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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어릴 때 보던 로켓이 우주로 진입하는 장면을 50살이 넘어 보게 되었습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호기심만큼 저는 우주에 대해 그렇게 많은 호기심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로켓이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도 합니다. 누리호에 대해, 한국의 로켓 기술에 대해, 누리꾼들은 해외 반응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극한의 가성비와 공밀레의 전통을 보여준 이공계 인력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공계 인력을 갈아 넣었기에 그 비용으로 저런 기술을 개발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아직 K-자본주의에 대한 3편의 글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난 Feel을 받아 글 한번 써보고자 합니다. 원래 글은 이렇게 써야 제맛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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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2차 발사 성공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공밀레의 전통

 

에밀레종을 빗댄, 공밀레의 전통은 어떤 제품을 개발해내는데 이공계 인력을 갈아 넣어서 만든다는 걸 유구한 한국 전통에 빗댄 누리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센스쟁이들 같으니라고.. ㅋㅋ

 

세계 주요국 정부의 우주개발 지출액을 비교한 그림을 보면, 미국은 410억 달러·중국은 58억 달러·일본은 31억 달러가 소요됩니다. 한국은 고작 5억 9천3백만 달러가 들었다고 나오네요. 이 표만 봐도 와 하는 소리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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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하지만 실상 이 지출액에는 몇 가지 함정들이 포함되어 있긴 합니다. 단순히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비용만 따지지 않았고, 말 그대로 우주개발 지출액이기 때문에 관련 산업 조성 비용을 빼고, 순수하게 개발비로 따지면 격차가 많이 줄어들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압도적(?) 가성비는 어느 국가든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 한국의 지출액도 점점 많아지겠지요. 또 많은 국가에서 로켓을 쏘아 올리면서 알려진 기술적·소재적 노하우(Know-How)들이 보편화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술들이 이미 산업에 적용된 경우가 있어서 수십 년 전에 선진국이 하던 기술적 뻘짓도 많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여전히 한국의 투자비는 전 세계에서 으뜸이 될만한 가성비를 보여줄 거예요. 앞으로는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이 지출액 중에 큰 비용이 우주 관련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비용으로 초기에 지출될 겁니다. 이후에는 그 산업 생태계를 이용한 제품 개발로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데에 사용될 거라고 여깁니다.

 

흔히들 기술이 제품에 적용되는 것을 그저 공대 인력 갈아 넣으면 될 줄 아는데, 실제 현장에서 공대 인력 갈아 넣는 것은 기술을 적용한 시제품(Prototype) 제작할 때까지 정도입니다. 이후에는 양산이나 생산 쪽에 더 많은 역량이 투입되기도 합니다. 항공 우주 산업의 특성상 양산이나 생산 쪽은 일정 정도 시기가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에 아마 한국의 우주개발 기술은 기술을 적용한 소량 제품 생산 정도에만 집중되어 있을 거라 봅니다. 

 

지금 한국의 우주개발 기술의 현 상황을 볼 때, 아마도 개발하는 연구원이 시제품을 넘어 제품까지도 제작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두 가지가 별 차이 없는 것 같지만, 특정 사양(SPEC.)을 만족하는 시제품과 그것을 넘어 양산되는 제품까지 모두 사양을 만족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발사 로켓 부품 대부분까지 개발 인력이 시제품에 준하는 제품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공밀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양을 만족하는 시제품을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최소한 10개 이상씩은 만들어야 하므로 공밀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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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백과사전>

 

사양(SPECIFICATION)을 만족한다는 것

 

