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분산형 에너지 정책과 지방자치

2003.8.5.화요일
딴지 환경부

 우리나라 에너지 체계의 특징

전원보급율 혹은 전화율(electrification)이라고 부르는 변수가 있다. 전기를 보급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냐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99%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 어딜 가나 전기가 거진 나온다는 얘기다. 하여간 독도 정도 되는 특별한 섬이나 지리산 대피소 같은데 아니면 어디 가나 플러그만 꽂으면 전기가 나온다.

어떻게 전기도 안 나올 수 있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거 엄청난 일이다. 그야말로 죽여주는 놈들이라고 외국놈들이 입 딱 벌어지면서 어, 끝내주는군 하고 한 마디 할 만하다. 이제는 다섯 개 발전자회사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으로 분화되었지만, 과거의 한전은 이 전원보급 하나만큼은 어쨌든 세계 초일류를 달성한 거다.

그 과정에서 재밌는 사례들도 엄청나게 생겼다. 산마다 꽂혀있는 철탑들, 별로 아름다워보이지는 않지만, 하여간 이것들이 송전탑이라고 하는 건데, 그러다보니까 이걸 사방에 꽂아야 한다.

박정희 시절, 유신의 절대 명제 중 하나가 하여간 전기는 주께였다... 송전탑 여기저기 꽂다 보니, 당시 정치 실세들의 땅을 지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음... 정일권이니 하는 사람들, 여기저기 자기 땅이 많다. 혹은 누군가의 선산을 지나가기도 하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하여간 내 땅에 쇠말뚝 박으면 죽어 하면서 엉까기도 한다. 그러나 해결은 쉽다. 박정희한테 일러주기만 하면 되니깐.

"님자, 당신이 전기 지나가는 걸 막는다구 했나?"
"아닙니다, 각하..."

전국 곳곳을 누비는 송전탑 중 난공사 구간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들이 많다. 그 뒤의 송전탑들은 가끔 문제가 된다. 과천 송전탑 같은 것들은 커다란 시민적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고, 요즘은 예전처럼 아무데나 송전탑을 꽂기가 쉽지는 않다. 아무튼, 이렇게 송전탑을 통해서 중앙에서 전력을 흩뿌려주는 방식을 중앙형 전원체계라고 부른다.

그럼 이 중앙에서 보내지는 전기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전기는 크게 기저부하와 첨두부하로 나누어진다. 얘기를 편하게 풀어보자면, 이건 기동성에 의한 분류, 즉 얼마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가의 기술적 특징에 의해서 나누어진다고 보면 된다.

원자력은 언제나 켜 놓아야 한다. 그래서 기저부하를 형성한다. 언제나 동일한 량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저부하는 가장 싼 전기인데, 발전단가가 싸기 때문에 싼 것은 아니고, 첨두부하처럼 예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싼 것이다.

한 여름 사람들이 에어콘을 켜기 시작하는 아침이라고 가정하자. 밤에는 원자력에서 나오는 기저부하로 나라가 움직여갔다.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석유 등을 태우는 화력발전소에 대한 가동이 시작된다. 가동을 시작하면서 실제 발전이 시작되는 것은 2~3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날 전력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되면 화력발전들이 작동을 시작한다. 물론 며칠씩 피크 부하가 걸리는 기간에는 이 화력발전기들도 계속해서 돌아간다.

그러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시간 대에 예상치 못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할 때 비로서 LNG 버너라고 부르는 천연가스 발전기들이 작동을 시작한다. 보통 버튼을 누르고 발전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대단히 유리한 발전방식이다. 40분 정도에만 미리 전력 수요를 알 수 있으면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력가격도 비싸다.
 

 분산형 에너지로 갈 것인가?

이미 이렇게 완벽한 전원 체계를 갖춘 우리나라의 좋은 점은 그야말로 전기를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핵발전이 가지고 있는 절대진리의 담론이 자리를 한다. 핵 발전이 싸냐고 엉까지만, 지금 위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안전비용까지 다 고려하고 나면 다른 방식에 비해서 그닥 싸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우리나라의 전기보급 체계가 중앙형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이걸 분산형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도 일종의 수출산업이라고 이해해서, 일단 우리나라가 이걸 많이 써줘야 동남아 국가에도, 이거 정말 필요한 거라고 얘기하고 수출산업으로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풍력이니 태양광이니 하는 것들이 이제 외국에서 최첨단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영 힘을 쓰지 못한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몽고에서의 풍력발전 보급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목민족인 그들은 한 곳에 텐트를 치면 소형 풍력발전기부터 텐트에서 꺼내놓는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는 게 TV부터 켜고 핸드폰의 충전을 시작한다. 초목지대 여기저기에 송전소를 설치하여 전기를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비교적 고가의 분산형 에너지들도 여기에서는 이처럼 경쟁력을 갖는다. 발전단가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체계까지 다 고려하면 신재생에너지들이 훨씬 더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새로 경제발전을 시작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분산형 에너지 체계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월등 높다. 아직도 농촌지역에 어떻게 전기를 줄 것인가가 고민스러운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혹은 중국 같은 곳과 우리나라를 같이 놓고 비교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문제 때문이다.

