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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해리 왕자가 연초에 독립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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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시아경제>

 

통칭 해리라고 부르지만, 실명은 헨리 찰스 알버트 데이비드인 이 사람은 현재 영국 왕위 계승권 1위인 찰스 왕세자의 차남이자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손자다.

해리 왕자는 왕족으로서의 경칭과 직책과 의전과 교부금을 모두 포기하고 왕족 공무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말했고, 4월 1일부터 실제로 그렇게 됐다.

여왕은 ‘최소한 상의는 하고 발표했어야지’라고 언짢아했지만 결국 독립 선언을 수용했다. 그리고 브리튼 연합왕국의 빛나는 황색 언론 더 선(The Sun)은 화를 냈다. 더 선이 쓴 워딩은 이렇다. “메그시트(Megxit)”, “메건이 우릴 등쳐먹었다” 엄청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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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n’의 기사. 왕실과 국가를 격분시키고 혼란에 빠뜨렸다며 비판하는 기조 일색이다.>

 

메건은 해리 왕자의 아내인 메건 마클 왕자비다. 왜 왕자비에게 비난이 갈까? 그 전에, 독립은 왜 하겠다는 걸까? 이제 제도상 왕실의 일원은 아니지만, 혈통을 리셋할 수는 없으니 왕족이긴 하다.

왕실 일원에서 독립은 했으나 혈통은 그대로인지라 질 좋은 경호 서비스가 붙긴 해야 하는데, 현재 해리 왕자 부부의 자산으로는 당장 경호 서비스의 가격(연간 약 60억 원)을 매년 지불할 수가 없어 아버지 찰스 왕세자가 부담해주고 있다고 한다.

당면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빠듯한데 독립을 했다. 왜 이런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의도치 않게 해리의 속내가 공개된 바가 있다. 해리 왕자는 독립 직전인 3월 10일, 자신을 그레타 툰베리로 사칭한 러시아인 유튜버에게 낚여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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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해리 왕자는 악명높은 러시아인 사기꾼 Vladimir Kuznetsov와 Alexei Stolyarov의 가장 최근 피해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 사진 속 2명이 러시아인 사기꾼 2명이다.>

출처 - <The Sun>

 

해리 왕자는 왕실 내부의 사정과 외부에서의 압박 등을 언급하면서 평범한 생활이 훨씬 낫다고 토로했다. 현재 해리 왕자 부부는 매건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마클 왕자비에 집중되어 있는 비판, 이유는?

외부에서의 압박이란 곧 더 선(The Sun)과 같은 언론 및 여론의 압박이다. 그리고 해리 왕자 가족에 대한 압박은 더 선의 워딩을 미루어 볼 때 메건 마클 왕자비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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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일까. 왕자비 레이첼 메건 마클은 미국인이고 전직 배우다. 드라마 슈츠(Suits)에 중요 조연인 레이첼 제인 역으로 유명하다. 페미니스트에 트럼프 반대자이며 브렉시트 반대자이며 UN 여성 친선대사 경력도 있는 적극적 진보주의자다.

이혼 경력도 있다. 그리고 흑백 혼혈의 유색인종이다. 영국 왕실에 유색인종이 들어온 것은 최초다. 뭔가 감이 잡힐 것도 같다.

그럼 왜 메건 마클이 공격받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좌파 연예인 출신이라서일까.

영국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입헌군주국이다. 정치적 발언을 꺼리지 않던 좌파 연예인이라는 점은 왕실의 중립성에 문제가 될 수 있긴 하다. 정당한 우려이긴 하지만, 그 우려가 현실화된 적은 없다. 메건은 왕자비가 된 후에는 왕실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소신 발언을 아꼈다. 따라서 정치적 소신 때문에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정치적 중립 외에도 메건은 해리와 함께 왕족으로서의 업무도 잘 수행했다.

둘째, 이혼 경험 때문일까.

이혼이 큰 오점이 아니게 된 지가 오래된 세상이지만 왕실에 쏟아지는 요구는 그 정도 정서가 될 법하다. 하지만 이미 영국 왕실의 이혼 관련 스캔들은 유명하고 많다. 그러면서 왕실과 영국 사회는 왕족의 이혼에 대한 내성을 키워왔다.

