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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SICAF를 가다

1999-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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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니아 콘체른 추천0 비추천0






1999.8. .월요일
딴지 엽기연애부 대표기자 겸 그룹 비서실장 이드니아 콘체른
 


독자 열분께서는 혹시 sicaf를 아시는가.

아마 왠만한 분들은 한번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몇년전부터 국산 만화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각종 만화 관련 행사나 이벤트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종합 전시회가 바로 이 sicaf (Seoul 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 :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 이기 때문이다. 95년 처음 화려한 막을 열었던 sicaf는 그 이름에 걸맞게 빠방한 후원업체들과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방팔방에 홍보를 때려대며 국민들의 주목을 끌었었고 침체된 울나라 만화계를 회복 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찬사를 받아 왔었다. 그리고 sicaf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 성대한 5회째를 막을 얼마전 열어 제꼈다.

본기자 만화 디게 좋아한다. 보는것도 좋아하고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만화에 대한 이론을 공부 하는것도 좋아한다. 퇴근길에 근처 대여점에 들러 만화책 너댓권 빌려 가는 것은 당연한 일과중 하나이고 가끔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 하루종일 만화방에 죽치고 앉아 몇만원어치 만화책을 싹쓸이 하기도 한다. 이정도면 본기자 매니아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 축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번 sicaf 행사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벌써 3번이나 했었다는데, 그중 2번은 군대 있을때라 놓쳐버렸고 한번은 병원에 누워 있느라 못봤으니 그간 얼마나 속이 탔었겠는지는 굳이 말 안해도 이해 하시리라. 만화 좋아하는 놈이 국내 최대 규모의 만화축제를 처음 가보는 기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팅이나 소개팅 나가는 자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두근거리고 흥분됐다고 하면 비슷할까.

개막식은 평일이라 아쉽게도 가보지 못하고 대신 그 다음날인 토요일을 골랐다. 카메라도 정성껏 손질해 놓고 인터넷에 있는 sicaf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전시되어 있는 자료들을 일일이 하나씩 둘러 보기도 했다. 정말 그렇듯해 보였다. 특성별 23군데로 분류된 부스, 에니메이션 영화제와 코스프레 행사를 비롯한 각종 이벤트들, 수천여점의 전시 작품들...결코 후회하거나 실망할 일은 없을거라고 굳게 믿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홍대에서 삼성까지는 지하철 2호선으로 꼬박 40여분 거리. 내내 서서 가느라 다리가 무척이나 아팠지만 sicaf를 가는데 이정도 쯤이야 하고 꾹 참았다.

마침내 도착한 삼성역 COEX 전시관. 입장권을 사려고 티켓부스 앞에 서서 안내간판을 보니 입장료가 5000원 이다. 95년엔 2000원인가 그랬다는데. 뭐 그만큼 내용이 더 충실해 졌겠지...라고 또한번 믿으며 티켓을 사들고 드뎌 행사장 입구에 도착했다.

예전에 여기서 무슨 전시회 같은걸 했더랬다. 얼떨결에 친구따라 와봤었는데 집에 돌아올땐 양손에 사은품과 기념품을 잔뜩 들고 있었다. 그래. 그런것도 고객유치와 홍보를 위한 수단일테니까. sicaf는 그때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축제이니 만큼 기념품 같은것도 꽤 주리라고 생각했다.

근데...에게? 입구에선 겨우 sicaf 팜플렛 하나랑 모 치킨집 광고전단지 하나 주더라. 하다못해 뱃지라도 하나 만들어서 나눠주지. 그게 그렇게 비싼가. 되게 짠짠하게 논다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본기자가 무엇을 보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당연히 지루하니까. 근데 어쩌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나열한다 해도 그렇게 길지는 않을지 모른다.

왜냐면 전시장 한바퀴 도는데, 그것도 아주 꼼꼼히 살펴보면서 (심지어는 초등학생들 만화 그린것까지 손에 턱괴고 봐가면서) 모든 부스를 다 돌고 나오는데 딱 한시간 반 걸렸으니깐.

글쎄. 과거의 sicaf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올해 행사가 전보다 나아진건지 그대로인건지 더 하위 수준이었는지는 판단하질 못하겠다. 근데 딱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이게 국제 만화 페스티벌 이라구? 지랄하고 있네."

그래. 말 그대로 sicaf는 애들 주머니와 국고 털어서 한몫 챙겨보려는, 돈벌이에 눈이 먼 주최측의 지랄로 밖에는 안보였다. 대체 뭐가 국제라는 거지. 대체 뭐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위한 축제라는 거야. 혼자서 열심히 물어봤는데 당연히 아무도 대답은 안해줬다.

