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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역사에든 극적인 순간은 많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역사도 그렇다. 그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3.1운동 직전의 최린과 신철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에는 그보다 더 악명 높은 조선인 형사가 하나 있었다. 신철. 독립운동가 때려잡기로는 야차보다도 더한 놈이었지만 옷은 늘상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다닌 독특한 자였다. 그런데 천도교 인쇄소에서 열심히 인쇄 중이던 독립선언서가 이 사람에게 발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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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 사장 이종일의 얼굴은 백짓장이 됐을 것이고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을 골고루 주워 섬기며 고춧가루물을 코로 마실 생각에 다리에 힘부터 빠졌을 것이다. 당장 물거품이 될 거사가 아깝기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신철은 독립선언서를 훑어보더니 한 장만 들고 휘적휘적 나가 버렸다. 이종일은 나는 듯이 최린한테 달려갔다. 천도교 간부 최린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도 있었다. 한 장만 가져갔어? 당장 경찰 불러 인쇄소 수색하고 사장 달아매서 고춧가루물 뿌리지 않고 그냥 갔다고? 최린은 신철을 초대한다. 그런데 또 이 신철은 두루마기를 휘적거리면서 초대에 응한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최린은 신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조선 사람이오 일본 사람이오.”


 

신철에게 이 질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망한 지 10년 되어 가는 나라고 일본의 녹을 먹고 있지만 아직 조선인들이 자신을 일본인이라 자처할 세월은 아니었다. 신철은 어렵게 답한다. “조선 사람입니다.”

 

최린은 돈 5천 원이라는 거금을 내밀며 며칠만 입을 다물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신철에게 이미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극적인 전설에 따르면 신철은 일어나 최린에게 침묵의 큰절을 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내 입에 달린 일이라면 결행하시오.” 이후 일정에 없는 만주 출장을 떠났고 사전에 거사를 탐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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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에게 던져진 류의 질문은 쉽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말하기로야 무엇이 어렵겠으나 그 말에 걸맞는 행동을 하기란 귀찮고 고단하며 위험하기까지 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신철뿐 아니라 각 개인 개인,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비슷한 질문을 받게 되고 그에 대한 응답이 역사를 결정한다.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당신은 공화국의 국민이요? 여왕의 신민이요?”


 

말은 쉽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으로 규정된. 그러나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통치자는 그 권력을 사유화했고 ‘오랜 인연을 맺어 온’ 정체불명의 여인을 위해 그걸 사용했다. 이를 용인한다면 우리는 공화국의 국민이 아니다. 그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신철이 독립선언서를 읽고 얼마나 고민했을 것인가. 나는 조선인인가 일본 경찰인가. 우리는 오늘 그 고민을 해야 한다.


질문은 계속된다.



 “당신은 사람이요 개 돼지요?”

 


역시 답은 쉽다.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러나 이 정권은 국민을 개돼지 취급했다. 물대포로 사람의 머리를 부숴 놓고, 그 모습을 4천만이 지켜본 상황에도 끝까지 병으로 죽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때린 것일 수도 있다며 굳이 머리를 갈라보자고 우겼고, 수백 명 생때같은 목숨을 몰아넣은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고 외면하고 그 울부짖음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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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하나 권좌에 앉혀 두고 자기들끼리 해먹을 것 다 해먹고 자빠졌으면서도, 막상 일이 드러나니 우리는 몰랐고 최순실은 처음 들었다고 거짓말이다. 대통령 독대 한 번 못한 정무 수석, 외교 안보 수석이 단물 빨아먹는 동안 최순실은 재벌들에게 돈 뜯고 다녔고 그 피노키오 대통령은 재벌들을 ‘선의’로 격려하고 있었다. 국민을 뭘로 보고? 개돼지로 보고.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캐묻는다. “사람이냐 개 돼지냐니까.” 시발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한다. 광화문으로 가자. 11월 12일. 박근혜를 끌어내리지 못하면 우리는 여왕의 신민이자 개 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관절 이 지경에도 저 사람이 권좌에 있다면 외국인들은 이 나라를 뭐라 볼 것이며 우리는 무슨 낯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외국 관리 앞에 들이밀 것인가. “오우 코리아?” 하면서 싱긋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자기들끼리 “저 바보들” 하면서 낄낄대는 소리를 애써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린 그런 나라 국민인가? 그런 개돼지인가?

 

돌아가서 3.1 항쟁은 그래서 역사적이다. 고등계 형사 신철까지도 자신은 조선인이라 되뇌며 그 입에 자물쇠를 단 가운데 조선 민족은 역사적인 3월 1일을 맞게 된다. 정보력 대단하고 치안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자부하던 일본 경찰은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의요 생명인” 날이요 “한강물이 다시 흐르고 백두산이 높았던 날”, 백정부터 기생까지 조선 독립을 부르짖으며 떨쳐 일어서고, 저 멀리 인도의 네루가 옥중에서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의 청춘 남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는 것은 네게 큰 교훈이 되리라 믿는다.”고 했던 그 위대한 날로 밝았던 것이다.

 

다시..... 다시..... 위대한 나라를 위하여. 아니 위대할 건 필요 없고, 민주 공화국을 위하여, 개돼지가 아니기 위하여

 

광화문으로 간다.




산하

편집 :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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