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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20.월

사회/문화부 기자



신창원이 또 달아났다.
차라리 어디 외국으로 밀항해버리던지...

 이러면 안되는 데 말이다... 죄를 지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게 마땅한데 말이다... 그런데, 그가 남긴 일기장을 보면, 탈옥범 신창원이 아니라 인간 신창원이 보이면, 슬슬 그 인간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가 처음 경찰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을때도 일기장을 남겼었다. 그때의 일기장에 의하면 중학교 학력이 전부라는 그는 교도소 폭력을 못이겨 탈옥을 했다고 했었다. 자기 말로는 가난한 자의 것은 손대지 않았다고 하고 포장마차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부럽다고 했었다. 이번에 남긴 일기장에는 보다 자세하게 이렇게 살아서는 언제가 죽을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교도소로 돌아가진 못하겠다는 말과 함께 교도소 행정의 비리와 인권유린을 고발하고 있다.

이쯤되면 갈등이 인다. 죄는 죄고 벌은 벌인데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인간이란 것이 기실 그다지 악독한 것이 아닌게 보이기 시작하면 갈등이 인다. 그러다 배짱좋게 검문소를 그냥 통과하고 그 와중에도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미안해하고 또 공을 다투는 한심한 경찰들을 보기 좋게 무찔러 버리는 걸 보다보면 갈등이 이는 거다...

이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어 가고 있는데 가만 보면, 일기장까지 포함해서 신창원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치밀하게 연출하고 있는 거대한 로드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적절한 언론플레이와 함께.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를 지켜보는 것은 답답한 경찰들 지켜보는 것보다 훨씬 통괘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맨날 신창원을 놓치는 경찰들에게 또 무지막지한 돌을 던지고 싶지도 않다.

목숨 걸고 싶지 않겠지... 두렵기도 할 것이다. 지난 번에는 공을 다투다가 놓치기도 했다. 승진하고 싶었겠지... 그 마음도 이해간다. 박봉에 맨날 야근하는 사람들... 그 기회에 표창도 타고 상금도 타고 승진도 하고 그러고도 싶었을거다. 그냥 그렇게 인간적으로 이해해 주고 싶은 면도 있다.

잘못을 묻는다면 그들을 박봉으로 내모는 시스템에게 묻고 싶고 잘못을 묻는다면 그들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하는 시스템에게 묻고 싶다. 그래도 그 못난 공명심은 졸라 욕 먹어도 싸긴 하다.


그런데 도망다니면서도 애인한테 전화했다는 신창원을 보다 보면 문뜩 몇 년전에 뇌물 먹은 걸 자기 혼자 홀라당 뒤집어 쓰고 감옥 들어간 어떤 고위 공직자 마누라가 생각난다. 마누라가 울면서

" 남편에게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 내가 다 먹은 거다... "

그러고는 쇠고랑 차 버렸다. 장관이던가 하던 그 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관쯤 되면 침대 가운데 무슨 철조망 치고, 보초 세우고, 서로 말하고 싶은 것도 인터폰으로 하며 사는 부부가 되는 지는 모르겠다만 백번 양보해서 설혹 마누라가 혼자 다 저지른 짓거리이고 남편은 쥐뿔도 몰랐다고 하더라도, 어찌 마누라에게 그 죄를 다 물을 수 있나.

결국 마누라가 그리 할 수 있었던 건 장관이었던 자신의 지위에 힘 입은 것이건만 도의적인 책임도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지가 남편이쟎은가. 그 공직의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고 위대한 거라고, 지 사회적 자존심과 명예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래 평생 같이 살던 여자를 그렇게 보내 버리나...

못난 쉐이. 븅신 쉐이.

마누라가 다 뒤집어 쓰려고 해도 내가 했다고 그래야 겠구만... 빌어먹을 넘... 이런 넘들이 남자 망신 다 시킨다. 이런 넘들이 한나라의 장관씩이나 하고 있다. 조또.

그에 비하면 목숨걸고 도망다니면서 애인한테 미안하다고 전화하는 신창원이가 약 백배는 낫다. 백 1배 나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폭력을 이기다 못해 탈옥했다는 걸 보면, 도대체 얼마나 쳐먹었는지 알수가 없고, 한보를 비롯해 전국민의 살을 떨게 하는 IMF를 부른 경제 망국을 만드는데 한몫 단단히 한 후, 그러고도 전국민이 보는 청문회에 기어 나와서 나 돈 안먹었어다고 새빨간 구라를 쳐대고 "아빠 미안해" 그러면서 질질 짜다가 감옥 겨들어 가서 얼마 있지도 않아, 뭐라더라 어디가 아프다더라 좌우지간 그렇게 보석으로 풀려나 버린 김현철이가 떠오른다.

신창원이 죄가 큰가 김현철이 죄가 큰가..

이건 백 2 배 크다.

백 3배, 백 4배 못한 놈들도 수두룩하게 머리에 떠 오른다...


아... 난 이렇게 신창원이 편이 되어 간다. 부상을 입고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 강도말고 그 인간의 편이 되어 간다. 그러다 운 좋으면 어디가 부러지고 잡히고, 재수 없으면 총맞고 스러져갈 인생이겠지...

창원아... 너 한 1년간 강도 짓한 돈을 너 쓰고 싶은대로 펑펑 써대고 살았다며, 왜 포장마차 그때 하지 그랬어. 너 그런 말 할 자격 없지. 근데 기특하게도 고아원인가 어딘가에 기증도 하고 그랬다며... 거참 미워하기도 쉽지 않네...

거참 이러면 사회정의가 안 서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자수하라고 하는 건 교도소 폭력이란 걸, 그 생활이란 걸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자의 주제 넘은 소리가 될 듯도 싶고...

백 1배 못한 놈이랑 백 2배 못한 넘 생각하다 보니 어찌 이 강도편이 되어 간다. 백 1배, 백 2배 못한 넘들은 지금도 잘 쳐먹고 잘 살고 있는데 그 넘들에 비하면 조무래기에 불과한 이 인간의 목숨 건 도망극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이 강도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차라리 강도편이 되는 게 훨씬 통쾌한 답답한 한국이다...


이렇게 헷갈리는 사람 나 말고 또 없수? 




 


- 사회/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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