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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의 일기(1)

1998-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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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부 기자 추천0 비추천0






1998.7.20.월

사회/문화부 기자



먼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들.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반항하다 모진 구타를 당하다 죽은 이.몸이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죽은 이.

이들에게 저승에서는 이승에서와 같은 고통이 없게 하소서!

죽어야하는 죄인이지만 국민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게 있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내가 죽는날까지 도망자의 신분이기에 남을 속이고 있지만 여기에 적는 말은 진실뿐임을 밝힙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젊은 나이에 죽은 피해자와 그분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나 때문에 젊음을 구속당한채 보내야하는 여린마음의 동생들에게 깊이 사죄한다.

나는 아마 이세상에서 제일 나쁜놈일 것이다.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한일을 해본적이 없다.어떤이들은 나에 대해서 얘기 하기를 "그놈 참 난놈이야,의적이야!"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그러나 그들은 나에 대해서 잘못아는 것이다.나는 의적도 난놈도 아니고 나쁜놈에다 죄인일뿐이다.나는 그간 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왔다.

전엔 그게 잘하는 짓인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느꼈다.단돈 천원을 도와도 내가 정당하게 힘들여 땀흘려 번돈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것을…

나는 교도소에서도 문제수였다.처음 무기형을 선고받고 자포자기식으로 살았다.술도 먹고 담배도 피고 해서 징벌을 여러차례 받았고 내길이 아닌 남의 일로 인해서 나 혼자 교도관 5발을 맞고 잡힌적도 있다.물론 내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교도관들의 행동도 잘한것을 아닐것이다.

소내 규율은 잡는다고 운동잘하는 교도관들을 선출해서 이유없이 막무가내로 두목급들을 구타했다.이에 대해서 항의로 나 혼자서 난동을 부렸다.이로 인해 나는 문제수로 낙인이 찍혔고 교도소 네곳을 거쳐서 청송제2교도소에 가게됐다.청송을 가기전에 대전에서 교육을 받는데 아마 예전 삼청교육이 힘들었어도 이만했을까 싶다.

30여㎏의 모래 가마니를 어깨에 매고 훈련을 받는데 3시간을 땅위에 내려놓지 않고 훈련을 받는다.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작해서 여러가지를 하는데 젊은 나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연세많은 사람은 어떠하겠는가.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시는걸 옆에서 부축했더니 머리·어깨를 안가리니 몽둥이가 날라 왔다.그것도 웃으면서 하는 말이

" 너희들은 죽이지만 않으면 돼.병신이 되어도 우리에겐 책임이 없어.국가에서 허락한 일이야! "

8주동안 계속된 훈련은 정말 그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그 훈련으로 인하여 허리,관절등에 고질병이 생긴 이들이 무수하다.이유없이 날라오는 몽둥이 고통때문에 괴로워하면 손가락질하며 웃는 그들의 모습이 악마 그
자체였다.그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중 절반 정도는 자기가 교육을 받기전의 교도소로 다시 가고 나머지는 청송으로 갔다.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모두 수갑을 손에 찬체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열두시에 그곳에 도착해서 6시경에 방에 들어갔으니 얼마를 맞았겠는가 연세 많으신 분들도 머리를 맞아 피가 나는데도 멈추지 않고 매질과 기압이 계속됐다.

한겨울에 방안에 있는 물이 꽁꽁어는데 정좌를 하고 문앞에 경비교도대의 얼굴만 보여도 머리가 마루바닥에 꽝소리가 날정도로 절을 해야 했다.운동시간을 15분정도 그것도 기합으로 시작해서 기합으로 끝났다.

새로지은 특별교도소로 옮기기 얼마전에서야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 있었다.새로지은 교도소에 옮겨서 생활하는 도중에 영하 15도쯤 내려가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 마루바닥에서 담요 세장으로 살아야 하고,방안에 있는 물이 꽁꽁어는데, 얼굴을 내놓고 자야한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정좌하고 앉아있어서 몸이 꽁공얼어붙어서 발을 손으로 문지르면 자세불량으로 얻어맞고 밤에 얼굴을 내놓고 자면 추워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얼굴을 수건으로 덮고 자면 깨우고,그래도 너무 추워 수건으로 덮으면 자다말고 끌려나가 두드려 맞기를 여러차례, 추워도 참고 그냥 자자고 해도 잠이 오질 않았다.그래서 위장병과 간염이 생겨 열이 39도를 오르내리고 너무나 아파서 방안을 굴러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하니까 보건의가 와서 체온계를 떼고는 "열이 있네" 하면서 해열제만 한 알 주고는 그냥갔다.

