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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글에서 똥 냄새가 남

 

 

호랑이가 담배 피우며 길바닥에 침 뱉던 시절. 강원도 고성이란 곳에서 군생활을 했다. 우리나라 최동북단에 위치한, 노크 귀순으로 유명한, 육군 22사단이 있는 그곳이다. (송혜교의 남자 유시진 대위도 이곳 출신이다) 그곳 철책에서 근무했었다. 민간인 거주지역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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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작업을 위해 민통선(민간인 통제선) 지역으로 반나절 넘게 이동할 때나 한 번씩, 민간인을 구경할 수 있었다. 대부분 약초 캐는 할머니들이었다. 어린아이였던 유승호가 나오는 영화 <집으로>에 출연한 김을분 할머니 같은 분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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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을 달 때쯤, 6개월의 철책 근무기간이 끝나고 후방으로 부대 이동을 했다. 철책 근무 부대들은 보통 6개월 단위로 철책과 예비대를 오가며 생활을 한다. 소대별로 독립된 거주지에서 하루 종일 근무만 서는, 철책은(GOP) 편하다고 보면 된다. 예비대는 훈련과 제설작업과 노가다작업과 제설작업과 이런저런 뺑뺑이와 제설작업으로 꽤나 고되다. 자연히 예비대 생활을 힘들어하는 병사들이 많다.

 

당시 내가 소속된 소대는 철책 근무 후에 예비대 복귀를 하지 않고, 곧바로 속초시 강현면 인근으로 이동을 했다. 물치해수욕장이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 지금은 없어진 속초공항이 있었다. 바로 곁에는 속초비행장의 활주로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육군 8군단 항공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부대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군단 항공대의 경계근무 때문이었다. 헬기와 비행기가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삼엄한 경비가 요구되는 곳인 만큼, 특별한 경계근무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 소대가 차출이 되어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 거였다. 기간은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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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생활은 좋았다. 철책에서는 낮에 자고, 밤새도록 돌아가며 근무를 서는 데 반해, 항공대 근무는 하루 8시간 정도를 경계병으로 근무하는 방식이었다. 느슨했다. 낮에 6시간, 밤에 2시간 정도만 근무할 뿐이었다. 그 외에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철책 근무에 비하면 소풍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해, 철책에서는 사람 구경도 못하고 어쩌다 봐야, 약초 캐는 할머니들이 고작이었지만, 항공대는 정문 바로 옆이 속초공항이었다. 원색 계열의 옷을 맘먹고 차려 입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우리 눈앞을 지나다녔다

 

가장 좋았던 건 따로 있었다. 항공대 입구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선 구멍가게였다. 속초공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담배나 가벼운 물품들을 팔기 위해 차려진 가게였던 듯 싶었다. 공항이라고는 해도, 하루 열 편도 안 되는 비행기가 왕래하는 지방의 공항 앞 가게, 장사는 뻔했을 것이다. 그쪽보다는 항공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관리자들 몰래 밤낮으로 사들고 가는, 라면과 담배 그리고 소주의 매출이 훨씬 더 클 듯 싶었다.

 

우리 소대원들도 그곳에 도착한 지 삼 일도 되지 않아, 시간이 날 때마다 술과 라면을 추진해오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경험이라, 마냥 신이 났다. 군생활에서 맛보기 힘든 여유와 풍요의 시간들이었다. 속초공항의 공중전화도 눈치껏 이용할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매일처럼 예진이와 통화를 했다. 휴가기간 말고는, 입대 후 1년만에 처음 경험해 보는 전화통화였다. 꿈만 같았다.

