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삼권 분립이란

 

몇 차례에 걸쳐 봤듯이 일본국 헌법은 다양한 인권 보장 규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인권 보장 규정은 근대 헌법으로서 꼭 가져야 되는, 불가결한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인권 규정만 가지고는 근대적 의미의 헌법(혹은 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 인권 선언 제16조가 단적으로 말하듯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는 겁니다.

 

근대적 의미의 헌법을 가지고 있기 위해서는 인권을 보장하는 규정이 필요한 것은 물론, 권력 분립에 관한 규정도 필수적인 요소라는 뜻입니다. 소위 근대적인 입헌주의라고 부르는 생각은 임금에게 속한 권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보장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때문에, 국가 권력을 분리해 각기 다른 기관에 담당시켜 서로 견제・감시하게 하고, 그 결과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근대적인 입헌주의 헌법이 꼭 가져야 될 요소라고 할 수 있죠.

 

image_5453057721481186812211.jpg

 

일본 헌법 역시 이러한 권력 분립의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을

 

① 법률을 만드는 입법권

 

② 법에 기초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행정권

 

③ 입법이나 행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권

 

으로 분리합니다. 입법권을 국회에, 행정권을 내각에, 사법권을 재판소에 각각 부여하며, 서로 감시・견제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국 헌법은 “국가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어 각각 국회, 내각, 재판소라는 다른 기관에게 부여하며, 서로 감시・견제시킴으로써 국민의 권리・자유를 보호하려는 삼권분립의 원리”를 채용하고 있다는 말이죠.

 

 

 

2. 입법부(국회)와 행정부(내각)의 관계

 

2-1.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의 견제수단

 

일본 헌법은 어떤 식으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을까요? 일본은 이른바 의원내각제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 대신 의회(국회)에서 선출된 내각총리대신(수상)이 행정부의 장이 되는 거죠. 수상을 둔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 입법부인 국회에서 감시・견제를 받고, 거꾸로 국회는 어떻게 행정부로부터 감시・견제를 받을까요? 또, 사법부(재판소)는 행정부나 입법부하고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국민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국회를 기점으로 내각 및 재판소와의 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죠. 제67조 제1항은 행정부의 장인 내각총리대신을 선출하는 주체가 국회임을 규정합니다.

 

第67条 内閣総理大臣は、国会議員の中から国会の議決で、これを指名する。この指名は、他のすべての案件に先立って、これを行ふ。

 

제67조 제1항은 “내각총리대신은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의 의결로 이를 지명한다. 이 지명은 다른 모든 안건에 앞서서 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약간 주의가 필요한데, 국회가 갖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명”권입니다. 최종적인 임명권은 누가 갖고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텐노죠. 단, 텐노의 수상 임명은 내각의 지명에 기초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국회가 수상을 뽑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제6조 제1항 참조).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 수를 차지한 정당의 장이 수상이 되는 셈입니다. 만약 가장 많은 의석 수를 갖고 있는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른 정당의 도움을 받아 의석 수가 가장 많은 정당의 장이 수상이 되는 것이 관례죠. 의석이 과반수를 넘는 한 정당이 단독으로 수상을 선출하면 그 내각은 “단독 내각”이라 불리며, 복수 정당 중 가장 의석 수가 많은 정당의 장이 수상이 되고 다른 협조 정당의 의원들이 일부 대신(한국의 장관에 상응) 직을 맡으면 “연립 내각”이라 불리죠.

 

0025381657.jpg

 

현재 수상은 아베 신죠(제4차 아베 내각)입니다. 국토교통대신을 맡은 이시이 케이이치 대신은 아베 수상의 소속 정당이 아닌 공명당 소속입니다. 아베 내각이 “자공연립내각(自公連立内閣 ; 자민당과 공명당이 함께 만든 내각)”으로 불리는 까닭이죠.

 

이 조항 중 내각총리대신이 국회의원 중에서 뽑혀야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행정부의 장인 수상은 한국 대통령처럼 국민이 직접 뽑지는 않지만 수상이 국회의원이라는 것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일반 국민이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다고 해서 반드시 수상으로서의 민주적 세례를 거쳤다고 여길 수는 없지만, 이런 조건마저 없다면 국회가 지명만 하면 누구나 수상이 될 수 있으니, 수상의 “민주적 기초”가 거의 없어집니다.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과 비교해 국민과의 거리가 먼 수상인 만큼 이 정도나마 민주적 기초가 요구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관례상 수상은 중의원 소속 의원들 중에서 선출되는데 이것 역시 중의원이 민의에 더 가깝고 또 헌법 자체도 “중의원의 우월”을 여러 조문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중의원의 우월도 일본 헌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항이므로 나중에 새로 짚어 보도록 할게요).

