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자유소견] 미국에서 본 <진주만>과 <반딧불의 묘>

2001.5.31.목요일

딴지 영진공 민원접수처
 



5월 28일 미국판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앞두고 극장에서 개봉된 <진주만(Pearl Harbor)>를 보러 동네의 제법 큰 극장에 갔다. 한 극장에 16관이 있는 동시상영관에서 다섯 군데 정도가 진주만을 상영중이였다. 극장에서 최대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사실 외관이 구분하기 어려운 동양인으로서 일본인이 진주만을 때려부수러 가는 영화를 보는 도중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른다는 과도한 노파심(?)에서 이 영화는 한국에 가서 보려고 했는데, 아는 선배의 타고난 낙천성 덕분에 그냥 함께 묻어 가게 되었다. 사실 별 일은 없었다. 그저 영화를 보는 도중 다소 일본인이 아닌 것을 드러내고 싶은 심정이 약간 있었던 것을 빼고는...


그런데 그 선배보다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은, 정말 관객중 동양계가 적게 눈에 보였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동양계가 많이 사는 이 지역에서 그래도 그 영화관에서는 동양계 관객(특히 한국인)이 쉽게 눈에 뜨이곤 했다. 그런데, 칠팔백석 정도 하는 상영관내에서 보이는 관객이라곤 거의 백인들이었고, 여느 때와 좀 달리 나이가 제법 지긋한 이들과 아이들의 비중이 높게 보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그저 우연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주만>과 같이 미국인의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이런 영화가 비교적 다양한 층의 백인층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의도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쨌든, 짙은 로맨스와 시선을 잡아매는 스펙터클로 일관하는 이 영화는 간간이 역사적 사실성(첩보전, 각국 군 지도부의 고뇌, 미 대통령 루스벨트의 등장)이라는 양념을 가미시킴으로써,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양하기엔 정말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본(및 중국 등을 포함한 동양)에 대한 경계심을 고양하는 데에서도...


어쨌든 영화의 스토리상으로는, 평화를 미국과 약속하며 외교상으로 공언하던 일본은 어느날 미국의 뒤통수를 치는데 이는 결국 잠자는 사자를 깨운 셈이었고, 미국의 대일 승전은 주인공과 같은 용감무쌍한 애국심과 동료애, 사랑으로 무장된 영웅적 보통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다는...뭐 이런 식이 아닐까...










주인공 여자와의 꼬인 로맨스를 영화의 축으로 진주만 공습의 스펙터클과 함께 묶어내는 점이, 시나리오 작업에 꽤 많은 공을 들였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짧은 시간에 스토리를 그럴 듯 하게 보이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스토리를 배치하고 끊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3시간내에 이를 끝내기 위해 후반부에서는 그냥 몇 년을 갑자기 건너뛰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히로시마 원폭 투하 나오고, 일본 항복 나오고 하면 시간은 더 잡아먹었을 것이고, 멜로의 축도 반감되고, 원폭을 당한 일본에 대한 동정심이 개입되어 미국의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애국주의는 많은 부분 상쇄되었을지도 모르는 터이니... 그들 나름대로는 잘 끊어먹은 것이다.


정말 돈을 엄청 바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이 이 영화를 보면, 그 뒤통수를 치는 공습이라는 기만성의 강조와, 잔인하게 표현된 공습장면에 기분이 무척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의 일본에 대한 오일 금수조치로 인한 전쟁 도발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온다는 점과, 진주만의 아이들에게 도피할 것을 알리고, 비행기 조종석 내에 역시 일본인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흑백사진을 붙여놓은 일본군 조종사의 묘사 등에서 그저 단순한 일본인의 야만화는 아니었다며 안도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irty Japs의 인상을 미국인 관객들에게 안주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고, 21세기의 초엽에 다시 일본과의 전쟁영화를 만드는 미국(인 감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사회가 이러한 군사적 영웅주의를 정신적 자양분으로 하여 전세계적 패권국으로서의 위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 골치아프게 복잡한 생각까지 해보았으며(이는 사실 <진주만>이라는 영화의 무게와는 상관없이, 내 직업병인 생각의 과잉에 근거한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전범 도조 히데키의 영웅화 등을 의도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권(지향)국은 전쟁영화를 잘 만드나? 하긴 전쟁이란 것이 인간의 극한 상황을 상정하는 동시에 역사(심지어는 세계사)와 개인사를 가장 강하게 엮어매는 경험이기에, 제대로 된 전쟁영화라는 것이 국민(통합)의식의 자양분이 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특히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다져야 할 필요가 있는 패권국일수록 그런 필요가 대중적으로 강하게 의식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본 후 집에 와서는,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일본 아니메인 <반딧불의 묘>를 다시 한번 보았다. 이 아니메는 반대로, 일본인의 입장에서 미국 폭격기의 일본 도시 공습에서 희생당하는 일본인 시민의 모습을 비극적/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딧불의 묘>