 

이런 군대도 있구나 싶었다. 우리만 병신처럼 벅벅 기면서 군생활을 해온 건가 싶어, 지난 시간들이 억울할 정도였다. 시간의 여유와 소비 가능한 쾌락을 소대원 모두가 즐겼다. 소대장도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주었다. 때로는 본인도 우리들의 술자리에 함께하기도 했고, 고스톱을 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당나라 군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일상적인 근무에 지장만 없다면, 거의 제한 없이 사제 라면과 소주를 먹을 수 있었다. 많은 소대원들이 집에 돈을 보내달라는 전화를 해야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사제 라면 한 봉지에 200, 소주 한 병에 700원이었다. 담배 한 갑이 600. 당시 일병이었던 내 월급이 7,300원쯤이었던가? 군대 PX가 아닌, 돈을 쓸 수 있는 민간에서의 사병 월급은 너무나 초라했다.

 

놀다 지겨우면 연병장에 나가 축구도 하고 족구도 했다. 포경수술 기회를 찾던 많은 병사들이, 소대장과 함께 속초 시내로 나가 고래를 잡고 왔다. 포경수술을 함께 받은 병사들끼리 나란히 아랫도리를 까고 누워, 여름 볕에 고추 말리기를 하는 풍경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같은 의사에게 받은 처치라, 크기만 다를 뿐 퉁퉁 부은 해바라기 모양이 다 엇비슷했다.

 

모두가 상상조차 못 해 보던 일들이었다. 군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깜빡깜빡 할 만큼, 편하고 늘어졌던 시간들이었다. 반대로 아쉬운 한 가지는, 한가로운 그만큼 국방부 시계가 더디게 간다는 것이었다. 철책 시절에 비해 시간이 열 배는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8월이었다. 우리 소대의 근무기간 3개월이 보름쯤 남았을 때였다. 잠을 너무나 많이 자서 이제는 낮잠조차 오지 않는 어느 날 오후였다. 침상에 앉아 사타구니를 벅벅 긁어가며, 금세기 최후의 명작을 읽고 있었다.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당시 군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던, 노골적인 포르노 소설이었다. ··, 60만 대군의 전투력 손실에 크게 기여하는 책이었다. 너도 나도 경쟁해가며 읽느라, 표지도 없이 너덜너덜해진 그 책을 503번째 되풀이해 읽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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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막사 문이 벌컥 열리며, 항공대의 주임원사가 우리 소대로 들어왔다. 소대원 모두는 화들짝 놀라 다들 벌떡 일어섰다. 이런 누추한 곳을 주임원사가 찾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긴장해 있는 우리들에게 주임원사는 뜬금없이, 작업 나갈 병력 열 명만 나오라는 주문을 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번개처럼 빠르게 후다닥 뛰쳐나갔다.

 

나 말고도, 고참 쫄다구 가릴 것 없었다. 많은 병사들이 앞다퉈 뛰어나와 주임원사 앞에 줄을 섰다. 경쟁의 이유는 근거 있는 소문 때문이었다. 주임원사가 병력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나면, 꼭 물치에 있는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미 몇몇은 그 짜장면을 경험하기도 했단다. 부러웠다.

 

그랬다. 다들 짜장면이 너무나 먹고 싶었던 거다. 항공대에 온 이후로, 사제 라면이야 밤낮으로 물릴 만큼 실컷 끓여먹었다. 하지만 짜장면에 비한다면, 그깟 라면은 개밥이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었다. 안 그런가? 하다하다 이제는, 군대에서 진짜 사제 짜장면도 먹어보게 될 모양이었다.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드디어 짜장면이다.

 

주임원사가 내미는 작업도구들을 들고, 우리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 갔다. 작업도구들이 조금 특이했다. 기다랗고 굵은 대나무자루 끝에 잠자리채 같은 그물망을 달아놓은 것이 몇 개. 성인의 다리 길이 정도 되는 기다란 양은 집게가 몇 개. 큰 마대자루가 50장 정도. 마대자루를 제외하면 군부대 작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도구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로 세로 넓이가 작은, 킹사이즈 침대 넓이만 한 2cm 두께의 커다란 베니어판 한 장. 아무리 봐도, 낯선 도구들이었다.