 

국회는 수상이 자질이나 정치 운영에 있어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제69조하고 제70조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第69条 内閣は、衆議院で不信任の決議案を可決し、又は信任の決議案を否決したときは、10日以内に衆議院が解散されない限り、総辞職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제69조에 보면 수상이 조직하는 “내각은 중의원에서 불신임의 결의안을 가결하거나, 신임의 결의안을 부결하였을 때는 10일 이내에 중의원이 해산되지 아니하는 한 총사직을 하여야” 됩니다. 또 하나 중의원이 내각을 총사직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해산"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의원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포기해서 새로 선거를 치르자는 결의를 하는 것이죠.

 

第70条 内閣総理大臣が欠けたとき、又は衆議院議員総選挙の後に初めて国会の召集があつたときは、内閣は、総辞職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

 

제70조는 “내각총리대신이 결여되었을 때, 또는 중의원의원 선거 후 처음에 국회의 소집이 있었을 때에는 내각은 총사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 중의원이 해산되면 내각이 총사직해야 되는지 금방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입니다. 먼저 중의원의 해산은 중의원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언급했듯이 수상(내각총리대신)은 수상인 동시에 관례상 중의원의원입니다(현행 헌법 시행 후 역대 수상 중 참의원 소속 의원이었던 수상은 한 명도 없음). 그러므로 중의원이 해산되면 그 순간 수상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거죠.

 

아까 제67조 제1항에서 봤듯이 수상은 국회의원이어야 됩니다. 결국 중의원이 해산되면 자동적으로 “내각총리대신이 결여”된 상태가 되고, 내각은 총사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짧게 말하면 중의원이 해산되면 수상이 수상이기 위해 필요한 국회 의원직을 잃게 되고, 그 결과 해당 내각에는 수상이 없는 상태가 되므로 내각이 총사직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의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67조상 수상이 국회의원이어야 될 시점은 수상으로 지명받을 때이지, 수상을 수행하다 국회의원직을 잃어버리게 될 경우에는 제70조가 규정한 “내각총리대신이 결여되었을 때”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것. “내각총리대신이 결여되었을 때”란, 수상이 사망하거나 외국으로 망명한 경우뿐만 아니라 어떠한 이유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둘째는 만약 참의원 소속 의원이 수상이 되었을 경우(법문상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임) 중의원이 해산됐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내각이 총사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중의원 해산은 자동적으로 내각 총사직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제70조는 “중의원의원 선거 후 처음 국회의 소집이 있었을 때”도 총사직을 해야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중의원이 해산되면 대략 2달 뒤에 국회가 소집되기 때문에(헌법 제54조 참조) 역시 내각은 총사직을 해야 되죠.

 

3552860_10.jpg

 

결국 일본의 내각은 스스로 총사직을 할 수도 있지만

 

① 중의원이 신임을 하지 않는다고 결의하면서 해산하지 않을 때

 

② 내각총리대신이 없어졌을 때

 

③ 중의원의원 선거 후 처음으로 국회가 소집됐을 때

 

이 세 가지 경우에는 꼭 총사직을 해야 한다는 말이죠. 이렇게 해서 수상이 공백이 되면 새로운 수상이 선출될 때까지 총사직을 하게 된 내각이 그 직무를 수행합니다. 제71조에 의하죠.

 

第71条 前2条の場合には、内閣は、あらたに内閣総理大臣が任命されるまで引き続きその職務を行ふ。

 

제71조는 그 규정 내용만 소개하면 충분할 겁니다. “전 2조(제69조 및 제70조)의 경우 내각은 새로 내각총리대신이 임명되기까지 이어서 그 직무를 행한다”라고 하고 있죠. 행정부의 공백은 자칫하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데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조문입니다.

 

2-2. 행정부에 의한 대 입법부 견제 수단

 

내각은 국회를 견제할 어떤 수단을 갖고 있을까요? 감이 좋은 분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중의원의 해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각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중의원 소속 의원의 임기(4년 - 헌법 제45조 본문) 만료 전에 의원들의 의원 자격을 빼앗는 거죠.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해산에 이어 총선거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여겨집니다.

