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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3.8.월

음악전문 대기자 김기자

 


한국대중음악의 문제점과 대중문화관련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도 본 기자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대중문화와 소위 고급문화를 다루는 한국의 주류 언론의 시각엔 다분히 문제가 있다는 게 본 기자의 주장이다.

 

 


 

 

 

 우물안 언론

 

최근 음란비디오 출연 사실 문제로 시끄러운 오양 관련 보도만 해도 그렇다. 먼저 뉴욕으로 건너간 가수(본인 주장에 의하면) 임숭아와 합류하여 뉴욕브로드웨이 뮤지컬진출을 모색하는 동시에 할리웃 진출을 꾀하고 있다는 일간지들의 보도에 두 손을 들었다.

 

그 기자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비디오로라도 구해서 본 적이 있는가? 한국의 연예계처럼 적당히 인맥치고 얼버무려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건만 하물며 이 두 여인은 영어로 의사소통 하나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 도대체 어떤 근거로 그따위 기사를 이구동성으로 싣는지... 자기들이 우물안 개구리라고 국민들도 그런 줄 아는 모양이다. 

 

 



 
 


브로드웨이 강타안했다...

 

 

뮤지컬 얘기가 나왔으니 나온 김에 조금 더 말해보자.

 

작년에 우리언론이 합창으로 극찬을 한 뮤지컬 멍성황후만 해도 그렇다. 아시아 뮤지컬 최초로 미국본토에 상륙, 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우리뮤지컬의 수준을 자랑했으며 뉴욕타임즈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흥행 역시 대성공을 거두고 돌아왔다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냄비처럼 후끈 달아올라 찬양해 마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언론이 떠들고 극찬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것도 아니었고 공연장소(링컨센터)가 뮤지컬을 하는 극장도 아니었던데다가 90퍼센트 이상의 관객은 교포들이었으며 그나마 관람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초대권을 받아서 구경 온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티켓 판매 방식을 보면 이해가 간다.

 

보통 브로드웨이,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경우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티켓마스터를 중심으로 판매가 되는데 반해 오프브로드웨이도 아니었던 멍성황후의 티켓 판매는 거의 다 맨하탄 32가 한국타운에 위치한 한국서점과 한국 비디오가게,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지에 낸 공연광고 역시 본기자의 관점에서는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뉴요커들을 보라는 건지 교포들 보라는 건지 한글로 광고를 내다시피했다. 다른 뮤지컬처럼 전면광고 하기엔 예산이 딸려서 조그맣게 박스광고를 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조그만 박스광고 안에 영어만큼이나 한글을 많이 집어넣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뉴요커가 몇 명이나 될까? 이러구 어떻게 브로드웨이를 강타할 수 있나.

 

거짓과 과대망상적인 우리 언론의 그런 보도에 참문화를 갈망하는 우리 젊은이들은 "아 우리뮤지컬이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구나" 착각을 하고 비싼 돈을 들여 산 뮤지컬 티켓을 손에 쥐고 세계최초이자 세계유일의, 컴퓨터로 미리 녹음된 반주(그래서인지 마치 가라오케 반주 같다)에 곁들린 립싱크 뮤지컬을 보며 감동 받는다.

 

100퍼센트 정말로 연주하고 합창을 포함한 모든 파트를 실제로 노래 부르는 뮤지컬은 본기자가 알기로는 한국엔 없다. 뮤지션들의 인건비를 일일이 충당하기엔 예산이 없어서라느니 공연장의 시스템이 받쳐주질 않는다느니 노래를 못 부르는 연기자가 너무 많아서라느니...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는 되지 않는다. 왜 관객을 무시하는가? 모른다고 속여도 되는가? 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현실이다.

 

고급문화라고 불리는 오페라나 클래식계를 다루는 언론의 자세도 마찬가지다. 잘한다 싶으면 거품을 물고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로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조금만 소홀히 하면 금방 죄인을 만들어놓는다. 그 결과 조국이 그리워 한국에 돌아온 대지휘자 정명훈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마치 차범근 감독에게 한 것처럼.