 

작업도구들을 들고 뒤따르던 우리는 저마다, 이런저런 잔머리들을 굴려보았다. ‘밤을 따러 가는 건가? 아니면 감? 참새를 잡나? 해안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거나 성게를 따려는 건가?...’ 온갖 상상을 다 해보아도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쉽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는 항공대의 실외화장실 앞에 섰다. 항공대 장교와 본부 병력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건물 내부에 수세식으로 깨끗하게 꾸며져 따로 있었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른 곳이었다. 본부 병력을 제외한 우리 같은 경계병력이나 취사병력, 공병대 병력 등의 기타 항공대 지원병력 100여 명이 사용하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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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독하게 풍겨오는 똥냄새에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린 채 선 우리들에게, 주임원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우리들이 해야 할 작업 내용이었다. 설명을 듣는 우리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주임상사의 설명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랬다.

 


 

이곳은 너희도 알다시피, 외부에서 온 지원병력들의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1년에 네 번, 3개월에 한 번씩 똥를 퍼간다. 보통은 경계병력들이 교체되어 나가기 직전에 작업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똥차가 와서 똥을 풀 때마다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똥을 푸려고 호스를 똥통에 넣고 빨아올리면, 똥이 잘 빨려오지를 않는다. 왜 그런지 가만히 보니, 똥통 속에 가득한 이물질 때문이다. 그 이물질은 다름 아닌 소주병이다. 이 소주병이 몇 개만 나오는 거라면 내가 말을 안 한다. 지원병력 놈들이 날이면 날마다 얼마나 소주를 처먹고 빈병을 이곳에 갖다 버리는지, 그 양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소주병이 깨진 채 똥 푸는 호스로 빨려들어가, 군단 소속 똥차에 거액의 수리비를 두 차례나 지급한 경우도 있다. 작년에는 소주병이 천 개가 넘게 나온 적도 있다. 믿기 힘든 양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니 소주병을 미리 모두 건져내야 한다. 그래야 똥을 풀 수가 있다. 그렇다고 니들 보고 똥통 안에 들어가서 맨손으로 빈병을 주워내란 소리는 아니다. 여기 있는 잠자리채로 똥통을 휘저어가며 빈병을 건져내라. 한 병도 남김없이 건져내야 한다. 만약 작업이 끝나고도 소줏병이 나오면, 그 안의 내용물을 너희들이 먹어야 한다. 그런 각오로 꼼꼼하게 샅샅이 똥통을 훑어라.

 

작업은 3개 조로 나누어서 한다. 4명은 잠자리채를 들고, 소주병 수색작업을 한다. 4명은 수거된 소주병을 이곳 베니어판에 올려놓고 적당량이 모아지면, 저쪽 100미터 전방의 쓰레기 소각장으로 옮긴다. 나머지 2명은, 소각장에 모인 소주병을 마대자루에 30개씩 담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신속하고 깔끔한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작업을 시키면 다른 것도 아닌 짜장면을 꼭 사 먹이는 사람이다. 오늘 작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너희들에게는 특별히 탕수육까지 쏘도록 하겠다. 건투를 빈다.

 

아 참, 팁 하나. 똥이 뻑뻑해서 잠자리채가 쉽게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수도 호스를 끌어다줄 테니, 30분 이상 물을 공급해 작업을 하도록 한다. 물이 충분히 섞여야, 묽은 콩국수 국물에 젓가락질하는 것처럼 작업이 쉬워진다. 마지막으로, 똥통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다들 조심해주기 바란다. 이게 다, 몰래 술 처먹고 똥통에 병을 던져 넣은 너희들의 업보다.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작업 도중에 나오는 빈병 외에 귀금속이나 고급 시계, 현금과 다이아 반지 기타 등등은, 너희들이 개인적으로 가져도 좋다. 이상. 작업 실시.