인간이 만든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기술이 사양으로 드러나야지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지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기술의 사양이 구체적으로 수치화되지 않으면 좋은 기술이라고 평가받기 힘들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사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사양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제품 사양은 상온이라는 지구 땅바닥에서 잴 수 있는 온도의 수준인데, 우주공간은 그야말로 극한의 환경이잖습니까? 태양 빛이 도달하는 곳은 몇백 도까지 올라가고, 태양 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은 마이너스 몇백 도까지의 온도를 견뎌야 하니 말입니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델타 400도 이상의 온도편차에서 상변화(Phase Transition)가 없는 물질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발사한 로켓인가 셔틀 외벽에 붙은 타일 한 장이 떨어져 로켓이 폭발한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 소재가 불량이어서 고온에 노출되면 곧바로 사고로 이어집니다. 그 환경을 견뎌야 하는 물질을 찾는 것. 그나마 그런 물질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환경을 지구 위에서, 땅 위에서 만들어야 테스트할 수 있고, 사양을 만족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상변화가 없는 물질이라도 사양에 만족하는지 여부는 테스트해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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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체 이송 및 기립 완료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그럼 사양을 측정하는 장비 혹은 시스템은 어때야 할까요? 적어도 그 사양보다 높은 내구성과 기술적 사양을 갖추어야 테스트가 되겠지요? 예를 들어 섭씨 300도에도 녹지 않는 소재를 테스트하려면 장비는 301도를 견뎌야 300도에도 녹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안 봐도 훤한 가성비 극한의 공밀레 현장에서 연구원은 이런 테스트 장비까지 직접 제작해야 했을 겁니다. 로켓에 사용된 모든 부품을 말입니다. 모든 부품을 테스트하는 장비를 만들고, 사양을 만족하는지 떨어지는지를 검사해야 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밀레라고 부르는 거지요.

 

부품을 만들고, 부품이 사양을 만족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한 테스트 장비까지 만들어야 하므로 연구원들이 밤새워 일하는 것이지요. 현대 산업의 총집합체라고 하는 자동차의 부품 개수가 약 2만 개 정도인데 누리호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약 37만 개라고 하더군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37만 개의 부품이 사양을 만족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 장비가 37만 개일 것입니다. 넉넉잡아 10개 정도 부품은 한 기계에서 테스트한다고 하면 3만 7,000개, 부품 중에 극한 성능을 내는 것이 있고,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도 있으니, 절반 정도 잡아 1만 8,000개, 적당히 퉁쳐서 10,000개 정도라고 칩시다. 소위 인간이 일일이 셀 수 있는 카운터블 넘버(Countable No.)가 1,000단위입니다. 이미 여기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누가 봐도 최소 10,000개의 테스트 장비를 만들고 관리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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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합니다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년 전 개발환경에서 현재의 제품을 개발하는…

 

미국 NASA에서 떨어지는 로켓의 위치를 계산하는 세 흑인 여자 이야기를 그린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신 분은 아실 터입니다. 컴퓨터가 도입되기 전에는 속도를 가지고 떨어지는 로켓의 위치를 사람들이 손으로 다 계산했답니다. 무게와 낙하 속도를 이용한 이론적 계산에 공학적 변수들과 계수들을 조합해서 실제 지구상에 떨어질 곳을 예측하는 것. 수학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도 엄청 힘들었을 그 일들을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하지요. 

 

그런데 이 컴퓨터가 꽤 자주 오류가 일어난다고 하네요. 우리는 잘 모르는 많은 오류가 있대요. 사용하는데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리고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많은 오류가 있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블루스크린이란 괴물이 윈도에 있었잖아요. 무인 우주선, 아니 유인우주선도 마찬가지일 텐데, 하늘에 올라간 로켓이 지상의 명령에 따라 일하는데 컴퓨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 및 S/W 오류가 있으면 어떡하겠어요? 로켓에 적용하는 운영체제는 인간이 만든 S/W 중 가장 오류가 적은 S/W를 사용한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에 올라가서 블루스크린이 뜨면 올라가서 리부팅할 수도 없고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가 수십 년 전에 쏘아 올린 위성의 운영체제가 DOS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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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체 조립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인간이 만든 것 들 중, 오류가 없으려면 손과 머리가 고생해야 하고, 수많은 검증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개발환경에서 현재의 제품을 개발한다면 전체적인 생산성의 비효율화를 불러일으킬 터이지요. 지금은 간단한 코딩 한 줄이 20년 전으로 가면 몇백 페이지의 코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존 S/W를 개발하면 개발오류가 있으니, 해당 로켓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S/W를 개발해야 하고, 또 오류가 안 나게 짜야 하니 더 힘들겠지요. 윈도에 DOS 창 띄우는 것처럼 시뮬레이션 S/W 만들어서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해서 생기는 오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던데, 항우연에는 20년 전 컴퓨터만 전문적으로 모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겠지만요. 비효율이지만 오류가 없어야 하는 산업의 특성이 보여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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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밀레- 공밀레-

