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미완의 군 개혁을 이어받은 이는, 『밀덕들의 산타클로스』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19년 현재 국방부가 내놓은, 그리고 육, 해, 공군이 찍어내는 수많은 ‘홍보 영상’은 노무현 대통령이 없었다면, 매우 심심했을 거다. 지금 한국의 군사전력은 노무현 대통령 때 얼추 그 윤곽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부분을 잘 살펴봐야 하는 게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기본적으로 무기 도입 사업은 짧게는 3년,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걸리고 이 도입된 무기를 운용하는 게 20~30년이 걸린다. 즉, 대통령을 포함한 국방관련 의사결정권자가 미래에 대한 예측, 국가전략을 세우고 여기에 맞춰 군의 전력증강사업에 들어가야지만 후대에 그 과실을 딴다는 소리다. 노무현 대통령이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추진했던 군 사업들은 지금 대한민국이 전략적 판단을 내릴 때 중요한 ‘판돈’이 돼 주고 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온갖 ‘쌍욕’을 먹어가면서 만든 제주 해군기지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제주 해군기지는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포석이 돼 주고 있다. 바둑판의 화점이라고 해야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김대중 정부의 국방개혁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이를 포함해서 아주 ‘거대한’ 군 개혁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김대중 정부 시절 국방장관이었던 조성태의 행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과 손발을 맞춰가며 김대중 정부의 국방개혁을 반대했던 조성태가 17대 국회의원으로 등원해 군 구조개혁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거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는 병력을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게 목표였고, 국방개혁법에 이게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조성태 의원은 병력 감축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며,

 

“2020년까지 50만 명 수준을 목표로 한다.”

 

라는 형태로 ‘후퇴’시켰다. 이 정도면 소신이라고 봐야 할까?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부가 상상도 못할 추진력으로 군 개혁에 나서게 된다. 이 당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 하나였다.

 

“쌍욕”

 

정말 온갖 쌍욕이 다 나왔다.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손을 맞잡고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기 바빴다. 빨갱이라서 나라를 북한에 넘기기 위해 국군을 해체시키려 한다는 주장부터 시작해서(이게 꽤 설득력 있게 다뤄졌다), 아마추어 정부가 치기로 국가의 근간을 흔든다(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논리)는 논리까지... 여기까지는 늘 하던 레퍼토리였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군심(軍心)이었다.

 

자료사진 - MB정부 시절 기무사 문건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이라는 마스터 플랜을 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아예 법제화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국방개혁법』이다. 이 국방개혁법의 핵심내용을 살펴보면, 군심이 왜 요동쳤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첫째, 군은 첨단전력을 증강하고 질적으로 정예화하여 과학기술군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2005년 68만 여명의 상비병력을 2020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정비해 나간다.

 

둘째, 합동참모본부는 방위기획과 작전수행의 중심기관으로서 육·해·공군의 통합전투력 발휘를 보장할 수 있도록 관련 기능과 조직을 강화한다.

 

셋째, 육군은 군단과 사단의 수는 줄여나가였, 단위 부대의 전투력은 2〜3배로 강화할 수 있도록 재설계하여 무인정찰기, 차기 전차, 장갑차, 화력체계 등을 증강하고, 지휘구조를 단순화시켜 현대전 양상에 적합한 조직으로 변모시킨다.

 

넷째, 해군은 수중·수상·항공 입체전력 운용능력을 강화하여 근해 방어형 전력구조에서 해상교통로와 해양자원 보호 등 전방위 국가이익을 적극 수호할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한다. 부대구조는 현재의 3개 함대사와 잠수함·항공전단 체제에서 3개 함대사령부, 잠수함사령부, 항공사령부와 기동전단 체제로 보강·개편하여 기동형 부대구조로 발전시킨다.

 

다섯째, 공군은 공중우세와 정밀타격에 적합한 구조로 발전시키기 위해 평시 적의 징후를 감시하고 응징보복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전시에는 공중우세를 확보하여 지상과 해상작전 수행을 최대한 보장한다.

 

- 국가기록원 기록 중 발췌

 

군심의 핵심은 육군이었다. 노무현 정부 육군 고위층(장성급들)은 노무현 정부와 당시 국방장관들에 대해서 상당한 반감을 가졌다.

 

(당시 군 고위층들은 정부와 통수권자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고, 사석에서는 아예 존칭도 생략하고 하대했다는 이야기을  언론에 나올 정도였다)

 

 

이들은 불만을 가질 만 했다.

 

“만만한 게 육군이라고, 육군 병력을 줄이고 해, 공군을 챙기겠다는 것 아닌가?”

 

“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육군 죽이기다.”

 

“국방예산이 늘어나면 뭐하는가? 전부 해・공군에게 투자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바보라서 기동전이 좋은지 모르고, 제해권과 제공권 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지 아는가? 한반도라는 안보적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장 북한이 밀고 내려오면,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뭔가? 공군이 아무리 근접지원을 해준다 해도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대포 밖에 없다. 우리가 포방부라는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포병 전력을 키운 이유가 뭔가? 북한의 기갑부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화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만이 넘어가는 북한군을 상대해야 하는데, 50만? 이건 나라 안보를 포기하는 행위다.”

