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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우리는 '최순실'을 정산 받았다

대한민국은 '작은 사회'의 집합이다




 

이 기사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의 기저를 추적하는 3부작의 마지막이다. 1편에서는 무엇이 대한민국 유권자로 하여금 이명박과 박근혜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했는지를, 2편에서는 한국인의 일상에 침투한 작은 사회가 어떻게 부조리를 방조하는지를 밝혔다. 마지막 편에서는 보다 거시적으로 역사적 흐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1. 시스템은 죄가 없다

 

첫 번째 기사에서 확언했듯 보수세력은 현 사태의 근원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미 노태우 정권의 내부보고서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내연관계를 밝히고 있다. 프레이저 보고서 이후 사이비종교 세력의 일파가 박근혜 현 대통령을 완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극비가 아니라 대외비(공공연한 비밀)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전 주한미국대사 알렉산더 R. 버시바우의 보고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에 관한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밝힌다. 물론 유권대중은 들은 적이 없다. 소문의 내용은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의 치열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을 보고하는 대목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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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스템은 30여 년 간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대통령제를 걸고넘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스템의 실패는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고 논점일탈을 하기에도 좋다. 그러나 대통령제를 포함한 한국의 시스템은 물리적으로나 법제적으로나 매우 정밀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세계 1위의 치안과 신속 정확 친절을 자랑하는 공공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한국인들이 겪는 초유의 사태는 우리 사회의 타락의 결과다. 제헌헌법의 진보성과 근대성을 보면 이 나라가 70년 만에 이렇게 타락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을 정도다. 기사 2편에서 밝혔듯 나는 이 문란의 기저가 군부독재라고 믿으며, 타락의 주체가 누구이며 어디까지인지도 고찰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수백 년 후의 역사학도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조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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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가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박정희-전두환 시기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냉정히 말해 군벌국가다. 냉전시기에 국한해 보면 한반도는 냉전 주체인 미국과 소련의 입김아래 하위의 현지 군벌이 지배하는 지역이었다. 이북은 계속 군벌지대로 남은 반면 우리의 경우 민주화의 단물은 보수 세력에 선점되었다. 그들은 사이비종교 세력과도 거리낌 없이 결탁했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통일신라, 고려, 조선처럼 백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안정된 시대에 속해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갑작스런 멸망이 이상하지 않은 후삼국시대에 더 가깝다. 북한은 한반도 역사 발전에 긍정적 기여를 할 가능성이 낮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전근대성을 삼키고 소화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의 몫이지만 최순실 사태를 보면 정상국가로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남북한은 중국의 오대십국시대나 오호십육국 시대의 수명 백 년 이하짜리 왕조를 연상시킨다.


대한민국은 결코 만만치 않은 시스템을 지닌 근대국가지만 스쳐지나가듯 명멸한 왕조들도 이전 통일왕조의 조정과 법제를 지닌 문명국이었다. 그들은 문명을 누리길 기대했으되 문명을 준수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예를 들어 50여년 만에 멸망한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국가기구는 기원전에 800년 간 존속한 주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선진적이다. 문명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체화되지 않으면 기능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중국 드라마 <랑야방>은 남북조시대 나라를 모델로 한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나 눈길을 끈 화려한 옷차림은 양나라의 복식을 참고했다. 그런데 시청자에게 보여준 결과물은 기껏 고증해놓고도 실제보다 검소하게 수정한 것이다. 양나라 귀족층의 사치는 단 두 세대 만에 극에 치달았다. 남성들도 하이힐을 신었고 실내에서만 생활한 그들은 혼자서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다. 대소신료들이 조정에 끌려온 말이 우는 모습을 보고 놀라 호랑이라고 소리친 일화는 유명하다.


양나라의 귀족들은 지위를 누리기만 했지 군역(軍役)과 납세 등 기본적인 의무를 방기했다. 사회시스템을 유지할 책무는 오직 피지배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양나라는 제도개혁을 통한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일순간 융성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특혜는 신성시되고 의무는 천시되었다. 지배층은 발전의 속도만큼 빨리 썩어간 시스템을 방치해 국운을 화무십일홍으로 만들었다. 이쯤하면 왜 굳이 양나라를 예로 들었는지 독자제위께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3. 누가 체제를 수호할 것인가?


한국의 보수 세력이 자본주의-민주주의를 다루는 방식과 북한의 김씨 왕조가 사회주의를 다루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물론 북한이 비할 바 없이 심각하다. 그래서 그들은 체제 유지에 사활을 건다. 그에 반해 한국의 지배층은 이 체제의 맷집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그들은 체제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묵인하고 조장한 전력이 그 강력한 증거다. 그들은 체제가 알아서 수호된다고 믿는 듯하며, 그래서 체제 수호적이 아니라 체제 ‘사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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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는 결코 길지 않다. 지금 남북한으로 나뉜 한반도의 현실은 역사적으로 후삼국시대와 유사하다. 역사의 일정한 패턴에 대입하면 남북 어느 쪽의 멸망도 의아하지 않다. 대한민국이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이상 존속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낮다.