 

엉터리 발음, 연출로 가득찬 오페라, 초대권잔치가 되어버린 지 오래된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교수라는 평생직업을 얻기 위해 자기 돈 들여 가족친지,기자, 교수들 불러놓고 하는 돈잔치 귀국연주회 등등 썩어 빠졌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게 된 데에는 언론의 공로가 참으로 크다. 일등공신이다. 한마디로 우리언론은 우물안 개구리에 양은냄비근성까지 고루 겸비했다.

 

그래도 혹자는 물을 것이다. 소위 고급문화에선 세계적인 인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군사정권과의 마찰로 독일망명을 택한 인물이다)을 비롯 바이얼린의 정경화, 사라 장, 성악가 조수미, 홍혜경, 대지휘자 정명훈 등을 두고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다 해외파다. 즉 순수국산이 아니다. 한국에서 음악교육을 받고 그것을 토대로 세계에서 인정 받은 게 아니고 실은 미국에서 교육 받고 그곳 풍토에서 든든한 후원을 받고 인정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일 해외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 계속 있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되었을까? 

 

인맥과 파벌,치맛바람과 돈으로 얼룩진 한국의 예체능계 입시제도 위에 반석이 다져진 작금의 순수음악계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것은 본 기자의 주장이 아니라 이들 해외파들의 한탄이다.

 

( 하지만 유태인을 중심으로 한 미국인들이 판을 치는 서구의 클래식음악계에서 든든한 백그라운드 없이 오직 재능과 노력만으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누르고 세계무대에 우뚝 선 이들의 음반을 세계각국의 유명 레코드스토어에서 만날 때마다 웬지 모를 감동으로 가슴이 떨린다. )

 

 표절과 모방의 한계

 

우리 언론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더 이상 남의 문화가 부러울 게 없다. 우리의 순수, 대중 예술 - 뮤지컬, 오페라, 교향악단, 연극, 영화, 음악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누가 조금만 잘 나가도 한국의 스티비원더, 한국의 퀸텐타란티노, 한국의 마돈나, 한국의 스필버그, 한국의 조지마이클, 한국의 로렌힐이라며 스스로 우린 아무리 해도 아류 밖엔 안 된다고 스스로 광고하니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닌가? 미국의 문화독점주의를 욕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을 향한 짝사랑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일까?

 

본기자 역시 영화건 음악이건 남을 즐겁게 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인을 앞서갈 민족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본다. 혹자는 선천적으로 엔터테이너의 기질이 풍부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본기자 생각엔 그것보단 오랜 기간을 거친 풍부한 경험과 노력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런 앞선 그네들의 기량, 제작기술과 자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는 물론 얼마간의 아류작도 필요하고 모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창조를 위한 것이 아닌 노력없는 모방과 아류, 즉 베껴먹기식 도둑질을 가지고 자아도취에 빠져 허우적거려서는 아무 것도 안된다.

 

최근의 10대 댄스음악을 보라. 갱스터랩이니 힙합이니 전부 미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린 지금 해도 너무한다. 미국음악의 형식을 도입,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스타일을 더해 개량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린 누가 제일 미국흉내를 잘 내는가에 오직 관심이 있다.

 

랩을 해도 흑인의 슬랭을, 발음도 흑인의 그것을 흉내내는데 열을 올린다. 흑인들의 랩도 영문법상 문법에 틀린다고 해서 우리까지 일부러 틀리게 하란 법이 없건만.. 옷 입는 거나 외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흉내를 낸들 흑인들이 하는 것만 하겠는가?

 

그네들이 우리 가수들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극한말로 표현하자면 원숭이가 사람 흉내내는 게 아니고 또 무엇인가? 흑인음악, 랩, 힙합 음악을 하는 것 다 좋다. 하지만 지금 같은 무조건적인 흉내보다는 그네들과는 무언가 다른 우리만의 스타일로 시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의 산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표절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니 작곡란엔 그냥 외국곡 또는 외국 누구의 곡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다고 쓰고 내놓고 베껴먹는 일련의 가수들 및 제작사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겉으로 보면 원작자를 밝히고 합법적으로 차용한 것 같지만 불법이기는 마찬가지다. 원작자의 허가 없이 하는 것이니 그렇다.

