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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고, 흔히 ‘탄돌이’라 불리는 초선 국회의원이 대거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그 이후로 3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2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탄돌이 중 많은 수가 국회에 남아 이젠 중진의원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04년 탄핵 때 학생이었던 터라 자세한 건 잘 모릅니다. 김기춘이 탄핵소추안을 작성했단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탄핵소추안 이면에 있는 지역주의에 근거한 담합 등도 알지 못했죠. 매스미디어가 집중적으로 찍어낸,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의 국회에서의 육탄전을 보고 느꼈던 실망 정도만 뿌옇게 남아 있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이 모여 내린 선택이 아닌 감정적이고 비합리적 야합이 만들어낸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17대 총선 역시 ‘한나라당 심판론’과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따위의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의 눈에도 위태위태하게만 보였던 참여정부는, ‘참여정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국민과 단절되어갔습니다. 그것을 만든 이들은 지금의 높으신 분들과 삼류 찌라시 수준의 악의적 기사를 일면 톱에 싣는 매스미디어였단 것은 확실히 기억합니다. 정치는 그렇게 청소년들과 거리를 벌려갑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을 시작으로 20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청년세대에게, 정치란 가까이하면 할수록 실망스럽고 무기력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던 풍경은 시대의 저편으로 영영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김 총수는 정치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닥치고 정치’를 외쳤지만, 나꼼수 열풍으로 시대를 바꿀 시기가 아니었나 봅니다. 유시민 작가가 정계를 은퇴한 뒤 ‘여전히 우리 국민은 구원자를 기다린다’는 말을 했지요. 박정희의 경제, 박정희의 정치, 두 가지의 키워드가 지난 9년을 양분하였고, ‘대한민국을 좀 더 살기 좋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고문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청년세대의 일부는 분노했고, 일부는 회피하고, 일부는 자조하는, 각기 다른 형태로 정치적 선택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결과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헬조센’이, 청년세대의 별칭은 ‘5포세대’가 되었습니다. 청년세대가 불의의 피해자라는 게 아닙니다. 18대 대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68%였습니다. 20대가 전체인구에서 최저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생각하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마저도 17대의 42%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높아진 수치입니다.


청년들이 스스로의 의무와 권리를 방기하는 사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좁아져만 갔습니다. 정치와는 한 발 떨어진 상황에서, 그들을 조롱하고, 회피하고, 야유하는 등 최소한의 관심은 이어졌지만, 그것들은 소비적 유흥에 불과했지 투표장으로 달려가게끔 하는 원동력은 되지 못했습니다. 연일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반값 등록금 공약이 한나라당과 박근혜에게 두 번이나 무참히 파기 당한 것은, 낮은 투표율이 만들어 낸 부메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저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낍니다. ‘왜 그때 더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정치병 환자라는 낙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왜 외면해왔나’. 시곗바늘은 점점 뒤로 흘러가,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했던 예전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이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물론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진 촛불집회의 주인공은 청년세대 뿐 아니라 연단에 올라 당찬 연설을 하던 초등학생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 모두입니다. 청년세대의 힘이 이것을 주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중장년층, 어르신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탄핵은커녕 검찰에서 마무리됐을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번엔 나가도 빨갱이 소리를 안 들을 수 있겠구나!’ 혹은 ‘이번엔 뭔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에 편승한 부분도 있습니다. 누구도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엔 참여하기 싫어하죠. 책임과 의무와 권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민주화의 달콤한 열매를 책상머리에서 그저 지루한 이야기처럼 흘려보내던 세대들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한다.”는 청년들의 외침은 이명박근혜 정권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던 데에 대한 반성이 숨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9년이 개판이었단 사실은, 솔직히 최순실 사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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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린)


