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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기회로 삼은 에르도안

 

드라마틱한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러시아와 터키는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실제로 죽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수습되자마자 러시아는 터키 행정부(콕 찍어 에르도안이)가 군부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것도 결정적으로 말이다. 이와 대비되는 게 미국이다.

 

“미국 놈들이... 그래, 오바마 이색희가 쿠데타를 부추겼어!”

 

이렇게 믿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페툴라 귈렌에 대한 신병을 미국이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에르도안과 귈렌은 같은 정당(‘정의개발당’이라는데... 이름 참)을 이끌던 사이였는데, 사이가 틀어졌다. 에르도안은 귈렌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귈렌은 살기 위해 미국으로 망명했다(현재는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페툴라 궐렌.jpg

페툴라 귈렌.

출처-<AP>

 

2016년 쿠데타 미수의 배후에 귈렌이 있다고 에르도안은 믿었다(그렇게 믿는 척 하는 걸 수도 있다).

 

“귈렌 이색희가 내 뒤통수를 쳤어! 당장 이색희 데려와!”

 

터키는 미국에게 귈렌을 내놓으라고 말했고, 미국은 이걸 쿨하게 씹었다.

 

“증거 있어? 증거 있으면 보내줄게.”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에르도안은 미국에 더 의심을 가지게 된다. 

 

사실 에르도안은 이 쿠데타를 굉장히 잘 써먹었다. 쿠데타를 빌미로 자신을 반대했던 세력들을 착실하게 숙청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해야 할까? 터키 전역에 있는 국공립, 사립 대학의 학장 전원들을 비롯해 교육부 소속 공무원 15,200명 내무부 소속 공무원 8,777명, 총리실 공무원 257명 등등 공무원들을 무더기로 잘라버렸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TV와 라디오 방송국 24군데도, 

 

“이노무 시끼들! 반란군이랑 내통했지?”

 

라는 핑계로 방송 허가를 다 취소시켰다. 에르도안에게 있어서 2016년 쿠데타는 권력을 다지는 절호의 기회였다. 위기 다음에 기회가 온다는 건 정말 인생의 진리인 듯 하다. 덕분에 터키는 이란과 같은 준 ‘신정국가’ 체제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미국과 터키의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을 거다(역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는 엄청나게 좋아졌다). 근데 덜컥 문제가 터진다. 그 유명한 S-400 사건이 이렇게 터져 버린 거다. 

 

 

미국에게 터키란?

 

터키 군사력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터키는 군사 대국이다. F-16만 해도 245대나 운용할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한다. 우크라이나가 사간 무인기를 보면 알겠지만, 무인기 전력도 충실하고, 육해공 전력도 충실하다. 

 

F-16.png

F-16

 

FMS(Foreign Military Sale : 대외 군사판매)에 관한 국방브리핑 기사(링크)에도 나왔지만, 돈이 있다고 미국 무기를 마음대로 살 순 없다. 정치적인 환경과 미국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정리돼야지만 살 수 있는 게 미국 무기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터키의 위치다. 미국에게 터키는 어떤 위치일까?

 

“터키 저 녀석이 좀 삐딱선을 타긴 하지만... 하, 저걸 안 도와주자니 러시아가 내려올 거 같고, 조금 도와주자니 얘들이 계속 어깃장을 놓네... 하, 어쩌지?”

 

이런 고민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은 터키를 밀어줄 수밖에 없다. 터키는 이래 보여도 NATO 첫 가입국에 이름을 올린 국가다(미국이나 영국 같은 창립국이 아니라 만들어진 다음에 가입한 가입국이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선, NATO로서도 터키를 버릴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무기를 팔 수밖에 없다. 

 

나토.PNG

1949년 나토 창립한 국가들(파란색)과

1952년 나토의 첫 가입국 터키(하늘색).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알제리는

현재 나토 회원국이 아니나

1952년 당시는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렇게 판 무기들 중에는 F-35도 있다. F-35는 돈 있다고 살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내가 너한테 무기 파는 건, 그래. 내가 너 믿어서 그래. 너네가 나중에 이 무기로 우리 공격할 수도 있고, 이거 분해해서 나쁜 러시아나 중국 놈들한테 우리 무기 비밀을 알려줄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만큼 너희를 믿는 거야. 내 마음 알지?”

