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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 관련 글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별로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세계 경제는 안정세였던 데다가, 올해 들어서는 그동안 너무 안 보여서 문제가 되어왔던 인플레이션마저 회복되고 있다.

 

물론 2018년 들어 세계 증시가 좀 빠지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에선 IMF사태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융 시스템 전반에 균열을 낼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향후 2~3년 내에는 시스템적인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리스크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 경제는 호황으로, 거의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간 문제시되었던 임금 또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는 올 1분기 소비 지출 상승으로 이어졌으며, 기업들 또한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주요 선진국도 순항 중으로, 수십 년간 바닥을 헤매던 일본 경제마저 성장세로 돌아섰다.

 

거의 모든 경제 데이터가 긍정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GDP성장률 자체는 또 고만고만하다. IMF가 전망하는 미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2.9%, 한국은 그보다 조금 높은 3%이다. 신흥 경제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인도가 7.4%, 베트남과 중국이 6.6% 성장이 예상될 뿐, 대부분의 나라가 작년과 비슷한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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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빵에 계신 716 가카가, 우리나라도 7% 성장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뻥카를 날리던 걸 기억해보자.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 이후로 지난 10년간, 급성장도 급하락도 없는 시기를 겪고 있다.

 

이건 좀 이상한 일이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호황(고성장)과 불황(마이너스 성장)이 번갈아 나타나는 경기 순환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치는데, 지난 10년간은 그만큼의 낙폭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고만고만한 경제 성장 속에서, 각종 세부지표와 자산 가격(증시와 부동산 가격)만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단 뜻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최근 경제학자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이 크레딧 순환 이론이다. 기존 경기 순환 이론에서는, 각 경제 주체들이 경기에 대한 기대 심리를 바탕으로 투자와 소비를 결정한다. 가령, 경기가 좋아질 것을 예측해서 기업은 공장을 새로 짓고 직원을 채용한다. 이렇게 뽑힌 직원들은 소득이 늘어난 것을 바탕으로 집을 사고, 차를 바꾸는 식으로 소비를 늘린다. 과잉 투자가 발생하게 되면, 기업은 불황에 대비해 공장을 닫게 되고, 해고된 가계는 소비를 줄인다. 경기에는 “적당히”가 없다 보니 경기 심리는 항상 호황과 불황 사이를 오가게 된다.

 

크레딧 순환 이론에서는, 경기에 대한 기대 심리가 아닌 굴릴 수 있는 크레딧에 따라 경제 활동이 결정된다(여기서 크레딧은 부채로, 기업 대출과 가계 대출, 채권 등을 의미한다). 가령 돈 빌리기가 쉬워지면 사람들은 그 돈을 빌려서 집을 사거나 돈놀이를 하고,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면 다시 현금을 쟁여놓는 것이다. 돈을 얼마큼 싸게 빌릴 수 있을지에 따라 돈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이는 방향도 실물 경제(공장이나 R&D투자)와는 거리가 먼 자산 시장(주식 시장, 부동산)으로 돈이 흘러들어 간다.

 

우리나라 경제를 예로 들어 두 이론의 차이를 설명해보겠다.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두 자릿수 금리를 기꺼이 내고 종금사,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그 돈으로 공장을 짓고 생산량을 늘리고 나면, 충분히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단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즉 호황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금리 기조에도 불구하고, 경기 상승을 기대로 과감한 투자를 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투자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투자가 부동산 매입(롯데타워라던가 한전 부지라던가) 혹은 인수 합병에 집중될 뿐, 생산 시설이나 R&D 쪽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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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남는 돈이 있으면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하지,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거라고 믿고 마구 소비를 늘리거나 벤처 창업에 나서는 이가 많지 않다.

 

즉, 크레딧 순환 이론에서는 기업과 개인들 모두가 경기란 “늘 안 좋은 것”으로 가정을 하고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물 경제가 고정이 된 상태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크레딧이다. 금리가 낮을수록, 은행 대출 심사 기준이 완화될수록, 대출은 늘어난다. 싸고 쉽게 빌릴 수 있으니까.

 

이렇게 빌린 돈은 은행 이자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된다. 주로 단기간에 은행 이자 이상을 뽑아낼 수 있는 부동산(월세 나오니까) 혹은 주식 쪽으로.

 

기존 경기 순환 이론과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를 결정하는 이유이다. 경기가 딱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서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단순히 지금 당장 돈 빌리는 게 싸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것이다. 즉, 이 돈은 중앙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떠먹여주는 돈에 가깝다.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크레딧 순환 이론이 맞다면, 풀려버린 돈은 대부분 고용 창출 효과가 미미한 부동산 투기나, 인수 합병 혹은 주식 시장 등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 지표들은 좋게 나오더라도, 그 속에 있는 실물 경제 자체는 별 변화가 없는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코스피가 최대치를 갱신하고, 강남 아파트 가격이 몇억씩 올라도 실업률엔 거의 변화가 없는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밥 네 끼씩 먹는 거 아니고, 주가가 오른 상장 기업이 갑자기 신입 사원 채용을 늘리는 게 아니니까(그 가치는 엄밀히 말해 주주 몫이다). 자산 시장에 발을 담근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만 커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크레딧 순환 이론에도 주기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빚이란 건 무한정 늘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비율이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줄여야만 하고 이 과정에서 불황을 야기한다(이로부터 말미암은 경제 위기는, 매우 불평등하게도 취약 계층부터 훑고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주택 담보 시장과 기업 대출 시장을 예로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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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국 주택 시장. 케이스-실러(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 실러 교수가 맞다) 인덱스라는 게 있다. 미국 주택 시장의 가격을 나타낸 인덱스인데, 1890년도의 미국 집값을 100이라고 할 때, 1990년도의 집값은 인플레이션을 제할 경우 108의 수준이었다. 100년 동안 고작 8%가 오른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장이었다.

