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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7.6.화요일

신동일



 들어가는 말

지난 6월, 한국의 유수한 일간지들이 발간하는 월간잡지들에 축구팬들의 관심을 끄는 기획 기사가 실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염원하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신동아 6월호에 실린 김화성 기자의 한.중.일 축구 삼국지란 제하의 글과 월간중앙 6월호 권태동 기자의 한국 축구, 무엇에 졌는가란 글이 그것이다.


이 글은 그 동안 우리나라 축구의 제반 문제점을 지켜 본 축구팬의 눈으로, 언론이 유포하는 한국 축구에 대한 편견어린 관점들을 반성하고 진정 우리 축구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각과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는가를 모색하기 위해 쓴 것이다.


우선, 축구 삼국지에서 진단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본성론에 대해서 짚을 것이 있다. 장인 기질을 가진 일본인은 촘촘하고 깔끔한 축구를 하고, 상인 기질을 기진 중국인은 예리한 맛은 없어도 스케일이 크고 두터운 실리 축구를 하는 반면, 무질서하고 체계없는 본성을 가진 한국인은 한 방 때려주는 힘은 있어도 더 이상 발전이 없는 축구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화성 기자는 한국 축구의 이런 문제를 더 부연하여 큰 경기를 끝내고 나면 으레 등장하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진단, 한국 축구 선수들의 뻣뻣한 자세와 기본기 부족, 그리고 한국 축구의 선수 육성 체계에까지 그 체질론의 논리로 설명하려다가, 이렇게 깨지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 축구도 틀이 잡힐 날이 오고 말 것이라며 느닷없이 시장의 활력이란 논리를 제시하면서 이것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원동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 축구는 이대로 그냥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는 안되겠으니 더 늦기 전에 무슨 수를 내어야 한다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한 기본적 전제의 모순을 범하고 있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는 김화성 기자 자신이 갖고 있는 한국 축구에 대한 편견을 한국인의 심성에 무리하게 대입시키려다 보니 그런 착종 상태에 빠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축구 삼국지의 허구성


남대문, 동대문 상가가 겉으로 보면 엉성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고등수학자도 풀 수 없는 무수한 사업의 변수와 이윤 동기가 얽히고 섥혀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형성된 상권이 아닌 것이다.


불과 1미터를 사이에 두고 업종이 확연히 구별되기도 하고, 입구로부터 얼마나 몇 도 각도로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수천만원의 권리금 차이가 나기도 하며 어떤 업종은 오히려 윗층에 자리잡아야 목을 차지할 수 있고 또 어떤 업종은 반드시 지하층에 있어야 손님을 끌 수 있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어, 돈 있다고 섣불리 뛰어들어다가는 반드시 낭패를 보고 마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은 대형 재래시장의 장사 요령과 수완인 것이다.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모습을 시쳇말로 무대뽀로 파악하는 것도 문제다. 신동아의 그 기자 논리에 의하면 한국 축구는 어수선한 재래시장에, 일본 축구는 깔끔하게 정리된 고급 쇼핑센터에, 중국 축구는 대규모의 할인매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인이 처음부터 깔끔한 걸 싫어해서 그렇게 너절하기만 한 것이고,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그 본질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탓에 처음부터 잘 정비된 시스템을 축구에 도입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왜 한국 축구는 맨땅 아니면 인조잔디에서나 모든 대회 일정을 8일 내에 마쳐야 하는 자연적 인위적 환경에서 태를 묻고 뼈를 굵혀야 할까? 그것도 한국인의 천성이 필연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인가?


일본은, 중국은 우리처럼 학원 축구를 운영하지 않는다. 일본에도 학원 축구는 있으나 우리처럼 4강제도니 단기 토너멘트 대회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중국에는 수백개의 축구 학교가 있어 정규학교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두 나라의 교육제도가 우리와 다른 탓도 있지만, 요컨대 축구의 속성과 내적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교육 관료들과 정치 행정가들이 우리의 경우와는 차별되는 선수 육성 체계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월드컵 때만 하늘에서 선수들이 내려오는 줄로만 아는 한국의 이 기이한 풍토와 다른 것이다.

그 질적 차이를 어찌 단순한 체질로 환원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교육 관료들과 선거 때마다 축구를 이용해마지 않는 위정자들은 그들에 견주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 축구가 중국과 일본 축구를 앞으로도 이겨주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비슷하게 정도는 가야되는 것이 아닌가? 축구라는 운동의 특수성을 들어 배려를 호소하면 그들 힘있는 자들은 언제나 축구에만 특별대우할 수 없다고 발뺌하기 바쁘다.