해열제를 먹었는데 고통은 가시지 않고 속에서 피가 넘어오기 시작했다.그래서 의사를 불러달라고 소리치니까 대답이 없어 방문을 발로 찼다.방문을 발로 차니 교도관 여러명이 오더니 "이새끼가 방문을 차 어디 한 번 죽어봐라"하면서 끌고 나가 온 몸을 묶힌 채 얻어맞고 밟혔다.그것도 약1시간
반동안. 아마 내 체력이 강해서 살 수 있었지.보통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밟으면서 그들이 하던 말과 얼굴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없다.

"이 새끼가 쌩까네"하면서 웃는 모습 그들은 때리면서 상대방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그때 발이라도 조금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들의 목이라도 물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죽을려고 몇번 생각했지만 죽을 수 없었다.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그 때부터 나는 탈옥을 계획했고 내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는 5년이 걸렸다.

5년동안 나는 간과 쓸개를 빼놓고 살았다.나는 나쁜 짓을 많이 했다.그렇지만 남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짓은 하지 않았다.5년동안 허점을 찾느라 보냈고 허점을 발견하고 실행까지 3개월이 걸렸다.

쇠창살 2개를 절단하는데 2개월이 걸렸고 체중을 빼느라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실행당일 나는 못으로 만든 칼 하나에 팬티 하나만을 걸치고 나왔다.만일 발각되면 죽을려고 했기 때문이다.창살을 바져 나오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먹지도 몸을 밀어넣어도 몸이 꽉 끼어 움직이기도 힘이 들었다.

무리를 주어 빠져 나오는데 「힘이 들었지만」성공했다.등과 어깨 부위는 찢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은 것은 3개의 담 간이벽위로 쳐진 5m의 담을 밑으로 뚫고 들어가는데 2시간이 걸렸고 공사장에서 쓰는 철근을 담에 대고 1번째 담을 넘었다.나를 발견하고 총을 쏘는데 걸리는 시간을 5.1초 잡았고 내가 담을 넘는 시간을 약 5초 잡았는데 내가 담위에서 발견돼면 3초정도의 시간이 나에게 있는데 그 시간이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 빨리 넘어서일까 아니면 경비교도대원이 자고 있었는지 발견되지 않았다.담을 모두 넘어 농가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화원에 가서 옷을 훔쳐 입고 부산 시내도 들어 갔는데 날이 밝하오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가기로 하고 첫 택시를 잡았는데 기사가 젊은 사람이었다.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그 기사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것 같아 그 차를 보내고 다음 택시를 잡았는데 연세가 지긋한 분이였다.그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에게 자식들이 몇 있어서 자식들 얘기를 한 것 같다.

택시가 서울에 가까워질 때 내가 기사에게 나는 탈옥을 한 탈옥수이고 오늘 새벽에 나왔으니 지금 라디오를 틀면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올거라고 하면서 "나는 아저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제발 내가 아저씨를 해치는 일이 없게 해 달라"고 하면서 차 운전은 내가 하게 해달라고 했다.

톨게이트를 지날 때 아저씨가 만약 신고를 했어도 나는 차만 몰고 그냥 왔을 것이다.

서울에 도착해서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전화할데가 있는데 돈이 없어 그러니 500원만 주세요 했더니 그래도 차비는 있어야할게 아니냐며 나에게 2만원을 더 주셨다.

그 분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아저씨께 정말 감사드린다.

나는 아저씨가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만 하고 바로 서울을 빠져나와 천안으로 갔다.천안에서 3일 정도를 산속에서 잤고 남의 집 지하실에서 몇일을 자다가 TV에서 한일전 축구경기를 중계한다기에 다방에 가서 축구경기를 보다 해분이를 알게되어 해분이와 일년여를 살게 됐다.그간 나는 남의 돈을 훔쳤다.

70평이상 되는 빌라 100평,120평되는 빌라들….

해분이와 살았던 얘기는 쓰지 않겠다.나를 두번 팔아서 그녀가 미워서가 아니다.나를 두번 팔았지만 그녀에게 피해는 주고싶지 않다.