출처-<링크>

 

Trial & Error(시행착오)

 

이 단어는 연구원·제품개발자들에게는 일종의 숙명과 같은 것이지요. 제대로 된 실패만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말이 적용되는 곳이 바로 우주항공산업인 듯합니다. 사양을 만족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연구원들이 해야 하는 가장 많은 일은 바로 Trial & Erro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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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체 연소시험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더구나 국가적 대외비에 해당하는 각종 실험 데이터들은 해외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지요. 이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하여 공밀레가 되는 것이지요. 이 데이터가 향후 우주산업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국 엔지니어의 장점은 이런 데이터 취합 및 분석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양을 평가하는 장비의 제조도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은 아마도 전 세계 Top 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Trial & Error 작업이 한 번, 두 번, 세 번, 해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실 거 같은데, 테스트 작업에 포함된 변수가 1개, 2개, 3개, 4개씩 숫자가 늘어난다면 소위 그 테스트의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늡니다. 왜 수학에서 이야기하는 제곱의 숫자로 테스트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각 변수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테스트 횟수를 최적화하는 데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일상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문제를 풀기 위해 깨어있을 때마다 문제를 고민했던 고대 수학자들처럼 말입니다. 

 

에러가 난 원인을 검토하려면, 40번의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각 변수의 상황을 살펴보니, 10번만 시행(trial)해도 된다... 뭐, 그런 분석의 방식들이 몸에 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40번과 10번의 실험을 가르는 조직적 기준들이 명확하게 만들어져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30번의 낭비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10번 해도 될 걸 왜 30번이나 해야 하느냐는 효율적인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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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발사체 기립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10번과 40번의 시험을 결정하면서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엔지니어들이 업무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번 수만 번의 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오류들을 분석하고, 다음 테스트에 반영하는 과정을 매번, 몇 년간이나 집중해서 일해왔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단순한 공밀레가 아니라, 장인급 공밀레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들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40번의 테스트를 10번의 테스트로 줄인 결과는 기간의 짧음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비용과도 연관되어 있겠지요. 맨 처음에 다른 선진국보다 비용이 덜 들었다는 이야기는 시행착오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지 않으면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극한 환경에 진입하는 위성이나 로켓에 대한 테스트 비용은 한번 할 때마다 엄청난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런 비용을 줄이려는 엔지니어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 노력은 어떤 형태로건 우리들의 삶에 녹아들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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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추신 : 항상 몰입하는 사람들

 

요새 넷플릭스로 <우리들의 블루스>를 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이놈의 가성비는 기술뿐만 아니라, 콘텐츠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회 한 회 잘 압축된, 버릴 장면 하나 없는 감동을 선사해주니까요. 가성비란 단어는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마케팅적 관점에서 고객이 제품의 가치를 평가할 때 가장 기준이 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겉에서 보이는 가성비란 단어만 가지고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수십 년 동안 하나의 테스트에 집중해서 꿈도 테스트하는, 꿈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꿈을 꾼다는 엔지니어 이야기도 있던데, 사람이 일상에 특정한 일에 집중하면 꿈까지 연결된다고 하더군요.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는 아르키메데스가 얼마나 자기 삶 속에서 그 주제에 집중했는지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도 마찬가지겠지요. 

 

<몰입>의 저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이 일어나는 게 즐거움에서 연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예외로서 한국인의 사례를 추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은 존버하며 먹고 살려고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한국인들 삶에 즐거움이 가미된 몰입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즐겁게 몰입하시길 바랍니다. 일도, 삶도, 정치도.

 

스타워즈 덕후, 농구 덕후, 애플 덕후.. 라고 생각만하고, 실제로는 잘 모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