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 도강 -

 

CME(Certificat Militaire Elementaire : 기초 군대 교육 수료증 : FGE로 바뀜)교육은 연대 참모부 복도의 교육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대장이 있는 참모부는 인사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정을 담당하면서도 각 중대원들의 전문 병과를 위한 일정도 담당했다. 명령권이 없는 상병은 10개월 차 근무에 들어가면서 그냥 받았고 그에 비해 분대장이 되어 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병장 교육은 자대를 떠나 다시 교육대로 가서 받아야 했다.

 

Camp_Raffalli.JPG

Raffalli 캠프

 

효도는 까포랄(Caporal : 병장), 분대장이었다. 팀장인 중사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팀원은 분대장이 관리했다. 오랫동안 생사를 같이해 온 팀원들이 자랑스러웠다. 병장 계급장은 고스톱으로 단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는 계급장도 아니었다. 소대장, 중대장, 연대장에게 세심하게 보고되었다. 보고된 개인 성향과 능력을 외인부대 사령부에서 철저하게 관리해서 8주간의 병장교육을 받은 결과였다. 아무나 될 수 있는 병장이지만 진급이 될수록 과정은 공정했고 모두가 이해되어 불만거리를 만들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코르시카 섬, 칼비의 공수연대에서 보스니아 내전에 여행가듯 잠깐 다녀왔지만 긴장감도 없던 참전 이후, 효도는 곧장 병장 교육을 명 받았다. 그런 날이 올 것이란 생각도 없이 병장이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다. 팀을 이끌고 교육을 시키고 명령을 하달하는 권한을 가진 자리는 언감생심이라 여겼다. 어쩌면 훈련병 시절 때 만났던 어리버리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나 교육의 강도가 워낙 강하고 타이트해서 짬을 낼 시간은 없다는 선임들의 귀띔이 있었다.

 

8주 동안 8개의 테스트, 병장교육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긴 했으나 아무것도 모르고 산이고 들로 훈련 다녔던 것에 비해 교육의 힘과 그 구성이 흥미로웠다4연대 교육대에서 멀지 않은 6여단 보병 훈련소, 카이루스(Caylus)에서 훈련은 이뤄졌다. 피곤할 시간도 없이 피곤했고 잠들기만 하면 기상했다. 효도는 훈련을 받으면서 만나는 프랑스 산천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한국과 너무 비교되는 평온하고 목가적이면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풍경에 훈련과 행군이 힘들기는커녕 힐링이 되는 듯 했다.

 

익숙한 시가전 전투와 모든 훈련 양식은 어려운 것이 없었다. 몸에 익히기 위해 반복된 연습과 그렇게 잠을 재우지 않는 교육은 자면서 걸었고 뛰면서 잠들었다. 신병 교육 때 병장이 하던 교육을 신병에게 하달했고 분대 전투, 매복, 지형정찰 및 전투 행군, 각 총기 사격, 미니 기관총, 12.7mm, 개인유탄 발사기까지 실탄 사격을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거기에 명령서 작성 방법까지, 8주 끝에, 연대장은 제일 점수가 나은 동료를 앞세워 전 대원들에게 병장 수여식을 거행하고 먼지를 삼킨 후, 첫 진급에 대한 축하를 받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원수 같던 동료들이 경쟁자여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힘들 때 손 내밀어 주고 같이 힘들어서 동료애가 느껴졌다. 한국 군대 생활과 정 반대였다. 자대로 돌아와 소대장과 중대장의 축하를 받은 효도는 맥주 한 박스를 소대원들에게 돌렸다. 그것도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다. 효도에겐 책임져야 할 대원이 9명이나 되었고 콩코로 내달았다.

 

congo port.jpg

콩고 강 수상 터미널과 장비 보관소

 

"여기는 알파, 브라보, 상황 보고!"