상업 부스들의 천국

적어도 본기자 생각은 이렇다. 아무리 울나라 만화가 침체기이고 이렇다할 수준높은 작품이 없다 해도, 그 조그만 COEX 대서양관 하나에 다 채워넣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그런데 sicaf 행사장 내부는 절반 이상이 상업 부스들 뿐이었다.

도대체 맘편하게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보면 뭐 판매, 뭐 판매. 인형 하나가 이뻐서 살짝 쳐다보면 6천원 인데요 이랬다. 누가 가격 물어봤나? 어느 완구류 회사 하나는 아예 부스 4개를 통째로 터놓고 인형만 열심히 팔고 있었다.

그래 뭐. 인형도 따지고보면 만화 캐릭터 산업의 하나라고 볼수 있을테니까. 근데 그걸 굳이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이라는 순수한 목적의 행사 안에서까지, 그냥 만화와 관련된 자회사 인형 갖다놓고 구경 시켜주면서 홍보효과 정도만 노린다면 몰라도 그렇게 대놓고 애들 상대로 (더 정확히는 애들 데리고 온 부모님 상대로) 판매행위를 해야 했었는지 의문스럽다. 덕분에 그쪽은 아예 가까이 가기도 싫을만큼 소란스럽고 지저분 했다.

이런 상업부스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요즘 막 선전하는 휴대폰 회사도 와있었다.

거기는 부스를 무려 6개나 독점한채 휴대폰 팔기에 정신이 없었다. 인형은 그래도 이해한다 치고 휴대폰하고 만화 축제는 무슨 관계가 있는데? 당연히 아무 관계 없지. 단지 정당하게 부스 임대료 내고 들어온거 밖에는.

조금 더 가니까 아예 한술 더 떴다. 본기자 일년에 대여섯번 정도는 COEX 찾아와서 전시회도 보고 그러는 편인데 지금까지 치킨집 하나가 통째로 들어 앉아서 닭고기 팔고 있는건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sicaf에서 첨 봤다. 정말 별 신기한 구경을 다 시켜주는 행사였다.

바닥에 널린 닭뼈랑 휴지, 기름기가 가득 섞인 주변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까 속이 메슥거려서 참을수가 없었다. 행사장 입구에서는 음식물 반입 금지라 그러고 안에서는 닭고기를 판다...정말 아니러니컬 했다.

암튼 부스를 전부 다 돌아보니까 거의 대부분은 뭐 하나씩 내놓고 판매하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만화책 팔러나온 잡지사도 있었고 모니터 파는 부스, 심지어는 "바퀴벌레약" 갖다놓고 파는 부스도 있었다. 할말이 없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구석쪽으로 가니까 국내 아마츄어 만화 동아리 부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딱 두사람 들어가니까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다. 치킨집이랑 휴대폰 부스 뜯으면 아마츄어 동아리 30개는 더 들어가게 생겼었다.

이게 뭐냐. 이거 진짜 만화축제 맞나? 만화축제 라면서 아마츄어 동아리 부스는 한평 남짓한거 하나 주고 먹을거나 기타 물건 파는 부스는 왜 그렇게 크게 주는건가.

이렇게 말하면 주최측은 요렇게 대답할 거다. 행사 준비하는데 자금이 너무 모자라서 할수없이 상업부스를 끌어 들였다고. 정말 제대로 멋진 행사를 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sicaf, 알고보니 서울문화사 주최였다. 서울문화사 회장이 sicaf 조직위원장 맡고 있었다. 이 서울문화사가 뭐하는데 인가. 대원동화와 함께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만화계의 필두다. 빅점프 영점프 이런 만화 전문잡지 발간하고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하는 소위 잘나가는 회사중 하나다. 또, sicaf가 서울문화사 자산으로만 개최하는 행사도 아니다. 엄연히 정부 지원 예산도 포함되어 있다. 만화관련 참가업체들의 부스 임대료, 정부 지원 예산. 이거 가지고는 sicaf 행사 하나 치루기가 그토록 힘이 들어서 (그것도 잘된것도 아닌 그저그런 수준의 행사를) 그렇게 나보란 듯이 치킨집이랑 휴대폰 부스를 들였다는 얘기인가?

정부 투자 예산이 낮아졌다고 정부탓 할건 못된다고 본다. 솔직히 내가 국고 관리하는 사람이라도 이정도 수준의 행사에 막대한 생돈 들이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투자를 이끌어 내려면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런거 빼고라도, 행사장내의 부스 임대료만 따져봐도 (공짜로 주었다는 부스들은 빼고) 대충 10억 정도 나온다. 아무리 봐도 10억짜리 행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이익 챙겨서 뭐할려고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울나라 만화를 위해 투자하지는 않을 것 같다.