 


 

, 씨바. 어쩌다 이런 일이. 그까짓 짜장면이 뭐라고, 군대 와서 별 짓을 다 해보게 생겼네. 내가 미쳤지.’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해보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믄 까야 한다. 군대 아닌가. 우리 열 명은 최고참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섰다. 고참의 지시에 따라, 나는 운반조에 속하게 되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똥통을 휘저어대는 일은 안 걸렸다 싶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건, 차마 못할 것 같았다.

 

수도 호스의 물을 틀어 똥통으로 향하게 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들의 작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장실에 있던 175천만 마리의 똥파리들이, 우리들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똥더미에 앉아 똥을 먹던 똥파리들이, 코로 입으로 귀로 눈으로 정신 없이 달라붙었다 떨어지기를 거듭했다.

 

잠자리채를 휘저어 똥통에 똥물결이 일 때마다, 앞의 똥냄새를 밀어내고 새로운 똥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앞뒤의 똥물결이 서로 부딪칠 때마다 똥물 방울이 위로 튀어올랐고, 그때마다 잠자리채를 든 우리의 똥전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 밖으로 줄행랑을 치곤 했다. 똥을 먹다 똥물을 뒤집어쓴 똥파리들은 복수라도 하려는 듯, 똥물이 묻은 날개를 반짝이며 우리들의 코로 입으로 날아들곤 했다. ‘아아~~ 인간이란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가.’ 세상은 진짜 똥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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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조를 맡은 4명의 똥전사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막내였다. 나보다 10개월 빠른 키 163cm의 고참 하나. 나보다 9개월 빠른 165cm의 고참 하나. 그리고 나보다 한 달 빠른 184cm의 고참 하나(멀대 상병). 그리고 175cm의 나, 이렇게 네 명이었다. 우리 넷은 저마다 잠자리채 똥전사가 되지 않은 것에 그나마 감사하며, 조심스레 운반작업을 시작했다. 베니어판 위에 올려진 소주병들과 그곳에서 흘러나온 똥물들은, 아아~~ 끔찍했다.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이곳은 군대였다.

 

모두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지지부진해서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명색이 군대를 쌩쌩 돌아가게 만든다는, 일병과 상병들로만 꾸려진 작업병력들이었다. 금새 일에 적응한 우리들은, 빠른 속도로 똥이 묻고 똥물이 담긴 소주병들을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참자리채 똥전사들은 허이짜 허이짜 해가며 똥물을 휘젓고, 부지런히 똥통 속에서 소주병을 건져냈다.

 

우리 운반 똥전사들은 베니어판에 소주병을 30여 개 정도씩 모아, 각자 한쪽씩을 잡고, 헛둘~ 헛둘~ 해가며 발걸음을 맞춰 소각장으로 배달을 했다. 일은 편하지만 손에 똥물을 가장 많이 묻히는 쪽은, 마대에 소줏병을 담아 쌓아올리는 두 명이었다. 병 안에 들어 있던 똥물들이 마대자루를 들어 올릴 때마다, 콸콸 꼬록꼬록 소리를 내며 마대자루 밖으로 흘러내렸다. 흐르는 똥물이 보였다. 다시 한 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구더기 같은 놈들. 내가 니들 같으면 탈영한다, 씨바.”

 

소주병은 끝이 없이 나왔다.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백 병이 넘더니, 사백 병 오백 병이 넘고도 계속해서 올라왔다. 주임상사의 천 병 소리가 괜한 헛말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잠자리채 똥전사들은 이제 거의 똥물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몰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각자 배당받은 똥통 사로에서 잠자리채를 휘저으며 한꺼번에 여러 병 퍼 올리기, 1분 동안 더 많이 건져 올리기 등의 시합까지 해가며, 아예 똥물의 세계에 젖어들며 동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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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방울씩 튀어오르는 똥물이 군복에 튀어도, 이들은 더 이상 개의치 않는 듯했다. 표정들마저 몽롱한 것이, 아무래도 똥 냄새에 취해버린 모양이었다. 불쌍한 넘들. 나는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더러운 것들. 내가 니들 같으면 죽겠다, 씨바.”