 

이것은 마치 농구화를 만들고 더 좋게 보이고 많이 팔기위해 운동화의 옆면에 마음대로 나이키사의 상표를 붙이고 밑창에 조그맣게 "신발 옆의 마크는 미국 나이키사의 마크입니다."라고 표기해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로 이런 것이 앞에서 말한 노력없이 모방하여 부와 명성을 취하려는 기만이다.

최근의 한국 영화는 또 어떤가? 근래 들어 일본인들은 한국의 일본문화개방을 앞두고 그네들의 판권을 헐값에 우리에게 라이센싱 해주고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래, 돈 조금만 내고 실컷 보고 들어라.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하면서... 하지만 표절시비에 시달린 데 지친 우리의 영화인들은 이때다 하고 헐값에 일본영화 시나리오 판권을 닥치는 대로 사서 드러내놓고 그대로 촬영을 하고, 영화음악 역시 <동물원 앞 미술관>의 주제가에서 보듯 일본 노래 판권을 사서 그대로 번안해 부른다. 법적으로 문제없으면 그만인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양심은 다 어디로 갔나? 그것이 정녕 한국영화라서 국민들에게 사랑해달라고 애원하는가? 스크린쿼터제 사수의 목적이 고작 그것인가?

 

99년이 시작되기 무섭게 방송에서는 애니메이션, 게임 등 첨단산업 개발과 일본음악 개방에 대한 대비, 그리고 다가 올 글로벌시대의 문화전쟁에서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우리모두 벤처기업인이라는 의식으로 뛰어야 한다고 역설 또 역설하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땅에서 살고 있는, 가진 거라고는 그야말로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두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이런 고부가가치의 연예오락 산업에의 투자와 연구,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가운데도 정말 기운 빠지게 배경음악으로는 일본음악을 무허가로 내보내는 게 우리 언론이다. 이런 아마추어리즘과 도덕불감증에 빠진 상태에서는 창조를 향한 진지한 모방이 가능하겠는가.

조그마한 분야, 단 1-2초가 나오는 음향효과, 십 여초 나오는 배경음악도 도둑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직접 만드는 것이 우리자신을 진정으로 발전시키는 길이다. 우린 조그마한 분야는 무시해왔다. 까짓것 대충 외국 것 그냥 쓰면 되지 뭘 하면서 음악은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쓰고 효과음도 외국영화에서 따다가 쓰거나 정 없으면 돈 아까워하면서도 외국의 사운드 이펙트 샘플 시디를 사서 별 생각 없이 쓰고...

 

그 결과 지금의 한국영화의 음향, 음악수준은 어떤가? 더빙 된 영화는 입과 소리가 따로 놀고 동시 녹음된 영화는 마이킹 하나 제대로 못해 한국말인데도 뭐라고 하는지 알아먹기 힘든 게 많다. 기술이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너무나 게으르고 안이했다.

 

 모방을 넘어

 

치밀한 모방으로 시작해 종국엔 그것을 뛰어넘은 사례는 무엇인가? 여기서 뛰어넘었다는 것은 우리끼리 그렇다고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닌 우리가 늘 외치던 세계진출, 즉 해외,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미주와 구미에서 제대로 대우받고 인정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의 대중음악에선 아직까지 그런 전례가 없다고 본다. 물론 외로운 시도를 하다가 사라진 우리의 아티스트도 극소수지만 분명 있었다. 모두다 우리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거문고를 일렉트릭용으로 개량, 서구의 뉴에이지 음악 시장에 도전하려던 연주자 신모씨를 들 수 있는데 거문고 개량에 필요한 돈 몇 만 불을 구하기 위해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구걸했지만 결과는 차가운 냉대뿐이었다. 모두들 미친 짓이라고 무시했지만 정확히 이년 후 일본의 전통악기인 코토를 전자식으로 개량한 드렉 나카모토가 이끄는 히로시마는 야마하의 전폭적 지지아래 세계로 나갔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든다면 찾기가 쉽다.

