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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이영훈 교수는 과연 친일 극우파인가?

2004.9.10.금요일

딴지 논설우원

 


토론 프로그램에서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가 했다는 망언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해당 학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총장 앞으로 교수직을 해임시키라는 투서까지 날아든다고 한다. 그야말로 온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는 양상이다.


필자는 토론이 있던 당일 초저녁부터 잠을 자고 있었다. 당연히 토론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고, 다음날 흥분해서 이영훈 교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틈에서 ‘아, 웬 극우 학자 한 명이 토론이 나와서 삽질했나 보다.’하고 무심히 넘기고 말았다. 그러던 중 토론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의 전문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무슨 헛소리를 했는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토론 전문을 읽던 필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영훈 교수의 발언에서 하등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던 시점이라 필자는 이상하다는 생각만 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영훈 교수의 해명서가 나왔다. 필자는 해명서를 읽으며 이영훈 교수의 과거사 규명 인식에 대해서 비교적 명확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당금의 전국민적 분노 현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를 통해 토론을 직접 보고 그 생각이 대충 맞다는 확신이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게 되었고 말이다.


필자는 이영훈 교수가 개인적으로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현 정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따위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토론의 발언 내용과 해명서의 내용을 기초하여 판단하건대, 그는 결코‘수구 꼴통’이라는 한 마디로 매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자가 보기에 토론 당시 의견은 세 개로 갈려 있었다. 첫 번째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방식으로 과거사를 규명하자는 쪽, 두 번째는 정부 차원에서의 규명에 앞서 학계가 주도가 되어 사회 일반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게 순서라는 쪽, 세 번째는 표면상 두 번째 의견을 살짝 뒤집어 쓴 채 가능하면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자는 쪽. 당시 토론을 보신 분들이라면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필자는 이영훈 교수가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보며, 조선일보의 우종창은 세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본다.  


일단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종군 위안부=상업적 성격의 공창제’발언은 이영훈 교수가 언급한 적이 없음을 짚고 넘어가자. 이영훈 교수는 역사청산에 있어서 사회의 자발적인 참여와 고백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법률에 의해 경계 지우기를 하면 자칫 나머지 사람들을 역사의 원죄로부터 면죄시키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 대안으로 종군 위안소를 이용했던 일본 병사들의 생생한 자기 반성적 증언이 담긴 일본의 자료를 예로 들었다. 종군 위안소를 이용했던 조선인 병사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을진대 어째서 한국에서는 그들의 증언과 자기 반성의 소리가 없느냐는 이야기다. 그는 이 문제를 한국 전쟁 당시 한국 정부에 의해 운영되었던 종군 위안부, 미군을 위한 합법적 위안부의 존재까지 연계시키며 이를 적극적으로 환기시키지 못하는 역사가들에게 비판을 가했다.


요지인즉 이영훈 교수는 성노예 범죄가 끔찍한 반인륜적 행위라는 인식을 토대로, 현재 역사가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대중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여론 형성에 힘써야함에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이 주장은 그 날 토론에서 가장 빛났던 부분이었으며,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표식이라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조선일보류 극우 숭미 집단이 어떻게‘한국전쟁시 남한 정부에 의해 운용되었던 위안부’와‘정부에 의해 합법적으로 운용되는 미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끄집어내며 비판을 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건 우종창이나 조갑제 같은 이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우종창의 머릿속엔 ‘이 새끼 빨갱이인가?’하는 생각이 스쳤을 거다.







그런데 그 때 ‘이영훈 죽일놈 사건’의 시발이 된 송영길 의원의 결정적인 한 방이 터져버린 거다. 그 전문을 읽어보자.


송영길 "지적할 게 있다. 일제 시대 정신대의 문제와 지금 미군부대의 문제를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우익이 지금도 주장하는 것은 정신대가 총독부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미 증거자료에 의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일종의 성적 노예 상태에 놓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군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


아, 필자는 인터넷 다시보기를 통해 이 장면을 보면서 절망의 신음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송영길 의원이 잘못짚어도 한 참 잘못짚었다.


이영훈 교수는 일제시기 성노예 범죄에 대해 명확한 비판의 입장이며, 사회 일반에서 이 문제가 철저하게 반성되지 않았기에 한국 전쟁시 국가 권력에 의한 위안부 운영이 되풀이 되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미군을 위한 위안부의 형태로 변형되어 이어졌다는 입장이다. 일본군의 성노예 범죄의 본질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남아 있고 당연히 이를 털어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를 미군 부대 성매매 문제와 함께 논했다는 표피적인 이유만으로 그는 이영훈 교수를 일본 극우파로 몰아버리는 결정적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뒤엔 토론이 완전 난장판이 되어버렸다.‘이 자식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하며 황당해하는 이영훈 교수와‘에라이, 일본 극우파 똘마니’라는 인식을 가진 송영길 의원 측이 서로 말을 잘라가며 오해를 풀 기회를 날려먹은 것이다. 심지어 노회찬 의원마저 송영길 의원의 인식에 동조하면서 이영훈 교수는 하릴없이 일본 극우파 꼬봉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이 언제나 흑과 백의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는 것이 아님에도 그런 구분에의 강요를 통해 진실이 왜곡되는 전형적인 모습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영훈 교수는 우종창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당시 토론장의 자리 배치가 1:1이 아니라 1:1:1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실상 이영훈 교수의 입장은‘과거사 청산’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정부가 주도’하는 과거사 청산이라는‘방법’을 문제삼은 것이며, 실제로 과거사 청산 작업 자체가 껄끄럽지만 차마 하지 말자고는 말 못하는 조선일보 우종창이 이영훈 교수의 논리에 빈대붙었을 뿐이다. 둘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햇볕 정책하자는 김대중을 친북 빨갱이라 부르는 조갑제식 논리와 무엇이 다를 수 있겠는가.


필자는 본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듯이 정부가 추진하는 과거사 규명 추진에 당연 찬성하는 입장이다. 수 십년을 표류하다가 너무나 힘들게 잡은 기회이기에, 이 기회를 십분 살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회 일반 차원에서의 대중들의 자발적 고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일제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적극 협력했던 일부의 친일파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곤 한다. 그러나 과연 당시 일반 대중들은 그저 순결한 피해자였을 뿐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기준으로‘악’인 것이‘악’으로 인식되지 않던 시기, 지금의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기, 대중은 흔히 그 시기의 기준과 가치에 매몰되곤 한다. 성노예 범죄는 머리에 뿔달린 악마가 저지른 악행이 아니다. 죄의식 없이 일제의 정책을 적극 찬동했던 조선인들이 있었고, 전쟁터에 끌려가는 피해자의 입장이면서 동시에 성노예들을 유린하는 데 동참했던 조선인 병사들도 있었다.


이영훈 교수의 말마따라 드러나는 친일파 몇 명 밝혀내고 처단한다고 해서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입각하여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파시즘을 비판하고, 사고와 행동 하나 하나에 남아 있는 과거의 잔재를 떨쳐버릴 때 비로소 역사는 청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잘 진행되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과거 청산의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의 의견도 잘 수렴되어 사회 전방위적인 청산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딴지 논설우원
칸막이( khanmagi@yaho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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