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작년 네팔에서 


작년이다.


규모 7.8과 7.5의 지진을 한 달 간격으로 받고, 여진이 오던 와중 기사를 보내고, 회사 보고서 쓰고, 그러는 걸로 모자라 주한 네팔 대사관 직원 구인을 했다(근데 ㅅㅂ. 5월 12일 규모 7.5 2차 지진이 왔을 때 '보낸 기사 사진 깨졌으니 다시 보내라'는 딴지 수뇌부의 요구로 계속 흔들리고 있던 집에 들어가야 했을 때, 참 난감했다. 당시 현장을 느끼고 싶은 분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라).




지진 현장에서 쓴 네팔 지진 관련 기사(링크)




내가 정신 놓으면 공포에 질린 아내와 처가 식구들 건사 못한다는 생각만 했다. 맨탈은 이미 갈린 상황이었음에도 최소한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진 직후, 처가 식구들과 집에서 빠져나오면서 집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금간 곳은 없었다. 카트만두가 원래 거대한 호수였던 곳이고, 처가는 지하수가 상당히 풍부했던 곳이라 지진의 충격을 지하수가 흡수해줬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실제로 카트만두에서 건물이 넘어지거나 무너져서 압사한 사람들은 전체 사망자의 1/8 정도였고, 그 지역은 지하수가 말라 만성적인 물 부족을 겪던 곳들이었다.

 

상수도 보급이 안 되어 있는 나라에서 생활용수는 지하수를 뽑아 올려 건물 꼭대기의 탱크에 모아놓고 쓴다.



PB120002.jpg



지진 발생 30분 만에 나왔던 네팔 정부의 재난방송에선 건물 내부는 위험하니 공터로 나와 있으라는 것이었다. 집 앞 공터에서 가장 위험해보였던 것이 저 물통들이었다. 여진으로 계속 집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을 가속했던 것도 저 물통들이었고. 쟤네들이 떨어지지 않을 거리에 천막을 쳤다. 이 천막을 칠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서 두 달을 자게 될 줄은 몰랐다.



P4260164.jpg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북한 핵실험으로 신이 진노해 지진을 일으켰다고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 하는 나라에서, 그 때문에 남한 내 불순분자들의 책동을 지켜보겠다고 눈 부라린 분의 심기, 건드릴 생각 별루 없다. 그 분 심기 건드려봐야 개선되는 것은 없고 경찰 방패로 두들겨 맞을 뿐이라는 거, 2014년 4월 16일 이후 주리줄창 겪었는데 뭐. 지진 발생 두 시간이나 지나서 국민안전처라는 곳에서 올린 게 7분짜리 지진 피해 예방 행동요령(링크)이 전부인 나라에서 뭘 바라겠는가?



그 시간 즈음이면 경상도 일대에서 집 밖 공터로 나와 겁에 질린 상태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담요와 따뜻한 물을 공급하고 있어야 하는데 공문의 줄간, 자간 맞추기 바빴을 분들에게 뭐라고 하는 거, 그거야말로 인권유린이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규모 7.8의 지진이 터졌을 때, 우리만큼의 경제적 수준에는 턱도 안 되는 나라가 자기들보다 못 사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드리는 게 '백성'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1. Operation Maitri(미륵불 작전)

 

map.jpg

 

대충 저 붉은 사각형이 처가의 위치다. 공터에 나와 있으면 비행기 이착륙하는 거, 다 보인다.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몇 시간 안됐는데 저녁 6시경에 C-130이 연달아 착륙하는 것이 보였다. SNS를 통해 확인했던 것은 인도가 국가재난대응팀 400여명을 파견했다는 소식이었다.