 

 한국을 온통 휩쓰는 R&B의 쟝르에선 도시노부 구보타를 들 수 있다. 이미 80년대 이후 끊임없는 흑인음악에의 연구로 일본에서는 더 이상 대적할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결과론적으로 그가 도전한 곳은 두 말 할 필요 없는 미국.

 

우리처럼 허울만 세계진출이니 그런 떠들썩한 구호없이 그는 91년 조용히 뉴욕으로 건너가 현지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결과적으로 97년 그가 발매한 앨범 SUNSHINE MOONLIGHT은 미 대도시 지역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흑인음악의 MTV라 불리는 BET라는 유명한 흑인음악전문 네트웍에서 그의 싱글 FUNK IT UP은 TOP10을 기록하였으며 앨범 역시 30만장이 팔리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냈다. 물론 단순히 미국내의 판매량을 가지고 그의 극복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물론 소니사의 지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흑인들 조차 그의 R&B를 감상해 줄 만한 포인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곡을 자기가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한다. 그의 노래는 하나같이 후렴구 전체를 계속해서 반복함으로서 듣는 사람이 나중에라도 기억 나게 만든다. (그의 모든 노래가 다 그렇다).

 

그의 창법의 특징은 흑인적인 요소 안에 숨은 일본 특유의 엔카씩 꺽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우리의 트롯과는 약간 다르다) 마치 빅맥 안에 얇디 얇은 사시미를 썰어넣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바로 이것이 많은 흑인들이 그를 JAPANESE SOUL MAN이라고 부르고 열광케 한 요소인 것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그의 음악을 듣고 뭔가 다른 창법의 R&B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그만의 스타일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음악과 테크노, 실험음악, 현대음악의 경우 일본의 국보 류이치 사카모토를 들 수 있다. 동경대학 작곡과 재학시절 이미 클래식과 전자음악,디스코,엔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습작을 거치고 졸업하자마자 3인조 테크노그룹인 Y.M.O. (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했다.

 

 

 

 

이들은 밴드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멸시(YELLOW MONKEY 라고 부르는것) 를 정면으로 치고 출발하였다.

 

전자음악과 디스코, 클래식, 현대음악, 테크노의 유형을 제시하며 동시에 엔카 선율을 적절히 뒤섞은 그들의 음악은 탄탄한 음악이론과 신디사이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서양인들은 말 그대로 동양에서 온 청년들이 부리는 황색마술에 매료되어 급기야 YMO는 최근의 MUSICIAN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독일의 KRAFTWERK, 영국의 GARY NEWMAN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테크노밴드로 선정되었다.

 

특이할 만 한 것은 이들의 노래는 영어보단 일본어로 그대로 불러 발표한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국력이 뒷받침되어 그런 시도가 통했을까? 10년 동안의 이들의 전세계 판매고를 따져도 천오백만장이 넘어가니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엔 물론 YAMAHA, ROLLAND 같은 세계를 휘어잡는 일본악기사의 지원이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마디로 Kraftwerk과 더불어 오늘날의 테크노/레이브/일렉트로니카음악의 모태를 제시하며 한시대를 풍미했다고 볼수있다.

 

YMO를 해체한 이후에도 그는 영화음악가로서도 아카데미상(마지막황제)과 골든글러브상(리틀부다), 칸느영화제 음악부문(MERRY CHRISTMAS MRS.LAWRENCE)을 수상했고, 91년, 미국에서도 랩이 생소할 시절 세계인의 귀를 놀라게 한 8마디 일본 랩 (요즘 한국래퍼들이 그렇게 중요시해대는 일본말 RHYME(각운)이 착착 맞는다)으로 시작하는 R&B 댄스싱글 "YOU DO ME"로 그야말로 국제적히트 (영국 챠트3위, 미국 챠트 28위(흑인챠트3위), 독일2위, 일본 10위)를 기록하였고 한술 더 떠 지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외모로 헐리웃에서도 배우, 모델활동을 하는 등 그야말로 세계를 밟고 서 있다.

 

그의 음악은 말뿐이 아닌 진실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 탐험으로 가득차 있다. 전통 오케스트라 편성과 테크노를 융합한 최근의 앨범으로 전세계 순회공연과 인터넷에서 쌍방향 실시간 라이브를 하는 등 그는 국적이 없다.

