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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구] 노-정 단일후보는 개헌을 약속하라!!

2002.11.17.일요일
딴지 수뇌부


노-정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아니,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니... 이루어질락말락 하고 있다.


그리고 두 후보의 결단에 감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87년 양김 단일화의 열망이 좌절되었으나 우리는 이루어냈다(민주당 이호웅 의원)


- 정치를 오래했지만 오늘같이 기쁘고 감명스러운 일은 없었다 (김원기 단일화 추진특위 위원장)


- 정치사에서 이런 분들이 있었나 싶어 눈물이 나오려 했다 (김행 국민통합 21 대변인)


그런데 미안하지만 본인, 그 정도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찝찝함을 느낀다. 그것은 지금부터 5년하고도 보름 전, 97년 11월 3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DJP 공조에 정식으로 서명했을 때 느꼈던, 그리고 영남을 아우른다는 명분 하에 엄삼탁을 입당시켰을 때 느꼈던, 그 찝찝함과 근본적으로는 같다.


이회창 대통령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내야만 할 절대 악인지, 나는 솔직히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이 스스로 늘 강조하듯, 그는 김대중 깃발을 들고 부산 시장 선거에 참여했다가 낙선했다.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갔다가도 낙선했다. 그리고 그 낙선이 오늘날 그를 있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선거에 되느냐 안 되느냐 보다는, 떨어지더라도 어떻게 떨어지느냐, 그 과정에서 동지, 다른 말로 사회 세력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이다.


왜냐하면, 사회라는 것은 (대통령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윗대가리가 바뀌어서 변화하는 것보다는 아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뀌고 조직화되면서 이루어지는 게 훨씬, 훠얼씬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회창이 당선되는 것이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고 그것만은 절대로 막아야 될 시대적 과제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적 세력의 뒷받침 없이는 설사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깎아내리기와 견제에 무력해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김대중 정권을 통해 너무나도 생생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5년전 그때의 DJP 공조는 50년만에 최초로 정권교체를 한다는 당위성이 있었다. 물론 집권야당 이회창 총재님도 계시고 한번도 제대로 힘써본 적은 없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만큼의 역사적 정당성은 없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그 정도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따라서 노-정은 이 단일화에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노무현을 찍어야만 할 정몽준 지지자들을 위해, 혹은 정몽준을 찍어야 할 노무현 지지자들을 위해, 혹은 뒤늦게 지지를 표명할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그들의 켕김을 해소시켜줄 만한 정당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것은 개헌이다. 5년전처럼 내각제 개헌 야합이라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각제는 그야말로 밀실 야합이었다. 이번에 합의해야 할 것은 결선투표제이다. 대통령 후보의 결선투표제 말이다. 과반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상위 2명에 대한 2차 투표를 통해서 과반수 지지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제도, 그렇게 개헌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노-정 단일화가 제 2의 DJP라고 흥분한다. 그렇다. 제2의 DJP인 것 같다.


그런데 5년전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김대중에게 투표했다. 한나라당엔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 노-정 단일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찝찝함을 안고 투표장에 가야만 할 것인가. 비판적 지지라는, 차선의 선택이라는, 아니 차악의 선택이라는 망령은 언제까지 우리를 짓누를 것인가. 진보정당은 언제까지 극우는 안 건드리고 자기와 더 가까운 후보만 깎아내리는 데 열중할 것인가.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더이상 후보간의 담판으로 단일화가 되느니 안 되느니, 노무현과 정몽준이 비슷한 성향이니 아니니, 밀실야합이니 아니니 티격태격할 이유가 없다. 더이상 비판적 지지니, 시기상조니 하는 말도 안 나올 것이다. 각자 열심히 달려서 1차 투표의 1등과 2등이 진검승부를 펼치면 그걸로 된다. 단일화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비판적지지 얘기가 줄어들면, 진보라는 사람들도 DJ를 극우세력보다도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할 이유가 조금은 없어질 것이다. 같은 밥그릇 나눠먹기 게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좃선과 민노당이 한 목소리로 김대중 물러가라고 외치는 씁쓸한 풍경이 조금은 덜 나타날 것이다.


또, 대선에 떨어져도 이인제 때문에 떨어졌다는 둥 하며 승복하지 않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과 이인제가 무슨 밀약을 맺었다. 이회창 집권을 막으려고 김영삼이 이인제를 내보냈다, 누가 누구의 양자다, 어쩌구 하는 정치 무협지도 덜 펼쳐질 것이다. 이인제가 "국민의 정부 출범에 가장 큰 공로자는 나"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코메디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꼼수가 아닌 진검승부, 왜곡되지 않은 민의, 우리는 그것이 보고 싶은 것이다. 정치는, 대통령 선거는 이회창과 노무현과 정몽준과 권영길 개인들 사이의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 세력 사이의 싸움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 싸움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그 해법은 결선투표제 뿐이다. 결선투표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그러나 많은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노-정 후보는 단일화에 서명할때 개헌을 약속해야 한다.





물론 노-정 합의에 찝찝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TV 합동토론을 회피하는 이회창이 물먹게 되는 상황, 그것은 매우 쌤통이다.


"MBC랑 사이가 안 좋아서 못 나가겠다"느니, 심지어는 "합동토론은 후보 상호간 감정을 돋구게 해 정치문화에 해악을 끼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토론회를 거부한 이회창이여... 본지가 접촉하자 "우리는 젊은 층이 선거에 관심 많이 가지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한 한나라당이여...


노무현 정몽준이 티비 토론에서, 그것도 일주일 사이에 두세번이나, 그것도 전국민적 관심 속에서, 그것도 단일화를 전제로 한 우호적인(?) 토론을 벌이게 되었을 때 상승할 지지율을 생각하면 한나라당은 속이 쓰릴 것이다. 그러게 진작 좀 나올 것이지...



97년 10월 말, 그러니까 5년전 이맘때보다 보름정도 빠를 때,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얼마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불과 10% 조금 넘었다. 신한국당 내부에서 극심한 내분이 일면서, 이회창 12~13%, 김대중 33~35%, 이인제 20~22% 정도의 지지율이었다. 그러다가 당 내분이 수습되며 이회창의 지지율은 급속하게 올라갔었다.


한국의 정치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국민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도 있고, 정치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도 있다. 아무튼 티비 토론을 결사 회피해 온 이회창이 물먹게 된 것을 미리 축하하는 바이다.


국민 앞에 덜 나타나는 것으로 당선되려고 하는 후보는 지금도 앞으로도 물먹어 마땅하다.





어쨌거나, 합의를 이룬 노-정 후보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양보합네 어쩌네 설들이 무성하지만 그것은 지나보아야 알겠고, 이 합의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것이 되려면, 후세에 남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선투표제이다.


2007년 대선. 그때는 이런 딜레마를 국민에게 주지 말기를 기원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하려고 있는 것이지, 자기들의 고민을 국민이 나누어지기 위해서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딴지 정치부
최내현 (asever@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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