 

육군의 불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개혁에는 저항이 따른다. 문제는 이 개혁이 ‘왜’ 시작됐는지에 대한 원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군에게 떨어진 가장 큰 숙제는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에 따른 한국군의 능력 배양... 아니, 미군이 수행하던 임무들을 넘겨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거였다. 즉, 북한을 상대할 수 있는 대응능력을 키우는 거였다.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 중 한 대목,

 

"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응딩이, 미국 응딩이 뒤에서 숨어가지고 ‘형님, 형님,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수많은 짤방이 만들어지고,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비꼬는 걸로 사용되는 이 연설. 이 연설은 대한민국 국군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친’ 면이 있긴 하지만,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국군을 비하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한국군의 현실이 그러했다. 이미 한국의 GDP가 북한의 40배를 훨씬 더 뛰어넘었고, 국방예산은 북한을 아득하게 떨어뜨린 채 수 십 년간 전력 확충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데, 전쟁이 나면 북한을 상대할 수 없다는 ‘엄살’을 피우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던가, 아니면 예산을 낭비했다는 거다.)

 

자, 문제는 미국 응딩이 뒤에 숨어 있던 한국이 노무현이란 ‘괴짜’가 등장해 자기 멋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고, 허울 좋은 ‘자주국방’을 선언했냐는 거다. 이건 명백히 해야겠다.

 

당시 국내언론과 군 일각에서,

 

“좌파정권의 아마추어리즘”

 

이라고 비난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과연 노무현 개인의 생각 때문일까?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전 지구적인 안보상황이 변화했다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911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지구의 안보환경은 급박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절의 전면전 개념이 이제 ‘테러와의 전쟁’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바뀌게 됐다.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27일 리처드 롤리스 국방차관보가 한국에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2003년 10월부터 주한미군 기지를 재배치합시다. 한 동네에서 너무 오래 산 거 같아. 용산 기지 뺄 테니까. 다른 집 알아 보자구.”

 

(노무현 정부 때 평택 기지 공사를 두고 대학생령  시민단체가 혈투를 벌이던 게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고생 많이 했다)

 

기지 이전은 시작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심각한 병력부족 사태를 미군에게 안겨줬다(럼스펠드는 신세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미군은 여기저기서 병력을 뽑아냈고, 이도 모자라 영주권의 허들이 상당히 낮아졌고(불법 이민자들을 군대에 집어넣기 위해), 민간군사기업은 떼돈을 벌었다(2차 걸프전 기간 동안 미 국방부는 수많은 용병들과 계약을 했다. 불과 10여년 전에 아버지 부시가 ‘군인’들에게 맡겼던 임무를, 아들 부시는 돈을 주고 외주용역으로 돌렸다. 사상자 카운트에 오르지 않는 용병들에게 임무의 상당수를 넘기고, 정치적 이미지를 지키려 했던 거다).

 

그런데도 미군은 병력이 부족했다. 이즈음 미군은 한국에 배치돼 있던 AH-64 아파치 부대를 빼겠다고 통보했다(대신 다른 항공전력을 채우겠다는 조건을 달아서). 미군은 병력부족에 시달렸고, 이들에게 주한미군은 ‘놀고 있는 병력’이었다.

 

“주한미군 병력 12,500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것이다.”

 

미군은 자신들의 계획을 한국 쪽에 통보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하자고 알려왔다. 대외적인 환경이 급변했다.

 

 

그리고 문제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까놓고 말해서 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무현이 들쑤시는 통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게 됐다.”

 

라는 분위기가 있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전시작전권을 넘겼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UN군 사령관에게 넘긴 건데, 주한미군 사령관이 UN군 사령관을 겸하므로 미군에게 넘겼다고 봐도 된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한국군은 미군의 지휘에 무조건 따라야 하냐?”

 

란 문제가 나오는데(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군도 지휘계통에 참여할 수 있다. 보수단체에서 입이 부르트도록 외치는 한미연합사. 이 한미연합사가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 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포함해 참모들의 반이 한국군이다. 지휘계통에 개입이 가능하단 소리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쟁론화 시킨 것도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전작권 환수에 대한 논의는 있었고, 실제로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미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상을 했다. 이걸 이어받은 결과가 김영삼 정부 당시의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다.

 

이 당시 김영삼 정부는 평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대대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문민정부의 치적이라고 포장하던 기억이 난다(까놓고 말해서 작전권 환수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는 노태우 대통령이다. 노태우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군 고위층들을 설득했고, 미국 측과의 전작권 환수에 대한 협상에 들어갔다.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가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것 뿐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평시작전통제권환수 이후, 전시작전통제권도 환수받기로 미국측과 협의를 마쳤으나...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 전작권 환수 계획은 어그러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