처지를 바꾸어 중국과 일본의 축구 선수들이 한국과 같은 교육제도, 체육 행정 아래 축구를 해야 한다면 그들도 우선 이기는 법부터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인가? 맨땅 아니면 인조잔디에서나 실전해야 한다면 그들도 한국 선수들처럼 기동력 위주의 선수 양성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시스템이 문제이지 한국인들의 기질이 그렇게 되어 먹었기 때문에 요모양 요꼴의 축구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의 태업


한국 축구가 기술보다는 체력 위주로 팀컬러가 굳어지게 되고 이기기 위해서 깔끔한 패스게임보다는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게 된 이유는, 축구인들이 무지하고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한국인의 체질이 뻣뻣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그들 선수들이 자라온 그 자연적 인위적 환경에 기인한다. 한국의 기후는 천연잔디 조성과 관리에 불리하고, 한국의 축구 선수 육성 체계는 축구라는 운동의 특성을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체육 정책에 의해 왜곡되어 기술을 갖춘 재목을 육성할 수 없음은, 한국 축구를 옥죄는 족쇄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정을 빤히 알만한 언론이 짐짓 엉뚱한 곳에다 초점을 맞춰 왔고, 이를 통해 한국 축구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어린 편견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왔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그간 한국 축구는 기술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경기력을 이루는 다른 요인(체력과 정신력)으로 이를 벌충해 왔고 그런대로 아시아 축구에서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여 왔지만, 지금 이대로의 구조로서는 펠레나 토스탕과 같은 테크니션이 한국 축구에 나타나기 어려운 그 한계 상황에 몰려있다.


그까짓 축구 따위가 무엇이기에 국가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목청을 높이는 이라면 아예 논의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에 이 글을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김화성 기자가 지적하였듯이 한국 축구가 무기로 삼아왔던 기동력과 정신력만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무엇이 한국 축구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피를 토하듯 호소하였다. 언론은 메아리 없는 진단일랑 집어치우고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는 데 유효한 돌파구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언론은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 달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 국민이 냄비 체질이 된 것은 그들이 잊기를 잘하는 체질이어서가 아니다. 언론 스스로가 문제점을 발견하여 실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쳇바퀴를 돌고도는 다람쥐는 사실 언론이었던 것이다. 이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한국 축구는 그래도 월드컵 4회 연속 진출,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이라는 아시아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같은 시기 일본과 중국 축구의 성과는 어떠했는지 되묻고자 한다.


 한국 축구의 혈로


현재 한국 축구는 선수 육성 시스템이 부실하다. 왜?


광복 이후의, 아니 일제 시대의 선수 육성 체계를 자본주의적으로 개편하는 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구인만의 탓일까? 왜 중국은 국가나 기업이 축구전문학교(우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을 설립하여 예술고 키우듯이 축구영재를 모아 가르치는가?


왜 일본은 고교 재학 선수들이 프로팀의 연습생으로 들어가 축구를 익히고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보다 프로의 길을 서슴없이 선택하고 있는가? 일본도 중국도 다 자본주의 방식에 걸맞게 자기네 축구를 육성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고 있는가? 그것도 삼국 축구인들의 자질의 차이인가?


한국 축구가 일본이나 중국처럼 세련된 선수 육성 체계를 갖추려면 지금으로서는 하나의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프로축구의 상품성을 높여 대학 진학보다는 프로로 조기 진출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학부모의 인식이 일반화되는 한편, 프로구단에서도 어린 영재들을 직접 가르쳐서 좋은 선수로 키워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프로구단 산하 유청소년 클럽 시스템의 전면적 시행인바, 이렇게 되면 자연히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원 축구의 풍토가 쇄신 혁파되면서 기본기를 충실히 다지는 선수 육성 체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팬들은 연년생으로 나타나는 신진 스타들로 인해 환호하며 축구장을 더욱 자주 찾을 것이며 그들의 축구 감상 안목을 높이고 심심치 않게 재미도 볼 수 있는 스코어 알아맞추기 게임(풀스 게임)으로 어느덧 축구문화가 국민 대중의 삶 속에 깊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국회에서 풀스게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내년부터는 시행한다 하니,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축구를 노리개로 여기는 정치권


일본 축구를 이겨달라고 김대중도 이회창도 축구장에 나타났다.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이인제 또한 우리들 레드데블이 혜화동 맥주집을 빌려 한일전에 비장한 응원을 보내고 있던 그 현장에 자기도 오늘만은 붉은악마라며 뻘건색 셔츠를 입고 나타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 앞으로도 한국 축구로 하여금 일본을 눌러달라고 요구할 셈이라면 일본 정치인들 정도의 배려를 한국 축구에 베풀어야 함은 당연함 이전에 인간적 도리가 아닌가?


