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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에 콩깍지] 연기파 배우 조니 뎁

 

2009.08.26

 

여기,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한 젊은이가 있다. 위로는 남편의 자살 후 사는 이유조차 잊고 폭식으로 나날을 보내는 어머니가, 아래로는 틈만 나면 높은 곳에 기어 올라가서 내내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지적장애아 동생 어니가 있다. 그 밖에 누나와 여동생 역시 그 집안의 가장인 그의 도움 없인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운명에 순응하며 살자니 몸 안에 뜨겁게 차오르는 피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고, 그래서 가족을 버리고 훌훌 떠나자니 본인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와 동생 생각에, 별 수 없이 선택한 돌파구가 고작 불륜이다. 게다가 불륜상대 카버부인은 자신과의 짜릿한 애정행각 후에는 그와 전혀 상관없는 조신한 마나님으로 돌아간다. 가족을 비롯한 마을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환멸을 느끼는 그는,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이 마을에 머무르게 된 캠핑족 소녀 베키(줄리엣 루이스 분)에게 끌리게 되고, 베키 역시 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아이오하주 작은 마을 엔도라에 살고 있는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 분)는 본인의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불만과 불안에 휩싸인,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가족이라는 족쇄 안에서 하루하루 지리멸렬한 삶을 이어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 1993)>는 <개 같은 내 인생>, <쉬핑뉴스>로 잘 알려진 스웨덴 출신 감독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원제 그대로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잡아 먹는가 이다. 영화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위태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족이기 때문에 희생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혹자는 지적장애아아 어니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가 출연진 중 최고라고 하던데, 나는 이 영화야 말로 군계일학으로 조니 뎁을 빛내주는 초기 걸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전 작품 <가위손>이나 <베니와 준> 역시 조니 뎁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들이긴 하나, 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길버트 역을 맡은 그는, 벗어날 수 없는 천형처럼 가해지는 가족의 숱한 요구와 수난으로 인해서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가히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청춘의 고단한 삶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기괴한 분장이나 기행적인 역할이 아니고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정통 드라마에서 그 실력을 발휘하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조니 뎁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다들 아시다시피 팀 버튼 감독이다. 개인적으로 팀 버튼을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조니 뎁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른 영화들은, 결국 자연스레 둘 다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한 영화로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려 7편에서 호흡을 맞춘 이 환상의 복식조는 굳이 페르소나 라는 거창한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있어 독특한 공생관계로 알려져 있다. 특히, 팀 버튼의 경우는 대외적인 장소에서 조니 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도 숨길 수 없을 만큼 꽤나 많이 들켜 버린 상태다. 하여, 앞으로도 계속될 둘의 남다른 우정을 여러 지면이나 스크린으로 확인할 날들이 많을 터이니, 오늘은 팀 버튼의 작품 속이 아닌 그 밖의 작품에서의 조니 뎁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팀 버튼 작품을 논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조니 뎁이라는 배우를 반으로 뚝 자른 형국이나, 그 외의 영화들이 그만큼의 큰 반향을 일으키진 않았더라도 주옥같은 작품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지점에서 이 글은 출발했다.)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맨(Dead Man, 1995)>은 한편의 우화 같은 영화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흑백의 화면 속에서 모든 행동과 사건이 일어나는 개연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고의 촬영감독 중 하나로 일컫는 로비 뮐러의 유려한 앵글 안에서 조니 뎁은 특유의 그로데스크한 마스크을 보여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영화 속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죽음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를 표현하는 중에도 가끔 쉰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영화는,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 분)가 직장을 갖기 위해 아무것도 없이 찾게 된 낯선 땅에서 우발적 살인 후 도망치다가 인디언 노바디(게리 파머 분)를 만나게 되고, 그 인디언 노바디가 주인공 블레이크를 18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환생이라고 믿게 되면서 자못 신비로운 내용으로 풀어진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의 남겨진 시 지옥에서의 잠언을 읆조리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짐 자무시는 이 작품에서 온통 상징으로 점철된 낯선 서부의 세계를, 마치 잘 그린 수묵화를 보는듯한 담백한 회색의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감독 자신의 일관된 메시지인 인간의 절망과 고독, 소외 등을 적절히 표현해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짐 자무쉬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많이 어렸을 적엔,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뭔가 대단한 영화들만 보는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종종 내 취향을 과대포장하곤 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전혀 즐기지 않고 늘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봤던지라, 그래서 더욱 조니 뎁이 출연한 짐 자무쉬의 영화는 이전 그의 영화들과는 사뭇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짐 자무쉬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코믹 터치가 된 부분도 그 이유일 테고, 또 과연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이만큼의 흡인력으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다 봤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조니 뎁만의 힘이라 할 수 있으리라.

