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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론조사는 어떻게 되가냐


주말까지 나온 전국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힐러리가 트럼프를 약 3% 가량 앞서고 있다. 세 차례 있었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힐러리가 압승을 거두고,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문이 잇따라 터져 나옴에 따라,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힐러리가 무난하게 당선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월 말 FBI 국장이 힐러리 이메일 스캔들을 재수사하기로 결정하면서 힐러리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기존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선거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2. 얼마나 접전이냐?


지지도만 놓고봤을 때 3%는 굉장히 적은 차이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결과 사이에 늘 오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올해 총선과 영국 브렉시트 차이에서 경험한 바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는 2.7% 정도 오차를 보였다(오바마가 예상외로 선전, 훨씬 큰 폭으로 낙승을 거뒀다). 이 정도 오차가 힐러리에게 유리하게 적용한다면 6% 가량의 낙승이 될 수 있지만, 트럼프에게 간다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3. 당선확률은 어떠냐?


보통 여론조사기관들은 힐러리의 당선에 높은 확률을 매기고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95%, 뉴욕타임즈는 85%, CNN이 80%의 확률을 매기는 등 대체로 80% 중반 대의 확률로 힐러리의 당선을 예측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으로 예측한 네이트실버도 65%의 확률로 힐러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참고로 네이트실버는 2008년도 대선 때는 딱 한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승자를, 2012년도 대선 때는 모든 주의 승자를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스스로 65%면 엄청나게 헷갈리라는 거라고 인정했고(오바마 때는 90% 이상이라고 했다), 후보 경선 때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가 대차게 까이는 등 최근 삽질을 했다. 이번 대선은 그만큼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4. 여론조사는 접전인데, 왜 당선확률은 이렇게 차이가 나냐?


미국의 선거제도가 괴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총득표수로 승자를 정하는 게 아니라, 선거인단제도로 대통령을 뽑는다. 쉽게 말해, 주별로 ‘땅따먹기’를 한다 생각하면 되겠다.


1) 각 주마다 상원의원 수+인구수에 따른 보정값(하원의원 수에 비례)만큼의 선거인단수를 배정
2) 각 주에서 더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자기 것으로 함
3) 최종적으로 뽑힌 선거인단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




네브라스카와 메인 주의 경우 예외 조항이 있는 것 같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5. 선거인단 제도 좀 다시 설명해봐라


경기도에 100명을 배정한다고 가정하겠다(인구수가 적은 강원도는 한 10명 정도 배정되겠지?).


경기도에서 A후보가 51%, B후보가 49%를 득표 했을 때, A후보는 경기도의 배정된 선거인단 100명을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 이 때 B후보가 받은 49%는 사표가 된다.


이런 식으로 후보를 뽑으면 상대적으로 작은 주도 중요해져서, 각 후보는 그에 맞는 공약을 세운다. 미국 같은 경우엔 워낙 땅덩이가 크니까, 농업이 중심인 주, 공업이 중심인 주, IT가 중심인 주가 나뉘고, 대선후보는 이들을 통합하기 위해 균형잡힌 정책을 내어야 한다.


선거인단으로 뽑힌 사람이 자기 측 후보를 배신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철저한 사상검증을 한 뒤 열성 지지자를 선거인단으로 뽑는데다가, 선거로 뽑힌 개인의 독단으로 이를 뒤집을 시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선거인단이 배신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아시는 분 있음 달아주시라). 이상하고 뭔가 허술해보여도,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작동해왔다.



6. 왜 선거인단 제도가 힐러리에게 유리한디?


미안하다. 얘기가 샜다. 돌아와서, 힐러리는 대선 초반부터 이런 땅따먹기 룰에 맞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소위 ‘방화벽(Firewall)’으로 불리는 힐러리 우세주들로만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과반수를 채웠다. 보통 미국 대선에서는 플로리다와 같은 경합주(Swing State)에서 승패가 갈리기 마련인데, 힐러리는 다수의 경합주를 초반부터 자기 편으로 착실히 만들어 우세주로만 과반을 채우는 필승 전략을 세운 것이다.


아래는 네이트실버가 운영하는 통계전문사이트 <FiveThirtyEight>에서 만든 인포그래픽이다. 미 대선에 관한 최신정보를 가장 잘 올리는 곳이기도 하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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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ThirtyEight>

파랑색일수록 힐러리 지지도가 높고, 붉은색일수록 트럼프의 지지도가 높은 주다.

힐러리가 세운 방화벽이 과반, 즉 가운데 점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은 게 보인다.



7. 트럼프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경합주인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 등을 싹쓸이하고, 힐러리가 세운 방화벽을 허물어 일부를 자기편으로 가져와야 한다. ‘만약’이 많이 붙기 때문에 트럼프의 당선확률이 각종 예측모델에서 낮게 나오는 것이다.