 

우리 운반조 똥전사들은, 처음엔는 비교적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소주병 운반이 열 번 넘게 반복되면서부터,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평한 베니어판 위에서, 동그란 소주병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게 그 하나, 그리고 병에서 흘러나오는 똥물이 두 번째 문제였다. 처음에는 서로가 조심해가며 균형을 맞추니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열 번이 넘어가자, 허리와 함께 두 다리가 뻐근해오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고참 둘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무릎을 살짝씩 구부려가며 걸어야 했는데, 그게 반복되자 허벅지와 허리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앞의 184 짜리 고참(멀대 상병), 높이를 맞추느라 거의 오리걸음을 걷다시피 하고 있었다. 힘든 가운데서도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저 인간은 어찌 버티고 있을까 싶었다. 에혀, 똥 같은 인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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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도 마를 날이 있다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건져 올리는 소주병의 개수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다행이긴 했지만, 작업을 시작한 지 네 시간이 넘어가고 몸도 이제는 슬슬 가라앉기 시작하고 있었다. 배도 고파왔다. 점심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이 꼴로 똥 냄새를 풍기며 취사장에 가서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임상사가 사다준 빵과 우유로 대충 허기만 속이고, 우리는 다시 일에 매달렸다.

 

작업이 막바지로 향해 갈수록, 우리 네 명의 운반 담당 똥전사들이 들고 가는 베니어판의 균형이 눈에 띄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몇 시간째 똥물을 흠뻑 빨아들인 베니어판은, 그것 자체의 무게만으로도 우리 네 사람의 팔과 다리와 허리를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에 비하면 올려지는 30여 개의 소주병 무게는, 별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똥물, 그놈의 똥물과 함께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굴러다니는 똥 묻은 소주병의 이동경로였다. 그나마 젖어든 베니어판의 한가운데가 동그랗고 움푹하게 가라앉아, 상당량의 똥물을 담아주는 것이, 꽤나 다행이고 고마웠다.

 

그렇기는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소주병들은 이리 굴러 오다 저쪽으로 달아나는 이동을 반복했고, 이젠 뚜렷하게 물길이 만들어져버린 똥물의 진행 경로는 그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똥전사들을 거듭해 위협했다. 우리 넷이 나눠 든 베니어판은, 그럴수록 점점 몸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내가 먼저였을까? 키 작은 고참들에게 맞추느라 제대로 펴지 못한 상태로 걷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허리에 통증을 느낀 나는, 티가 나지 않게 다리를 슬그머니 곧게 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분명 티 나지 않게 살짝 다리만 폈을 뿐인데, 순식간에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방향으로 똥물과 소줏병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쪼르르~~ 쪼르르~~ 떼구르르 떼구르르... 쪼르르~~ 쪼르르~~”

 

~ ~...아악~~~.”

 

비명은 분명 내가 먼저 질렀다. 그리고 나머지 셋의 비명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각자 네 귀퉁이에서 베니어판을 들고 걷고 있기는 해도, 모두의 시선과 온 신경은 소주병과 똥물의 상황에 온통 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비명과 함께 나는, 내가 든 베니어판의 높이를 눈에 띄게 낮추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내 왼쪽에 앞뒤로 자리잡은 키 작은 두 명의 고참들이, 자신들의 비명과 동시에 둘 다 자신들의 손잡이를 허리 높이까지 순식간에 들어올렸기 때문이었다.

 

비명이 끝난 지 1초도 되지 않았다. 똥물과 소주병들은 맹렬한 기세로 나와 멀대상병의 방향으로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허걱. X됐다.’