 

"20시 현재, 브라보 이상 무"

 

효도는 소대장 가스트 특임상사의 명령에 따라 콩고 강 하류에서 난민들의 안전한 탈출로 확보를 위한 수상 장비 보관소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한 개 소대로 수많은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브라자빌 콩고의 안전도 정부군과 반군이 대치 상태였기 때문에 긴장상태는 최고조에 달했고 두 군대의 충돌은 언제 벌어질 지 모르는 상태였다. 정부군 민병대 코브라는 그나마 정예 군사여서 반군들의 무질서한 광기보다는 군령이 서 있는 듯 했다. 당장 전투를 눈 앞에 두고 들려 오는 총소리와 전쟁의 광기가 그들 앞에 놓여 있음에도 외인부대원들은 침착한 반면, 콩고 군인들의 눈빛에 소요가 일었다. 효도는 그들의 두려움을 읽었다.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그들의 공포는 착한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 낸 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외인부대원들에게 공포나 그 어떤 두려움, 그 어떤 주저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프로였다.

 

아프리카 인들은 천성이 착해 언행에 그 천성이 묻어났다. 미워할 수 없는 착한 마음을 가진 그들이었다. 마치 시골 마을의 맘씨 착한 아재나 이웃을 보는 것 같은 아련함이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성경을 쥐어 준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아 죽자 유럽은 군대를 보내 점령의 명분을 삼아 식민지를 다스렸던 역사는, 유럽의 문화와 지식, 과학에 의한 심취로 아프리카 지식인들의 관심을 다른 것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 이면의 지하자원 착취와 우수한 인력의 유럽화가 너무 오래되었던 탓에 아프리카 인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한국도 변형된 미국의 식민지를 살고 있다고 말하는 몇몇 외인부대 동료나, 아프리카, 아랍인들을 만나서 들을 때는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맞는 얘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반대의견을 낼 수 없었다. 그들은 한국이 변형된 미국의 식민 국가라고 배운다고 했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외국에서 한국을 식민국가로 배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경제 식민지, 특히 군사적 식민지가 치명적으로 들렸다.

 

오랫동안 아프리카 인들을 본 탓에, 효도는 이들이 흑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단지 그들의 독특한 제스처, 신체적인 특징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효도가 경험하지 못한 전쟁의 참화가 나와 우리 가족, 우리 이웃, 우리나라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나 개인의 힘과 모자라는 정보,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 군인으로서 무기력함 마저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효도는 비로소 강대국이 된 국가들이 가진 군사력과 정보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의 우수한 인력들이 스스로 미국의 하수인이 되어, 경쟁 속에 몰려 협력과 상부상조의 전통을 잊어버리고 우리끼리 싸운 것도 식민정책의 가장 중요한 분리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뿐만 아니라, 모든 연대의식 마저 깨트려버리고 그들끼리의 공동체를 만들어 버린 종교의 허상과 위선마저도 한 눈에 들어왔다이로운 듯 보여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진리가 뇌리에 박혔다.

 

외인부대는 정예 부대이고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된 특수 부대이기도 했으나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초강대국 미국이 조종을 하는 반군을 우습게 상대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대주는 무기를 다루는 콩고 군을 상대하려면 생사는 내 손을 떠난 것이었다. 콩고 군은 무기를 들었어도 능수능란하게 다루지 못했다. 기동성도 고작해야 토요타 픽업트럭이 다였다. 탱크 하나, 장갑차 하나도 보유하지도 못한 군대가 군용 트럭마저도 구경한 적이 없었다.

 

외인부대원의 전투는 희생을 필요로 했다. 선제 공격 없이 적의 공격이 있어야 반격이 가능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효도는 외인부대의 영관급 장교와 장군들이 사병에게도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로 목숨을 바라는 친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병의 고름을 빨아주는 장군의 모습을 보고 울었다는 부모의 심정을, 병사들의 충성을 바라는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의 진면목이 이해가 되었다. 한국 군대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더 나았다.