 

이 인덱스가 미쳐 날뛴 건 2000년대 초반인데 무려 200까지 치솟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그 원인으로 미국 연준(연방 준비 제도)가 2000년대 초반에 실시했던 저금리 정책을 꼽는다. 금리가 싸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택 구입에 나섰고, 이는 주택 가격 버블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실러 교수는 주택 시장에 대한 경고를 해왔는데,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미국 연준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기준금리를 오랫동안 제로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다년간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춤으로 투자자들이 싼값에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자율이 떨어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월세를 낼 돈으로 주택 구입에 나서게 했고, 주택 시장의 구매자가 늘어나자 요 몇 년간 집값이 다시 미친 듯이 오르게 된다. 얼마나 올랐냐면, 케이스 실러 인덱스는 올해 230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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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자 부담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기준금리가 제로일 때, 30년 만기 주택 담보 대출 고정(!!!!) 금리는 약 3.3%였다. 5억을 빌린다고 치면, 이자와 원금을 합해서 은행에 내야 될 돈은 약 2190불이다. 큰돈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미국 주요 대도시의 월세 수준과 비슷했다. 즉, 월세를 내느니 그 돈으로 모기지를 갚는 게 가능했단 소리다.

 

문제는, 최근 기준금리를 연준이 1.5%가량 올렸다는 점이다. 미국 은행들 또한 담보 대출 금리를 올렸는데, 최근에는 5%에 육박한다. 만약 신규 주택 구입자가 동일한 조건으로 5% 이자를 내고 5억을 빌린다면, 이제 내야 할 이자는 2684불까지 늘어난다. 약 500불(60만 원) 가량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당장 500불 때문에, 부동산 대폭락이 찾아온다는 말은 아니지만, 꽤 유의미한 부담이기는 하다. 거기다가 미국 연준은 앞으로도 계속 기준금리를 올릴 것임을 공언한 바 있다. 약 3%까지는 사정권에 있다고 보는데, 이 경우 주택 담보는 6%까지 오를 것이고 위에서 말한 대출의 월 납부금은 3천 불까지 뛴다.

 

물론, 미국은 정책적으로 고정 금리 대출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주택 구입자들의 비용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또한, 주택 담보 시장 역시 금융 위기 이후 상당히 관리가 잘 된 편이다(대부분의 대출이 변동금리이고, 가계 부채 비율이 극심한 한국 등은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만 신규 주택 구입자들은 더 높은 이자 부담을 지고 주택을 구입해야 할 것이고, 이는 신규 주택 구입을 위축시켜 향후 가격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당장은 주택 공급 물량이 딸려서 주택 가격은 계속 오를 수 있지만, 신규 구입자 수가 계속 감소하면 어느 순간 조정이 찾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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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업 대출 시장은 최근 1~2년간, 주식 시장 만큼이나 핫한 시장이었는데, 그 이유는 일반 채권이나 주택 담보 대출과 달리 기업 대출은 변동금리로 이자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는, 금리에 맞춰서 이자를 늘려주는 기업 대출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기존에 대출을 해주던 은행, 보험사뿐만 아니라, 일본계 자본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들이 몰려 2012년 대비 시장 규모가 두 배 넘게 성장했다. 발행 액수로는 무려 1000조를 넘겼다.

 

이렇게 기업 담보 대출 시장이 핫하다 보니, 현재는 돈 빌려 가는 기업이 갑인 상황이다. 대출 심사시 계약서(Credit Agreement)를 작성하게 되는데, 채무자에게 유리한 계약서(Cov-Lite)가 점점 업계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집단 기업 대출 심사를 통해 이뤄지는 집단 대출(Broadly Syndicated Loan)로는 물량이 따라가지 못해 은행이 다이렉트로 돈을 빌려주는 직접 대출(Middle Market Loan)의 발행량 또한 늘고 있다(여러 은행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 집단 대출의 질이 은행 한두 개가 독박을 쓰는 직접 대출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돈을 빌려 갈만한 기업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너무 많은 돈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위험 부담이 큰 곳까지 돈이 점점 풀리고 있단 소리다. 얼마나 풀렸냐 하면, 기업 부채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 역사적으로 항상 이정도까지 기업 부채가 치솟으면, 경제 위기가 닥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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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부동산 종말론자도 아니고 경제 위기 추종자도 아니다. 굳이 입장을 정하라면, 앞으로 한 2년은 지금처럼 그럭저럭 굴러가지 않을까 낙관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지금의 긍정적인 경제적 지표가 크레딧을 통해 빌려온 “Fluke(후루꾸)”에 가깝다는 생각이고, 지금도 우리는 계속해서 빚을 늘려가며 다음 불황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10년쯤 지나 돌아보면, 아 그땐 참 꿀 빨았구나 하고 회고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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