 

하지만 생각을 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잡고 있던 베니어판의 높이를 허리춤으로 끌어올렸다. 멈칫하며 방향을 잃은 똥물과 소주병들이 멀대상병 쪽을 힐끗 바라보는가 싶더니, 그쪽으로 갸우뚱거리며 몰려가기 시작했다. 균형을 상실한 베니어판은 위아래로 춤을 추며 들썩이는 꼴이 되었다.

 

위기의 파도가 멀대상병에게로 향해 갔다. 순간 당황한 것처럼 보이던 멀대상병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 구부리고 있던 허리와 다리를 펴며 순식간에 반듯하게 우뚝 섰다. 그의 팔도 허리춤으로 올라와 있었다. 다시 갈 길을 잃은 똥물과 소줏병이 정반대의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똥물도 화가 난 듯했다.

 

, 이 씨바. 밑으로 안 내려. 뒈지고 싶냐!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들... @#$%@#%@#!!!!!!

 

당황과 황당과 분노와 짜증과 저주가 마구마구 뒤섞인 쌍욕이, 앞뒤 없는 통성기도처럼 두 고참들의 입에서 동시다발로 튀어나왔다. 그들의 욕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하기야 이 상황에서는, 상대가 사단장 아니 참모총장이라 해도, 욕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똥물이 씨바, ? 똥물인데... 나는 그들의 욕을 아니 울부짖음을 이해했다.

 

앞뒤 없는 욕을 들은 뒤, 침착하게 나는 당면한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멀대상병의 손은 허리춤 높이에 있었다. 여러 정황상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언제든 상향 조정의 의향이 충만함을, 굳게 쥔 그의 손아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키 작은 두 고참쪽을 재빨리 스캔해 보았다.

 

그들의 두 다리가 떨리고 있는 것이 먼저 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자신들의 키를 오늘처럼 원망해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손은 둘 다, 배꼽보다 한참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었다. 힘들어 보였다. 힘들 것이다. 긴박했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 투아웃 새끼. 밑으로 안 내릴래. 이 씨바...

 

비명과 같은 두 고참들의 욕설에 화들짝 정신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나의 두 팔이 명치 부근까지 올라와 있었다. 진짜 나는 몰랐다. 내 팔이 여기까지 올라와 있을 줄 난 정말 몰랐다. 순식간에 베니어판 위를 훑어보았다. 이제야 방향이 제대로 결정되었다는 듯, 작심한 것처럼 보이는 똥물과 소줏병들이 가련한 두 고참들을 맹렬한 기세로 향하고 있었다. 일촉즉발. 0.1초만 늦어져도 저들은 똥물을 뒤집어쓸 터였다. 그 상황은 멀대상병과 내가 군대에서 죽어서 제대한다는 걸 의미했다. 국립묘지로 가게 될까?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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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시간에 나는 다시 멀대상병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을 읽었다.

 

우리 둘 다 이러다 죽는다. 초긴급상황이다. 내가 동시에 조금 낮춰줄 테니, 너도 두 팔을 낮춰라. 팔을 낮춰라, 어서!’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간절한 그의 눈빛을 확인함과 동시에 나는 팔은 허리춤까지 내려왔고, 그것에 더해 뻣뻣한 무릎까지도 반쯤 굽혔다. 나로서는 최대한의 성의 표시였다. 이 정도면 고참들에게 할 만큼 하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멀대상병의 눈과 팔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바라보는 지점에 그의 팔이 있지 않았다. 그의 팔은 0.1초 전에 있던 그 높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높아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네 모서리의 베니어판 중 두 곳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구잡이 욕설과 함께한 채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곧 알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린 두 명의 키 작은 고참들이, 자신들이 들고 있던 베니어판을 머리 위까지 높이 들어올린 것이었다. 극단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까짓 거, 이해는 한다. 불안정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엇비슷하게 균형이 잡혀 있던 베니어판은, 이로써 완전히 균형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또다시 말하지만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것은, 자꾸 말해 정말 미안하지만,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다. 두 고참은 팔을 머리 위까지 뻗어올리는 상태였고, 멀대상병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을 위로 훌쩍 더 올린 것이었다. 그때 그의 눈은 나를 마주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이지, 손은 눈보다 빠르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의 나는, 팔을 아래로 내리고 무릎을 반쯤 굽히고 있는 중이었다. 똥물과 소줏병이 갈 곳은 이제 너무나 명확해졌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말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릎을 굽히고 팔을 내리고 있는 내게, 싸아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팽팽했던 높이의 균형을 깨고 무언가가 내게 무서운 속도로 들이닥치고 있다는 게 내 팔에 전해져왔다.