 

콩고인들은 대게 기독교도들이었다. 이들의 인종 전쟁에 종교는 개입되지 않았지만 일으킨 자들은 모두 기독교 국가들로 프랑스의 구교와 영국의 신교를 가리지 않았다. 종교의 헌신과 사랑, 희생은 온데간데 없는 이들의 악용이 종교가 사기인 것을 알게 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믿었다. 거기에 빠진 국가가 온전하긴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종교의 시대, 유럽의 역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CONGO-DEMOCRATIC-REBELS.jpg

 

효도는 의식하지 않게 몸서리치며 속으로 울분을 삭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랬다. 효도의 분노는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누군지 모르는 적에게 있지 않았다. 어차피 대리 전투를 벌이는 바람 앞의 촛불일 뿐, 누가 부느냐가 중요했다. 내 운명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목숨은 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내 조국은 나를 이용하고 버렸을 뿐, 내게 먹고 살 의식주를 해결해 줄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의무복무라는 미명하에 조국을 위해 바친 청춘을 애국이란 이름으로 치장했고 외인부대 와서 돌이켜보니 착취와 세뇌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외인부대는 내게 십자훈장을 비롯한 각종 훈장에 온갖 복지혜택까지 주면서 인간적인 대우까지 해주었다. 외인부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효도는 외인부대원이란 자부심에 자존감이란 감정을 처음으로 가졌다. 군대란 이래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외인부대를 경험하기 전에 효도는, 인생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로 한국의 어느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한 여자의 인생을 책임지다가 아이를 낳고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과분한 법적인 책임과 도덕적인 의무를 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전을 경험하는 세계 유일무이한 군대에서 처자식도 아닌 세계의 젊은이들의 목숨을 책임지는 막중한 의무는 소속감뿐만 아니라 혈연의 의무로써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을 주었다. 그래서 많은 나이가 아닌, 이 나이에도 남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에 동료들이 형제처럼 여겨졌다.

 

pelican1.jpg

 

 

 

- 실전 -

 

피난민들은 강 하류의 안전이 확보된 효도의 소대의 보호를 받으며 도강하고 있었다. 브라자빌 콩고의 심각함은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의 권력 다툼이 표면적이었기 때문에 피아식별이 어려웠다. 현 대통령의 정부군과 전 대통령의 코브라 민병대가 반군으로 서로 대치가 격렬해지고 산발적인 전투가 진행되어 총소리가 더 자주, 가까이 들렸다.

 

그러나 효도는 콩고 정부군이든 코브라 반군이든 전선이 형성된 그들의 전투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 광기에 휩싸인 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자동으로 응사하라는 명령도 동시에 하달 받았다.

 

점점 몰려오는 피난민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난민들에 섞인 정부군 관계자를 추격하고 있는 코브라 민병대가 피난민을 쓸어버리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들을 상대로 해서 전투를 벌이는 것도 피아식별이 어려워 총을 든 대상은 가리지 않고 발포할 수 밖에 없었다.

 

외인부대 보병 한 팀 12명은 중사를 선두로, 분대장인 병장 3, 저격수(800M), 휴대용 미사일(Eryx), 개인유탄발사기 및 미니기관총, 소총수 4, 장갑차 파일럿, 의무병으로 구성되었다. 장갑차에는 12.7mm 기관포를 장착했지만 대전차 미사일 Eryx, Milan도 보유하고 있었다. 총 무게가 13톤에 이르렀고 신병만 빼고 모두 무기와 장갑차를 운용할 줄 알았다. 포탑에는 다양한 무기 탑재가 가능했다.

 

French_VAB_APC_during_Operation_Desert_Shield.jpeg

12.7mm 기관포를 장착한 수륙양용 장갑차 VAB VTT

 

이 장갑차는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대원이 12.7mm를 쏘는 것과 자동으로 놓고 쏘는 차이점은 엄청 났다. 로봇처럼 포탑이 돌아가며 지정된 목표물에 무자비하게 쏘아대면 버텨낼 건물도 없고 심지어 전투기까지 사냥이 가능했다. 이러한 무장과 안전장치로 인해 효도는 자신은 물론, 대원들의 안전까지도 보장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컨트롤이 불가능한 적의 이탈된 무리들이었다.