일본과 중국은 미사일과 레이저건으로 무장하고 싸움에 나서는 데 비해, 우리는 아직도 창과 도끼만으로 그들을 대적하고 있는 셈이다.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형형한 오기와 각오가 아니었던들, 우리는 벌써 나가 떨어져 뒷전에서 한탄이나 하고 있을 일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신력 타령이나 하며 한중일 삼국인의 체질과 문화에 한국 축구의 운명을 귀속시킬 것인가? 신동아의 김화성 기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째서 동양 삼국 축구가 돌아가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는 그토록 철저히 무관심한가? 정말 몰라서인지 알아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이지 모를 일이나, 만약 체육부 차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이가 이에 무지하다면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신문기사를 보면, 전술과 시스템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3-5-2라면 수비 위주 전술, 4-4-2는 공격적인 전술이라고 착각하는 기자들도 있다. 3-5-2니 3-4-3이니 3-6-1이니 하는 것은 그저 대형(시스템)일 뿐, 전술이 아니다. 전술이란 선수의 특성과 상대팀의 전력을 고려하여 이기기 위한 술책을 뜻할 뿐, 자리 배치에 불과한 대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간단한 축구 상식에조차 무지하면서, 축구는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별로 머리 쓰지 않아도 되는 운동으로 여기는 사람이 언론사의 체육부에 포진해 있기에, 국민들의 무지와 편견이 증폭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는 시장판에서 뭘 배워야 할까?


한국 축구의 갈 길은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그 원시적 생명성에 있는가? 앞서도 말했지만, 시장의 활력은 무지한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 정교한 시스템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면 물론 이에 긍정할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이런 환경에서도 잘 해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잘 해 보거라는 식이라면, 이는 웃음 뒤에 혀를 낼름거리는 모욕으로 밖에는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 같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던 남대문 동대문 시장도 어느덧 초현대식 쇼핑 빌딩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환경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한국인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 국민이라고? 은행에 가 보라. 다들 번호표 들고 차례 지킨다. 사람 많이 다니는 동대문운동장 지하철 역에 가 보아도 새치기하는 이는 없다. 다들 줄서서 지하철 자판기나 매표소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있는가?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번호표 발급기나 자판기였다. 아니면 권력과 돈을 쥔 자들이 스스로 질서를 앞장서 파괴하여 서민 대중의 분노와 자포자기가 일시적으로 무질서함을 자아낸 것 뿐이다. 민주화가 진척되고 민도가 높아질수록 한국은 보다 질서있는 사회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겉만의 민주화가 아니라, 인류 양심과 민족 정기가 어우러지는 참된 민주화가 우리 사회의 질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듯,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언론의 수박 겉핥기식 진단이 진정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 제시로 변혁될 때, 우리는 중국보다 일본보다 월등히 옹골찬 축구 시스템을 환호 속에 맞게 될 것이다. 발전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언론이 한국 축구를 죽이는 법


월간중앙 6월호 206쪽에는 권태동 기자가 쓴, 주목할 만한 글이 있어 일독을 권한다.


21세기 한국축구 부흥을 위한 심층해부 - 한국 축구, 무엇에 졌는가라는 제하의 글인데, 표지에 가까운 목록에는 이보다 더 주제에 근접한 이색진단 - 한국 축구는 언론이 망쳤다로 나와 있다.


축구가 진정 발전하기를 원하는 이라면 이런 글을 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보기엔 그 기사는 이색진단이 아니라,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간 한국의 언론은 한국 축구의 중요한 계기마다 근거없는 낙관론이나 유포함으로써 국민적 승부욕이나 부추기다가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결과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언론은 국민적 승부욕을 하나의 영업 전략으로 삼아 신문을 팔고 광고를 얻어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언론의 상업주의가 한국 축구 문제의 원인에 대한 피상적, 단순반복적 분석을 낳는 원인이다.


청소년 대표건, 올림픽팀이건 가슴에 태극기만 달았다 하면 무조건 국가대표팀으로 여겨 이에만 집착하는 언론의 취재, 보도행태를 보며 "한국 언론인들은 국가대표팀 이란 이름을 가진 축구팀 밖에는 모르는 것 같다."고 외국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어째서 방송은 프로축구 중계는 외면하면서 각급 국가대표 축구팀의 경기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가 이전에 하이텔 축구동호회에 올린 글을 인용함으로써 좀 길지만, 대답에 대신하고자 한다.


