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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섹칼럼] 가슴 사이즈에 대하여.

2004.9.3.금요일
딴섹칼럼




<주얼리>라는 그룹의 박정아 양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얼굴이 닮았냐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그녀와 나는 속옷 사이즈가 같다. 박정아 양도 나도 브라 사이즈가 75A컵이다. 여자들은 이게 무슨 소린지 알겠지만 행여 모를수도 있는 남자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앞의 숫자는 가슴둘레를 말하는 것이고 뒤에 알파벳은 유방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75, 80, 85, 90, 95 이렇게 증가하며 컵은 각 사이즈별로 제일 작은 A컵부터 B컵, C컵 이렇게 있다. 75사이즈 정도면 상당히 마른 체형에 속하므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속옷에는 75의 경우 A컵만이 있다. 그러니까 좀 말랐음에도 남다른 발육을 보여 가슴이 큰 여자들은 수입 속옷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나는 마트에 가면 파는 주니어 사이즈의 속옷을 입었었다. 일명 스포츠 브라라고 불리우는 그것들은 컵의 형태가 따로 없고 꼭 나이키나 그런 곳에서 나오는 운동용 탑처럼 생겨서 무척 편하다. 하지만 그걸 입고 겉옷을 입으면 지나치게 밋밋해 보여서 진짜 소년스러운 몸이 되기 때문에 요즘은 어른들이 입는 속옷을 입는다.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가슴에 볼륨이 있기를 바란다. 속옷 광고들은 모아주고 받쳐줘서 얼마나 봉긋하게 가슴이 솟을 수 있는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속옷을 사 보면 뽕브라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속옷과 가슴 사이에 끼울 수 있는 패드를 준다. 패드는 보통 스펀지로 된 것이 가장 흔하며 조금 더 볼륨감을 주기 위해서 아쿠아 패드라고 실리콘 팩 속에 식염수를 넣은 것도 있고 브라를 입은 다음 기구를 연결하고 꾹꾹 눌러주면 브라 안쪽에 공기가 들어가서 빵빵해지는 것들도 있다.


요즘에는 섹시하다는 것이 여성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 톱 배우들만 브라 광고를 할 수 있었으며(과거에는 주류광고 달력 모델이나 속옷광고 모델이 동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송혜교나 지적인 모델의 대명사인 김남주같은 연예인들이나 찍을 수 있는 CF이다), 성형외과에 가서 확대 수술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여성의 가슴 사이즈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는 좀 더 양지로 나왔을 뿐이었지 과거에도 음지긴 했지만 그 관심도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큰 여자에게는 가슴이라고 하지 않고 꼭 젖통이라고 불렀으며 특히나 나처럼 가슴이 작은 여자에게는 아스팔트 위의 껌 혹은 더욱 디테일한 표현을 위해 건포도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달갈 후라이, 절벽 등등 많은 별명을 붙이며 놀려대길 주저하지 않았었다. 즉 이 사회는 여자의 가슴이 지나치게 큰 것도 또 지나치게 작은 것도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인 문제로 들어서면 큰 가슴은 용서가 되는 듯 보인다. 남자들이 얼마나 여자의 큰 가슴 사이즈에 집착을 하는지는 포르노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전부다 애 머리통만한 가슴을 양쪽에다 달고 나온다. 저건 식염수를 1리터 정도는 너끈하게 들이 부었을성싶은 거대하고도 아찔한 그 가슴들은 누워도 좀처럼 모양이 변하지 않고 수박마냥 불룩 솟아 있다. 성적 판타지의 최고봉이 포르노인 만큼 포르노 여 배우들의 가슴도 가히 최고봉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포르노 테잎이 끝나는 순간 여전히 큰 가슴은 젖통으로 비하된다. 즉 가슴이 빨통일 때는 애 머리통 마냥 커야 하며. 빨통이 아닐 때에는 적당한 크기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가슴이 작은 것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다. 가슴이 작기 때문에 학교 다니던 내내 달리기 선수였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거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책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불필요하게 큰 가슴 때문에 언제나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느라 척추뼈가 휜 여자들에 비하면 내 척추는 놀랍도록 꼿꼿하다. 하지만 정작 나와 잠을 잔 남자들은 내 가슴에 대해 다들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작아서 어쩌냐고 했을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가슴이 큰 여자는 머리통이 비었다고도 했으며, 자기는 큰 가슴보다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가슴이 좋다는 둥 섹스를 할 때는 가슴 크기보다는 허리 라인이랄지 힙의 모양을 더 많이 본다는 둥.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들은 내 작은 가슴이 신경이 쓰인 것이고, 그것에 대해 내가 몹시 창피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fp짐작 후 날 위로하려고 그런 말들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어떨 때는 나도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가슴이 컸으면 좋겠다. 어차피 섹스라는 것이 시각적 만족감도 대단한 것이므로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하는 섹스는 훨씬 자극적일 것이다. 남자들이 섹스를 할 때 자기의 성기를 부풀리듯 여자들도 섹스를 할 때만 가슴이 부풀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난 것을. 목욕탕에서 내 몸매로 인해 학생 등 좀 밀자하는 아줌마의 우악스런 손길에 잡아끌려 내 등판의 3배는 되어 보이는 등을 밀어줘야 하지만 칼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구나 안에 공기나 식염수 스폰지 따위를 채워 넣고 뻥을 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냥 좀 밋밋한 가슴이지만 그냥 생긴대로 살란다.


