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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좋은 꽃노래도 삼 세 번이다.

 

꽃노래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질리는데, 하물며 아프다는 소리는 어떨까. 진훤, 진솔 형제를 두 번 죽인 건 아프다는 말이 반복되었을 때 돌아온 '꾀병 아니냐'는 대답이었다. 

 

 

우리나라에 적게는 1만 5천명에서 많게는 3만여명이 앓고 있다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병이다. 이 병명 아는 사람들과 의사들 중 상당수가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을 ‘꾀병 환자’ 혹은 ‘의료 보상금 바라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이 병을 오래 알고 지켜 본 사람들은 이 병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라 말한다. 오랫동안 CRPS환자들을 진료해왔던 전문의들은 CRPS에 대한 인식을 사회시스템, 병원진료시스템 개선에 앞서 가장 힘든 요인으로 꼽는다. 

 
1993년에 세계통증학회의 권위자들이 이름을 붙였고, 국내에서도 2005년 1월부터 외래치료시 일부 부담금에 대한 산정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2005년, 군 복무 중 CRPS 확진 판정을 받고 의가사제대 한 환자가 나온 후로 꾸준히 군 복무 중 CRPS로 인한 의가사제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는 제대로 된 질병명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지난 10월 21일, 기자는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 복무 중 CRPS에 걸린 사병들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해 논의 해 본 적 있습니까?”

 

“CR 뭐요?”

 

“CRPS라고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요. 스치는 바람에도 온몸이 불타는 고통을 느낀다는 희귀성난치병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처음 군대에서 사고로 이 병을 진단 받은 병사가 의사가제대한 사례가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으로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음에도 잘 모르겠다는 당당한 답변만 돌아왔다. 현실이 이러니 사병들의 진료권, 희귀난치병 사병들에 대한 보훈보상체계에 대해 한번이라도 국회 차원에서 입법 정책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리 있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위해서 기자회견을 열어주고 그나마 이들의 고통의 관심을 보였던 정의당 김종대 의원 조차 국정감사 중이어서 그런지 전화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군인권연대에 전화를 해서 똑같은 질문을 해보았으나 임태훈 소장은 “육형제 사건은 저희 센터에서도 알아봤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라 인정 못 받는다”면서 “상세불명의 질병이라 소송을 해도 진다”고 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전화를 끊었다. 청년 관련 NGO 단체에서는 “한번 정도 성명서를 내긴 했는데, 이슈가 되지 못해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CRPS 환자들은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CRPS에 대해 10년 이상 관심을 가지고 진료해왔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도형 교수는 이러한 사회의 시각, 그리고 동료 의사들과 일부 병원 구성원들의 견제와 압력으로 한동안 CRPS 환자 진료를 중단해야 했다. 만성통증과 외상이 전공분야인 강도형 교수는 신경정신과와 마취통증의학과 치료를 같이 받는 CRPS환자들의 정신과 치료를 10년 넘게 주도해왔다. 관련 논문도 여러 편 발표했고,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 많게는 하루에 100명에서 150명이나 강 교수에게 진료를 받는다.  

 

 

그러나 강 교수는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 12일부터 외래 진료를 중단했다. 강 교수의 진료 방식이나 처방약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일부 병원 구성원들과 의사들의 거센 비난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강 교수로부터 진료를 받아오던 CRPS 환자들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됐다. 

 

 

병원 내 견제와 압력으로 강 교수가 돌봐오던 CRPS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은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초 강 교수에서 다른 의사로 주치의가 바뀌면서 새로운 진통제를 처방 받은 CRPS환자들은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약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진훤, 진솔 형제도 이 때 이전까지 처방 받던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해, 강도 높은 통증에 말도 못하게 힘든 시기를 보낸 바 있다. 진훤씨의 모친 유선미씨는 이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기도 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된 것이다. 급기야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CRPS 환자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관련해서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내부적으로 수습절차를 밟아 사직 의사를 표했던 강 교수는 지난 17일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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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기자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 : 헤르매스 아이 기자 / : 강도형 교수)

 

 

곤란한 일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다 정리됐다. 지난주부터 다시 복귀해서 진료를 보고 있다.

 

 

어떻게 수습은 됐지만, 힘든 일 없나?

 

 

사실 그렇다. 통증환자분들 중 CRPS질환 환자들은 경한 부상에서 시작해 굉장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의사의 처방을 ‘꾀병 부리는 환자에게 약을 주는 것, 혹은 꾀병 환자 입원 시키는 것’ 쯤으로 아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래서 지치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솔직히 처음에 이 환자들을 보고 꾀병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이 환자들을 돌본 지 10년 지나니까 ‘이 병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았다. 

 

 

기자도 계속 진훤, 진솔 형제를 취재하고, 또 이후연 씨를 취재하면서 알게됐다. 이 병이 정말 무서운 병이란 걸. 그런데 해결책도 전무하다. 가장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은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다. 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기운을 주고, 생명연장을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하는데, 병원이나 주변에서 이 병을 ‘꾀병’으로 본다. 심사평가연구원에서도 환자들 처방약에 대해 보험급여를 삭감하고, 병원측에서도 압박이 왔다. 그리고 나 개인에게도 ‘환자들 약 중독 시키는 의사’, ‘약 함부로 처방해서 환자 끄는 의사’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전공의로서는 이중의 고통이었다. 솔직히 예전에 정신과에서는 이 환자들을 꾀병으로 보기도 했고 지금도 일부 그런 의사들이 있긴 하다. 그러니 환자들 입원 시키는 것도 힘들었고, 이런 저런 오해 때문에 힘들었다. CRPS 환자들에 대한 오해가 사회적으로 가장 힘들다.