왜 상업방송에서는 괜찮은 프로축구 중계는 마다하고 각종 대표팀급 경기에만 중계 카메라를 대려고 할까요? 대표급 팀들의 경기수준이 높아서일까요? 천만에... 솔직히 말하면, 지금 성인 국가대표팀의 전반적인 경기력도 프로리그 최우수팀보다 나을 게 별로 없습니다.


황선홍, 김도훈의 투톱이 사샤, 비탈리 투톱보다 더 위력이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원블루윙즈 정도의 전력이라면, 아시아 어떤 국가의 대표팀과도 해볼만한 전력입니다. 하물며 한국 올림픽팀이나 청소년대표팀의 기량은 말 그대로 별볼일 없습니다. 프로리그에서 재미있는 축구를 보다가 그런 팀들 경기를 보면, 솔직히 말해 졸립죠. 한국 대표팀 유니폼만 아니라면, 별로 시간 써가며 볼 생각이 나질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팀에게만 관심이 있어서 그들 상업방송이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이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만, TV중계란 철저히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중계 방송사의 의지가 상당히 작용합니다. 시청에 관한 한,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에 있죠.


올림픽 예선이나 벨기에 초청 평가전을 목이 터져라 광고 때려대는 저들의 태도를 보세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기본적 목적 이외에도 여기에는 한국의 축구를 자사의 이해에 맞게 조작하려는 방송사들의 속셈이 개입되어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시청자는 중계해 주면 보고 안해주면 안보는 존재입니다. 스포츠 중계에서도, 중계기회가 많아지면 어느덧 이것이 관행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바 전자총 이론이죠. 자꾸 전자(중계화면)을 쏘아대면, 시청자는 아닌 것도 그런 줄로 알게 된단 말입니다.


이를테면, 야구는 이해하고 감상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종목입니다. 그런데 십수년에 걸쳐 매스컴이 집요하게 야구를 시청자와 독자에게 노출시킨 결과 야구의 규칙이나 감상법이 광범위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한국의 매스컴이 한국의 프로야구에 대해, 그들이 지금 한국의 프로축구 대하듯 했다면, 야구의 인기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한국의 상업방송들은 한국에서 프로축구가 최대의 메이저 스포츠로 부상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사업적 이해관계와 맞물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프로축구:프로야구의 구도가 정립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프로야구: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구도가 대중에게 각인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축구의 참맛을 아는 이라면 한국의 프로축구에 대해 이미 눈을 뜨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이를 중계를 통해 확산시키지 않는다면, 축구 문화의 형성과 파급은 그만큼 제한을 받게 됩니다. 방송이 밀어주면 순풍을 타지만, 방송이 외면하면 그 자체가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사실 작년부터 분 프로축구붐은 KBS 위성채널이라도 할애하여 예년보다 많이 중계했기 때문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상업방송에서 아주 어쩌다가 프로축구를 중계한다 해도, 그들은 매우 의도적이라고 해도좋을만큼 굳이 파리 날리는 경기장을 중계합니다. 같은 낮 경기인데도, 사람 많이 모여 그림이 괜찮은 곳은 마다하고, 잔디 사정도 좋지 않고 관중도 없는 경기장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왜 그들이 죽어라고 프로축구중계를 외면할까요?


프로야구를 키우는 것이 그들의 영업전략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열리는 빈도, 기사 작성의 수월성, 광고료 수입 면에서 프로축구보다는 프로야구가 더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방송사의 힘있는 자들이 야구와 보다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단순한 돈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축구 홀대/야구 감싸기 방침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구 우위의 스포츠시장 판도는, 그들 상업방송 입장에서는 일종의 기득권입니다. 어느 시대건 기득권의 상실에는 엄청난 저항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는 방송과 야구가 똘똘 뭉쳐 프로축구의 거센 도전을 받으며 필사적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맺는말 : 언론이 정신차릴 때, 한국 축구는 발전한다.


결국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각성과 선도가 필수적이다. 이 글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역시 필자가 하이텔 축구동호회 언론모니터 게시판에 올린 글로써 이에 대신하고자 한다. 필자가 굳이 한겨레신문의 보도 태도를 문제삼는 이유가 있다.


그 신문의 창간 이래 독자로서 필자는 한겨레가 축구에 대해 어떤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늘 탐색하여 왔다. 그런데 10여년을 지켜보았지만, 이 신문 역시 여타의 다른 언론과 별로 구별되지 않는 시각을 한국 축구에 대해 갖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겨레만을 지적한다 하여 다른 신문의 한국 축구관을 긍정함이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다음 글은 1997년 한국청소년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브라질에게 3-10의 패배를 당한 뒤, 한겨레가 사설로까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 마디 훈수를 하려 들었던 것을 보고 그 즉시 국민기자석에 썼던 본인의 투고다.


