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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레알 마드리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이 생각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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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봐도 열불 나... 

 

 

걸어 다니는 검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뼛속까지 검찰주의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상 검찰 출신들이 약진하리라는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그것도 하필이면 지방선거 기간을 지나자마자, 이렇게 많은 검사와 수사관들이 요직에 진출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국무위원부터 보자

 

법무부 장관 한동훈(전 사법연수원 부원장) 

국토교통부 장관 원희룡(전 부산지검 검사)

통일부 장관 권영세(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달랑 3명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정식 임명된 국무위원이 총 16명이니 거의 20%에 육박하는 셈이다.

 

거기에 장관급인 국가보훈처장에 박민식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나, 차관급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법제처장에 이완규 전 부천지청장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비율은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어떠한가?

 

법률비서관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 공직기강비서관 이시원 전 수원지검 형사2부장, 인사비서관 이원모 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등 검사 출신으로도 모자라, 검찰수사관 출신인 복두규 인사기획관(전 대검찰청 사무국장), 윤재순 총무비서관(전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 강의구 부속실장(전 검찰총장 비서관)까지 비서실장 산하 기획관과 비서관급 37명 중에 6명이 검찰 출신이다.

 

이럴 줄 알고 검찰청법 제44조의2에는 이미

 

제1항 검사는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다. 

제2항 검사로서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대통령비서실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퇴직한 지 1년 조금 넘은 검사나, 검사가 아닌 검찰 수사관 출신들을 임명한 굥카의 꼼꼼함이 돋보인다. 허나 그보다, 검사로서 퇴직 후 1년밖에 안 된 사람이 대통령이 된 세상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심지어 검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애매한 국무총리 비서실장(박성근 전 순천지청장)과 국정원 기조실장(조상준 전 대검찰청 형사부장)에도 검사 출신이 임명되더니, 마침내 금융감독원장에까지 검찰 퇴직 2주밖에 안 되는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이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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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2022년 6월 8일

 '모두가 윤석열의 사람들’…검찰 출신이 다 틀어쥔 ‘검수완판’

 

아직 발표된 것은 아니나 공정거래위원장에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하니, 이제 검사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청와대, 정부는 물론 인사, 정보, 금융, 경제 등 모든 분야의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하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민망해서라도 가만히 있든지, 뭐라도 핑계를 댈 텐데, 우리의 굥통령은 그런 거 없다. 썅마이웨이. 흔들림 없이 "필요한 인사를 적재적소에 썼다"며 "다 법률가들이 가야 하는 자리"인데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일갈하기까지 한다. 다시 한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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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2022년 6월 8일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헌법 제1조도 좀 손봐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제1항 대한민국은 검찰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검사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검찰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검사동일체라는 괴물, 정부를 접수하다 

 

이렇게 특정 집단에 편중된 인사가 행해졌던 적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가 군인 출신들을 중용했던 이후 처음인 듯싶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특정 집단에 편중된 인사는 편향된 의사결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그중에서도 검사 출신들은 사물을 흑과 백, 유죄(기소)와 무죄(불기소)의 편협한 논리로 보는 경향이 많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많은 문제를 그르치기 쉽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금 나라의 큰 현안을 꼽자면, 안으로 경유값 급등과 안전 운임제 폐지에 따른 화물연대의 총파업, 밖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엄중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문제의 주무 장관은 검사 출신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고, 국내외 정보를 관할하는 국정원의 기획조정 능력도 필수적이라고 보이는 바 그 또한 검사 출신 조상준 기조실장의 몫이다.

 

물론 윤 대통령은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 같이 "벌써 검사 그만둔 지 20년이 다 되고 국회의원 3선, 4선하고 도지사까지 하신 분들을 무슨 검사 출신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어폐가 있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두둔한 바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갖는 첫 번째 직업에 따라 인식의 틀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검사 출신인 원 장관이 처리해야 될 화물연대 총파업과 권 장관이 맡게 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 집행'이나 '단호한 대응'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다수 조합원이 체포되는 공권력 투입의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북한 핵실험에 대해서도 전투기 20대를 동원한 대북 무력 시위를 통해 힘에는 힘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는데, 이게 과연 대통령이나 주무 부처 장관의 전직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을까?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현직 검사들이 선배들의 활약상(?)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 가고 싶다'는 헛된 야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정해야 할 수사와 재판마저 정치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멀리 갈 것도 없이 검사 출신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민정수석 비서관이 실권을 휘두르던 박근혜 정권 당시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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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하복 쩌는 검사 출신이

권력을 잡을 때 국정을 우째 운영했더라... 