전 전대 왕인 에드워드 8세는 ‘2번 이혼한’ 월리스 심프슨과의 결혼을 위해, 즉위 직후에 왕위를 포기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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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8세와 윌리엄 심프슨>

 

미국인에 이혼녀는 안 된다는 왕실, 의회, 국민의 여론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계승자로서 준비되지 않았던 동생이 즉위하게 되었다. 그가 조지 6세이고 2차대전을 수행했던 군주이자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다. 관련한 작품으로 킹스 스피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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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세자도 이혼 경력이 있고, 지금 영국의 왕세자비이자 찰스의 부인인 카밀라 파커-보울스도 이혼 경력이 있다. 게다가 둘은 불륜 관계이기까지 했었다.

찰스의 첫 번째 부인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인데, 다이애나와 결혼 후에도 찰스는 옛 연인이던 카밀라와의 관계를 지속했다(당시 카밀라도 결혼한 상태).

결국 이 불륜은 세상에 알려졌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혼으로 왕실을 나간 후에, 찰스는 카밀라 파커-보울스와 재혼했다. 이 스토리는 찰스 왕세자의 왕족 커리어에 큰 오점으로 남았다.

그 외에도 왕실의 이혼, 불륜 관련 스캔들은 많았다. 최근 여왕의 셋째 아들 앤드류 왕자는 이혼 경력에 더해 최근 미성년자 성매매를 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제는 에드워드 8세의 결혼 때처럼 결혼 상대자의 이혼 경력은 스캔들이 되지 않는다. 세계의 스탠다드 정서를 뒤늦게나마 왕실이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 이 때문에 영국의 왕비가 될 가능성도 희박한 메건 왕자비가 공격받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셋째, 그럼 유색인종이어서일까. 왕자비에 대한 인종차별?

이게 정답이다.

메건 마클의 고향은 캘리포니아 캄튼이다. ‘Fuck the Police’, ‘Straight Outta Compton’ 등의 명곡으로 유명한 NWA의 출신지인 슬럼 지역에서 자란 흑백 혼혈이다.

결혼 직전인 2016년에 해리 왕자는 자신의 약혼녀에 대한 혐오를 멈춰달라는 성명을 낸 적이 있다. 2019년에는 BBC의 방송인 대니 베이커가 해리 왕자 부부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커플이 침팬지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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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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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베이커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그러고는 ‘재미있는 이미지였을 뿐 인종차별 아님’이라는 개소리를 시전했다. 평소의 보도 형태 또한 그러했다. 왕자비라서 대놓고 차별을 할 수는 없었지만, 캄튼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NWA의 곡 제목인 ‘Straight Outta Compton’을 인용한다든지, “이국적인 유전자”를 강조한다던지 하는 식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Vox에는 얼마 전 인종차별 연구자인 마야 굿펠로우 박사의 기고문이 실렸다. 굿펠로우는 이 글에서 메건 마클 왕자비에 대한 영국 언론 일반의 보도를 분석해 문제를 지적했다.

노골적으로 적대하거나 인종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식이었다. 한 라디오 진행자는 “끔찍하게 깨어있고, 나약하고, 교묘하게 타인을 조종하려 하고, 정말 짜증 난다”고 메건 마클 왕자비를 평했다. 이 사람은 메건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버즈피드는 영국 언론의 헤드라인 분석을 해보았다. 손윗동서, 그러니까 윌리엄 왕세손의 아내 캐서린 미들턴이 임신 중에 배를 감싸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는 “보호”라는 단어를 썼다.

메건 마클이 임신한 배를 감싸 안은 사진에는 “자부심과 허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자랑하고 있네’라는 뉘앙스를 전달했다. 시혜적 시선이다. ‘흑인 이혼녀 딴따라 주제에 왕실에 들어왔으니 고마운 줄 알아! 옛날에는 턱도 없었어!’

그리고 캐서린 미들턴의 의상비보다 메건 마클의 의상비가 많아지면 거의 어김없이 왕자비의 사치를 다룬 기사가 뜬다.

 

메건 전에는, 캐서린 미틀턴이었다

왕족의 업무는 외교와 정치 등의 사회적 행사에서 토템 혹은 인형 역할을 하고 자선 재단을 운영하여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즉 정치적 마네킹이다.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보수적 품위 유지 등은 모두 이를 위한 것이다. 해리 왕자는 왕세자의 차남이기에 왕위 계승권에서 살짝 비켜나 있어서 많은 의무가 요구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메건 왕자비는 훈련받은 전문 배우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의 관심과 카메라에 익숙하다 보니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 친환경 소재의 옷을 입는 등 간접적으로 사회적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는 센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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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페트병으로 재활용해 만든 친환경 신발을 신은 메건 마클>

 

어떤 의미에서는 손윗동서 캐서린 미들턴보다 나을 수도 있다. 해리의 형인 윌리엄 왕세손의 아내 캐서린 미들턴은 왕족이 되어 신분 역전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해 성공한 경우다.