 

네팔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수실 코일랄라 수상은 당시 반둥회의 60주년 기념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가 있었고 재난 대응은 우리로 치면 행정자치부에서 하고 있었으나 기껏 할 수 있었던 것은 긴급 전화번호 배포와 어디로 대피하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던 상황에 네팔에서 인기 좋았던 인도의 모디 수상이 지진 발생 6시간 만에 구호물자와 구조대원 수백 명을 보냈다고 하니 모디의 만수무강을 비는 기도들이 이어졌다.

 

maitri_650_042915023827.jpg

 

Operation Maitri, 한국어로 번역하면 미륵불 작전은 인도가 네팔 지진 구호를 위해 벌인 구호작전명이다. 2015년 4월 26일 시작되었다. 이 작전을 통해 인도군은 네팔에 체류하던 170여명의 미국, 영국국적자, 5000여명이 넘는 인도인들을 인도로 대피시켰다. 동시에 각각 20명으로 구성된 18개 응급의학팀, 5명으로 구성된 12개의 엔지니어 팀을 급파해 구조를 도왔다.

 

인도 공군이 이를 위해 활용했던 기체들만 해도 꽤 된다. 일류신 -76 수송기, C-130허큐리스 수송기, C-17 글로브마스, 그리고 여덟 대의 Mi-17.

 

이를 통해 인도정부는 4일 동안(4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220톤의 구호식량, 50톤의 물, 2톤의 의약품, 40여개의 텐트와 1400여장의 담요를 실어 날랐다.

 

이 작전을 포함, 네팔 지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지진 직후 15분 뒤였다. 인도 델리도 아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던 모디 수상에 의해. 아니, 인도와 네팔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첫 구조대가 지진 발발 6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것 자체에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델리에서 인디라간디 공항까지 가는 것만 한 시간이 걸리고, 델리에서 카트만두까지 여객기로 한 시간 가량 걸린다. 느려터진 군 수송기로 날아왔다고 한다면 지진 직후 비상 걸리지 않았으면 어림없는 속도니 말이다. 그 느리고 느린 만만디의 나라에서.






2. 헌데 우리는?


 

스크린샷 2016-09-12 오후 11.01.02.png

 


이거 타이핑하고 있었댄다. 자국 내에서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18분이 지나 "피해상황 및 필요시 긴급조치 등을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 1단계를 가동" 했다고 하고 국무총리에게 대처상황을 보고했다는 게 지진 발생 이후 37분후 였다.

 

인도가 남의 나라 지진에 대응팀 발진을 명령했던데 걸린 시간 15분, 그리고 한국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중앙재난안전대책 본부 1단계 발령"에 걸린 시간 18분. 무엇보다 지진 발생 이후 2시간이 지나도록 국민안전처라는 곳에서 했던 것은 "관계부처 및 지자체와 긴밀히 협조하고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면서 피해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라"는 부처님 말씀이었댄다.

 

이러고 있던 동안 경주 시민들은 공터에 몰려나와 떨고 있었다. 그때 생각나던 것은 아래 장면이었다.



_4280183.jpg



네팔 지진 당시, 구조대로 날아온 이들을 보도하기 위해 출구 가로 막고 인터뷰 하고 있던 장면이다. 당시 네팔에 있었던 모든 한국 사람들처럼 노숙자 신세였던 대사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던 질문이 있다. 

 

"공관에선 한국 교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자국에서 지진 나도 따뜻한 물 한 잔 못 받는 판에 노숙자인 대사관 공관 직원 다섯 명이 네팔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사람 300여명에게 담요와 구급식량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추궁하던 그 장면. 그런데 걔네들이 국민안전처 장관에게 똑같은 소리 못하는 세상 아닌가? ㅅㅂ

 

유력 정치인들의 트위터를 보고 조금 암담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래의 트윗에 국민은 어떤 인상을 받을까. 


 

스크린샷 2016-09-12 오후 10.58.54.png

 


지진이 났든 말든 상관없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스크린샷 2016-09-13 오후 12.29.37.png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비난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응원하는 사람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때 여당 당대표 하겠다는 분은... 

 

캡처.JPG

 

그리고 세월호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던 한 학교.