섹스를 하려고 옷을 벗었을 때 아직까지는 너처럼 가슴이 작은 여자랑은 못 해 하는 남자 없었고, 염가로 부풀려 주겠다는 성형외과 찌라시를(알겠지만 이런 건 없다) 받은 적도 없다. 남자들의 성적 능력이 성기의 사이즈에 있지 않듯 내가 섹스를 즐기는데 있어 작은 가슴은 조금도 방해가 되질 않는다. 다만 남자들이 어떤지 궁금할 뿐이다. 입으로는 나처럼 작은 가슴이 좋다는 둥(또 간혹은 괜찮다는 둥) 하지만 포르노를 보면 어김없이 수박가슴들이 등장을 하니 말이다. 생각건대 내가 만난 남자들은 나 이상으로 나의 작은 가슴이 신경이 쓰였고 마치 괜찮다 괜찮다하고 스스로에게 주술이라도 걸듯, 그렇게 나의 가슴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슴이 작은 여자치고는 좀 무신경한 편에 속한다. 내 친구의 경우에는 한여름에도 뽕을 넣고 다니느라 여름에는 가슴에 땀띠가 다 날 지경이며 매번 나와함께 목욕탕을 갈 때마다 나까지 싸잡아서 우린 왜 이렇게 가슴이 작을까?하며 한숨을 내쉰다. 내가 가슴에 대해 무신경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여동생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슴이 좀 많이 컸던 여동생은 가슴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브라도 한치수 작은 걸로 가슴을 압박하듯 입었고, 몸에 붙는 상의는 절대로 입지 않았다. 늘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허리를 숙여 구부정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슴이 작다는 것이 그리 큰 단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동생처럼 가슴이 크면 참 불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었다.


펄벅의 <대지>를 읽다가 보면 그런 대목이 나온다. 왕룽의 아내 오란이 난리통에 부잣집에서 훔친 보석을 천에 싸서 젖가슴 사이에 끼워서 보관을 한다. 생전 아름다운 것, 비싸고 좋은 것에 대한 탐이 없이 그저 소처럼 일하던 오란에게 그 보석들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오란은 그걸 내내 젖가슴 사이에 끼워서 가끔 천을 풀어헤쳐 보석들을 황홀한 얼굴로 바라보곤 한다. 물론 왕룽이 나중에 바람이 나서 오란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버리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오란이라면 절대로 젖가슴 사이에 보석을 끼워 보관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관을 하려면 적어도 가슴을 동여맸을 때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이 서로 붙어서 )( 이런 모양이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내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은 일부러 손을 가지고 밀어주지 않는 한 절대로 )( 이런 모양으로 만날 일이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마른 사람이 있으면 뚱뚱한 사람이 있는 법이고, 피부가 백옥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부가 멍게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나마 나는 가슴은 작지만 평생 다이어트는 하지 않아도 되는, 소위 맨날 연예인들이 전 먹어도 살이 안 쪄요 하는 재수 없는 멘트의 실존인물이니 말이다. 일평생 다이어트를 멈추지 않은 고모와 여동생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녀들은 글래머다) 나는 그냥 가슴이 작은대신 지나치게 살이 찔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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