다만 현재 진행형인 촛불 혁명 과정에서, 청년세대의 가장 큰 장점인 ‘본능적으로 변화를 직감하고 일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것은 인정할 만합니다. 이화여대는 총장을 쫓아냈고, 집회장은 축제장이 되었으며, 주갤러는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는 이 모든 현상. 대학가의 동맹 휴업이나 시국 선언보다 시대에 더 큰 바람을 불러온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는 이미 죽어버린 과거에 파묻혀 사는 저들에게 있어 대응하기 힘든 것이었을 겁니다. 대학가에서 민중가요 대신 아이돌 노래를 떼창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요. 또 청문회 자리에 있는 국회의원에게 다이렉트로 제보를 하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더는 여의도와 청와대가 읽지도 않는 댓글을 달아봐야 의미가 없다’ ‘정치권 또한 우리가 단편적으로, 소모적으로 뱉어내는 불만엔 귀 기울이지 않는다’ 등 수 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비싼 교훈으로 이들은 정치 제1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조짐은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휘발성에 불과하던 정치에 대한 관심은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수사적인 표현들로 가득 찬 기자회견이나 우스꽝스러운 연극 같은 정치 행위들과는 전혀 다른, ‘정치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필리버스터를 하루 종일 시청한 사람들. 그 수십 시간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편집해 짤방으로 만들어 뿌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학생이나 취준생을 가장한 백수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에게 정치란 저 끝, 절벽으로 몰려 억지로 멈춰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라는 짤방으로 표현 가능한 암울한 현재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치적 변화에 있다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불가능할 것 같아 손대지 않았던, 주지적 사실로의 회귀였습니다. 물론 필리버스터 이후에 있던 19대 총선 역시 20대가 최저투표율을 기록했지만 18대 총선에 비하면 꽤 높아졌습니다. 필리버스터가 청년세대에게 가져온 충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리버스터 후반부에 정치인들이 네티즌의 댓글을 읽어주던 행위는 이번 '청문회 제보'의 전초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탄핵 반대 명단을 공개한 사람은 표창원 의원이지만, 법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도 국회의원들의 번호를 뿌린 사람은 익명의 대학생이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각종 짤방을 이용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도 청년세대였고요. 그것은 곧 전 국민을 참여하게 하는 좋은 홍보 수단이 되었습니다. 정치와 가장 떨어져 있던 세대가 정치와 전 국민을 연결해주는 세대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회의적인 부분이 많지만, 김기춘이 가장 깔보고 무시했을 세대들의 반란이 평화적이면서도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제법 통쾌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청년세대를 콕 짚어 글을 쓰는 이유는, 청년세대가 이번 혁명과정에서 졸라, 특별히, 공을 세워서가 아니라, 제가 아는 게 이 세대뿐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짐을 어깨에 올려두었지만 그것을 견디고 거리로 나온 중장년층, 광화문까지 오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님에도 기꺼이 추운 바람을 맞으신 어르신들. 김진태의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촛불이 꺼지지 않았고 지금도 꺼지지 않는 것은 윗세대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핵 가결 후 국민이 승리했다는 민주당의 논평은 상황을 정확하게 요약한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19대 대선, 나아가 그 이후까지, 지금의 청년세대가 꾸준히 정치에 대한 관심과 감시를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최근 정국은 비교적 단순해졌지만 산재해 있는 문제가 산더미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전히 각 커뮤니티의 반응은 살아있고, 오히려 더 불타고 있습니다. 각자의 삶이 있으므로 촛불을 지키는 인원은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겠지만, 조금이라도 헛짓거리를 할 경우 여지없이 타오를 것을 쉬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세대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든든히 지켜주셔야 합니다. 당장 저희 아버지께서 “이젠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다.”고 말씀하신다면, 전 내적 갈등에 휩싸인 채로 광화문에 나설 것이고, 어쩌면 몇 주 이내로 또 다시 회피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청년세대로 퉁치기엔 미안한 청소년들의 참여입니다.




제가 여의도 앞에서 환호를 지른 것처럼, 교복 입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환호를 지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대통령 탄핵 사실에 환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마쳤다는 걸 의미합니다. 전국 고등학교가 다 이런 광경은 아니었겠지만, 최소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며 쉬는 시간에 꽤 왁자지껄 떠들었을 것이란 건 예상할 수 있습니다. 교복을 입었을 때 이명박의 당선을 넋 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우리 세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체험. 작금의 상황을 겪고 난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얻게 될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분히 희망적입니다. 지금의 청년세대와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심 쓴 셈 치고 ‘탄핵세대’라는 통 큰 네이밍을 할까 생각했습니다만, 여전히 청년세대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기에, 하나로 묶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한 것도 일부 청년들이며, 이런 것들과 무관한 채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도 일부 청년입니다. 한 가지 이름으로 수많은 구성원들을 욱여넣는 것 또한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박근혜 탄핵이 청년세대 모두에게,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전기적 상황으로 인식된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17대 총선의, 이른바 ‘탄돌이 국회의원’보다 우리 사회에 앞으로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란 것도 자명합니다.


그렇기에, 탄핵이 청년세대에게 갖는 의미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의미가 그저 한 줄 교과서에 쓰이는 무가치적 교훈으로 끝나지 않게끔 하는 것, 그것은 모두에게 달린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를 청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기에, 청년세대가 더 맘껏 날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87년 민주화 세대가 느꼈던 노태우 당선 같은 해괴한 좌절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끔, 끝까지 힘을 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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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이 글은 헌법에 대한 관습적 이해에 따라 대통령의 탄핵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탄핵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빵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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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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