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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기] 니는 고문 받아바써 ?

1999.8.30.월요일
딴지 엽기정치부 최가박당


지난 번 딴지 20호에서 박통 근대화에 대한 비판기사를 썼더니 관심 있는 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의 멜이 국내외를 불문하고 각지에서 답지해왔다.


여지껏 독자무시를 통한 독자존중이라는 딴지기자정신을 발휘한다는 핑계로 격려멜에 일일이 답신해주지 몬했던 본 기자였지만, 이번만은 딴지기자 정신이고 뭣이고 팬 관리 좀 해야겠다는 흑심을 품고 짤막하게 감사의 답신을 보냈더랬다.


하지만 한두 통도 아니고 하루에 10여통 이상 멜이 쌓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답신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결국에는 아예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팬 관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비록 답신은 못 했지만 모두 고맙게 읽어보았다. 본 기자에게 멜을 보내고 답신을 받지 못한 모든 독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똥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염을 전한다.


멜을 보낸 대부분의 독자들은 동감이다, 잘 읽었다는 등의 격려성 내용을 담아 보내왔지만, 심심찮게 본 기자를 비판하는 멜이 오곤 했다. 그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단 한 마디만을 담은 엽기적인 멜도 있었다.



" 당신 굶어봤어? "


이미 멜 답신에 대한 의욕을 잠재우고 있었을 때라 이 멜을 보고도 끌끌 혀를 한 번 차보고는 기냥 넘어갔더랬는데... 며칠 있으니까 또 다시 송신인이 바뀐 동일한 내용의 멜이 전달되는 거시었다. 역시 내용은,



" 당신 굶어봤어? "


였다. 이쯤 되고 보니 본 기자도 모처럼 답신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일어섰다. 결국 아웃룩의 리플라이를 클릭하구선 넘께서 띄워주신 운율에 맞춰서 간단히 답신드렸다.



" 당신 고문당해봤어? "


이 유치한 답신의 목적은, 본기자 받은 황당함을 본기자에게 멜을 보낸 그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던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당신 굶어봤어?" 하는 물음은 박통 옹호자들이 자랑하는 허울좋은 휴매니즘을 가장 극적으로 응축시켜 표현한 걸작이었다.


본 기자에게 멜을 때려준 박통 지지자들의 구라빨 잔치에서 단연 장원감이었던 거다. 그 멜의 주인공(또는 주인공들)은 지금 당장 멜을 보내주시라. 총수님의 싸인과 딴지일보 로고가 새겨진 똥꼬 푸리 빤수를 부상으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년 전 본 기자의 과외지도를 받는 영광을 누렸던 고딩 여학생에게 박통에 대한 본 기자의 추억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부산에서 유치원 다니던 시절 얘긴데, 당시 본 기자는 노란색 병아리 유치원복을 입고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친구들과 함께 아침나절을 기다려 박통을 직접 대면했었다.


그 대면의 시간은 약 10초. 박통은 리무진차창으로 깜장 썬글라스 쓴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어주면서 아스팔트 큰길가에 늘어선 우리들을 휙 지나쳐갔다. 그 10여초 동안 우리는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른다. 꽃모양 리본을 단 북한의 어린아이처럼 친구들 가운데 몇몇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어린 제자는 무엄하게도 마구 웃어댔다. 박통이 죽던 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는 과외 선생님의 장엄한 추억담에도 이 녀석은 계속해서 폭소를 터뜨려 댔다. 가증스런 뇬.. 본 기자의 제자답게 이 뇬은 역사의 진실을 간파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통 시절을 겪지 않은 신세대들이 굼바리 박통의 독재시절을 향해 던져줄 가장 적절한 보답은 웃음이다. 그들에게 전태일의 계급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무리라면, 박통에 열광했던 순박한 산업전사들의 땀방울을 인식시키려 하는 것은 훨씬 더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우리의 신세대들은 북녘 땅의 김일성이라는 얼치기와 다를 바 없이 20세기 반쪽 조선의 왕으로 군림하려 했던 우스꽝스런 굼바리 독재자를 향해 차가운 웃음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밝혀줄 수 있다. 21세기 명랑사회는 박통을 향해 던지는 웃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본 기자는 이 땅에 아직도 박통 옹호자들이 많다는 사실, 그런 박통 옹호자들 그룹 속에 신세대들이 상당수 속해 있다는 사실에서 그 어떤 어처구니없음, 막막함 따위의 복합감정을 느낀다.( 그런 감정을 꼭히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엽기적인 독자들이 있다면 www.516.co.kr로 가보길 권한다. 박통 팬클럽 주소다)


이들의 철없는 생각을 반박해야 하는 상황에 설 때면 그러한 복합감정은 오히려 서글픈 감정으로 바뀐다. 그것은 1 더하기 1은 2라는, 무슨 새로운 논리나 진실이 아닌 명백하기 그지없는 사실을 머리가 다 커버린 아이들에게 설득해야 할 때 갖게 될 그런 종류의 곤혹스러움과 같은 거다.