8. 접전지역은 어디인가?


가장 중요한 곳으로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를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50대 50의 확률을 보이는데다, 선거인단도 상대적으로 많이 배정되어 있다(각각 29명, 19명). 힐러리가 한 군데라도 자기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트럼프가 힐러리의 방화벽을 허문다고 하더라도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 그만큼 트럼프에겐 아픈 곳이고, 힐러리가 공을 많이 들인 지역이기도 하다.


큰 그림을 봤을 때, 정말 중요한 싸움은 힐러리의 방화벽 중 한 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뉴햄프셔는 규모가 작으니 넘어가더라도, 힐러리가 자신해 온 펜실베니아와 미시건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는 기적을 연출한다면, 트럼프가 이기는 게 꿈만은 아닐 것이다.



9. 트럼프에게 절망적이냐?


2번에서 언급한대로, 전국여론조사에서 차이가 아직 크지 않다. 트럼프가 뒤지고 있는 주의 숫자는 많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지난주 이메일 스캔들 덕에 트럼프의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터라 실제 투표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트럼프는 적극투표 층에서 경쟁력이 있는 후보라는 게 공화당 경선에서 입증된 바 있다. 침묵하는 다수의 백인 노동계층이 그의 편이고, 이들은 불리한 트럼프를 위해 투표장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공화당의 전통적 지지들은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이기길 갈망하기 때문에 오히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걸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트럼프가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주에서 고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힐러리는 고학력자들과 유색인종사이에서 인기가 높다(중국계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모양새지만). 가장 큰 물음표는, 이들의 지지가 과연 득표로 이어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을 수 있다. 젊은 세대 역시 인기가 높았던 버니 샌더스를 꺾은 기성 정치인 힐러리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고, 연이은 이메일 스캔들에 힐러리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트럼프가 주구장창 힐러리에게 네거티브 공세를 쏟아붓는 이유는, 어차피 자기편 지지자들은 그의 독설의 길들여져 있으니 상관없다는 계산과 진흙탕 선거가 될수록 투표율이 낮아져서 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거다. 트럼프는 멍청하지 않다. 그는 멍청한 척을 하는 와중에도 대중의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겨온 인물이다.



10. 투표에 따라 어떤 영향이 있을까?


단기적으로 트럼프가 되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이다. 트럼프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돌발발언이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힐러리는 오랫동안 월가의 사랑을 받아온 후보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대로, 나는 트럼프가 완전히 멍청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차례 사업 실패와 성공을 겪은 인물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언정 박근혜 대통령처럼 누군가에 휘둘릴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MB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권력을 스스로를 위해 쓰는(대통령을 비즈니스 모델로 본다던가, 스스로의 EGO를 채우는데 사유화한다던가) 꼼꼼한 사기꾼이 될 수는 있다고 본다. 금치산자는 아닌 관계로 누가되던 당분간은 안정을 찾을 것이다.


문제는 누가되고 뭘하든 간에, 미국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둘 다 역대급으로 인기가 없는 데다가, 막대한 부채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라는 폭탄 두 개를 앉고 취임한다. 미국의 인프라가 아주 낙후되었기 때문에 돈 들어갈 곳도 아주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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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4년 안에 미국에 경제위기가 찾아오리라는 데 500원 건다. 2008년도가 마지막이었으니 시기상 경제위기가 한 번쯤 다시 찾아올 때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럽,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안정적인 나라를 찾기가 어려워서, 한곳에서 터지면 여러 곳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해야 할 일 졸라 많을 텐데, 힐러리든 트럼프든 욕 많이 먹을 듯 싶다.



추신


쓰고 보니 힐러리 얘기를 너무 안 해서 몇 자 적어 본다. 나는 힐러리가 굉장히 똑똑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그녀는, 트럼프의 네거티브 전략(그라운딩 기술)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정책토론(아웃복싱)을 하다가 결정적인 카운터 한방(1차전에서 그녀는 트럼프의 세금문제를 언급했다)을 날리면서 착실하게 포인트를 쌓았다.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는 게 명확했다. 나는 그녀의 판단력을 존중하지만 이런 계산적이고 정치적인 모습이 그녀를 매력 없는 후보로 만든 것 같다. 열정과 신념이 빠졌기 때문이랄까.


선거권도 없는 외국인노동자인 나에게 정치인의 매력같은 건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겁이 난다. 북한이 미국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된다면(대륙간탄도미사일 및 SBML과 같은 전략무기), 그리고 협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비싸고 불완전하게 이 리스크를 제어하는 것보다 공습이라는 수단을 통해 확실하게 이 위협을 제거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판단이 선다면, 그녀가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된다. 한국 대통령이 박근혜라서 더 겁이 난다.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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