이 원고는 물론 게재되지 않았으며, 본인은 그 이후에도 한겨레의 축구보도기사문을 예의주시하면서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이 신문의 기사에 대해 비판하는 자세로 방침을 바꾼 바 있다. 다음 원고를 보면 알겠지만, 언론에 대한 본인의 요구와 권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신문기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 대표팀이 브라질 대표팀에게 3-10으로 참패한 사건을 두고 요사이 언론의 축구계 비판이 무성하다. 대체로 축구계와 축구인을 향해 겨냥된 언론의 질타는 큰 대회에서 유례없는 패배를 당할 때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이다. 신문의 사설에까지 한국 축구의 부진을 질타하는 것을 보면, 이번의 참패가 어지간히 큰 충격을 주긴 준 것 같다.

지난 1993년 카타르에서 벌어진 미국 월드컵 예선 한일전에서의 패배, 작년 아시안컵 대회에서 이란에게 당했던 2-6의 대패를 몽매에도 잊지 못하고 있는 축구팬들은 그 사건들이 벌어진 후 우리 언론들이 어떤 보도 자세를 취해 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론 역시 우리 축구 발전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 언론의 축구에 대한 보도 자세를 좀 심하게 말하자면 불 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챙기려는 지극히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축구인들이 무능해서 경영 능력이 떨어지고 매스컴에 제때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책임은 매우 크다.


그러나 외국 언론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언론사와 방송사의 축구 관계 기자들이 과연 축구라는 종목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해와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우리가 아시아에서 라이벌로 주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축구 담당 기자들의 보도 자세를 보라.


그들은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로 된 세계 유수의 축구 잡지를 독파하며 세계 축구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해외 축구 전문지를 정기구독하면서 축구 전술에 정통하고 축구의 흥미를 부양하는 데 전문기자의 직분이 있거늘,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어찌하여 제대로 된 축구 전문기자를 육성하려 하지 않는가.


독자에게 있어, 축구 전문 기자는 안테나의 구실을 하는 존재다. 그들의 직업 의식이 유감없이 발휘될 때, 팬들의 축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그만큼 증폭되는 것이며 축구인들에 대한 건설적인 충고와 대안 제시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평소에는 국내 축구에 대해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지면을 아끼다가, 큰 국제경기나 되어서야 비로소 국기 운운 하며 축구팬들에게 과잉 기대나 걸게 하고 선수들에게 지나친 심리적 부담만을 안기는 국내 언론의 보도 자세는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2002년 월드컵 개최에 가히 국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알뜰한 투자와 정비로 축구관련 시설을 확충하고 한국 축구의 전반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책임을 축구인과 축구협회에게만 지우고, 언론은 그저 뒷짐이나 지고 있는 것이 능사일까.


도대체 우리나라의 체육 정책은 왜 축구에 대해서만 이다지도 적대적인가. 국가 예산을 들여 양질의 잔디 연습장을 만들고, 축구전용구장을 많이 지어 어린 선수들이 마음 놓고 연습하고 축구팬들이 쾌적하게 축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1983년 박종환 감독이 4강 신화를 이룩했을 때부터 나온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도 잔디운동장 확보는 영원한 한국 축구의 과제였다.


그러나 그렇게 여론을 조성해야 마땅할 언론은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서 이제 와서 한국 축구를 탓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도 우리 어린 축구 꿈나무들은 태클하다 화상 입고 점프하다 발목 부러지기 십상인 효창운동장 인조잔디 위에서 세계 축구의 흐름과 정면으로 역행하는 뛰기만 잘하는 축구에 길들여지고 있다.


차라리 그곳이 맨땅이나 되었다면 개인기 없이 판에 박은 듯한 개성없는 선수들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축구인들의 피어린 호소를 듣고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뜻있는 축구팬들은 언론의 자세를 규탄하며 언론도 제몫을 다 하라고 촉구해 왔다. 해외 축구전문지를 구독하며 우리 축구가 뒷걸음질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축구팬들도 많다.


축구가 갖고 있는 민족통합적 가치에 주목하는 한겨레가 되길 바라며, 2002년 월드컵의 성공 개최와 축구를 매개로 한 남북 화합이 결코 꿈이 아니란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


축구전문기자 양성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신동일( 붉윽악마 고문/하이텔 축구동호회원)
( sdi5693@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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