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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업가 정신

 

잘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멘탈도 박살나 한없이 가라앉던 때가 있었다. 망하기 전에도 좋지않았던 걸 끌고온 터라 정신적, 금전적, 체력적 충격이 꽤 컸다. 여름-가을-겨울-봄으로 이어지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한참을 가라앉는데,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 지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창업지원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렇게 창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성공해서 어려울 때 도와준 나라에 꼭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모였던 팀들 중에 필자네 팀이 제일 어설퍼보였다. 다른 팀들은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어 곧 매출을 내거나 투자를 받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필자와는 달리 여유도 있어보였고, 전적으로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매달리지 않는 눈치였다. 다들 수업도 요령껏, 성과도 요령껏, 보고도 요령껏, 경제적이고 영리하게 진행하는데, 필자는 요령없이 '열심히'만 했다. 

 

창업지원 프로그램 중에 꼭 이수해야 하는 필수 교양과목이 몇 있다. 그중에 ‘기업가 정신’이라는 과목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기업가 정신'이라고 하니 기부, 이익 환원, 장학 사업 등 큰 회사 회장님들이 하는 사회공헌 활동이 떠올랐는데, 오늘 먹고 살 궁리가 시급한 필자에게는 언감생심이었으니 관심도 없었더랬다. 이제 막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막 창업하는 사람에게 기업가 정신을 얘기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이것이 처음 필자가 접한 기업가 정신이었지만, 이제는 창업하는 사람이 ‘꼭 가져야 할 소양'에 주저없이 ‘기업가 정신’을 꼽을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정신(다른 말로 하자면 멘탈관리 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배경에는 멘토링에서 만난 한 대표님이 있다. '멘토링'은 사업을 성공적인 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인적지원 프로그램이다. 창업자와 멘토를 매칭시켜, 일정기간 동안 상담도 하고 애로사항도 해결할 수 있도록 밀착지원해주는 것으로, 필자는 운좋게도 이를 통해 아주 고마운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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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에 매칭되는 멘토는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된, 말하자면 ‘외주 인력’이다. 멘토 또한 멘토링 평가를 받아야 했고, 평가결과는 멘토의 다음 ‘외주’에 영향을 미쳤다. 평가는 언제, 어디서, 몇 번을 만나, 몇 시간 동안 상담했는지와 같은 정량적 평가와 멘티의 후기를 합해 이루어졌다.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보니 멘토는 ‘와. 그런 아이디어라니 놀라운데!’, ‘너의 사업은 어마어마해!’, ‘완전 잘하고 있어! 잘 될거야'와 같은 듣기 좋은 소리만 했다.

 

그런데 필자의 멘토는 좀 달랐다.

 

멘토는 2000년대 인터넷 붐에서, 당시로서는 엄청 혁신적인, 지금의 SNS와 같은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큰 회사에 인수합병시킨 후 엑시트한 분이었다. 필자는 그때까지도 멘토가 어떤 분인지 몰랐다. 그저 일찌감치 성공하고 지금은 여유롭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가는 분이겠거니 짐작했을 뿐이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는 그분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멘토님은 인수합병 이후 서비스의 본질이 퇴색하고 결국 스러진 것을 무척 안타까워 했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후배들을 돕고 조언하고자 멘토링에 나서게 되었다고 하셨다. 

 

멘토는 분명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눈빛이 매서웠다. 첫 만남이라 일단 사업모델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성공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쎄한 것이 멘토링 신청을 잘못했나 싶었다. 

 

 

(1) 사업의 본질, 살아남기

 

필자의 브리핑이 끝나자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찌나 가슴을 후벼파는지,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필자가 생생히 느낄 정도였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성공했을 때의 청사진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 얘기보다, 지금의 자금과 수입으로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버틸 수 있는가?”

“지금 출시한(출간한) 제품을 개발하는데 들어간 비용과 기간은 어떻게 되는가?”

“후속 제품의 출시(출간) 계획은 몇 가지나 되나? 언제까지 계획되어 있는가?”