 

그런 거다. 이런 미국이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F-35를 터키에 팔겠다고 결정한 거다. 터키도 통 크게 100대를 사겠다고 했고, 미국에 전투기 조종사 보내서 열심히 F-35 기종 전환훈련도 시키고 하면서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덜컥 터키 쿠데타가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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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매혹적인 러시아의 제안

 

“씨바 전투기 조종사들을 어떻게 믿고 전투기에 밀어 올려? 저번처럼 나 죽이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이렇게 되니 전투기 조종사들을 숙청할 수밖에 없게 됐다. 다들 알겠지만, 전투기 조종사들은 양성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시간이 어마무지하게 많이 들어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 전략자산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러다 보니 각국에서는 전투기 조종사 구출을 위한 전담팀을 따로 운용할 정도다. 근데 이 전투기 조종사들을 믿지 못해서 숙청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이러다 보니 터키의 방공망은 구멍이 뚫리게 됐다. 

 

“전투기가 있는데, 왜 타지를 못하니?”

 

전투기 조종사가 없는 상황에서 터키의 하늘을 누가 지켜야 하냐는 거다. 지금도 그리스와 터키는 심심하면 영공에 충돌을 벌이고, 전투기 조종사들이 서로의 전투기를 조준하고, 쫓고 쫓기는 쟁탈전을 벌이곤 한다.

 

(유튜브를 잘 찾아보면 그리스와 터키 공군 조종사들끼리 물고 물리는 실랑이를 벌이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2005년 5월에는 그리스 공군의 F-16과 터키 공군의 F-16이 공중에서 충돌. 둘 다 추락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때 그리스 조종사는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 영공은 누가 지켜야 할까? 이때 에르도안에게 마음에 쏙 드는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러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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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과 에르도안

출처-<AP>

 

“어이고, 우리 터키 동상! 그래, 자네 제끼려는 못된 생각 품은 애들은 싹 정리했고?”

 

“덕분에 애들은 좀 정리했는데, 이러다 보니까 나라 지킬 애들까지 싹 사라져서... 그게 좀 걱정이네.”

 

“뭘 걱정해? 이참에 까탈스럽고 말 안 듣는 전투기 조종사 싹 빼고, 싸고, 튼튼하고, 실력 확실한 S-400을 들여놔 봐.”

 

“S-400?!"

 

"그래, 미국에게 사드가 있지? 그럼 러시아에는 S-400이 있는 거야! 이거 하나만 있으면, 우리 터키 동상한테 깝치는 애들 다 때려잡을 수 있어.“

 

S-400. 설명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지대공 미사일’이다. 그것도 러시아판 사드라고 불릴 정도로 나름 성능 좋은 미사일이다. 문제는 이게 터키에 들어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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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400

 

 

러시아산 무기 수입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이유 

 

“에이 그래봤자 미사일 좀 사는 건데 뭐가 문제야?”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터키는 NATO 회원국이다. 애초에 NATO의 설립 취지가 구소련(러시아)와 공동대응하자고 만든 단체 아닌가? 그런데 NATO 회원국이 러시아 무기를 사 와서 활용한다? 

 

최근 러-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NATO가 신이 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동안 쌓아놨던 동구권, 좀 더 정확하게 구소련 장비를 처분할 수 있게 돼서였다. NATO의 가장 큰 숙제이자 숙원이 장비 통일인데, NATO가 확장되면서 옛 동구권에 속해 있던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그 결과 Mig-29와 F-16이 같이 작전을 펼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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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29

 

기종이 다르면, 보급 문제부터 전술 작전 체계 구축, 통신 문제, 피아식별장치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터진다. 그렇기 때문에 NATO는 STANAG(Standardization Agreement : 나토 표준 규격)을 만들고 이 기준에 맞춰 군사장비들을 규격화했다. 

 

그런데... 터키가 갑자기 러시아 미사일을 들여온다고??!!! 

