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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넷플릭스 작품들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나의 문어 선생님>,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 <하이스코어> 등등 모두 다큐가 아닌가? 넷플릭스 영화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라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항상 기대보다 20% 더 재밌다.

 

넷플릭스 다큐의 미덕은 다큐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포맷이 아니라는 점이다. 편의상 분류는 다큐이지만, 예능에 가까운 게 많다. 그러니 넷플릭스 보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기분이 들 염려는 없다. 그렇다고 다루는 내용이 얄팍한가? 꼭 그렇지도 않다.

 

최근에 추천할 만한 코미디-다큐가 떠서 소개한다. 제목은 <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The G Word with Adam Conover)>

 

개인적으로는 최근 6개월간 본 모든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 제일 재밌다. 그렇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4, 스페이스 포스 시즌 2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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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 예고편>

 

2.

무려 머니볼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의 책, <다섯 번째 위험 트럼프 정권,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유명한 코미디언인 애덤이 제작하고 출연했다. 오바마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꽤 비중 있게 출연한다.

 

이 정도면 다큐계의 블록버스터라 할만하다. 하지만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애덤 누구라고? 한국에서는 훼방꾼 아담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가 아담의 팩트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유튜브 캡처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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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은 있는 줄도 몰랐거나, 무슨 일을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던 정부 기관의 직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다. 정부의 공공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하고 광범위한지 설명한다. 식품 안전·날씨·금융·첨단기술 개발·질병 관리 등의 분야에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본다.

 

코미디와 다큐의 중간쯤이기 때문에 유머가 가득하다. 배우들의 유머러스한 연기로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시리즈의 주제는 가볍지 않다.

 

 1. 공기가 소중한 걸 평소에 인식 못하듯, 정부가 우리 각자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잊고 사는 건 아닐까?

 2. 우리는 공공서비스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건 아닐까?

 3. 정부는 왜 망가지고,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물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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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홈페이지>

 

3.

정부는 쓸데없이 크고 관료적이다. 정부는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 자체가 문제다. 따라서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 이게 전형적인 레이건 주의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놈들은 주기적으로 모아서 구청에서 정신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너희가 보는 좁은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건 결국 정부이고, 정부를 축소하면 필요할 때 우리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미국의 코로나 상황 시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보라.

 

트럼프는 작은 정부를 지향했기 때문에, 전염병 대응 조직이 대폭 축소된 상태였다. 그 결과 대응이 늦어졌고 각주와 도시가 각자 대응하느라, 미국의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치솟았다.

 

정부가 오케스트라라면 대통령은 지휘자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마구 잘라내고, 지휘자가 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그 공연이 어찌 될까? 정확히 같은 일이 미국의 코로나 상황 시에 일어났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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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홈페이지>

 

4.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 기관이 비대해진 것은 사실이다. 정·재계의 엘리트와 대중 간의 분리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이 대중들의 손을 떠났다. 평범한 사람들의 상황은 나빠지고 있지만,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에 대한 대중의 절망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엘리트 카르텔을 비토한다는 의도가, 트럼프 같은 극단적인 포퓰리스트를 낳았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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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카메오 수준이 아니라, 꽤 비중 있게 출연한다. 여기서 오바마의 생각을 참고할 만하다.

 

어떤 문제가 빠르게 바뀌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을 놓아선 안 된다. 참여하고 투표하고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때 변화를 일으킬 기회가 조금씩 열리는 것이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민주주의 국가는 권력 분산을 택했는데, 어쩔 수 없이 변화가 느릴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이 과정에서 타협하고 절충할 수밖에 없다. 변화가 느리다는 이유로 실망해서 손을 떼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비열한 사람들이 판을 친다.

 

변화와 희망의 상징 같은 존재였던 그가 실망스러운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전혀 변명같이 들리지 않는다. 현실 정치는 결국 타협과 절충이다. 그걸 미국 대통령까지 해보며 철저히 겪어본 사람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5.

어느 보건소 의사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가난해 본 적 없는 사람, 음식을 살지 병원에 갈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런 상황에 부닥쳐 보거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입장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국힘당과 비슷한 엘리트 모임일 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국힘당은 대부분 가난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해 본 적도 없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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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 분의 인사를 받는 의원 나부랭이 

출처-<뉴시스>

 

원작인 마이클 루이스의 책은 트럼프 정권 이후 정부 시스템이 얼마나 무너졌는가를 다루는 내용이다. 정부 부처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트럼프 전후 각 부서의 상황이 얼마나 극명하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통령의 첫 번째 역할은 행정부의 리더이고, 행정부는 위험관리기관이다. 대통령이 위험에 대해 무지하거나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트럼프를 통해서 확인했다. 이제 그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전후 정부의 위험 대처 능력이 얼마나 극명하게 달라졌는지 피부로 와닿는다. 물가, 가뭄, 주가 폭락 보다는 검사 부족이 더 큰 걱정인 정부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진한다. 물가는 오르는데 부자 감세를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정부의 대처 능력과 인식 수준이 한순간에 이리 퇴보할 수 있는지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일어날 일이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할 걸 상상하면, 코미디-다큐를 보면서 오싹해지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