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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철학의 방법론은 괴이쩍으면서도 고집스러우며 명징하다.

 

신이 분명히 있다는데, 그가 배운 스콜라 철학의 방식은 너무 복잡했다. 진리는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렇게 지저분하게 중언부언을 해가며 논증되는 것은 논증이 아니다.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영향을 받았다.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이 진리임을 상수로 놓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면 한없이 복잡해진다.

 

거꾸로, 만약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가정하자마자 천체의 움직임이 갑자기 단순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이쪽이 진실에 더 가깝지 않겠는가? 이 접근법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이전까지의 상식을 뒤집은 코페르니쿠스가 진리이듯이 데카르트는 상식부터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정하게 선언했다.

 

“상식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려나가는 상품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상식이 잘 갖춰진 사람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챕터를 스킵해도 된다. 이미 아시는 분도 많을 거고, 귀찮을 수도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이 전개되는 순서의 요약본이다.

 


 

0) 첫 번째 전제

수학은 확실하다.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1은 우주 어디에서도 진리이다. 그렇다면 수학적이지 않은 다른 명제들은 어떤가?

 

1) 감각

인간의 감각은 믿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뭇가지를 물 속에 넣으면 구부러져 보인다.

 

데카르트는 추위를 잘 타지만 어떤 군인은 추운데도 술 잘 마시고 돌아다닌다. 그렇다면 눈은 차갑다는 명제는 진리일 수 없다.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북극곰에게는 포근할 수도 있다.

 

현대의 과학적 상식을 가져와보면 태양은 빨갛다는 것도 거짓이다. 개에게 태양은 밝을 뿐 빨갛지 않다. 곤충의 눈으로 보는 컵과 사람의 눈으로 보는 컵은 다르다. 어느 감각이 더 진리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다.

 

1.5) 기억

데카르트는 사시인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꼈는데 스스로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당연히 프랑수아즈와의 어릴 때 추억 때문이 아니겠는가? 객관성을 방해하는 것은 기억도 마찬가지. 사시인 사람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사시가 아닌 사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니 말이다.

 

2) 현실

이 모든 세상이 꿈이나 허상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내 인생은 하나의 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장자의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명제와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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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존재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내가 느끼는 사물이 불확실한 감각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면 이것들은 확실한 존재자로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나 자신은 왜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나?

 

4) 수학적 진리

사실 어떤 사악한 악마가 있어서, 2+3=4인데 5라고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는 보장이 전혀 없지는 않잖은가? 시간과 공간마저도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나? 신은 선량하다는 보장이 있나? 그렇다면 신은 악의에 찬 악마가 아닌가? (여기서 신학자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끈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하나의 진리란 무엇인가?

 

그런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있다.

 

라틴어로,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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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해도 그러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철학의 세계에서 하나의 단단한 토대가 마련된다.

 

자아가 존재한다. 이것이 모든 철학의 기본 전제가 된다. 즉 데카르트 이후에 서양에서 철학은 나의 생각, 나의 사유로 재구축되는 세계관을 말한다. 제 1출발선이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된다. 자아를 토대로 어떤 논리를 펼치든 그 출발점은 인간중심적이다. 데카르트 본인이 천주교도인 건 중요치 않다.

 

이렇게 예술적 유행으로 시작된 인본주의(르네상스)는 철학의 지원사격을 얻었다. 반면에 데카르트는 몹시 귀찮아졌다.

 

<방법서설>은 유럽 곳곳의 가톨릭 교구와 신학대학으로부터 신성모독 판정을 받았다. 한 편으로 광범위한 팬층이 생기고 명성을 떨치게 된다. 4년 후에는 그의 철학의 친절한 완성판인 <성찰>을 내놓았다. 그의 책은 금서인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음 세기인 18세기가 되어서야 대학 커리큘럼에 포함되지만 반응은 생전부터 뜨거웠다. 데카르트는 모든 게 성가셨다.

 

“나는 똑똑하지 못해서 책을 썼다. 침묵했더라면 간직할 수 있었을 그 고요와 평안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됐다.”

 

그의 철학이 신성모독이라는 주장이 수준이 낮아도, 가만있으면 신성모독을 인정하는 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서신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고 반박했다. 하나하나가 공연한 일이다.

 

데카르트는 확실히 독특한 사람이다. 학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주장이 얼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궁금하고, 또 욕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명예욕이 없기도 힘들다. 데카르트가 철학을 시작한 목표는 싯다르타와 비슷하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자신과 우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주기 위해 철학을 했다.

 

당대 사람들은 한 가지 점에서 더 놀랐다.

 

"여자들도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니."

 

여자들은 상류층에 한해 교양을 쌓을 뿐, 기숙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에 매달리는 경우는 없었다. 데카르트에게 철학은 번쇄하지 않아야 했다. 어려운 전문 용어로 배배 틀린 건 철학이 아니다. 확고한 것은 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법서설>과 <성찰>은 교양은 있지만 지식인이 될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에게 널리 읽혔다. 왕족들에게 특히 인기였는데, 그 중에는 영국의 공주도 있었다. 찰스1세의 조카 엘리자베스였다. 엘리자베스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익힌 후 서신으로 토론을 신청했다.

 

만만한 상대라 여긴 데카르트는 이번에만큼은 흔쾌히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졌다(...) 엘리자베스는 정확한 지점에 치명타를 꽂았다. 할 말을 잃은 데카르트는 어물쩍 넘어갔다.

 

“더 이상 그 문제로 어여쁜 머리를 괴롭히지 마세요.”

 

데카르트가 느긋함을 잃은 몇 안 되는 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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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