“후속 제품의 재료(원고)는 어디서 어떻게 조달할 계획인가?”

“팀원들은 각각 무슨 일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는가?”

“이 친구는 무슨 일을 하는가? 비즈니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보이는데 계속 끌고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어버버 대답하면 얕잡아볼 것 같았다. 그게 뭐라고, 과연 사업을 잘해나갈 똘똘한 넘이라 인정받고 싶었다. 얼결에 ‘다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완벽한 사업계획’을 조리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두뇌를 풀가동해봤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은 점점 더 하얘졌다. 말은 하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꼬인 말은 수습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꼬여갔다. 진땀이 줄줄 흘렀다. 내내 고민했는데 직접 구상한 사업모델도 이렇게 설명 못하다니… 어찌나 창피한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맑고 투명한 필자의 유리멘탈이 다시 한 번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첫 멘토링 자리를 정리했다. 

 

며칠 후 다음 멘토링을 가졌다. 그분은 수줍은 소녀감성의 소유자였던 필자(외모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거 잘 안다)와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분이셨다. 공대 출신이라 그런지 무엇이든 객관적 근거와 데이터로만 이야기했다. 필자는 의미, 포부, 꿈과 같이 감성적인 단어들로 미래의 비젼을 이야기하는데 그분은 데이터와 계량된 분석결과를 요구했다. 진로 선택 역시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필자에게 던져졌던 질문은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업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멘토님이 물었다. 우물쭈물하는 필자 대신 ‘사업은 먹고 사는 것’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업이라 함은 구성원과 그 가족 모두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고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사업이 지속되면 하늘이 점지해주는 운을 기다려볼 수도 있다고 했다. 운이 따르면 큰 돈을 벌겠지만, 삶이 지속되기만 하다면 큰 돈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고 했다. 다만, 시작부터 큰 돈을 벌겠다고 덤비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렇다. 그저 막연히 돈을 벌겠다고만 생각했지 오늘, 이번 주, 이번 달, 어떻게 돈을 벌어서 어떻게 생활할지를 고민하고 계획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수긍이 됐다.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버틸 수 있는가?”는 창업자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묻는 질문이었고, “후속 제품의 출시(출간) 계획”은 그 시간을 얼마나 더 늘릴 수 있는지, 시간을 늘이기 위해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제품의 재료 조달 계획”은 상품을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묻는 것이고, “팀원들은 각각 무슨 일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는가?”는 한 배를 타고 가는 구성원에게 같은 목표가 공유되어 있는지,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창업 뿐 아니라 대부분의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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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사업의 발단, 시작. 사업 전반의 구성과 비전을 구체화하는 과정

 

<현재의 자신의 진단과 분석>

자신의 강점과 약점, 사업에 득실이 되는 시장환경 등 객관적인 요소에 대한 분석과 평가

 

<최적의 방안 모색>

주어진 조건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 수립

 

<실행>

계획된 바에 따른 실행

 

<평가 및 반성>

일정기간 실행 후 성과를 분석하고 더 나은 방향의 설정과 계획 수립. 이 과정을 마주하기가 무척 두렵고 힘들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꼭 필요하다.

 

<새로운 방향의 모색>

평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방안을 수립하는 단계

 

<재실행>

수정 및 재수립된 계획에 따른 실행

 

이 사이클을 거쳐야 미흡한 점이 드러나고 보완하기도 쉬워진다. 객관적인 분석과 진단, 데이터에 기반한 최소한의 미래 계획은 생명연장을 가능케 해준다.

 

사업은 ‘모두가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실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미래의 청사진이나 비전은 사업을 시작하게 하는 동기 중 하나일 뿐,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은 살아남는 일 외에는 생각할 이유도 겨를도 없다. 아니, 생각하면 안된다. 

 

 

(2) 나는 선수인가 심판인가?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낮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어리석게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덤비기만 해왔던 것이다. 문제집을 풀고 채점을 미루는 아이처럼 내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괴롭고 또 두려웠기 때문이다. 

