 음운론, 문법론, 통사론, 화용론 등등... 다 비슷해 보이는 놈들 중 딱 두 가지만 살펴봅시다. 음성학음운론.

 

 1) 음성학

 

인간이 내는 소리는 음성과 음운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음성은 발음기관에서 생성되어 실제 말에 쓰이는 소리를 의미합니다. 지금 아무 말이나 해보세요. 엘렐레 벨렐레든 얼레리 꼴레리든. 나는 사과가 좋아. 뭐든지요. 삑- 음성입니다. 이런 말소리 자체에 대해 분석하는 학문이 음성학입니다. 음성은 물리적인 실체입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음성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조음(음을 만듦) 위치, 조음 방법, 성대의 작용 등에 따라서 어떤 음성이 나는지 확실히 정리가 가능합니다. 이런 음성을 정리해서 기호로 나타낸 것이 국제음성기호(IPA)입니다.

 

IPA (1).jpg

 출처 - 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

 

최상단의 가장 큰 표는 자음을, 그 밑 오른쪽에 있는 사다리꼴 모형은 모음을 나타냅니다. 즉, ‘특정한 위치’에서 ‘특정한 방법’을 통해 난 소리를 조사한 것이지요. 복잡하다 느끼는 분들은 그냥 패스하셔도 되지만, 그냥 넘어가면 아쉬우니까 예를 하나 들어 표를 읽어보겠습니다. 

 

Bilabial, Dental, Velar 등의 가로행은 ‘조음 위치’입니다. Plosive, Fricative, Nasal 등 세로열은 ‘조음 방법’입니다. Velar-Plosive를 보실까요? k / g가 나란히 있습니다. Velar는 연구개이고, Plosive는 파열음을 뜻합니다. 즉, k / g는 연구개 파열음입니다. 또한 성대의 울림에 따라 무성음(k)와 유성음(g)로 나누어집니다. 그렇다면 k라는 음성은 무성 연구개 파열음, g라는 음성은 유성 연구개 파열음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음성은 물리적인 실재입니다. 측정 가능하고, 정량화되어 있습니다.

 

 

 2) 음운론

 

음운은 언어 체계 내에서 다른 소리와 구별되어 의미의 분화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최소 단위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불]과 [물]이라는 단어를 구분할 때. 우리는 /ㅂ/과 /ㅁ/의 음을 통해 단어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뿔]과 [풀], [둘] 등의 단어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위 단어들의 초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단어라고 인식합니다. 즉, /ㅁ/, /ㅂ/, /ㅃ/, /ㅍ/ 등은 한국어 체계 내에서 다른 소리와 구별되는 음운입니다. 

 

자 여기서 음성과 음운의 극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음성은 ‘물리적 실재’이며 음성녹음, 분석을 통해 정량적인 기준으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그를 통해 IPA 같은 음성 체계를 만들지요. 그러나 음운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운 체계는 화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언어 내 방언 사이에서도 다릅니다.

 

즉, 음운이란 물리적인 실재가 아니라 언어 사용자가 지닌 심리적 가치체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음운 체계의 차이가 ‘킴씨’를 만들어 냅니다.

 

 

2. 음운 체계가 다르다?

 

감이 잘 오지 않으실 겁니다.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음성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말하기와 듣기로 이루어집니다. 화자는 심리적으로 내재된 음운 체계를 통해 말소리(음성)를 조합하여 말합니다. 화자에게서 출발한 말소리는 청자의 귀를 통해 고막을 울리고 청신경으로 뇌에 전달됩니다. 이렇게 전달된 말소리(음성)을 청자는 자신의 음운 체계를 통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화자와 청자의 음운 체계가 다르다면? 예를 들어, 화자의 언어에는 존재하는 음운이 청자의 음운 체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청자는 화자의 음성을 받아들여도, 자신이 가진 음운 체계에 맞게 해석할 것입니다. 즉, 음성과 음운이 사맛띠 아니하게 됩니다. 괴리가 생기는 거지요.

 

‘킴씨’는 이런 괴리로 생겼습니다. 지금 ‘김’을 발음해 보실래요?  당연히 한국인들은 [gim]이라고 발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음성은 [kim]입니다. ‘한국어 초성에서 유성 파열음은 무성화된다’라는 법칙 때문이지요. 왜 그러냐고요? 한국어가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어쨋든 이를 따르면 우리는 g를 발음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k를 발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이미 눈치채셨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음성 k/g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kim]이건 [gim]이건 우리에겐 똑같은 ‘김’일 뿐이니까요. 다시 말하면 k/g라는 음성은 한국어 음운 체계에서는 /그/이라는 음운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구분 짓는 유성음과 무성음의 특징은 한국어 음운 체계에 편입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개화기 서양 선교사들은 그렇지 않았죠. 그들은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하는 음운 체계를 지니고 있었고, [kim]과 [gim]을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kim]으로 받아들였고, 그대로 발음했습니다.

 

laver-2720481_960_720.jpg

내가 [kim]이었다니...

 

여기서 또 의문이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kim]은 ‘킴’이지! 아닙니다. 우리가 발음하는 ‘킴’의 초성은 유기음(aspiration)화되어서 음성적으로는 마치 [khim]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개화기에 와서 우리나라 말을 처음 들었을 서양인 선교사들의 음운체계는 공교롭게도 기식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khim]을 다시 [kim]으로 듣게 됩니다. 결국 돌고 돌아 우리의 [gim]씨는 [kim]씨로 굳어진 것입니다. 다른 성씨도 같은 원리로 박씨는 [bark]이 아니라 [park]으로 들렸겠지요. 

 

조금 더 쓸데없는 예를 하나 들자면, [비빔밥]이라는 단어에는 /ㅂ/이 총 4번 들어갑니다. /ㅃ/으로 발음되는 세 번째 /ㅂ/을 제외한다면, 당연히 한국인들에겐 다 같은 /ㅂ/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실제 음성은 많이 다릅니다. 첫 번째 ‘비’의 /ㅂ/은 앞서 말했듯 ‘한국어 초성에서 유성 파열음은 무성화된다’라는 법칙 때문에 [p]음성으로 발음됩니다. 두 번째/ㅂ/은 ‘공명음(모음과 비음 등) 사이의 파열음은 유성화된다’라는 법칙으로 [b]음성으로 발음됩니다. 마지막 /ㅂ/은 ‘한국어 어말의 파열음은 미파음화(완전히 소리를 터뜨리지 않음)한다’라는 법칙 때문에 [p›]라는 음성으로 발음됩니다. 하나의 /ㅂ/ 음운이지만, 3가지의 음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도 쓸데없죠?

 

 

35ebab32b1ca8b01755d359936097f3c8ff5ee673cae860ee6333125b8afec45a51f66a755df8d530812d8ee10742b1ae0c43ca82b4389979fba645a4918f72318f0d65eee62d56462b7a0caaba8d9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