자신이 박통 옹호자는 아니다라고 어설프게 외치는 뇬넘들 가운데에도 박통이 이룩한 눈부신 경제발전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한다며 짐짓 냉철하고 공평한 역사의식을 가진 양 폼을 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괜히 자신을 속이지 말고 떳떳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자신도 박통 옹호자라고... 이들의 얘기도 한 마디로 종합되지 않는가.



" 당신 굶어봤어? "


사실 이 휴매니스틱한 협박이 박통 정권의 장수비결이었다. 흔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이 협박은 온 국민을, 잘 사는 것 = 안 굶는 것이라는 희한한 단순논리로 무장시켰다. 다시 말해 온 나라에 이제 안 굶으니까 우린 잘 사는 거여 하는 천박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기만적 자기도취를 퍼뜨린 거다.


아이 엠 에프가 터지자마자 호들갑스럽게 결식 아동에 대한 얘기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온 것은 수십년 동안 가동되었던 저 희한한 단순 논리의 물리학적 관성을 보여준 것에 다름 아니었다. 결식 아동의 현실을 통해 우리는 소스라치게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굶는 우리 = 못 사는 우리


이쯤 되니 박통을 불러내야 되는 거다. 또 한번 잘 살아보세 살풀이를 해야 할 테니.


박통의 경제발전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던가를 설명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1더하기 1은 2를 얘기하는 것만큼이나 서글픈 일. 백번 양보하여 박통의 경제발전이 일말의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전태일의 분신을 통해 제로가 되는( 전태일을 과소평가한 데 대해 그의 영전에 용서를 빈다 ) 성과다. 알기 쉽게 공식화하자면,







박통의 경제발전 - 전태일의 분신 = 0

이라는 거다. 박통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바로 여기, 제로의 지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박통은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대가를 치룬 기형적 경제발전 외에 우리의 역사를 얼만큼이나 진보시켰느냐는 거다. 안 굶는 거 외에 우리를 잘 살게 해준 게 모냐는 거다.


위의 제로라는 수치를 인정하고 박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남는 건 박통 우상화 밖에 없다. 본 기자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기만의 순간들로 물들였던 저 시커먼 썬글라스밖에는 없다. 박통 앞에 무릎꿇은 채 자기의식을 상실한 비굴한 백성들밖에는 없는거다. 이제 제로의 수치는 마이너스를 향해 거침없이 곤두박질쳐질 것이다.


박통은 사실상 우리 역사를 동학혁명 이전으로 퇴보시켰다.


지난 번 기사의 주제도 그랬지만, 본 기자가 딴지의 벗님들과 진정으로 나누고 싶은 화두는 잘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거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얼마나 못 살기에 아직도 당신 굶어봤어? 따위의 협박에 놀아나야 하는 걸까? 어째서 아직도 우리는, 가수와 모델을 끼고 엽색행각을 벌이는 현장에서 부하의 총탄에 개죽음을 당한 굼바리 독재자에게 비웃음을 던져주는 대신에 영웅 대접씩이나 해주어야 하느냐 말이다.


박통은 잘 산다는 게 자유나 민주주의와는 다른 어떤 것, 억압과 착취와 엇비슷한 어떤 것이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굶지 않으며 배우고 익힌 박통의 저돌적인 가르침만큼 우리는 저돌적으로 억압과 착취에 길들어졌으며 저돌적으로 가난해졌다.


박통의 잘 살아보세 구호 덕분에 우리는 지금 정말 가난해져 있다. 1세기 전만 해도 우리는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알고 있었건만, 이제는 잘 산다는 게 도대체 무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처구니없이 가난해졌다. 오로지 안 굶는 것이 잘 산다는 것인가.


박통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이걸로 딴지에서 박통 야그는 끝냈음 한다.


이 비참한 절대빈곤을 박통이 해소시켜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1 더하기 1은 2다.



 


- 딴지 엽기 정치부 최가박당( hoggenug@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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