왕족 그루피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왕족의 마음을 얻고 왕족을 연기하는 데에는 능하지만, 가끔 무대 뒤의 바가지가 새는 경우가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성공한 왕비 지망생’ 캐서린보다는, 자기 직업을 영위하다가 사랑 때문에 왕족이 된 메건이 더욱 드라마적 판타지에 걸맞는다. 따라서 메건 마클은 왕족이 되기에 특출나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반면 메건 마클이 왕실에 들어와 황색 언론의 비난을 독차지하면서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비는 기사회생했다. 그전까지는 사치, 왕실에 걸맞지 않은 성격과 떨어지는 연설 능력, 성공한 왕실 그루피라는 점 등 때문에 캐서린 미들턴에 비난의 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캐서린 왕세자비에게는 가혹한 서술이다. 사실 캐서린이 황색 언론의 북이 된 진짜 이유는 그녀가 평민 출신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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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미들턴은 직계에서는 350년 만에 편입한 평민 예비 왕비이다. 혈통은 평민과 하급 귀족의 후손인데 그나마 하급 귀족 혈통조차 몰락한 지 오래되어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캐서린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용해 귀족으로의 신분 상승을 노렸지만, 그에 맞는 엄격한 교양 수준은 이룩하지 못했다. 신분의 벽이란 그렇게나 높은 것이다.

그래도 캐서린은 유능했는지 10대부터 목표했던 윌리엄 왕세손과의 결혼에 성공했다. 다만 결혼 전까지 이리저리 흔들리던 윌리엄의 마음 때문에 10년 넘게 아무런 직업이 없었던 것은 오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귀족은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은 평민이나 가지는 것이다. 캐서린은 결혼 전 여왕에게서 직접 ‘직업 좀 가지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이는 예비 손자며느리의 신세가 안타까워서 하는 충고라기보다 ‘넌 어차피 평민’이라는 모욕일 가능성이 높다.

10년을 넘게 투자하여 윌리엄 왕세손을 낚아 왕실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건 ‘평민 주제에 왕족이 되다니’라는 신분 차별의 환경이었다.

캐서린 또한 후배 메건만큼이나 묵묵히 왕족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했지만, 남편인 윌리엄 왕세손이 자꾸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데다 자기 자신의 연설 능력이 많이 떨어져서 악전고투하는 형국이었다.

언론에 과거 찍힌 상반신 누드 사진이 실려도 웃고 다녀야 하는 판이었다. 상류층 어휘를 잘 모르는 것에 대한 조롱은 기본이었다. 메건이 혼혈 피부를 갖고 들어와 손아랫동서가 되어 인종차별의 환경에서 포화를 받게 될 때까지 그 상황은 나아질 뿐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의 보수성은 왕자비들에게까지 차별의 시선을 들이댔다.

그리고 여기서, 공주의 남편보다 왕자의 아내에게 비난이 더 많다는 것에서 여성 비하적 정서를 읽어낼 수도 있다.

비록 2, 3세대에서 결혼을 한 공주들의 숫자가 왕자들보다 적다는 점은 감안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유독 억지 스캔들 기사는 왕자비들에게 가혹하다. 미성년자 성 매수자가 된 여왕의 셋째 앤드루 왕자, 그의 전처인 사라 퍼거슨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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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당시 사라 퍼거슨>

 

이 사람의 경우엔 손윗동서인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외모 비교를 당하면서 ‘돼지(Pork) 공작부인’이라는 멸칭까지 들었다. 앤드류와 사라의 간판 작위가 요크(York) 공작위인 것을 이용한 라임이다. 이걸 쓴 사람들은 센스 넘치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을까?


영국의 보수성 그리고 왕실

영국은 아직도 신분제 국가다. 영국 의회 상원의 명칭은 House of Lords, 번역하면 귀족원이다. 하원의 명칭은 House of Commons, 서민원이다. 귀족원은 서민원이 승인한 법안을 심의하고 검토하고 수정한다. 통과를 막을 수는 없지만, 지연과 권고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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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상원>

 

심지어 2005년까지는 대법원의 역할도 귀족원이 했다. 이 귀족원의 구성원은 당연히 귀족이고, 모두 세습 혹은 지명으로 임명된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같이 누구나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의원이 되는 건 하원뿐이다.