 

어쩌면,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벌떡 일어섬과 동시에 팔을 들어올렸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무릎은 그대로인 채 팔만 조금 들어올린 상태에서, 베니어판 아래로 나머지 세 고참들의 다리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베니어판의 두 모서리가 폴짝 들썩였고, 그 위에 머무르던 것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시원한 것들이 얼굴로 쏟아졌다. 눈과 코와 입으로 쏟아진 똥물들이, 가슴과 배꼽과 사타구니를 타고 흘러내렸다. 입 안으로도... 그곳으로도 무언가가 제법 들어왔던 것은 분명하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느낌이었다. 내가 구더기가 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베니어판을 던지고 그 길로 세면장으로 달려갔다. ~~ 하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지독한 냄새가 순식간에 나를 감쌌다. 고참들이 뭐라뭐라 정신없이 말을 던졌지만, 이 상황에서 그까짓 거 상관없었다. 날 막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죽여버리겠다는... 그 생각이 충만했으리라... 그 순간, 누구라도 걸리면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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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 헛구역질을 해가며 세면장으로 달려가는 100미터가 넘는 길에, 나와 동행한 것은 수 백 마리의 파리떼였다. 8월의 뙤약볕 아래, 똥물을 뒤집어쓴 한 남자가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수많은 파리떼의 비호 아래 달리기를 하는 모습은, 지금 돌이켜 봐도 눈물겹다.

 

이런저런 상황이 지나가고, 마침내 작업이 종료되었다. 주임원사는 약속대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겠다고 했다. 모두가 앞다퉈 샤워를 하고, 육공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구석구석 빠짐 없이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었건만, 서로의 몸에서 똥냄새를 느꼈다. 그것은 기분 탓만이 아니었다.

 

물치의 짜장면 집 주인은, 주눅이 든 채 눈치를 보며 앉아 있는 우리를, 여러 번 흘깃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결국, 장사 못해도 좋으니 밖으로 나가서 먹으라는 말이 주인 입에서 나왔다. 우리는 별 말 없이 밖으로 나왔다. 중국집에 똥냄새가 가득했다. 주인이 미안하다고 했지만, 우리가 그에게 미안했다.

 

짜장면 집에서 20미터쯤 떨어진 잔디밭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10분쯤 후, 주인이 짜장면 곱빼기 열 그릇과 탕수육을 가지고 오더니, 던지듯이 우리 앞에 놓아두고는 얼른 가버렸다.

 

저 새끼...”

 

기분 나빴지만, 별 수 없었다. 우리는 묵묵히 앞에 놓인 짜장면을 하나씩 가져가 비비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놈의 짜장면이, 씨바 짜장면이, 마음과는 달리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짜장면에서도 똥냄새, 단무지에서도 똥냄새, 탕수육에서도 똥냄새, 그리고 입에서도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아까의 상황이 떠오르며 구역질이 났다.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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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경험은 치명적이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똥 푸는 꿈을 꾼다. 똥 한 번 푸고 짜장면 한 젓가락 먹고, 똥 한 번 푸고 탕수육 한 젓가락 먹고... 꿈 속에서도, 이거, 못할 짓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니들은 그런 경험 없으리라 믿는다. 다행인 줄 알고 살자. 끝이다,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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