 

조니 뎁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가 직접 감독한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동안 연기와 연출 모두에서 특별한 재능을 선보인 배우출신 감독들이 상당히 많았으나, 무려 조니 뎁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걸 보면, 그의 첫 연출작이 다소 대중성이 결여된 작품일거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성 면은 애초부터 재고의 가치가 없었던 듯, 이 영화 <브레이브 (The Brave, 1997)>는 97년 깐느 공식 경쟁 부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비평가들에게 있어 감독으로서의 조니 뎁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간타운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살고 있는 라파멜(조니 뎁 분)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해, 가장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한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그리하여 가족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죽음의 천사인 매카시(말론 브란도 분)를 통해 돈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는 거래를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일주일밖에 살 수 없게 된 라파엘은 그간에 제대로 부양하지 못했던 가족과 그의 친구들에게 진귀하고 값비싼 선물로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고, 비록 유한한 시간이지만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음과 동시에 가족으로 인한 행복을 다시금 알아가게 된다.

 

 

오랜 동거 생활 끝에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 조니뎁과 그의 연인 바네사 파라디, 그리고 그들의 두 아이가 언뜻 떠오르는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 바네사 파라디를 만나기 전에 만든 작품이긴 하나, 단지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갖기 위해 <캐리비안의 해적>을 찍었다거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그 누구도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섬 하나를 사버리는 통 큰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애틋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특히, 95년 작 <돈 쥬앙>을 찍으면서 인연을 맺게 된 말론 브란도와는 자신의 첫 연출작인 이 영화에서도 호흡을 함께 할 만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그에게 있어 말론 브란도는 우리의 얼굴 수에는 한계가 있으니 너무 많이 영화에 나오지 말라며 뼈 있는 조언을 해주는 롤 모델이자, 나이차를 떠난 특별한 우정,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대신한 대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이번에 새롭게 개봉한 <퍼블리 에너미((Public Enemies, 2009)>역시 과거 갱 느와르 영화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말론 브란도의 모습을 상기 시키는데, 영화를 다 촬영한 후 있었던 인터뷰에서 조니 뎁 역시 그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음을 시인했다.

 

갱스터 무비의 교과서 격인 대부 시리즈를 비롯하여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을 통해서 이미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그리 낯설지 않으나, 시카고에 실존 했던 희대의 은행 강도 존 딜린져로 분한 조니 뎁의 느와르 영화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게다가 간만에 스크린으로 보게 될 정통 느와르 영화는 어떤 느낌일지 개봉 전부터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기존의 걸작이라 칭하는 몇몇 초기 갱 무비들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건만, 다행히 보고 난 후의 소감은 매우 흡족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퍼블릭 에너미>는 극장 찌라시만큼의 소량의 맛뵈기 스포일러가 첨가 되었으니, 혹여 사전지식 일체 없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독자분덜은 여기서 그만 읽기를 멈추시길.)

 

 

존 딜린져는 1930년대 미국 경제 대공황기에 13개월간 11번의 은행 강도, 2번의 탈옥을 시도했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FBI에게는 공공의 적 1호로 통했으나, 대다수의 국민들에게서는 불황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은행 돈만 터는, 난세의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대담하고 신출귀몰한 솜씨로 은행을 마치 제 집 드나들 듯 넘나드는 존 딜린져에 맞서기 위해, 존 딜린져 만큼이나 대담했던 거물 프리티 보이를 검거한 바 있는 일급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 분)를 영입한 FBI는, 존 딜린져를 향한 집요하고도 피 비린내 나는 검거를 시작하게 된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오늘만을 치열하게 살아가던 존 딜린져는 급변하는 시대 탓에 그의 뒤를 봐주던 지하 세력들이 자신을 외면하게 되면서, 사랑하는 여자 빌리를 만나게 되면서, 또 이전에 같이 활동했던 그의 친구들이 모조리 체포되거나 죽음을 맞게 되면서, 더 이상 멋진 게임이나 단순한 오락이 아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역전 한방을 꿈꾸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오게 된다.