 

CsK6HPdUkAEOlAv.jpg

 


네팔 지진 첫날 밤, 간이천막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했다. 모두 듣던 라디오 네팔에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장비가 있으니, 내 도움이 필요한 이재민들은 이 번호로 연락해 달라”는 시청자 통화가 이어졌다. 없는 거나 다름없는 네팔 정부에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도와서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이번 지진에서 "그 많은 비리 뉴스와 빨리빨리의 조급성 속에서도 민초들은 수십 년 동안, 최소한 5.8만큼의 양심들은 지켜왔구나."라는 말을 하던데, 어쩌면 그게 딱 지금의 상황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큰 사고와 많은 인명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멍청한 시스템이 그나마 가동되는 것은 양심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갈아 넣어서 돌리고 있기 때문일 게다. 참고로 이번 지진의 유일한 사망자는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아니라 100% 인재였다.



11.JPG

 


   

 

3. 한국이라면, 우리는 우째 살아남아야 하나

 

한반도에서 지진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서기 2년 고구려 때부터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지진만 1,900여 건에 달하며 파괴적인 수준의 강진인 진도 6~7 사이의 지진도 20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이 가장 자주 발생했던 16세기 이후 차츰 줄어들다가 20세기 들어 다시 빈번해지는 추세다. 2011년 4월에도 백령도 인근 해상에 진도 3대의 지진이 몇 차례 있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강도의 지진이 국내에서만 연평균 9회씩 일어나고 있다. 이런 증거만 보더라도 한반도 역시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 만약, 큰 지진이 온다면 우리는 우째 살아남아야 할까.

 

 

1) 출입구 벽 쪽에 몸을 붙이고 서 있자

 

-현재 우리나라 시내에 있는 건물 대부분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지진이 났을 때 건물에서 가장 나중에 파괴되는 것은 출입구이다. 출입구를 지탱하는 견고한 철제 구조가 무너지는 콘크리트를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다. 흔히 알려진 탁자나 식탁 밑으로 대피하는 것은 목조 건물 안에 있을 때 안전한 방법이다.

 

2) 상의나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한다

 

3)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어라(맨발일 경우, 부상당할 위험이 크다)

 

4) 반드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아라

 

-큰 지진이 나면 여진이 이어진다. 지진으로 건물이 충격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진이 발생하면 문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어져 갇히기 쉽다. 당장 대피하지 말고 이후에 출입이 쉽도록 현관과 비상구를 열어 놓자.

 

5) 가스와 전기는 잠금, 수돗물을 조금 틀어놓아라

 

-여진으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건물에 고립될 수 있다. 물을 확보해야 한다.

 

6) 화재와 먼지에 대비, 수건을 적셔 둬라

 

 

지진이 났을 때는 정신 없다. 어차피 정신 없을 테니 이 정도만 확실히 지켜도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다. 다만 무조건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은 가장 나쁜 판단이다. 도시에 지진이 났을 때 가장 위험한 경우는 지진 그 자체가 아니라 빌딩에서 떨어지는 유리창과 건물 파편이기 때문이다.

 

실외에 있을 때는 고압전선, 전봇대 근처는 반드시 피하고(전선이 끊어져 땅에 떨어지면 감전될 수 있다)혹시나 공터 같은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이동하기 바란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안전한 장소는 사방에 아무 것도 없는 개활지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사는 분들에게는 이런 곳을 찾기 어려울텐데 주위를 둘러보고 넘어지기 쉬운 물체, 쓰러지면 큰일나겠다 싶은 곳은 피하면 된다는 소리다.

 

사방 천지에 금이 가 있는 댐 앞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청테이프 삼아 무너지는 사회를 붙잡고 있는 한국에서, 이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석 때 우울한 기사를 보내는 것 같아 미안하다. 아무쪼록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의 저자,

SamuelSeong 

트위터 @ravenclaw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