 

 

CRPS환자들이 외상은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극심한 고통이 찾아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떤 사회적 해결책도 제대로 구비 되지 않아서 더 힘든 것 같다. 특히 군대 훈련받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아서 CRPS에 걸린 사병들은 보훈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처참한 현실 앞에 국가도 사회도 모두 나몰라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맞다. 이 사람들은 취직은 물론, 결혼을 했더라도 대부분 이혼하게 된다. CRPS가 교통사고로도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나중에 보상금을 받아도 그동안 들어간 치료비를 갚고 나면 남은 돈이 없다. 또 치료가 장기간 계속되는데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고 계속 치료를 받아야 되니까, 돈이 없어서 병원도 못 온다. 그리고 몸이 아프다 보니 부부생활도 못하고, 감정조절이 안 되서 이혼을 많이 한다. 

 

내 몸이 아픈데 보험혜택이라도 받고, 군에서 CRPS에 걸린 환자들 같은 경우 보상 받으려면 “나의 아픔을 증명하라”고 하니 얼마나 웃기냐. 보험심사할 때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안 믿어 ‘준다. 산재 처리 할 때도 그렇다. 이 환자들을 ‘돈 바라고 엄살 피우는 사람” 즈음으로 본다. 이런 것들이 변해야 한다. 환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정책이 변해야 한다. 

 

 

국내 CRPS환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제대로 치료하는 병원도 몇 개 없나. 그리고 환자들이 자살시도를 많이 하는데 해결 방법이 없나?

 

 

이것도 병원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나 같은 경우도 그렇다. 원래 정신과의사는 환자들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십 년 째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환자들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줬다. 줘야겠더라. 정말정말 힘들거나,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빨리 연락이 닿아서 그 환자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알려줬다. 이 병을 진료하면 할수록 정말 무섭다. 가장 최악의 고통스러운 병이다. 진훤이는 그 환자들 중에서도 상태가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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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병원 숙소에서 만난 진훤씨. 동생이 있는 주말 낮동안엔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면 병실로 올라간다.

부작용으로 부종이 심해진 진훤씨 얼굴. 그나마도 요 며칠 중에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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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도 처음에 취재할 때는 진훤이, 진솔이가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고, 서울대병원으로 진료를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애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진료 받는 어머니 유선미씨와 연락이 안 되어 짜증도 났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미안해지고, 사회 환경에 분노했다. 아픈 두 아들 때문에 심상치 않은 화병에 걸린 유선미 씨 부부를 만나고 올 때마다 뒤돌아서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런 기자에게 강 교수는 “진훤이, 진솔이 잘 봐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을 했다. 그건 기자가 담당의사인 강 교수에게 해야 할 부탁이었다. 서로 '잘 봐달라' 부탁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은 알았지만.

 

 

 

기적 같은 눈부신 은총이란 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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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대피소와 같은 간병인 숙소에서 4년 째 생활하고 있는 선미씨
 
 

 

10월 22일, 국군수도병원 간병인 숙소에 머물고 있는 진훤이를 찾았다. 진훤, 진솔이를 간병하는 4년 동안 간과 담으로 통하는 혈관이 막히고, 담석이 생긴 유선미 씨의 건강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자니 가벼운 수술이어도 최소 한 달은 입원해야 하고, 수술비만 300만원이 들어 선미 씨는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고 약으로 버티고 있었다. 선미 씨가 얼마나 괴로운 상황인지 짐작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자가 이침을 놔주면 그나마 고통이 한결 덜 하다는 선미 씨에게 그거라도 해주고 싶어 마음이 급했다. 누런 황달 끼에 치솟는 혈압, 간담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기는 소화불량에 덤으로 따라오는 동통에 눈 시림까지. 선미씨는 그동안 아이들의 계속된 진료를 쫓아다니느라 입 안쪽이 헤지다 시피 부르튼 상태였다.

 

아버지 육민수 씨 또한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으로 온 당뇨 때문에 머리가 더 빠져 정수리가 휑해 있었다. 애들을 차에 태워 진료 보러 다니고 진료 없는 날엔 밤 새워 일하느라 식단 조절을 한다고 하는데도 당 수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듯 했다. 고된 노동이 계속 돼 손목, 허리, 어깨 통증은 이미 만성이 된지 오래였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당장 아이들 진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에게 속 모르고 ‘후드티’를 사달라고 떼쓰는 막내딸을 보는 선미씨. 그 멍울진 눈빛을 보는 기자의 가슴에도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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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밤 국군수도병원에서 가까운 분당 요한성당에서 기자와 선미씨는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종교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벽을 절감한 밤이었다.

 

 


선미씨와 주일 미사를 함께 보면서 많이도 울었다. 시내에서 군병원 숙소까지, 컴컴한 밤에 함께 산 속 오르막길을 걸어 올랐다. 몇 년 전에는 이 산골짜기 오르막길에 일반 대중교통 진입이 되지 않아 진훤이와 선미씨는 진료를 받고 돌아올 때마다 걸어서 병원까지 가야했다. 진훤이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선미씨는 그런 진훤이를 힘겹게 부축해서 다섯 걸음 가다 쉬고, 다섯 걸음 가다 쉬고 하면서, 선미씨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날은 기자도 세상의 거대한 벽에 부딪힌 기분이 자꾸 들었다. 기적 같은 은총이란 게 있다면, 부디 이들에게 쏟아져 내리길 기도하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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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수도병원 간병인 숙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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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주

 

이 기사는 오랜 기간 육진훤, 육진솔 형제를 취재한 

"헤르매스 아이"님과 협의 하에

국방부에서 해당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때까지 

 매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제보: DDANZI.MASTER@GMAIL.COM

 

 

 

 

 

헤르매스 아이

 

편집: 딴지일보 인지니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