 

오백년 후의 역사에서 박근혜는 진성여왕 이하로 기록될 것이다. 진성여왕은 섹스파트너를 ‘서방님’이라 부르며 신라의 멸망을 재촉했지만 적어도 금치산자는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동진(東陳) 말의 백치 황제 사마덕종 쯤에 위치할 것이다. 역사엔 이런 류의 지도자가 망국의 전조로 등장한다. 지도자가 나라를 망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이런 지도자의 출현을 방조하는 시스템은 이미 내부동력이 다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4. 죄과와 책임은 동의어가 아니다


나는 두 번째 기사에서 혁명의 기시감을 느낀다고 썼다. 과장도 선동도 아니다. 애써 낙천적으로 표현한 진심을 여기서 더 냉정하게 기술하겠다. 새누리당을 위시한 보수 세력이 사이비종교집단에게 국가를 맡기고 국정농단에 협조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혁명은커녕 멸망의 전조에 가깝다.


체제란 것이 결코 짧지도 않다. 나는 혁명은 물론이고 현 체제의 종말도 바라지 않는다. 나약한 개인으로서 그만한 격변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앞서 밝혔든 물리적, 법적 시스템은 죄가 없다.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21세기 문명의 규준을 준수하는 게 어색하지 않도록 사회의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분노와 별개로, 이 책임의 태반은 어쩔 수 없이 야권이 지고 있다.


야권이 무슨 죄를 지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박근혜로 포장된 사이비 정권 출범을 막지 못한 무능을 성토할 수는 있겠지만 새누리당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죄과와 책임은 동의어가 아니다. 일은 벌어졌고 책임은 야권이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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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권에 바란다


나는 그간 의식적으로 여권에도 대화의 상대가 있고 최소한의 소명의식이 있다고 믿어왔다. 상대 진영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는 행태는 진보를 방해한다고 믿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야권 열성지지자의 도그마보다도 더 끔찍한 실체를 확인한 지금, 다급히 야권에 언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야권이 끌어내릴 상대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아니다. 박근혜의 정치적 생명이 이미 끝난 상황에서 하야는 경품에 불과하다. 야권은 보수세력 전반의 실체를 국민의 시야 안으로 당겨 와야 한다. 그리하여 보수세력을 사이비종교 세력과 함께 민심으로부터 영구적으로 분리시켜야 한다. : 이권 연장을 위해 무당 정권 출범을 기획하고 용인한 지난 이명박 정권, 기꺼이 도구가 되어준 보수언론, 새누리당 정치인 거의 전부, 여전히 잔존하는 군부독재세력의 커넥션, 그리고 검찰, 방송, 국가기관의 부역자들이 얽힌 하나의 유기체를 말이다.


야권은 부지런하고 집요해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현재의 보수세력을 처벌할 뿐 아니라 권력의 가시권에서 그들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야권이 보수와 진보로 재편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군부독재 이후 부조리에 순응하는 법을 학습해야 했던 한국인의 내적 모순이 회복된다. 그 과정을 통해야만 우리는 현대문명을 준수하는 동시에 온전히 누릴 수 있다.




6. 절호의 기회, 절명의 위기


젊은 층이 부르는 대한민국의 별명인 ‘헬조선’에서 방점은 ‘헬’이 아닌 ‘조선’에 있다. 근대국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사국가’라는 또 다른 별명과 일맥상통한다. 반복해 말하지만 물리적 시스템은 죄가 없다. 최순실 사태가 보여주듯 신뢰성을 회복하지 못한 사회의 시스템은 치명적인 지점에서 멈춘다.


야권은 대한민국의 존속을 위해 무혈혁명이자 물리적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무형(無形)혁명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내 노파심이겠지만 대통령 하야와 정권교체가 야권의 당면과제를 넘어 지상목표일까 두렵다. 이 기회마저 놓칠 수는 없다. 이토록 국가의 민낯이 드러난 사태를 맞이해서도 혁명적 변화가 추동되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절망에 더욱 무감각해질 것이고 또한 그 무감각에 절망할 것이다. 그러면 70년의 짧은 체제는 몰락을 향해 기울어질 것이다.


초기의 혼란을 다잡는 데 성공한 체제는 오래 간다. 새로운 체제가 탄생한 후 극렬한 반동과 갈등을 맞는 시기가 보통 50년에서 100년 사이다. 봉건왕조는 물론이고 근대에 출현한 체제도 그렇다. 야권과 국민은 각자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허나 냉정히 보면 절명의 위기다. 대한민국의 몰락은 생각보다 길고 고요히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결론은 회복도 몰락도 지금이 변곡점이라는 것이다.


사이비종교인이 한 나라를 사유화한 사태는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굵은 글씨로 기록될 것이다. 훗날 역사책을 볼 후손들과 달리 결말이 어찌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조롱받아 마땅하겠으나, 우리 역시 놀라고 분개했음은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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