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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의학] 응급실인턴의 하루를 까발려주마

1999.8.30.월요일
엽기의학부 논술우원 심정석


사람들은 여기를 병원이라고 불러. 하지만 우리는 여기를 시장통이라고 하지. 여기가 어디냐구? 바로 응급실이란 곳이야.

 

그럼 나는 누구냐?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거 알지. 그러나 병원에는 남자와 여자도 있지만 인턴이란 천민계층이 하나 더 있어. 내가 바로 그 인턴이란 사람이야. 오늘 본 환자만 50명이 넘는데 말야 솔직히 그 사람들 다 집에 가서 괜챦을지 자신이 없어.

 

좀 전에는 돌을 막 지난 애기를 한 명 봤는데, 들쳐안구 청진하는 와중에 자식이 응가를 했어. 내 옷에 말이지. 가운을 입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내 와이샤쓰에 묻을 뻔했쟎아. 지금은 새벽 두신데, 한 시간째 손님, 아차차, 아니 환자님들이 안오고 있어. 도대체 웬일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지. 근데. 우이 씨바. 이거 웬 사이렌 소리야. 차라리 커피 뽑기 전에 오든가. 먹지도 못하고 식히게 생겼군.

 

환자 아저씨는 서른 여섯살이래. 어제 저녁 먹고 오른쪽 옆구리가 쥐어 짜듯이 아팠는 데 조금 있으니 괜찮길래 그냥 참았대. 근데 좀 전에 다시 아프기 시작했대. 너무 너무 숨도 못쉬게 아파서 119아저씨를 불러서 왔대. 이 아저씨 가만히 보니 엄살이 좀 심해 보여. 걸을 수 있으면 택시를 타고 올 것이지 웬 119야. 돈이 얼만데.

 

그건 그렇구... 근데 이 아저씨는 도무지 어디가 잘못된거지?

 

아저씨한테 잠깐 있어 보라구하고 잽싸게 당직실로 들어 왔어. 우리 인턴들의 생명줄. 일명 매뉴얼을 열나게 찾아 봤어. 이렇게 써있더군.

 

 오른쪽 옆구리가 아픈 경우...

 
 

맹장염 : 환자를 똑바로 눕혀놓고 배꼽을 중심으로 8시 방향, 5cm거리의 부위를 눌러보면 환자가 질겁을 하게 아파함.

 

 요로결석 : X-ray를 찍어 보면 아픈 부위에 결석이 보임. 요로결석이 의심되면 일단 진경제(요관의 경련을 풀어주는 약)를 놓고, 그래도 계속아파하면 진통제를 놓아도 됨.

 

 자궁외 임신 : 젊은 여자의 경우 꼭 한번 생각해 봐야함. 결혼 안했어도 의심할 것. 미심쩍으면 소변을 받아 임신 검사를할 것. 양성이면 거의 확실함.

 

 난소 염전, 게실염, 장 유착, 장 중첩... : 이런 건 어려운거니 몰라도 됨

 

내가 그래도 아이큐가 보통은 좀 넘거든. 그래서 매뉴얼을 보는 순간 이 환자의 경우 자궁외 임신이나 난소 염전은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어. 남자가 그런 병이 걸릴리가 없쟎아.

 

그럼 맹장염 아니면 요로결석이겠군. 에 그러면... 나가서 일단 아저씨 배꼽의 8시 방향 5cm 부위를 눌러본 후 아프다고 난리를 치면 맹장염일 것이고, 아니면 X-ray를 찍어 보면 되겠군. 나는 작전을 세우고 아저씨에게로 갔어. 다시 나가보니 아저씨는 침대에 누워 아직도 쩔쩔매고 있더군. 나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아저씨의 배를 지긋이 눌러 봤지.

 
 

" 아저씨. 이렇게 눌르면 아파요? "
" 이보쇼. 지금 이렇게 아픈거 안보여요. 아이고 죽겠구만."
" 아니. 그러니까 원래 아픈거 말고 눌러서 더 아픈건 없어요?"
" 아니. 지금 아파 죽겠다니깐 원래 아픈 건 뭐고 더 아픈건 뭐요? 빨리 주사좀 놔줘요. "
" 아저씨. 무슨 병인지를 알아야 주사를 놓죠. 아무 주사나 놓으란 말예요? 눌러야 아파요, 안눌어도 아파요? "

 

씨바, 이 아저씨는 왜 매뉴얼에 써 있는거랑 다르게 행동을 하는거야, 처음부터 작전이 빗나가기 시작하는군. 불길하게스리. 할수 없다. 일단 그럼 X-ray부터 찍어 봐야지.

