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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 추천0 비추천0



 
 

[게이로 세상살기] 동성애자 가족 
가족은 소중한 것이여. 물론 게이에게도.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처럼 생긴 청년이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그가 머뭇거리며 어렵게 말을 꺼낸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게... 저 이성애자예요.” 카메라가 돌면 그 앞에 두 명의 아빠가 있다. 아빠들은 약간 놀라지만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이 된다. 이성애자 아들의 커밍아웃.



이 동영상은 ILGA(International Lesbian and Gay Association,http://www.ilga.org)라는 이름의 동성애인권운동단체들의 국제적인 연합기구에서 만든 TV 광고다. 동성애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동성애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얘기를 큰돈을 들여 만들고 또 큰돈을 들여 TV에 광고로 내보내고 있다.

이들이 이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동성애자들의 오랜 숙원 중 하나인 ‘동성애자들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 이미 많은 나라들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했거나 시민결합(union civil)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애자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커플에게도 유산, 세금, 연금 등에서 일반 기혼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 act)을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동성애자 커플이 아이를 입양해 가족을 구성하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도 보수적 시각이 팽배하다.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동성애(자)가 아이들에게 이롭지 않다(나아가서는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과연 그런가?

 

 

배우 홍석천은 지난해에 외조카 두 명을 입양해 아빠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조카들의 성씨 변경 신청이 올 2월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한민국 대표 게이랄 수 있는 홍석천이다. 그가 이혼한 친누나의 자녀 2명을 입양해서 가족을 만들고 법원이 두 외조카의 성씨변경을 정식으로 허가했다. 이제 홍석천은 법적으로도 홍씨성을 둔 두 자녀의 아빠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홍석천은 인터뷰에서 "당연히 할 일이다. 아이들의 장래를 제가 책임지기로 약속한 만큼 별일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제가 잘못될 경우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면서 "아이들과 지금껏 같이 살아와 이번 성씨변경은 법적인 절차 외에 큰 의미는 없다"고 얘기했다.

오, 그렇지 않다. 홍석천 개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지 몰라도 대한민국에는 큰 의미가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비록 조카이기는 하지만 동성애자 남자가 입양을 하고 성씨를 바꿔 법적으로 아빠가 됐다는 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을 구성하고 싶은 동성애자들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다.

홍석천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아이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홍석천의 아빠로서의 자격은 충분해 보였다. 그 아이들의 친 엄마인 홍석천의 누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입양을 허락했을 것이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석천이 동성애자인 것이 문제가 될까? 아이들에게 해롭냔 말이다. 그가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를 따지기 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정말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홍석천이 커밍아웃한 이후 가장 먼저 당한 불이익이 방송 출연 금지였다. 그는 출연하던 ‘뽀뽀뽀’에서 바로 잘렸다.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게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뽀뽀뽀’ 관계자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더 이상 출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잖은 통보를 일방적으로 했을 뿐이다. 그래도 다 알고 있는 얘기 아닌가!

세월이 흘러 아이들에게 해롭다던 사람이 두 아이의 아빠로 법원에서 인정(?) 받았다. 세월이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홍석천의 아이들이 잘 자라주길 바란다.

 

 

 2004년 2월 4일 대한민국 정부는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단 기준에서 제외했다.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7조의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에서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피학성음란증 등 변태성행위, 매춘행위, 기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이란 조항 중 ‘동성애’부분을 삭제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그 이전에 법원은 “동성애의 묘사가 청소년에게 위해한 형태로 표현되지만 않는다면 동성애 자체가 위해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동성애냐 이성애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보이느냐가 문제이다.(모든 동성애 표현이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다고 우기는 게 아니다!) 이로써 2000년 8월과 9월,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인터넷 사이트 엑스존이 음란하다며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고시하면서 시작된 동성애(혹은 동성애 사이트)의 청소년 유해 논란이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보수꼴통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국가인권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치 떨리는 국가인권위 위선과 상식 배반의 8년사’를 일일이 열거하는 중에 “ 인권위가 심혈을 기울여 온 또 다른 영역은 ‘동성애자 보호’였다. 국가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동성애자를 공채한 데 이어 2003년 4월2일 ‘동성애 사이트는 유해하지 않다’며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유해매체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는 것을 포함시켰다.

그들은 동성애(자) 차별과 동성애(자)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다시 해묵은 논란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MB가 대통령이 되고 딴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관 뚜껑을 열고 나온 것 중 하나다. 

 

 

내 얘기를 보태보자. 난 이성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가 아는 한 우리 가족이나 친척 중에 동성애자는 나 한 사람뿐이다. 100여명이 넘는 친척 중에 오직 나 하나! 이성애자들의 결합으로 태어났고 이성애자들에 둘러싸여 자라왔고 이성애자가 정상(?)이라는 교육을 받았는데 난 불행하게도(?) 동성애자로 살고 있다.

다른 친구들이 이성에 눈떠 가슴 큰 여자들이 벗고 나오는 빨간책(‘플레이보이’나 ‘허슬러’같은 잡지.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는 그렇게 불렸다.)에 빠져 세운상가 뒷골목을 어슬렁거릴 때 난 같은 반 남자 아이 때문에 열병을 앓았다. “정신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적도 있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여자를 좋아하면서 살고 싶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커밍아웃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서른두 살이 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내게 “동성애자로 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렇게 이성애자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 생각하며 살았지만 지금 동성애자로 살고 있다. 이성애자 가정에서 자란다고 해서 모두다 이성애자로 살게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 가정에서 자란다고 모두 동성애자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또한 이성애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가 문제이다. 이성애자 가정이 모두 문제없는 행복한 가정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 가정이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동성애자들에게도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줘야 옳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들에게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면 쉽게 해결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동성애자들에게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닌 것임에 틀림없다…

 

 

 

 

철없이 사는 영화쟁이& 커밍아웃한 게이 김조광수
(ceope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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