발전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peak 부하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어떻게 단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다. 때문에 이러한 중앙형 체계에서는 원자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설치비용과 처리비용이 조금 더 높더라도, 어쨌든 안정적으로 대규모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중앙체계를 안정적이고 큰 불편없이 운영하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만약 원자력이 정말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라면 장기적으로 원자력을 끌고가는 데에서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원자력이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중앙형 에너지체계를 가지고 있던 유럽 국가들이 분산형으로 시스템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시작된 변화들

그렇다면 원자력은 뭐가 문제인가? 원자력의 안정성 문제와 핵폐기물의 안정성 문제는 이미 상당히 소개가 된 상태이다. 그걸 떠난 또다른 문제는 시간에 존재한다. 20년~30 동안 안전하다는 얘기와 100년~ 200년 안전하다는 얘기는 전혀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다리나 도로 설계의 예를 들어보자. 다리를 엄청나게 튼튼하게 하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지막지 겁나게 크게 만들지 않는 것은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30년치 자료를 사용한다. 좀 더 안전하게 한다고 하면 50년치 자료를 사용하고... 다시 말해 30년에 한 번 생기는 큰 홍수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절대로 안전한 것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러면 너무 비싸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30년 기준으로 설계된 도로에 100년에 한 번 생기는 홍수가 발생해서 다리가 뽀샤지더라도 설계사에게 책임을 물리지는 못한다. 처음부터 그런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방사능의 특징상 이 설계기간이 수 만년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보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황당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원자력의 특징이 원래 그렇다.

만약 우리나라가 군주제와 같은 왕위 세습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면 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원자력 유치와 발전에 대해서 결정한 사람들의 책임이 대를 이어서 유지가 된다면, 그 손자의 손자의 손자에게 책임져라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위도의 보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손해를 보거나 힘들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다. 언젠가 기형아가 태어난다거나 아니면 희귀병에 걸린다거나 하면서 위도의 손해는 차후에 나타날 텐데, 그렇다면 무슨 권리로 이 지역 사람들이 지금 보상을 받고 그걸로 보상이 끝났다고 할 것인가. 원자력은, 그리고 위도는 이런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 보다 결정적인 문제점의 하나는 원자력 발전의 원료로 사용되는 우라늄 등의 원료가 석유나 다른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무한대로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경제성 기준으로 70년을 전망하기도 하고, 50년을 전망하기도 한다. 혹은 100년을 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원자력 발전도 다른 석유 등의 자원과 마찬가지로 멀지 않은 미래에 고갈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하여 분산형 에너지 체계에 의한 신재생에너지로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체계의 전환을 이미 시작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대단히 환경을 사랑하고,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이들 나라의 정치가들은 우리나라 정치가들보다 대단히 훌륭하여서 이미 잘 만들어놓은 송전탑을 포함한 중앙형 전원보급체계를 포기하고 분산형 체계로의 전환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분산형 체계의 전제조건

분권이라는 것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다. 중앙형 체계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자치와 분권이라는 것은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흐름인 거다.

에너지공급체계라는 것은 이러한 정치와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냥 신경 안 쓰고, 전기값만 내면 되는 세상에 살면 얼마나 편할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분산형 전원이라는 것은 보다 복잡하면서 불편한 전기시스템을 지역별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타면 왜 우리는 이런 불편한 걸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해 답을 들자면, 민주주의랑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냥 누가 앉아서 모든 걸 다 결정하고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데 왜 굳이 민주주의를 하려고 하지? 독재든 아니든 밥만 먹구 직장만 있으면 될 거 아냐? 하지만 우리는 귀찮더라도 투표하러 가야 되고, 불편하더라도 신문 챙겨 보게 된다. 분산형 전원도 이런 이치라는 거다.

에너지의 문제는 전지구의 환경보호와 같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지만, 요 조그만 남한의 땅이라도 오랫동안 망가뜨리지 않고 사용할려면 별 수 없이 해결해야 한다는데 문제의 출발이 존재한다.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는 상황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역에서의 분산형 에너지에 대한 보급, 그리고 이를 사용하겠다는 결정 같은 것이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덴마크나 독일 같은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기술력이나 국민소득 같은데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자치, 즉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느냐 아니냐라는 데에 존재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집 전기는 조그만 풍력발전기를 돌려서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전 같으면 전기사업자로 등록을 하라는 둥 난리가 나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제도적인 측면이 해결이 되어서 자기 집의 전기는 자기가 해결하고 남는 전기는 역송전, 즉 팔 수 있게 되어 있다. 현관문에 있는 전기계량기, 그게 역송전 시간에는 거꾸로 돌아간다. 음... 전기값을 내지 않아도 될 뿐더러 전기를 파는 것도 가능하다는 썰이다.

문제는 중앙형 체계 하에서 이런 조그만 발전들이 경제성이나 경쟁력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데에 있다. 또한 아직까지는 가격의 문제가 있는데, 이건 원자력에 해당하는 돈을 중앙 정부가 내가 해줄게 지둘려 하면서 그냥 중앙 시스템을 계속 독점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지방 정부나 지방 자체에서 그 돈 좀 우리 줘바바 하면서 분산 체계를 조금씩 만들어낼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똑같은 국민의 돈을 누가 쓸 것인가? 이런 문제에 보다 가까운 거다.

원자력에 대한 장기적 대안은, 그래서 조그만 분산형 체계들이 하나씩 등장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위도와 부안주민들이 핵폐기물에 관해서 집단적으로 가지게 된 자치의 경험은 그들에게 신재생에너지에 기반한 분산형 전원체계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모토로 살아온 시대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라는 또 다른 분권과 자치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거다.

미래, 흩어져야 산다. 핵폐기물에 관한 문제, 흩어져야 해결된다.

 
녹색정치 준비위원회 편집우원 겸 딴지 환경부 우원
비나리(binari@green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