 

더 큰 문제는 터키의 무기체계. 한마디로 미국 무기의 정보가 러시아에게 흘러 들어갈 확률이 다분히 높다는 거다. 당연히 미국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야, 미쳤어? 이것들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미친 거 아냐? 당장 S-400 치워!”

 

“안 치우면?”

 

“너희한테 팔기로 한 F-35 국물도 없어. 싫어! 안 팔아!”

 

“씨바, 내가 내 마음대로 미사일도 못사냐?”

 

“어, 그럼 미사일 사. 대신 우리 무기도 못 사!”

 

에르도안은 ‘터키’의 지정학적 위치를 믿고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미사일 외교’를 시전했다. 미국은 계속 이렇게 가면 F-35 못 판다며 난리를 쳤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러시아는, 

 

“우리가 너희한테 설마 S-400만 주겠냐? 이거 사면 우리가 지금 한참 개발 중인 S-500!! 그 S-500 기술, 이전해 줄게!”

 

미국도 터키를 어르고 달랬다.

 

“야, 굳이 지대공 미사일이 필요하면... 우리 패트리어트 사! 내가 싸게 줄게 응? 왜 러시아 걸 사냐고! 너 NATO인 거 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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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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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에르도안의 줄타기 외교

 

에르도안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계속 줄타기 외교를 했고, 미사일을 가지고 두 국가를 농락(?!) 했다.  

 

“우리는 미사일을 산 것도 아니고, 안 산 것도 아니다!”

 

형용모순인 거 같은데, 에르도안은 그 짓을 했다. 2019년 7월 미국의 반대를 무릎쓰고 S-400 1개 포대를 사 왔다. 당연히 미국은 빡쳤고, 지금까지의 F-35 프로젝트를 접고 터키에게 인도할 F-35를 미 공군이 가져가 버렸다. 이런 상황인데도 터키는 간을 봤다.

 

“이게 1개 포대는 들여왔지만, 2호 포대는 아직... 안 들어왔어!”

 

“이거 미사일은 들여왔지만 아직 활성화는 안 시켰어.”

 

이런 식으로 간을 보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도

 

“야, 니들 이거 쓸 거야 말 거야? 왜 이렇게 간을 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터키도 발끈한다.

 

“씨바,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그리스도 러시아제 S-300 쓰는데, 왜 우리만 그러는데?”

 

“야,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그리스가 이걸 산 거냐? 키프로스가 S-300을 산 걸 너희가 딴지 놔서 그걸 그리스가 대신 인수해 간 거잖아! 니들이 하도 지랄해서 그리스가 S-300 가져가고 대신에 호크 미사일 건넨 거야. 지들도 다 알면서... 그리고 그거 크레타 섬에 짱 박혀 있어.”   

 

이렇게 설왕설래,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 미국이 경악할 만한 사건이 터진다. 코로나 시국의 혼란 속에서 스리슬쩍 넘어간 S-400을 두고 에르도안이 또 막장 짓(?!)을 펼쳤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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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00

 

 

막 나가는 에르도안, 미국 무기를 겨냥하다

 

“장비를 사 왔으면 시험을 해봐야지. 야, 우리 시험 한 번 해보자!”

 

터키군이 F-16을 모의 표적으로 삼아서 S-400 테스트를 했던 거다. 그 정치적 함의가 얼마나 대단한 건가에 대해서 에르도안과 터키 정부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그걸 몰랐다면, 국가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 이 짓을 벌인 거다. 미국은 꼭지가 돌아서 난리를 쳤다. 

 

“이거 우리 엿 먹이려는 거지? 러시아 무기로 우리가 만든 F-16를 겨냥해? 너희 진짜 막 나가자는 거지?”

 

에르도안은 막무가내였다.

 

“너희가 왜 빡쳐하는진 모르겠는데, 터키는 엄연한 주권국가야.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미사일 사겠다는데 니들이 왜 지랄이야? 우리 S-400 더 살 거야!”

 

강 대 강의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벼랑 끝 전술을 활용한 외교 전략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터키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미사일 하나로 두 나라를 엿 먹이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