 

지원 중대의 특수팀에서 알려주는 전방 깊숙한 정보는, 적의 주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주 무장은 어느 정도까지 되어 있는지, 누구에 의해 통솔되고 있는지의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아직 하루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효도의 소대는 피난민들 호송에서 제외되어 콩고 정부의 승인 하에 대통령 궁 근처의 프랑스 문화원과 그 주변 프랑스 인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대통령 궁 근처는 잘 관리되어 있었지만 전 대통령의 민병대와 전선을 형성 중이었기 때문에 통제가 되지 않았다.

 

19, ‘셰셰대로에 위치한 프랑스 문화원이 있는 로터리 입구에 장갑차를 타고 도착한 효도의 팀은 대통령 경호처 소속의 정부군 안내자와 조인하고 1km 거리의 샤를드골 대로를 향해 경계를 섰다. 소대장 가스트가 방어 대형으로 장갑차를 위치시키며 선두에 섰고 효도의 팀이 뒤를 이었다. 4대의 소대 장갑차와 프랑스인들을 수송할 트럭 두 대가 투입 됐다.

 

길거리의 가로등이 대통령 경호처 부대에 의해 통제되어 혼란스럽게 깜박거렸다. 7개의 대로를 향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문화원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대통령 궁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반군 민병대의 제1의 목표가 대통령 궁이고 주변 프렌치들은 아직은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매복해 있는 정부군부대가 기관총과 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탄탄한 방어를 하고 있었지만 반군 민병대와 전투 중에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부상병들을 궁 근처의 병원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적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두운 숲을 향해 총을 쏘아 댔다. 목표물을 찾지 못한 총알이 공허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외인부대가 왔다고 흥분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대전차 로켓 RPG도 무장하고 있어서 장갑차도 안전하지 못했다.

 

소대는 재빠르게 내려 프랑스 문화원의 안전을 확보했다. 지원 중대에서 박격포대가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신속하게 빠져 나가야 했다. 문화원에 모여 있는 프랑스 인들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수송 트럭에 태워 빼돌렸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철수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프랑스는 군대가 식민지를 다스리고 인권단체가 프랑스 문화 및 언어를 가르쳤다. 그들의 마음은 천사 같고 직위고하 직업의 귀천이 없이 모두를 아름다운 미소로 대했기 때문에 이승의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가진 프랑스의 모습이 바로 눈 앞에 펼쳐졌다. 그들도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RPG! RPG!"

 

북서쪽에서 밀려 온 민병대가 효도의 장갑차를 향해 로켓포를 쏘았다. 로켓이 불길한 음을 내며 바람을 가르곤 효도를 향해 다가왔다.

 

"엎드려!!!"

 

팀장이 소리치며 장갑차 뒤로 몸을 던졌다. 포탄은 표적을 빗나가 건물 외벽을 맞추며 폭발했다. 3팀 중사와 신병 하나가 튕겨 올랐다. 효도는 귀가 멍멍해서 얼이 빠져 있는 가운데 미사일이 날아 온 방향을 향해 전체 반격을 가했다. 의무 병이 부상병의 가슴에 있는 비상약품 통에서 주사를 꺼내 엉덩이와 어깨에 그대로 꽂고 응급처치를 했다. 총알이 빗발치고 있었지만 4대에 장갑차와 50여명의 소대원들이 각개 전투 대형으로 쏘아대는 반격에 적군들의 반응이 주춤했다.

 

실전이 이렇게 갑자기 온 것에 대해 효도는 놀라면서도 그 동안 받았던 훈련이 반응한 침착한 대처와 소대장 가스트의 사격 명령에 따라 적이 오는 대로 방향의 벽면을 향해 한바탕 포격을 끝내자 산발적인 적들의 소총이 날아들었다. 준비해둔 탄약이 바닥나고 있었다.

 

"한 발씩 응사해!"