 

멘토링의 진단 결과, 필자네 사업모델로는 조직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람에 따라 이일저일 닥치는대로 돈이 나올 일을 하다 보니 업무도 분산되어 있었고, 역량도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했다. 정작 지속적인 먹거리를 만들어줄 ‘우리 아이템’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외주를 쫓아다니다 보니 그 때 그 때 ‘언발에 오줌누는’ 화려한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자력으로 조직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돈이 나올 외주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외주도 필요하면 해야 하지만 이는 밥을 굶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고, 진짜 주인은 ‘우리 아이템’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 아이템’의 수익구조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던 중, 시장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마법OO문, 살O남기 시리즈와 같은 학습형 만화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에듀테인먼트(에듀케이션+엔터테인먼트), 즉 놀이하듯 만화책을 보면 저절로 학습이 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표방하는 만화책인데, 멘토님이 보기에 아주 영리한 비즈니스 모델이니 비슷한 콘텐츠를 개발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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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는 출판사 편집부가 기획하고, 작가에게 글과 그림을 매절(편당 얼마에 콘텐츠를 저작권과 함께 판매하여 넘기는 것)로 외주를 주어 확보한 콘텐츠로 책을 만든다. 초기 제작비용은 좀 들어도 인세부담이 없다 보니 출판사로서는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사업모델이다. 시리즈로 편수도 늘릴 수 있어 수익은 더욱 커지고 부담은 더욱 작아지는 아주 영리한 모델이다.  

 

하지만 고지식한 필자는 생각이 좀 달랐다. 사탕에 비타민 0.0001mg 넣어놓고 독감을 예방해주는, 맛도 좋고 영양 많은 본격 영양식이라고 표현하는 느낌이었다. 2~30권의 분량은 우습게 넘어가니 어린이 독자의 시간을 엄청나게 쓰는데, 그에 비해 전달되는 지식의 양은 너무 적어보였다. 분량을 늘리려고 같은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거나 이야기를 억지로 늘리는 점들이 눈에 띄었고, 그런 장삿속이 미워보였다.

 

“어른이 돼서 애들을 상대로, 이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필자는 멘토께서 필자의 도덕성을 높이 평가해주리라 칭찬을 은근 기대했다. 하지만 멘토의 대답은 달랐다.

 

“왜 선수가 심판을 보려고 하느냐?”

 

심판은 성공해서 운동장을 벗어난 때에 하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필자는 선수였다. 그것도 이제 그라운드에 들어선 신참. 그런데 왜 심판을 보려하고 심지어 평론가가 되어 다른 선수의 비평까지 하려고 했을까? 투철한 윤리의식이었을까? 아니면 성공한 사업에 대한 시기와 질투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후자 쪽이 필자의 진짜 속마음이 절대 아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성공한 사업을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비평하다 보면, 상대는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고 나는 투철한 윤리의식으로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좇는 고고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윤리를 저버린 사업도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현실화했고 정당한 경쟁을 통해 그 자리에 오른 좋은 사업이다. 필자가 할 일은 잘 된 일을 벤치마킹하고 배우는 것이지 심판을 보고 비평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3) 자존감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다. 필자네 팀은 ‘대체 뭐하는 팀인가’ 싶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팀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실제로 필자네 팀은 사람에 따라 일을 하다보니 ‘뭔가 하기는 하는데 뭐를 하는지 모르는 팀’이었다.

 

짜임새 없는 팀 구성을 개선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팀 구성은 사업 초기에 이루어지지만 사업을 전개하는 내내 과업의 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역량이기 때문에 팀 구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심각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필자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회사를 다닐 때도 회사가 어려워지면 인력 줄이자는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오는 것에 큰 반감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사업방향이 달라졌다고 함께 해온 사람을 내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멘토님의 진단은 달랐다.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인간의 예의고 도리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조차도 필자의 욕심이고 자만일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필자의 고집이 팀원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라고 했다. 팀원들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면 잘 맞는 옷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꼭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먹고 사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자신에 대한 자존감. 그것은 창업자에게도, 또 팀원들에게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꼭 가져야 하며, 팀원들이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했다. 그것이 사람을 아우르는 대표라면 가져야 할 소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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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한 이후, 수입은 0으로 수렴해갔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돈은 모자랐다. 투자자 앞에서, 은행 창구에서 급격히 공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돈 버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은 불안함으로, 내 힘으로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은 자괴감으로 변해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는 높은 이상을 가슴에 품고 살았지만, 파리도 잡지 못하는 독수리는 더 이상 독수리가 아니었다. 시선은 땅바닥에 꽂히고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었다.