 

  미국인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재즈는 어떤가? 앞서 언급한 일본 출신의 두 남매가 이끄는 재즈퓨젼밴드 Hiroshima를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전통악기 koto 를 메인 인스트루먼트로 사용해 그래미를 석권,흥행으로도 미서부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 밴드로 자리매김을 한 지 오래다.

 

 뉴에이지는 어떤가? 우리가 잘 아는 실크로드의 기타로가 있다. 동양인에게 인색한 미국인들의 그래미상도 뉴에이지부문에선 그의 전유물이되어가고 있다. 그의 음악엔 역시 동양사상과 자신이 만든 동양적인 음색이서양 음계에 녹아있다. 서양인들이 뭔가 혹할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본기자 왜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을 칭찬하는가?

 

기회만 나면 일본을 이겨야 한다고 외쳐대는 우리는 과연 어떤가? 우리 예술인들은 과연 그네들처럼 피나게 노력하고 있는가? 정녕 우물 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진지하게 하고있는가? 불행하게도 본기자가 보기엔 아직까지 언론홍보용으로 하는 해외진출 밖엔 없다.

 

배우 김희순이 스필버그의 차기작 "게이샤"의 주연으로 낙점이 되었다느니(스필버그는 이미 2년전 일본출신의 모 여배우를 주연으로 결정해놓고 있었다고 미 ENTERTAINMENT THIS WEEK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심운하를 두고 헐리웃에서 오라고 난리를 친다는 둥 (영어레슨 받으면 다 헐리웃에서 오라고 하는가?), 직배사의 한국 내 앨범판매전략으로 윌스미스의 앨범에 한국가수 터부를 듀엣으로 기용한 것을 두고 한국음악의 위상이 높아지고 터보의 미국진출이 가능하게 되어 곧 빌보드챠트에 오를 거라는 둥 (한국 내에서 발매되는 음반에만 수록되어 있다), 정말 3류 언론플레이 하나는 해외 진출감이다. 노력도 안하면서 무슨 해외진출인가? 88올림픽을 정점으로 불어닥친 한탕주의, 물질주의, 획일주의가 이런풍토를 만들어버렸다.

 

결국 우리가 신문에서 접하는 연예인의 해외진출은 실력은 고사하고 노력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얼굴들과 언론의 냄비근성이 빚어낸 산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우리들끼리 칭찬하고 누구는 월드 스타 라느니 세계시장 진출을 했다느니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실력있고 노력하는 예술인들을 배출해내려면 우리 대중들이 앞장서서 이런 풍토를 바꿔야 한다. 그들이 묵묵히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한 장르에 편중되지 않은 문화의 다양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데 우린 여기서부터 안된다. 미국 문화의 힘은 바로 다양화에 있다. 고급과 쓰레기가 함께 공존한다.

 

조금 과장된 말로 빌딩은 회색으로 지어야 하며 학생들 가방은 무조건 이스트팩, 인기미니시리즈에 여주인공이 샤넬빽을 메고 머리를 특이하게 퍼머하면 우리의 젊은이들은 다음날 모두 여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새내기 여대생은 무조건 Baby-G 시계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이게 우리다.

 

최근 한국의 인디음악에 대해 말이 많다. 미국 얼터너티브 락의 한심한 모방인 것도 있고, 꽤 참신한 것도 있고, 나름대로 노력한 밴드도, 기본적인 연주조차 안되는 밴드도, 가사만 괜챦은 밴드도 있고, 일본식의 요란한 겉치장으로 한 몫 보려는 밴드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게 싫다면 판을 안 사도 좋다.

 

하지만 최소한 앞장서서 자라나는 다양화의 싹을 밟아 죽이지는 말자. 말도안되는 음악을 하고 때로는 못 들어줄 정도의 음악을 한다고 해도 죽이지는 말자. 싫으면 안 들으면 되질 않는가? 적어도 이들은 획일적인 한국의 대중음악 시스템 하에서는 이단아들이다. 아직 싹도 안 난 마당에 밟아 죽인다면 우리에겐 더욱더 미래의 희망은 없다.