 

가스트의 명령에 정밀 사격이 시작되었다. 소대장은 중대장 트로티뇽 대위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알파, 여기는 브라보, 브라보 RPG 공격받았다. 부상병 두 명, 팀장도 당했다. 오버"

 

"브라보, 알았다. 부상병 호송시키고 2소대와 GCP를 보내겠다. 오버"

 

보충 병력이 오는 사이 더더욱 늘어난 반군 민병대의 숫자에 비해 기본 탄약만 가지고 있던 소대는 불의의 사고에 부상병이 늘어갔다. 반군은 빠르게 대통령 경호처 정부군을 물리치고 3소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중대의 한 개 소대가 도착하고 GCP 도 도착했다. 탄약을 보급하고 부상자를 호송차량에 태워 먼저 보냈다. 미사일과 기관총 탄약을 장전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더 많이 늘어난 적들의 반격이 거세어졌다. 지원중대에서 도착한 장갑차가 일제히 가까워지는 적들을 향해 불을 내뿜었다. 둔탁하고 느리게 발포되는 12.7mm 자동 기관포의 위력이 무서웠다.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도 둔탁한 궤적을 그리며 적들이 몸을 숨긴 건물을 파괴했다. 탄약을 보급 받은 효도도 적을 향해 팀원들과 사격을 하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철수해야 했다.

 

"철수!"

 

GCP를 이끄는 데믈 대위는 전체 대원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팀 별로 엄호사격을 하며 장갑차에 올랐다. 전방에서 철수를 위해 엄호하고 데믈 대위 옆에 있던 GCP 팀의 통신병장이 후퇴하는 도중 매복에 쓰러졌다. 대위와 대원들이 통신 장비를 메고 목덜미를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후퇴를 하는 사이, 대원 몇몇이 더 쓰러졌다. 하사관도 쓰러졌다. 적의 매복이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지만 소수 인원에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지 못한 채 매복을 했다가 우리의 이동을 보고 공격했다.

 

야간이었고 깜박거리던 가로등 불빛은 완전히 꺼져 장갑차의 불빛과 반군들이 쏘아 올린 조명탄이 어지럽게 어울렸다. 소총과 무분별하게 쏘아대는 야광총알도 마치 불꽃 쇼처럼 화려했지만 거친 숨소리가 가득 찬 장갑차 안의 정적이 혹시 날아올지 모를 대전차용 로켓에 대한 두려움이 철수한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묘하게 흩어졌다. 실전이 있었지만 도저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멍했다. 효도의 팀원은 모두 무사했다. 장갑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대전차 로켓이 근처에서 폭발한 모양이었다. 장갑차 안이 뜨거워졌다. 장갑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샤를드골 대로를 벗어나 오스톰 캠프로 향했다. 고작 30분 거리였다.

 

congo21.jpg

12.7mm를 장착하고 순찰중

 

대통령 궁은 반군 민병대 코브라에 의해 점령당했다. 브라자빌 콩고가 반군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 사이에서 전 대통령이 승리한 것이다. 미군의 지원을 받은 민병대였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이렇게 아이들 싸움처럼 왔다가 없던 일처럼 사라졌지만 피를 부르는 숙청이 있을 터였다.

 

문화원에서 벌어졌던 교전에서 쓰러졌던 GCP의 병장은 전사했다. 사병 3명이 심하게 다쳤고 두 명의 중사 중 하나도 심각한 중상을 입어 응급조치 후 즉각 파리의 육군병원으로 호송되었다. 소대를 공격했던 매복 조들은 반군 민병대 소속의 강경파 부대로 명령권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일어난 불상사라고 정권을 잡은 전 대통령 엔구소가 말했다. 그에 프랑스 여단장은 한 번 더 그러한 불상사가 생기면 대통령의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공군 폭격기를 동원했다. 효도의 1중대 중, 4소대가 보급도 없이 500여명의 프랑스 및 유럽 난민을 통솔해 4일 동안 고립되었다가 캠프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제 막 브라자빌 콩고에 몰아 닥친 학살의 광풍은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졌다. 부대는 전열을 가다듬고 완전무장 했다. 미국과 러시아 대사관 직원과 외교관들을 비롯한 남아있던 최후의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빼내며 브라자빌을 누볐다. 한국 대사관과 기업체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광란의 현장에서도 콩고인들 외에 공격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지켜졌지만 불상사는 어디든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외인부대에게도 생기는 불상사가 민간인들에게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큰 사고 없이 파악된 민간인의 철수가 공항과 콩고 강을 따라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마지막 민간인 철수가 이뤄지고 펠리칸 작전의 철수도 이뤄졌다. 프랑스 제8해병공수부대 작전참모부가 공항 서쪽을 통제했고 제1외인기갑연대(1er REC)와 보병이 공항 동쪽을 통제했다. 펠리칸 작전 사령부와 여단장도 프랑스로 귀국하고 36시간 동안의 철수 작전은 공수연대장 퓌가 대령에게 위임됐다. 외인부대는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민간인 철수와 난민 학살을 막기 위한 정찰을 계속하며 철수에 필요한 주요 거점 점검에 이어 교전 중인 전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전에 참여했다.