 

흠... 아직 김이 폴폴나는 따끈따끈한 X-ray가 내 앞에 왔어. 어라? 정말 오른쪽 옆구리에 결석처럼 생긴게 있군. 정말 다행이야. 진단이 되었으니 말이지. 그럼 진경제를 주사하면 되겠군.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고 이렇게 말했어.

 
 

" 간호사. 이분 정맥주사 한병 놓고, 진경제 한 앰플 놓아 드리세요. "

 

아저씨는 몸집이 커서 그런지 주사 한 방 가지고는 별 소식이 없었어. 약간 고민을 하다가 한방 더 놓았지. 아저씨는 10분정도 지나자 얼굴이 확 펴지면서 정말루 안 아프다고 그랬어. 여기서 아저씨를 보냈어야하는건데...

 

내가 뭔 정성이 뻣쳐서 또 매뉴얼을 찾아봤나 몰라.

 
 

 요로결석...

 
 

 완치를 하려면 결석을 제거해야함. 요로 정밀검사를 통해 결석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확인하고, 크기가 크거나 잘 내려오지 않을 경우 초음파로 결석을 깨야함. 그래도 안나올 경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음.

 

일단 요로 정밀검사를 하란 말이지. 그래. 요즘 원스톱 서비스가 인기라는데 저 아저씨도 온김에 정밀 검사까지 다 해주고 보내자. 어으. 나도 이만하면 훌륭한 의사라고 할수 있겠지.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며 스스로가 위대해 보였어.

 
 

" 아저씨, 아저씨는 요로 결석이 있는데 말이죠, 일단 주사 맞고 안 아파지긴 했지만 완치를 하려면 먼저 정밀검사를 해야돼요. 병이란게 말이죠 안아파졌다고 완전히 낳은게 아니거든요.

 

아저씨의 경우 제가 진경제를 처방함으로써 통증은 완화 되었습니다만 결석이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아플지도 모르죠. 그러니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수 있죠. "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말도 막 유식하게 잘 되는거 있지. 나는 마치 원래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저씨한테 말했어. 아저씨도 나의 권위있는 말투와 표정에 감동하는 것 같더군. 정밀 검사를 받겠다고 했어. 안아프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하면서 말이지.

 

근데. 이거 어디서 웬 딴지야?

 
 

" 선생님. 요로 정밀 검사는 응급실에서는 못하게 되어 있는데요? 나중에 보험료가 삭감된대요. "

 

아까 무게 잡았던게 완전 쪽팔림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어. 어색한 미소로 대충 얼버무리면서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일단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비뇨기과 외래로 가보라고 할 밖에. 근데 이 아저씨 아까 내가 정밀검사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한 부분에 너무 감동을 받았었나봐.

 

내일 다시 오려면 직장에 휴가도 내야하고 곤란하니 돈을 좀 더 내더라도 지금 검사를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거야. 나는 안된다고 할 밖에. 갑자기 내가 나쁜 넘으로 되어가고 있는 순간이었어. 근데. 근데말야. 이 아저씨가 갑자기 도로 옆구리가 아프다는거야. 아까랑 똑같이 말야. 약효가 다 되었나봐. 난 황급히 외쳤어.

 
 

" 간호사, 진경제, 진경제 한방 더! "

 

근데. 이런 게 있대. 진경제는 하루에 두 방 이상 놓으면 세방 째부터는 보험에서 삭감된다고. 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두 방을 다 맞아 버렸쟎아. 도무지 보험이란 게 왜 있는거야. 그러나. 일개 인턴이 무슨 힘이 있겠어. 그냥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진경제 대신 진통제를 놓을 수밖에.

 

환자는 아픈 건 조금 가라앉았나봐. 근데 이제 집에를 안가겠다는 거야. 집에 갔다가 또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지. 얼마나 아픈지 아느냐고 나한테 따지는 것이야. 나 근데 지난 주에도 이런 환자 입원시켰다가 사유서 써내라는 통보를 두 번이나 받았거든.

 

보험공단에서 하는 얘기가 입원을 하지 않고 외래에서 치료해도 될 환자를 굳이 입원을 시킨 것이 과잉진료가 아니라는 납득할 만한 사유를 써서 내라는 것이었지.

 

그거 얼마나 귀챦은지 알아? 사실 나 지금 그거 두 장 다 아직 안썼거든. 이 환자까지 입원시켰다간 세 장 째 써야할 거 같은데 말야. 씨바 먹지 받쳐놓고 세장 한 꺼번에 쓸수도 없구말야.