국제라는 이름은 빼라

국제가 뭘까. International 의 뜻이 뭘까. 세계적이라는 의미인걸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국제 만화 페스티벌 이라면 가능한한 많은수의 나라들과 문화를 교류하고 그네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한층 수준 높은 세계의 만화들을 감상할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본기자는 sicaf 행사장에서 미국하고 일본 빼고 다른 나라 작품 있는거 못봤다. 팜플렛 보니까 분명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그것도 겨우 한 두점 뿐이니 더욱 모를 수밖에.

그나마 미국하고 일본 작품도 손에 꼽을정도로 적었다. 언제 울나라 만화가 일본이나 미국보다 더 수요가 많았었던가.

국내 아마추어 만화가들 생각해주고 대학 만화 동아리 생각해 주는거, 다 좋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국제적인 행사라면 그런 국내 작품들보다는 해외쪽에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울나라 작품들은 그냥 따로 대한민국 만화축제 이렇게 해주고, sicaf 행사는 대만이나 중국 이런 아시아 국가들과 동유럽 서유럽 중남미 중동지방 아프리카 까지 막 뒤져서 그네들 만화 찾아내서 "우리 이번에 졸라 큰 만화행사 하는데 니네꺼 꽤 괜찮아 보이니까 전시해 줄께" 이렇게 당당하게 들여와서 보여주고 해야 하는거 아니냔 말이다.

본기자가 행사장 처음 들어가서 보고 놀랐던게 포켓 몬스터 라는 유명한 일본만화의 주인공 캐릭터가 엄청난 크기의 풍선 인형으로 제작되어 서있는 모습이었다.

오...피카츄가 왔구나. 라고 생각해서 막 달려가봤는데 막상 포켓 몬스터의 제작사인 일본회사는 간데없고 수입 배급원인 대원동화가 떡 버티고 있었다.

뭐냐 이거. 피카츄가 대원동화에서 만든건가? 원작사가 엄연히 있다면 당연히 그들을 직접 초빙하거나 해서 그들 이름으로 전시해야 마땅한데 왜 그게 수입 배급원 이름으로 전시되느냔 말이다. 울나라 둘리를 미국 모회사가 수입했다고 해서 걔네가 자기들 이름으로 둘리 내걸고 전시하면 기분 좋을까? 고 옆에 일본만화 카드캡터 사쿠라 역시 카드캡터 체리라는 어정쩡한 이름 달고 나란히 서있었다.

만화축제 자체의 질을 놓고 얘기하는게 아니다. 즐기려면 충분히 즐길수 있을만한 행사였다. 하지만 적어도 국제적 수준을 기대하고 찾아갔던 관람객들을 배신 때리는 행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sicaf 지금 이런 수준으로 계속 해도 좋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많았고 특히 우리나라 아마츄어 동아리나 대학 동아리 부스는 아주 괜찮았다.

그럼 앞으로는 International 은 빼고 그냥 scaf 해라. 그냥 서울 만화 애니메이션 축제해서 울나라 사람들끼리 즐길수 있게라도 하란 말이다. 어중간하게 이거 찔끔 저거 찔끔 성의없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

이외에도 할 얘기는 많다.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왜 돈받고 상영해야 하는지, 영화제 역시 엄연히 sicaf라는 행사의 일부분인데 그깟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본기자 고등학교 1학년때 이미 보고 외워버렸던, 때 지나도 한참 지난 요수도시랑 아키라는 왜 갖다놓은건지 아직 이해가 잘 안간다) 만화 몇편 보여주는데 일반 극장보다 더 비싼 돈을 받아 챙겨야 했는지도 물어보고 싶고 이벤트 중 하나였던 코스프레 (만화나 게임 캐릭터로 분장하는 쇼) 가 갑자기 중단되었던 이유는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싶다.

근데 이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볼란다. 탁상공론 해봤자 더이상 나올거 없을것 같다. 본기자 직접 sicaf 조직위 찾아가서 녹음기 갖다 대놓고 자료 다 뒤져보면서 물어 보련다. 그런후 담호에 후속기사를 싣도록 하겠다.

뭐...sicaf에서 인터뷰나 취재 허락 못해준다면 할수 없는거고.

여하튼 이번 기사는 그냥 sicaf 기사의 시작을 위한 에필로그 정도로 봐주시면 되겠다. 봐주셔서 감사하다. 꾸벅~


 


-  딴지 엽기 연애부 대표기자 겸 그룹 비서실장
이드니아 콘체른 ( edenia@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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