 

도시는 약탈과 살인, 강간과 방화로 짙은 연기가 곳곳에 피어 올랐다. 도시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전히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토요타 트럭에 탄 반군의 군대가 허공에 총을 쏘아대며 광란의 축제를 즐겼고 방향을 잃은 피난민들의 공포가 그대로 전해졌다. 곳곳에 방치된 사체들이 어지럽게 쓰레기와 함께 파묻혀 있는 현장에서 제대로 된 이성을 갖기란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효도의 분대는 마지막 주요거점 점검 임무를 수행했다. 부대는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콩고를 떠나고 있었다.

 

pelican.jpg

ERC-90 Sagaie 와 Transall c 160

 

기갑연대의 외인부대원들은 약탈과 방화에 대비해 유엔 상임 이사국 회원국 대사관의 차량과 주요 장비 및 설비 시설을 프랑스 거주지의 보호시설로 옮겼고 모든 대사관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반군 세력과의 외교를 통해 시설물 관리를 요청했다.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몰래 작전을 수행하던 프랑스 정부의 특수작전 사령부 소속의 특수팀을 태운 두 대의 전술 수송기가 마지막으로 콩고 마야마야 공항을 이륙하자 펠리칸 작전은 종료되었다.

 

콩고까지 밀려 온 르완다 후투족 난민들은 반군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캠프에서 르완다와의 협상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기나긴 여정을 다시 준비했다. 칼비 본대로 복귀한 효도는 르완다로 돌아가던 난민들이 르완다 호텔의 한 지배인에 의해 1천여명이 넘게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광기에 휩싸인 반군들로부터 민간인이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것이 기적처럼 다가왔다.

 

벨기에의 르완다 식민정책의 주요한 과정은 인종 구별과 차별,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의 종교 개입에 의한 분리 정책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밝혀졌다. 후투족 하층민에 비해 투치족 엘리트들에게 성직자 교육을 시켰고 정부 주요 관리직을 맡기면서 대통령을 만들었다. 비리를 부추겼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르완다 내전은 간단하던 종족전쟁을 엉망으로 만들어 빨갱이 구분하듯 정부군과 애국전선, 반군과 테러리즘으로 확대되었고 가톨릭과 벨기에는 내전의 원인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르완다 학살은 정부차원에서 후투족에게 소총과 수류탄, 휴대용 대전차 로켓포까지 지원된 완벽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거기에 원흉은 벨기에가 뒤집어 썼을 뿐, 실제는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었다는 것도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종족 갈등을 부추겨 의식화 운동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자행하며 투치족을 공격할 것을 종용했다. 그렇게 2차 대전 이후부터 서서히 자행해 온 학살의 전조가 르완다 내전을 통해 폭발한 것이었다.

 

교황청은 하느님의 이름으로학살에 가담했던 살인마 성직자들을 숨기고 빼돌렸고 학살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시행된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로마교황청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침묵을 지키던 교황청이 학살자들의 사형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에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희생 없는 신앙은커녕 윤리의식마저 갖추지 못한 종교는 르완다 호텔 지배인 개인만도 못한 범죄 집단이 되었다.

 

 

 

 

 

 

 

Profile
2013년 3월, 애묘, 40대를 위한 딴지미팅 목적으로 가입! 2018년 초 2개월간 탈퇴 후 재가입. 딴지 뇐네.
파뤼 거주
북아프리카 자주 출몰.
50 넘겨 꿈과 희망 잃은 독거노인!
잘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