 

헌법전에는 내각의 해산권을 직접 명시한 조문이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중의원을 해산시킬 실질적 권한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던데, 현재는 텐노에 의한 국사 행위의 하나로서 규정된 중의원 해산(제7조 제3호)를 내각이 실질적으로 결정한다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단 제7조에 기초해서 내각이 중의원을 해산시킬 수 있다 쳐도 해산은 애당초 내각이 국민의 의향을 묻는 제도임을 감안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되겠죠.

 

참고로 내각과 상관없이 "중의원 스스로가 해산을 결의해서 해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자율적 해산은 원내 다수파 의원에 의해서 소수파 의원들의 지위가 박탈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명문 규정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3. 입법부(국회)와 사법부(재판소)

 

3-1. 입법부에 의한 대 사법부 견제 수단

 

다음으로 국회와 재판소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입법부는 현저한 직무상 의무 위반이나 비행이 있었던 재판관에 대해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재판관탄핵재판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제64조에 규정되고 있습니다.

 

第64条 国会は、罷免の訴追を受けた裁判官を裁判するため、両議院の議員で組織する弾劾裁判所を設ける。

 

2 弾劾に関する事項は、法律でこれを定める。

 

제64조는 제1항에서 “국회는 파면의 소추를 받은 재판관을 재판하기 위하여 양 의원의 의원으로 구성한 탄핵재판소를 설치한다”고 하고, 제2항에서 “탄핵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이를 정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후술하듯 일본국헌법도 사법권 독립 원칙을 채용하고 있고 재판관은 양심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구속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정한 경우에는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탄핵재판소에서 탄핵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구체적인 탄핵 사유는 재판관탄핵법 제2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① 직무상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한 때

 

② 기타 직무 내용을 불문하고 재판관으로서 위신을 현저히 잃을 비행이 있을 때이고, 현재까지 9번 탄핵 재판이 열렸으며 7명의 재판관이 파면됐답니다. 최근 사례로서는 2013년 오사카 지법의 판사보가 주행 중 기차 안에서 승객 여성의 스커트 안을 도촬해서 파면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외에 조정 신청인에게 술자리 향응을 받은 사례나 담당하던 파산 사건의 파산관재인(파산 절차를 관리・진행하는 공적 역할을 맡음)한테 골프채 등을 받은 사례, 모텔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한 사례, 재판소 직원을 스토킹 한 사례 등이 있다네요.

 

누가 봐도 “재판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히 잃을 비행”이라 할 수 있겠죠. 재판관탄핵재판 제도의 존재 의의를 실감하게 해 주는 사례들입니다. 참고로 탄핵을 당한 재판관은 변호사가 될 수도 없고 검사가 될 자격도 박탈됩니다(변호사법 제7조, 검찰청법 제29조). 탄핵을 당한 재판관에게는 이후 법조인으로서 활동하는 길이 끊기는 겁니다. 다만 파면 판결부터 5년이 지나면 자격 회복의 재판으로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데, 과거 6건의 재판 중 회복이 인정된 사례는 3건에 불과합니다. 직무의 독립성이 높고 신분보장도 극진한 만큼 재판의 공정성이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2. 사법부에 의한 대 입법부 견제 수단

 

afr1702010032-p1.jpg

 

재판소는 입법부에 대해 어떤 견제 수단을 갖고 있을까요? 헌법 제81조에 답이 있습니다.

 

第81条 最高裁判所は、一切の法律、命令、規則又は処分が憲法に適合するかしないかを決定する権限を有する終審裁判所である。

 

이 조문은 “최고재판소는 일체의 법률, 명령, 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종심재판소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중 “최고재판소는 일체의 법률을 … 헌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이라는 부분이 바로 위헌입심사권, 즉 국회가 만드는 법률이 헌법을 어긴다고 판단될 때 최고재판소는 그 법률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한 내용이 숨어있는데 지금은 일단 “국회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헌법을 어길 수 없고, 만약 어기면 재판소에 의해 무효가 된다” 정도로 알아두도록 하죠. 참고로 법문상 “최고재판소는”이라는 규정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판례상 제81조는 하급재판소에 의한 위헌심사권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해석되어 있습니다.