 

멘탈은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고 공룡을 자살하게 할 수도 있다. 하물며 창업자에게 멘탈은 얼마나 중요할까? 법륜스님은 말씀하셨다. 관점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었다. 교통비도 아끼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햇살 좋은 봄, 바람 시원한 가을 날,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출근하다 마음이 내키면 멈춰서 꽃 사진을 찍곤 했다. 천천히 산책하며 일부러 출근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비록 월급도 안나오고 통장은 마이너스지만, 지각해도, 심지어는 결근해도 필자를 혼낼 사람은 아무도 없는 자유로운 ‘처지’임을 자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일이고 어느 면에서는 한심한 노릇이지만, 이렇게 남다른 출근 시간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멘탈을 갖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가 매달 주는 급여는 곳간을 여유롭게 하고 인심을 넉넉하게 해준다. 또,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함께 있다는 소속감은 안정감과 자신감을 제공한다. 안전함, 그리고 안전이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안정감은 개개인으로 하여금 생명을 부지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주고, 그 여유는 생존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크게 높여준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경제적, 심리적 방패가 사라진다. 모든 것을 모두 내 손으로 만들어야만 했기에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일 수 있는 멘탈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멘토님은 ‘사업이란 결국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언젠가 회사를 나와 자기 일을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한다. 창업자는 그 과정을 먼저 겪고 있는 것 뿐이라고 했다. 아직 돈이 벌리지 않은 것일 뿐, 창업자의 삶은 절대 무가치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창업자는 자칫 돈이 없는 것, 돈을 잘 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쉽다. 하지만 지금껏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꾸리고 버텨내는 것은 오히려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존재에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자존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빠른 시간 내에 시장 진입에 성공하여야 한다. 

 

 

(4) 시장진입

 

시장진입이란 개발된 사업모델로 영업을 진행하여 매출을 내고, 그 수익으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멘토링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시장진입'은 당연히 글자 그대로 해석되는 줄 알았다. 즉, 시장에 발을 들이는 것,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장에 발을 들이는 정도의 일은 사업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누구나, 언제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론칭하면 되는 것이어서 의미를 붙이기는 좀 아쉬운 듯 했다.

 

오히려 조직이 론칭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단계, 즉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 갓 창업한 기업에게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창업자에게는 사업모델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팀원들에게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사용자에게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이라는 신뢰를 주는 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사업은 '먹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그 시점을 시장진입이라 했다. 시장진입에 성공했다는 것은 1차적으로 사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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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진인사대천명의 시간이다. 해야할 일은 사업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개선하고,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다.

 

시장진입의 단계를 통과하면 창업자의 멘탈도 많이 달라진다. 생각과 태도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자신감이 생긴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주 중요하다. 생각과 태도가 긍정적이면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가 쌓여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타인의 말에 흔들림이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게 된다. 일이 잘 풀리면 스트레스도 저절로 풀리고 자존감도 상승하여 스스로를 좋은 사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다. 창업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시작한 필자의 창업은 너무도 무모했다. 아이템은 이상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었고 수익모델은 어설펐다. 로드맵은 시장진입으로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표류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표류에 팀원들은 지쳐갔고 결국 분열했다. 총체적 난국에 무너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시장에 진입하는 데 7년을 구르고 굴렀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분들을 만나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마도 그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필자는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결국 포기하고 더 깊은 고통의 심연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창업을 당하시는 분, 창업을 꿈꾸시는 분, 그리고 책을 만드시고자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필자가 커다란 도움을 받았던 바로 그 기업가 정신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강건한 멘탈을 관리하시고 필자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