 

한국을 휩쓰는 10대 댄스가요가 뭐 어떠냐고 묻는 이들도 많다. 물론 10대취향의 댄스도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문제는 그것이 한국 음반시장과 방송을 완전장악 한다는 게 문제다.

 

혹자는 반문한다. 지금의 10대 아이돌 중심의 문화는 이미 6-70년대 비틀즈, 롤링스톤즈, 엘비스프레슬리를 통해 미국에서 생겨난 것이고 당시 미국에서도 많은 기성세대가 걱정과 반발을 했다. 우리는 그네들보다 몇 십 년 뒤지니 그렇게 보면 자연스런 흐름 아니냐고 말이다.

 

겉모양이 조금 비슷하다고 아무데나 비교하는 게 아니다. 음악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상혼과 결탁한 무양심이 판을 치는 작금의 한국 아이돌 문화를 비틀즈와 스톤즈가 일으킨 팝문화와 같다고 말하는 건 정말 우스운 비교다.

 

혹자는 왜 댄스하고 발라드만 물고 늘어지냐고 한다. 락이나 재즈 한다고 하는 아티스트들도 표절하고 엉터리긴 마찬가진대 라면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세를 장악하는 10대 취향의 댄스음악의 잘못된 틀만 부수면 다른 장르의 음악은 자연히 정화되고 발전될 것이라고 본기자는 확신한다.

 

맨 처음 우리 힘으로 바꾸어야 할 것은 이같은 획일화의 틀을 부수는 길이다. 그런 것들을 안 보고 안 듣고 안 사면 된다. 욕하면서도 할 수 없이 듣고 보고 중독되는 것은 또 뭔가? 듣지 말고 보지말자.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용기 내서 하나 둘 씩 분명히 싫다고 하면 바뀐다. 방송사나 음반 기획자들이 누군가? 안 팔리는 물건 안 만드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음반구매력은 언뜻 보면 10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20-30대는 구매할 것이 없어 포기한 상태라고 보면 되고 그 틈바구니를 10대가 용돈 타서 메꾸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정답이다. 경제상황이 어렵지만 좋은 음반이 있으면 서너 장은 한꺼번에 구입하는 게 20대 중반-30대중반의 구매 계층이다.

 

좋은 음악이 없다고 구매 않으면서, 좋은 음악 좀 달라고 떼를 쓰는 것 또한 이 연령층이다. 그러면서 소외당하기 싫어서 노래방에 가기 위해서라도 10대들의 유행 음악 한 두 곡은 꼭 챙겨서 외운다. 진정으로 다양한 음악을 원하면 지금 켜놓은 TV의 쇼프로를 꺼라. 10대 일색인 오락프로도 꺼버려라. 그럼 된다.

 

TV를 장악하는 10대취향의 댄스나 발라드는 안방의 중심에서 물러나 10대들을 찾아 세계초유의 립싱크(?) 공연장을 만들거나 아예 하이틴 채널을 따로 만들어 이동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다소 어설프지만 노력이 깃든 다양한 음악들이 차차 자생적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물론 단시간 내에 모든 게 해결되려면 고쳐져야 할 문제점이 이외에도 많다. 방송국의 제작방식의 문제, 기술상의 문제, 음반비지니스의 고질적 문제 등 이 그것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안 된다.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었지만 독자들께선 본 기자의 의도를 아셨을 줄로 믿는다. 다음 기사는 지금까지의 글보다 조금 더 전문적인 측면에서 다뤄볼까 한다.

한국의 방송에 대해 다루어볼까 하는데 한국대중음악의 발전을 저해하는 방송사의 음악프로 기획, 제작상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나름대로의 해결방안 제시, 그리고 대중들이 이런 음악프로를 보고 듣는 과정에서 속거나 기만 당하기 쉬운 몇 가지 고질적인 트릭을 밝히고자 한다.

이외에도 독자들께서 기사로 다루길 원하는 사안이 있다면 메일을 보내주시면 큰 참고가 되겠다. 끝으로 메일을 통해 좋은 제안을 해주신 서호남 독자님( moneytry@hanmail.net )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꾸벅. 

 

 

 

 

- 음악전문 대기자 김기자 ( crit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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