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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땀을 쥔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매우 재미있는 야구를 보았다. 기아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2차전. 오랜만에 만나는 멋진 명품 투수전이었다. 최고의 투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정상의 자리를 위해 맞붙은, 한국 프로야구 투수전의 백미로 오랫동안 회자될 명승부였다. 어젯밤 두산을 상대로 한 양현종의 1-0 완봉승은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이었다.

 

팬들은 9회말 쓰리아웃이 되는 순간까지 경기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승리를 거둔 기아의 팬들이야, 말할 수 없을 만큼 쫄깃한 긴장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패배한 두산의 팬들 입장에서도,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큰 아쉬움과 아픔을 느낄 만한 패배였지만, 두산 팬들도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으리라 본다.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좌완투수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투수전. 어제의 피 말리는 투수전은, 왜 1-0 경기가 이른바 케네디스코어라 불리는 8-7 경기보다 더 재미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투수들의 공 하나하나에 집중해 박수를 보내고, 안타 한 개에 열광하고, 선수들도 관중들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뜨거운 경기였다.

 

장원준의 영리한 투구에 기아 타자들의 방망이는 맥없이 돌아가기 일쑤였다. 특히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오다 오른손 타자의 발등쪽으로 휘며 가라앉는(왼손 타자에게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은, 기가 막힌 결정구였다. 김주찬이 때린 두 개의 병살타 모두, 이 공을 쳐서 기록한 것이었다. 김주찬 외 대부분의 타자들도 이 공 때문에 애를 먹었고, 이 공을 피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서둘러 배트를 내밀어준 덕분에, 장원준의 역투가 더 두드러질 수 있었다.

 

양현종의 투구는 한마디로 그뤠잇이었다. 스스로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선수생활 가운데 가장 힘겹게 던졌고, 최고로 잘 던진 경기였다. 9회까지 시속 147~148km의 스피드를 유지한 직구는, 힘 있게 타자들의 배트를 밀어내며 포수의 미트로 묵직하게 꽂혔다. 강약 조절을 위해 적절하게 섞어 던지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두산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었다. 경기가 종반을 향해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기아 선수들에게, 이른바 우주의 기운으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경기의 양현종은, 다른 말이 필요 있을까? 그는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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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는 1점밖에 나지 않은 경기였지만, 승패를 결정할 만한 몇 차례의 장면이 있었다. 세 개 꼽아본다. 그 세 번의 상황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손에 땀이 고인다. 아~~ 부르르.



첫 번째 장면 - 4회말 버나디나의 견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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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투수 장원준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하던 기아. 그나마 주자가 한 번씩 나갈 때마다, 김주찬의 깔끔한(?) 병살타 두 개로 공격은 무위에 그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4회 첫 타자 버나디나가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갔다. 광주 챔피언스필드는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리그에서 달리기라면 알아주는 시즌 도루 2위의 버나디나가 1루 주자에, 타석에는 어쨌거나(?) 홈런타자 4번 최형우가 들어선 상태였다. 관중석에서는 “최형우 홈런!”이라는 응원의 함성이 뜨겁게 터져나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야구장은 조용해졌고, 곧이어 두산의 응원석에서 “와아~~”의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버나디나가 1루에서 견제사를 당한 것이었다. 의욕이 넘쳐 보통 때보다 많은 거리를 리드하고 있는 버나디나를, 장원준이 멋지고 재빠른 견제구로 잡아내고 말았다. 4회에서 몇 점 정도는, 아니 적어도 선취점 정도는 충분히 낼 거라는 희망을 가진 모든 기아 팬들에게 그리고 덕아웃의 선수들에게,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벤치에서는 비디오 판독까지 요구했지만, 죽은 자식의 불알은 만져 무엇 하겠는가. 기아쪽으로 기울어질 듯하던 경기는 다시 팽팽한 균형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두산보다는 기아 팬들의 갈증이 본격적으로 더 심해지기 시작한 장면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결국 명승부로 귀결될 해당 경기를 위한 가벼운 몸풀기였던 걸까?


 

두 번째 장면 - 8회말 기아의 득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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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양의지의 판단 착오라고 말들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 런다운에 걸린 김주찬을 몰고 들어가는 긴박한 상황, 3루에서 그리고 다시 홈에서 두 명의 주자 모두를 잡겠다는 순간적인 판단. 그것은 리그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는 양의지가 아니라면, 쉽게 결행하지 못하는 과감한 플레이가 아니었을까? 그 과감함이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 상황에서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면 그리고 만약 두산이 승리했다면, 양의지는 두산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양의지의 판단보다 오히려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나지환의 3루수 앞 땅볼을 잡은 허경민의 플레이다. 허경민은, 잡은 공을 2루에 던지고 1루로 이어지는, 병살 처리를 했어야 한다. 나지완의 타구는 빨랐고, 1루 주자는 걸음이 느린 최형우였으며, 타자 주자는 그보다 더 느린 나지완이었다. 두산의 유격수 김재호는, 병살 처리를 위해 2루 베이스로 재빨리 이동하는 중이었다. 충분히 병살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을 잡은 허경민의 눈앞에서 홈을 향해 달리는 김주찬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으리라 본다. 모두가 긴장한 상황이었으니 허경민을 탓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고맙.. 허경민

 

김주찬의 플레이를 칭찬해주고 싶다. 런다운의 상황에서, 3루로 향하는 주자라도 어떻게 하든 살려보겠다는, 절박함이 그의 움직임에서 보였다. 포수 양의지가 3루로 공을 던져 최형우를 아웃시킬 때, 김주찬의 몸은 3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끝까지 포수를 보고 있던 김주찬은, 양의지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민첩하게 몸을 돌려 반대편의 홈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어이 득점에 성공했다. 집중력과 근성이 만들어낸 귀한 점수였다. 힘겹게 얻은 한 점이었고 한 점이면 어제의 경기를 이기기에 충분했다. 김주찬은 한마디로, 죽다 살았다.

 

옥의 큰 티 하나.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진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홈에서 볼이 빠져 뒤로 굴러가는 그 순간에도, 1루에 가만히 서 있던 나지완의 플레이는 매우 아쉬웠다. 매우.


 

세 번째 장면 - 9회말 투아웃 양의지의 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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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주자 1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양의지의 표정은 착잡해 보였다. 방금 전 잘못된(?) 그의 판단으로 1점을 내주었고, 이제 팀이 패배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양현종이 던진 첫 번째 볼을 지켜본 그의 배트가 2구째부터 돌아가기 시작했다. 파울과 파울과 또 파울... 일곱 개의 파울을 양의지는 차례로 기록했다. 그 가운데에는 좌측과 우측 팬스를 넘어가는 비거리의 파울 홈런이 2개나 있었다. 기아 팬들의 안도의 한숨과, 두산 팬들의 안타까움의 탄식이 야구장을 뒤덮었다. 양의지의 표정은 간절해 보였다. 홈런 한 개면 2-1로 역전하는 상황이었다. 총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단 하나만을 남겨놓은 상황이었지만, 양의지는 그 하나의 아웃카운트를 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볼이 한 개 더 들어왔다. 볼카운트 2-2. 파울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리..고 11구째. 양현종의 122구째 공이었다. 양의지의 배트는 허공을 갈랐다. 야구장은 순식간에 커다란 함성으로 가득찼다. 양의지는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다 다시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표정에 담겨 있었다. 그렇게 양의지가 자신의 손으로, 10월의 가을 저녁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국시리즈 2차전의 문을 닫았다.

 



아직은투아웃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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