영국도 어쨌든 민주 국가이니 귀족원 의원들의 귀족 신분 또한 명예직에 가깝지만, 그 명예직이 사회적/법적으로 실제 역할을 하고 있으면 명예직이기만 하지는 않다. 영국의 보수성에는 아직도 신분제가 포함되어 있고, 왕정은 이 기반 위에 있다.

그래서 왕족의 배우자 또한 귀족이기를 바란다. 찰스 왕세자의 두 아내인 다이애나와 카밀라 또한 귀족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 둘이 모두 평민과 결혼한 것이다.

외국인인 우리는 해리 왕자 부부와 역대의 왕족들이 겪은 이런 사례들을 통해, 영국의 보수성이 왕실에 요구하는 것을 정리해볼 수 있다.

 

1 ) 정치적 중립, 이건 군주를 토템이자 마네킹으로 쓰는 입헌군주국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2 ) 백인 귀족일 것, 이건 안 당연하다. 영국에는 미국의 민권 운동과 같은 경험이 없다. 따라서 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적 합의의 형태가 다르다. 이것이 영국 보수성의 일면이다.
3 ) 가십, 우리가 욕하며 즐겨야 한다. 사실은 이것이 표면적인 업무 – 정치적 토템과 자선 사업 경영의 뒤에 숨겨진 진짜 업무다.

 

메건에게는 두 번째 요구도 포함이 되지만, 메건뿐만이 아닌 캐서린을 포함하여 다른 왕족들을 공통적으로 괴롭힌 부분은 진짜 왕실의 임무인 세 번째 요구이다.

가십은 잔인한 법이다. 그리고 그 가십은 영국의 보수성을 기반으로 하며,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전통적인 가치관만을 강요한다.

가십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은 끔찍한 것이기에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힘들다. 특히 왕족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네킹형 정치인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기에 더욱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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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지워지는 가십의 굴레 속 그 사회의 보수성. 신분에 맞는 배우자를 들여라, 이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마라, 함부로 이혼하지 마라, 만인을 위한 자선 활동을 해라, 어디 가서 추태 부리지 마라, 추태가 뭔지는 우리가 정한다, 정치적 견해는 밝히지 마라, 공식 행사에서 완전 멋져보여야 한다 등등.

이런 요구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쉽게 나오기 힘들다. 아주 잠깐 삐끗하면 그건 스캔들이 된다. 해리와 메건을 독립하게 만든 현대 왕실의 본질이다.

해리와 메건의 독립은 외부의 시선뿐 아니라 왕실 내부의 상황 즉, 윌리엄-해리 형제 갈등이나 해리의 왕실에서의 소외감 등의 상황도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되곤 있지만, 자세한 왕실 내부사정은 확실치 않으니 확실하게 원인이 밝혀진 것만 이야기하겠다.

영국에서는 잊을 만하면 왕정 신분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자는 여론이 튀어나온다. 찰스 왕세자의 스캔들과 같은 대형 스캔들 때에 이런 여론이 강력했다.

‘혈세로 사치나 하지 이건 뭐 인륜도 저버리고!’로 요약할 수 있는 정서다. 이 문장에는 ‘국격 떨어뜨리고 사회 분열시키는 스캔들 말고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가십을 달라고!’라는 요청이 숨어 있다.

만약 이런 요청을 지속적으로 어기게 되는 날에는 영국 사회가 왕실을, 혹은 더 나아가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남은 신분제 자체를 뒤엎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의 영국 왕실을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여왕이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는 주제는 군주제의 존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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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국 왕실의 진짜 업무는 스캔들과 가십을 생산하면서 공화제 요구가 다수가 되지 않을 만큼의 균형을 지키는 줄타기다. 그리고 이것이 로열 가십의 정체다.

그리고 그 로열 가십을 보며 우리는 영국 사회의 국제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성을 볼 수가 있다. 대책 없는 브렉시트 또한 그 일면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 하지만 지금은 국제 스탠다드 정서에도 제대로 발맞추지 못 하며, 쇠락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기사에서 영국의 보수성을 왕실(신분제)을 통해 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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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며, 더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영국의 보수성은 과연 영국을 어떤 길로 안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