내가 만약 그녀와의 생활을 쓴다면 나는 거짓말을 해야되기때문이다.다만 한가지 나는 그녀를 이용하지 않았고 나를 숨기지 않았다.어느날 새벽 집에 들어갈려고 하는데 계단 불이 다 꺼져 있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눈주위에 강한 충격이 왔고 눈을 뜨기도 호흡을 하기도 힘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곳에서 빠져 나왔고 되도록이면 멀리 피할려고 쉬지 않고 달렸다.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얼굴과 머리는 손을 대지도 못할 정도로 따가웠고 화끈거렸다.억지로 눈을 뜨고 뛰었는데 금방 날이 밝았다.내 몰골을 보면 금방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될 것 같아 땅을 파고 땅속에 숨었다.밤이 되어 밖에 나와보니 사람들은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고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 근처로 접근했는데 몇명의 사람들이 집주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이 잠깐 가계쪽으로 간 틈을 타서 해분이를 만났다.그녀를 만나 "이제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이 발각됐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나와 함께 갈래?"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좋은 여자 있으면 그 여자와 함께 살아.나는 지금 갈 수 없어"

그때 나는 그녀가 이제는 자신이 위험하니 나와 헤어질려고 하는 줄 알았고 나는 그동안 고마웠고 잘 살아라는 말을 하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10여일을 떠돌다 성경이를 알게됐고 성경이의 모습이 선화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그 때문에 정이 갔고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다.내가 도피처가 필요했기에 빨리 그녀와 동거를 시작했던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내가 성경이를 이용했는지 모르겠다.하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만나지 않았다.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성경이와 함께 해분이를 만나러 갔다.옷과 짐,그리고 내가 기르던 갖가지를 가지러 간 것도 이유이지만 해분이와 헤어질 때 해분이가 살림을 차릴 여자가 있으면 꼭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얼굴 한 번 보게.

그때 처음 둘이 얼굴을 대했고 그 때문에 해분이와 그날 많이 싸웠다.그때는 여자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나는 해분이가 나와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하는 불만 알았고 그녀의 말대로 성경이를 대려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송탄에 와서 몇일 있는데 아침에 차 있는 곳으로 가니 차 사이드미러가 접혀 있고 거기에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그 쪽지를 읽으려고 하는데 뒷쪽에서 크락숀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해분이 차가 거기에 있었다.송탄을 하루 온종일 돌아다녀 내 차를 찾게 됐다고 했다.너무 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어서 왔다고 했다.난 성격이 모질지 못하다.

성경이와 해분이 어느 한쪽을 버렸다면 이렇게 힘든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그날 나는 해분이를 데리고 성경이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둘이 얘기를 하라고 했고 성경이가 "해분이 언니와 오래 살았으니 언니와 함께 살아라고 했다" 성경이는 정말 순진하고 정이 많은 아이다.착하고 불쌍한 애.

나는 성경이에게 무엇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다.죽는 날까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해분이와 2,3일을 지내면서 성경이가 너무 불쌍하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다.그때 성경이가 울면서 "오빠
잠깐이라도 좋으니 얼굴 한 번만 보자 정말 죽고 싶어"

나는 성경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너무 괴로웠다.선경이는 전에 사는 것이 괴로워 물속에 뛰어든적이 있었다.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있어 인공호흡을 해서 다시 살아났지만, 내가 성경이를 만나기 전이었지만 그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되어 해분이에게 성경이를 잠깐만 만나고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는데 안된다는 것이었다.아무일도 없고 잠깐만 얘기만 한다고 했는데도 절대 안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고,나는 성경이에게 그냥 가버렸다.

그대부터 성경이와 함께 살았는데 해분이의 계속된 전화와 수신지 추적을 해서 금방이라도 경찰이 들어올것 같은 불안감 대문에 너무 힘들었다.그때문에 성경이에게 잘 해주지도 못했고 내 신경이 괴로워져 많이 다퉜다.분명이 12월이나 1월달이면 전화추적이 들어 올거라는 것을 생각하고 하루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 했는데 그럴수 없었다.나에게 경찰들이 들어 닥치던날 하루 전 나는 성경이에게 오늘 떠난다고 말하고 울고 있는 성경이를 놔두고 집을 나왔다.그날 저녁 내내 성경이가 너무 불쌍해서 너무 괴로워 술을 마셨고 그녀를 떠날수가 없어 다음날 다시 들어갔다.그날 떠났더라면 그녀에게 피해는 없었을텐데….

잠을 자고 있는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집에 올 사람이라곤 성경이 친구밖에 없는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성경이에게 문을 열으라고 하고는 주방에가서 칼을 잡고 오이를 썰고 있었다.성경이가 누구냐고 하니 신문사에서 나왔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우리는 신문을 안본다고 하면서 문을 열자마자 4,5명의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내가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까스총을 쐈는데 손 바닥으로 눈을 보호하고 가가이 다가가니 총을 나에게 던졌다 피하면서 다가가니 총을 나에게 던졌다 피하면서 다가가니 저희들끼리 도망치다 넘어지고 했다.앞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빌라 전체가 다 포위되어 있었다.

신창원 일기 (2)

- 사회/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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