이것은 철저하게 일본의 시각이다. 이 영화에 물론 진주만 공습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 일본이 2차대전때 미국의 잔악한 민간거주지역 공습으로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가를 보여주려고 의도되어 만든 작품 같기도 하고, 너희 일본의 신세대는 현재의 풍요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전 세대의 이런 참혹한 현실의 극복 위에서 가능했다라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 같기도 하였다.


동네 비디오점에서 과거에 빌려다 본 <맨발의 겐>이라는 일본 소학교 교육용 아니메는, 일본 대도시에 대한 원폭을 사실적으로 무척 참혹하게 묘사한다. 원작 소설은 사실 반전 색채가 짙지만, 아니메로 만들어진 이 대중적 결과물은 원작의 정신과 달리 <반딧불의 묘>처럼 마찬가지의 관점을 부각하고 있다. 결론은 원자탄을 퍼부은 미국, 미워식인 Dirty Yankee가 되기 쉽다.


최근에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을 아시아해방전쟁으로 묘사한 역사왜곡적 영화가 개봉되었다고도 하며, 한국인 가미가제 비행사와 일본 여자친구간의 애정을 다룬 일본영화가 한국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한국, 너희도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어하며, 동질감을 강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장군의 아들>에 비하면, 이런 영화가 더 역사적 복잡성과 현실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구석이 있는지도 모르지...


결과적으로 드는 생각은, 한국도 <하얀전쟁>의 맥을 잇는, <유령>의 기술과 장치를 발전시킨, <쉬리>의 스펙터클성을 제대로 재현하는 역사/전쟁 영화를 통해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하얀전쟁>은 독보적이었다고 생각되며, 도쿄영화제 대상인가를 탄 것도 당연했다는 생각이다. 우리만의 경험을 우리의 목소리로 보편 세계사적 사건을 통해 잘 표현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제 항일전쟁의 경험이나, 한국전쟁에서도 이러한 소재들을 발굴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재수의난>이 왜 죽을 쑤었는지는 반성의 자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의 어느 감독인가가 만들려고 한 <아리랑> 김산의 스토리는 제대로 만들면 흥미로울 듯 하다. <아나키스트>가 이미 했나?


그래도, 님 웨일즈를 화자로 하여 그녀와의 애정관계와 동아시아 현재사, 김산이 사회주의로 전향하는 3.1운동의 비극, 중국혁명과 항일전선에의 참여와 같은 반제적 동아시아 연대의 역사적 경험, 하지만 결국 중국에 의해 스파이로 몰려 사형당하는 기구한 개인사 등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혁명의 지도자들을 모두 만나본 미국인 여성 저널리스트인 님 웨일즈 조차 김산을 만나게 된 동기가 중국의 어느 대학도서관의 영문도서 대출기록을 보고 거의 전부 빌려간 어느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를 자신이 만난 동양인중 가장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충분히 극적인 요소가 있는 실화인 데다, <아리랑>이라는 1차 소스도 있으니 이를 시나리오로 잘 바꾼 뒤 영화화 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이런 세계사적 전쟁의 사건에서 한국인의 경험은 정말 독특한 것이었으며, 전쟁 주류국들의 목소리에 파묻힌 우리의 목소리를 한번 내는 것도 의미있는 세계적 기여가 되지 않겠는가?  



 

딴지 영진공
공인 위촉위원 영화관객
(당 글의 필자는 본 공사로 멜을 때려주시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