 

심지어 대통령실의 인사 라인을 전부 검찰 라인(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구축한 것도 모자라서 고위공직자의 인사 검증을 담당할 인사 정보관리단을 한동훈 장관 휘하의 법무부에 설치하고, 인사정보1담당관에 이동균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장을 임명하는 등 핵심 인사를 전부 검사들로 충원하기까지 했다. 이는 사실상 앞으로 정부의 모든 인사를 검사들이 쥐락펴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지금까지 보여준 게 검찰 공화국 순한 맛 시즌 1쯤이었다면, 앞으로 그들이 좌지우지할 인사판이 완성된다면 아마도 5년 뒤쯤엔 검찰 공화국 매운 맛 시즌 2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꼴 안 보려고 지난 몇 년간 소위 검사동일체로 상징되는 검찰 조직의 배타성과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는데, 도리어 정부 조직 전체가 검찰에 동화될 판이다. 

 

변태는 지금부터다

 

더 무서운 것은 고위공직자의 인사 검증이나 감찰을 이유로 수집된 정보들이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다. 이미 법무부에는 각종 수사 자료와 범죄 첩보는 물론 흔히 '전과'로 통칭하는 형 집행 관련 자료와 출입국 정보까지 수많은 개인정보와 은밀한 사생활 자료들이 집적되어 있다. 나아가 통신과 금융 관련 자료에도 영장을 통해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것 때문에라도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엄격히 제한하려 했지만, 한동훈 법무부와 이완규 법제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같은 우회로를 통해 국회의 입법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법원의 통제조차 회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서라도 향후 감사원, 금융정보분석원, 방송통신위원회의 핵심 요직에 검사 출신들을 임명하려 들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정보는 검찰 출신들의 정치적 성공을 뒷받침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우리 준법정신 투철한 검사님들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지만, 무려 외국 정부의 출입국 증명 서류를 위조해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가려다가 실패했던 담당 검사가 바로 새 정부의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이 된 이상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자, 기소유예되었던 다른 사건을 다시 수사해 보복기소를 한 책임자가 바로 새 검찰총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두봉 인천지검장이다. 이처럼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들에게 수사권과 감찰권을 주는 것보다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게 더 안전하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한편 이와 관련 "한동훈 검사장이 이끌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자신과 노무현재단의 금융계좌를 불법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얼마 전 명예훼손 혐의로 유죄 판결받았다. 개인적으로 정부 기관의 행태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해당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지, 아울러 정보 비대칭성이 현저한 검사장과 작가 겸 유튜버를 동일선상에서 놓고 규율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사장 출신 법무부 장관이 형사사건의 피해자로서 검찰의 공소 유지를 지휘, 감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있다. 항소심 재판부의 전향적인 검토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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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받은 유시민 전 장관

 

 

토리아빠와 천재소년

 

이로써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게 된 검사들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고, 얼마 전 전관예우 방지 규정을 개정하여 그 힘을 현금화하겠다는 의지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석열이형'이나 '토리아빠' 같은 밈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친근감을 부각시켰던 것처럼, '천재소년 후니검사'(한동훈 법무부 장관) '우리 복검사'(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검사 개개인의 캐릭터를 드러내 팬덤을 형성하는 언론플레이 내지 바이럴마케팅마저 이뤄지고 있다(이러한 작업은 트위터, 블라인드 등 익명 커뮤니티에서 현직 검사들이 푸는 '썰'을 통해 구체화되는 듯 보인다. 이렇게 검사들은 이프로스라는 검찰 내부망에서 빠져나와 외부 인터넷 여론까지 장악하려는 중이다).

 

이렇게 힘, 돈, 인기를 모두 쥔 검사들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권력의 영원한 지속, 즉 정권 재창출일 터. 지금으로선 추호 김종인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별의 순간'이 올거라고 예측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평행이론이 말해주는 검찰 정권의 후계자는 조금 다른데...

 

2017년 5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윤 검사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가 상관인 조영곤 중앙지검장과 맞서는 등 항명 사태로 전 정권의 눈 밖에 나서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되었다가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 한직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22년 5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은 송경호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송 검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하다가 상관인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맞서는 등 항명 사태로 전 정권의 눈 밖에 나서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되었다가 수원고검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한때 김오수 전 검찰총장을 윤석열의 대항마로 추켜세우며 선거 포스터까지 패러디한 '국민이 키운 김오수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드립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국민이 키운 송경호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구호를 봐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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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시아경제 2022년 3월 20일, "국민이 키운 김오수, 기호 1번 민주당 후보" 尹 패러디한 포스터 등장)

 

단언컨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윤석열의 집권 모델을 따라 미래 권력이 되려면, 정권 핵심부에도 가혹한 수사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 텐데,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검찰 출신이라는 것. 송경호가 선후배들을 잡아들일 깜냥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윤석열이나 검찰 내부자들이 이런 팀킬을 두고 볼 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일설에 따르면 한동훈을 검찰총장 대신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이유가 피아 구별 없이 수사할까 걱정 돼서였다고 한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코메디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선 에피소드가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어쩐지 코메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