 

근데, 이때 간호사가 정말 구세주 같은 얘길 해줬어. 소변검사를 해봐서 백혈구가 나오면 신장염 같은 것으로 인정 받아서 입원을 할 수도 있다는 거야. 환자는 입원을 하기 위해서 엉뚱하게도 소변 검사비를 지불해야했지. 그건 또 보험에서 아무 말도 안하나보데? 근데 씨바. 아저씨의 소변은 정말 맑고 투명했나봐. 백혈구가 한 개도 안나왔다는 거야. 난 이제 갈데가 없음을 깨달았어.

 
 

" 환자분, 병원이라는 데가 보시다시피 이렇게 시장 바닥같지 않습니까? 일단 먹는 약을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댁에 가셨다가 아침에 외래로 오세요. 또 못 견디게 아프시면 번거로우시더라도 응급실로 한번 더 오시구요"

 

나도 모르게 이제 환자분이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내가 생각해도 가증스럽더군. 그러나 아저씨는 전혀 감동하지 않았지. 그냥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 그러나, 그 아저씨도 그 부산한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나봐. 일단 집에 가겠다더군. 그래서 난 그 아저씨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어.

 

식은 커피는? 세면대에 버려버렸지.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 아저씨는 다음날 비뇨기과 외래에 갔었대. 근데 정밀 검사를 신청했더니 그 다음날로 예약이 잡혔다더군. 빨리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한 모양이던데, 매정한 병원 행정의 벽을 뚫지 못하고 일단 이틀치 약만 받아서 돌아갔나봐.

 

근데 담당 교수님이 검사를 받은 날에는 수술을 해야하기 때문에 외래를 볼 수가 없었대. 그래서 또 그 다음날 다시 와야 했지. 생각해봐. 아파서 응급실에 왔지. 다음날 외래에 갔지. 검사가 당일에 안되었으니 그 다음다음날 검사받으러 왔지. 교수님이 수술하느라고 외래를 못 본대서 그 다음다음다음날 또 왔지. 나도 의사지만 그 아저씨 얘길 들으니 정말 안되었더군.

 

응급실에서 정밀검사를 할 수만 있었어도 다음날 교수님 외래에서 결과를 볼 수 있었을텐데 말야. 어쩌면 아저씨 입장에서는 차라리 자기 생돈을 내고 처음부터 정밀 검사를 받는게, 세 번이나 병원에 왔다갔다하면서 교통비 들이고, 직장에 휴가 내며 눈치보고, 사흘밤이나 불안에 떨며 자야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나았을 것 같애.

 

근데...

 

이 아저씨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어.

 

사흘이 지나서 환자는 교수님께 정밀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대. 오른쪽 요관 중간께에 결석이 떡하니 있었다는 것이지. 이거 어떻게 해야하느냐구? 방법은 세가지가 있대나봐.

 
 

1) 초음파로 부수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거,
2) 거스기(요도)로 내시경을 집어 넣어서 꺼내는법,
3) 배를 갈라 수술하는거.

 

으으읔... 징그러. 나라도 초음파로 어떻게 해보고 싶을거 같애. 그 아저씨도 당연히 그렇게 해 달라고 했겠지. 교수님이 보기에도 초음파로 깰 만 했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했대. 일주일에 한번씩 세번.

 

3주가 지났어. 근데 돌아버리겠는거 있지. 그 결석 아직도 안 나왔다는거 아냐. 초음파로 좀 부스러뜨려서 크기가 약간 작아지고 한 10센치정도 내려오긴 했는데 아직도 완전히 나오려면 감감한거야.

 

교수님은 그래서 좀 아프더라도 거스기로 내시경을 집어넣는 좀 더 엽기적인 방법을 쓰고 싶어했대. 근데... 보험앞에서는 교수님도 힘이 없더군. 내시경을 써서 결석을 제거하면 말이지, 앞에 세번 초음파로 결석 부순 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거야.

 

죽이지?

 

어쩌겠어. 기약도 없이 계속 초음파를 할 밖에. 3주가 더 지나서야 결석은 완전히 제거되었대. 정말 다행이지? 환자 아저씨한테 한번 박수라도 쳐 주자고. 그래서 그 불쌍한 아저씨의 얘기는 끝이 났어. 이거 실화야.

 

우리나라 의료보험 끝내주지?

 

그리고 말야. 이것도 좀 한번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의사들도 알고 보면 불쌍한 그냥 인간들이라고. 뭐 그렇게 생각하기 싫으면 할 수 없고. 솔직하게 한 번 써봤어.

 

 

- 자료 제공 : 청년 의사
엽기의학부 논술우원 심정석 (
simjsmc@medikorea.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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