 

 

 

4. 행정부(정부)와 사법부(재판소)

 

4-1. 행정부에 의한 대 사법부 견제 수단

 

정부가 갖고 있는 재판소에 대한 견제 수단을 살펴봅시다.

 

第79条 最高裁判所は、その長たる裁判官及び法律の定める員数のその他の裁判官でこれを構成し、その長たる裁判官以外の裁判官は、内閣でこれを任命する。(제2항 이하 생략)

 

第80条 下級裁判所の裁判官は、最高裁判所の指名した者の名簿によって、内閣でこれを任命する。(이하 생략) (제2항 이하 생략)

 

제79조 제1항을 보면 “최고재판소는 그 장(長)인 재판관과 법률이 정한 인원수의 기타의 재판관으로 이를 구성하며, 그 장인 재판관 외의 재판관은 내각이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80조 제1항에서는 “하급 재판소의 재판관은 최고재판소가 지명한 자의 명단에 의하여 내각이 이를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장관을 제외한 최고재판소 판사와 고등재판소 이하 하급재판소의 모든 판사들은 다 내각이 임명한다는 뜻입니다. 최고재판소의 장인 장관은 누가 임명할까요? 감이 좋은 분은 이제 알겠지요. 그렇습니다.

 

최고재판소 장관을 텐노가 임명합니다. 이것은 헌법 제6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第6条 (제1항 생략)

2 天皇は、内閣の指名に基づいて、最高裁判所の長たる裁判官を任命する。

 

제6조 제2항을 보면 “텐노는 내각의 지명에 의하여 최고재판소의 장인 재판관을 임명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임명권자가 텐노이긴 한데 “내각의 지명에 의해"야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내각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최고재판소 장관이 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죠.

 

이렇게 해서 행정부(정부)는 재판관의 임명권을 통해서 사법부를 견제하게 되고, 이 밖의 수단은 딱히 없어요. 사법부가 지나치게 정치의 영향을 받게 되면 헌법과 법률에만 의거해서 공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소의 본래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4-2.  사법부에 의한 대 행정부 견제 수단

 

재판소가 정부를 견제하는 수단은 '위헌심사권'입니다. 위에 인용한 제81조의 “최고재판소는 … 일체의 … 명령, 규칙, 처분이 헌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는 부분에 있듯이 (판례상 최고재판소는 물론 모든) 재판소는 정부 부서가 내리는 명령이나 행정기관이 정하는 각종 규칙, 아니면 행정부에 의한 여러 처분이 헌법에 위배하게 되면 그것을 무효로 할 수 있습니다.

 

1972_4432_220.jpg

 

이상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이 서로 견제하는 헌법상 제도를 간략하게 정리해 봤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요.

 

우선 중의원(입법부)과 내각이 서로의 지위를 상실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각이 중의원을 해산시킬 수 있고, 중의원도 의결만 하면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생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상은 중의원이 뽑는 구조이기 때문에 평소 중의원과 정부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국면은 드물기는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을 임기 도중에 퇴진시키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다는 점은 일본 헌법상 특색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 사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이 비교적 미약하다는 인상을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법부(재판소)의 판단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져 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집니다. 국민과의 거리가 멀다고 할까요. 특히 권력이나 부(富)라는 껍질로 지켜진 자들의 횡포를 사법부가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민 전체의 힘으로 재판소에 압력을 가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경청할 만하겠습니다.

 

다만 재판소는 마녀사냥으로부터 국민 하나하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죠. 세간의 선입견이 판결을 좌우하는 바람의 억울하게 손해를 입는 사람이 없도록, 재판부는 일단 ‘여론’과 거리를 두고 당사자들이 제출한 사실(증거)과 법에 의거하여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야 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결국 사법부에 민주적 통제를 어느 정도 미치게 하느냐, 어느 정도 사법부의 공정성이나 공평성을 신뢰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물론 그 정도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고요.

 

어떤 제도를 취하던지 간에 헌법상 권력 기구를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에서 국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느 국가 기관(국회, 정부, 재판소)를 비교적 신뢰하는지 감안해서 설계합니다. 이 나라에서 잘 운용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니면 저 나라에서 실패한 제도이니… 이런 논의는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지만 어떤 제도를 도입하는 결정적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헌법은 학자의 장난감이 아니고 권력의 횡포로부터 국민 하나하나의 인권을 지켜주는 방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