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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론토의 어느 뮤지션


2001. 5.28
딴따라딴지 토론토 특파원 maetel

 

 

 




 
 

 

 

그들은 백화점 앞의 조그만 공간에서 드럼을 친다. 날씨가 추운 겨울 - 토론토는 겨울에 영하 30도까지도 내려간다 - 에는 가끔 변동이 있지만, 그밖의 날에는 언제나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 가까이까지 매일 그들은 이곳에 있다.  종종 기타, 키보드 등의 다른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합류하기는 하지만 정규 대원은 이 두 사람이고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그냥 가끔 그 공연에 참가하는 게스트 정도다.

드럼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물건들, 즉 금속 통조림통, 커다란 플라스틱 페인트통,  주변에 있는 가로등, 공공 쓰레기통, 우체통 등 두들길 수 있는건 뭐든 동원된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저녁 공연 시 그들은 오직 타악기 사운드만을 가지고 승부하는 거다.

 

기타도 없고 멜로디 악기도 없고 싱어도 없이 오직 두들기기만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자칫 잘못하면 그저 시끄럽고 난잡하고 피곤한 짓이 될 수도 있다. 그런만큼 음악적으로도 어렵고 체력적으로 열라 힘든 일이라는 거 알만한 분들은 다 알거다.

 

이렇게 연주하는 동안 사람들이 앞에 놓고가는 몇푼의 잔돈. 그걸 하루 모아서 식사 해결하고, 한달 모아서 방세 내고, 일년 모아서 드럼 업데하는.. 이들의 삶은 아마도 그런식일게다. 이처럼 두들기기만 하는 것으로 매일 대여섯 시간을 버텨나간다는 것은 그들의 드럼과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만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일의 절실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두사람 중 한명은 가끔씩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한사람은 언제나 그대로다. 왜소한 체구에 샤프한 눈빛을 한 이 아저씨가 바로 이 드럼 공연의 리더이자 터줏대감이다.

 

 






 
동양인 기준으로 봐도 작아보이는 이 아저시가 바로 그 아저씨다...

 

 

 

 

 

 

그의 나이는 눈짐작하건대 40대 중반 정도. 체구가 너무 작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얼핏 그렇게까지 나이가 들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제서야 얼굴의 주름살, 툭툭 불거져나온 손마디 같은 실제 나이를 가늠케 해주는 삶의 전과물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나이 40이 넘으면 누구라도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한창 때의 열정과 희망이 사그러들고 현실에 매몰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마흔이다. 이 연배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삶의 분주함은 분명 이십대의 숨막힐 듯한 열정의 시절과는 전혀 다르다. 이미 가족과 자식들에 대한 책임을 완수하고 현실을 지켜나가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 외에 다른데 신경쓰기는 벅찬 시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연주에서 이런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단지 맘의 문제만이 아니다. 뮤지션들에게 체격과 체력은 열정 만큼이나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드는 파트가 보컬과 드럼인 것이다. 이 40대 드러머의 폭발적인 연주를 듣다보면 그가 자신의 왜소한 체격과 체력을 얼마나 안타까워 했었을지, 또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으며,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한 드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을지가 생생히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연륜에 걸맞게 부드럽고 편하게 연주하는 스타일의 드러머가 아니다. 작은 몸과 점점 들어가는 나이에도 아랑곳 없이 아주 빠르고 강하게 드럼을 연주한다. 빠를 때는 1초에 7번씩, 있는 힘껏 파워풀하게 몸 주변에 빙 둘러있는 드럼들을 두들겨댄다. 그런 다음 1초에는 또 어떤 비트를 만들어 내야하는가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해내고, 다시 북을 두드리고...

 

 

이런 연주를 매일 계속하는거다. 하루 다섯시간씩. 

 

 


 

 

 

그저께인가, 정다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두 드러머가 그 번잡한 거리의 한켠에서 자동차 빵빵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상가들이 쏟아내는 오디오 음향에도 주저함 없이 언제나처럼 그들만의 멋진 라이브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마흔살의 주름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1초에 7번 두들겨지는 드럼 위로 떨어졌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연주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로 우리는 수년째 이곳에서 드럼을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몇 센트가 저와 제 옆에 있는, 이제 막 드럼을 시작한 젊은 아가씨의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날도 연주는 훌륭했고, 며칠 전 새로 이곳에서 연주를 시작한 여자 드러머 역시구슬땀을 흘리며 연주에 몰입했다. 사람들은 쌀쌀한 이른 봄 밤날씨에도 불구하고 드럼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무명의 두 길거리 드러머에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고, 그들이 가진 작은 금전적인 여유를 두 드러머 연주의 답례로서 선사하였다.

아마도 나는 35센트인가를 준 것으로 기억한다. 울나라로 치면 백원 정도밖에 안되는 그 돈을 주면서도 나는 조금도 부끄럽거나 민망하지 않았다. 진정한 찬사와 존경의 의미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내려놓았을 때 나이 마흔의 그 드러머는 땀에 범벅이 된 손으로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정말로 멋있는 사람이었다. 왜소한 체구, 눈가의 짙은 주름과 손바닥 전체에 박힌 굳은 살에는 쭉쭉빵빵 꽃미남 꽃미녀 가수들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깊은 삶의 의미가 새겨져 있었다.

 

 

 

 

 

 




 

 

 

 

 

 

 

딴따라딴지 토론토 특파원 maetel(maet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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