 

사실, 존 딜린져는 실존 인물이기에 그의 최후 씬이 딱히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가는 단언코 감독과 배우 몫이라 할 수 있다.

 

과거 <히트>나 <콜래트럴>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클 만 감독 특유의 마초성을 띠고 있는 이 영화 역시 극중 인물이 떼강도로 몰려나오다 보니, 과거 <히트> 때만큼이나 인상적인 시가지 총격전들이 영화상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이클 만 영화의 공식이 되 버린 쫓고 쫓기는 상황은 그 관계에 있어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착한 놈. 나쁜 놈의 논리에서도 벗어난다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는 우리는 선악이 불분명한 그 대립구도에서 단지 각자 처해있는 개별의 상황에서 공감이나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무엇보다 <퍼블릭 에너미>,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낭만이다.

 

나지막하게 LP판에서 흘러나오던 JAZZ, 각종 사교장으로 이용되던 댄스 클럽, 선택받은 자들만이 쫙 빼입고 관망하던 경마장, 흑백 영화가 나오던 극장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보니 감독이 작정하고 각종 미장센으로 꾸몄다기 보다는, 1930년대 시대배경 자체를 충실히 반영한 듯 보인다. 지금 시대에서 봤을 땐 그때의 모든 기호들이 다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만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돈을 쓸어 담고 은행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인질로 잡은 여성 행원에게 코트를 걸쳐 주는 신사적인 모습이나, 체포된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검사의 어깨위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여유 등은 영웅을 필요로 했던 시기에 영민하게 반응할 줄 알았던 존 딜린져 특유의 개인 성향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그 당시 시대적인 공기도 무시할 수 없다 하겠다.

 

특히 운명적 사랑에 빠진 존 딜린져의 모습은 이 영화를 극강의 로맨스 영화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축인데, 정리하자면 그 어떤 배우도 마초적이면서도 로맨틱하기까지 한 주인공 역할을 조니 뎁만큼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존 딜린져 역할을 다른 배우가 맡았다면, 글쎄, 관객들이 과연 조니 뎁 만큼이나 몰입하며 봐줄런지.

 

앞서 <길버트 그레이프>, <데드맨> 처럼 <퍼블릭 에너미> 역시, 조니 뎁이라는 배우의 이미지에 많이 기댄 영화이다. (물론 그간의 팀 버튼 작품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거장을 비롯한 수 많은 감독들이 앞 다투어 그와 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고 한다.
조니 뎁, 그가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이미지 가운데, 다양한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 꼭 필요한 이미지만 가져다가 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예전에 그의 영원한 친구 말론 블란도가 염려했었던 다작으로 인한 이미지 부작용은 앞으로도 절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여 안심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그가 연기가 되는 배우라는 거다. 연기 되는 배우가 작품을 고르는 탁월한 안목까지 갖췄으니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는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얼굴을 페이스오프 하지 않는 이상 180도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는 느낌까지는 가질 수 없겠으나, 그가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캐릭터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그만의 연기의 힘이 있다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ps.

 

히스 레져의 미완성 유작으로 알려진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에서 원래 히스레져가 분했던 토니 역할을 콜린 파렐, 주드 로와 함께 번갈아 열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론의 대모험>, <브라질>, <12 몽키즈>로 유명한 테리 길리엄이 메가폰을 잡았고 대한민국 개봉은 11월경으로 잡혀 있다. 게다가 2011년(아직 멀었다...)에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 3>에도 얼굴을 비춘다고 하니 그야말로 흐뭇하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 몸에 흐를 柳( lefteye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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